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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룻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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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I. 들어가는 말

해마다 어버이날이나 명절날이 다가오면 우울해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흩어져 살 때는 모르지만 명절이나 어버이날이 되면 깨어진 가족들과의 관계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이 옳지 않다는 가책이 따라 다닙니다.

최근의 어느 앙케이트에 의하면, 젊은이들 가운데 백 명 중 약 칠십 명이 자신의 부모를 미워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가 그리스도인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관계가 오히려 가장 상처가 많은 관계로 변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두 글자는 눈물 젖은 이름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 중 가장 터놓고 어기는 계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경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미워하는 자신의 부모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움을 간직한 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성공하면 외식이요, 실패하면 파국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의 첫 번째 대의는 마음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가끔 ‘부모님 생전에 그래도 잘 해드려야 할텐데…’라고 생각하지만 그 실천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삶과 마음속에 늘 흐르는 부모 공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무슨 기념식이나 하듯이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 주고 선물 하나 건네고는 다시 예전의 상처를 붙들고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마음 없이 행하는 모든 선한 일은 위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부모님께 마음을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II. 뒤틀린 부모의 모습

오늘 성경에는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어머님을 떠나며 어머님을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님이 어디에 가시든지 따를 것이며 어디 유숙하시든지 거기 유숙하겠나이다.” 이 말씀은 결국 며느리 룻의 마음이 어머니 나오미와 완전히 하나 된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오미에게 룻이 공경할 만한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A. 온전하지 못한 부모

나오미의 가족은 흉년이 들어 기근을 모면해 보려는 눈물 나는 사연을 안고 가족들과 함께 타관 땅에 왔습니다. 호의호식하기는커녕 사랑하는 남편과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땅에 묻고 홀몸으로 기다려 주는 이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징계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이러한 불행이 하나님 앞에 자기가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당하는 징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룻이 어머니인 나오미를 죽기까지 따라가려고 한 것은 나오미가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신앙적인 감화를 끼쳤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죄로 인해 징계를 받아 슬픈 여인으로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 나오미에게서 무슨 감동을 받았겠으며 존경할 만한 신앙 인격을 발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나오미처럼 온전하지 못한 부모를 가진 자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는 원인도 여러 가지입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한 까닭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기의 향락을 좇아 방종하고 무책임한 어머니의 가정생활이 자녀들의 가슴을 멍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을 버리고 자기의 쾌락을 쫓아간 어머니의 방탕한 삶과 가족들을 폭행하는 아버지의 야비하고 폭압적인 모습들은 세월이 흘러가도 자녀들의 가슴속에 흑백 사진처럼 그 영상이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짐승 같은 자식들도 많지만, 짐승 같은 어미 아비도 많습니다. 이런 저런 상처들과 아픔이 가슴에 많이 맺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찌하여 네 마음을 부모님께 안 드리느냐? 자식으로 어찌 부모님께 이처럼 공경하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도전하면 내용이야 옳은 말이지만 옳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단지 요구 하나에 의하여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순종을 위해서는 참된 치유의 과정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B. 대를 물리는 불행

인간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들이 준 아픔 때문에 도무지 가슴속에서 부모와 더불어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고통의 기억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그래서 부모 공경의 계명을 순종하지 못하게 하지만, 그 상처와 고통 자체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내 부모에 대한 형벌이요, 징계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부모의 경건한 신앙 때문에 우리가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의 옳지 못한 삶 때문에 아픔과 고통을 물려받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대를 이어 흐르는 불행의 원인을 끊어 버리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아니하면 가계에 흐르는 하나님의 징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준 그 상처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상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었기 때문에 또 자신의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자녀로 하여금 부모인 자신들을 공경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어머니를 늘 폭행하는 아버지를 혐오하던 아들이 장성하여 자기의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성적으로 방종한 어머니 때문에 피눈물 나는 세월을 보낸 딸이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방종한 패역을 본받게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보복적인 모방의 심리”라고 부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포악한 행동이나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으로 씻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주었다면,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부모를 향한 미움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과 사랑이 어찌 한 마음 안에 공존할 수 있겠으며 혐오하는 것과 공경하는 것이 어찌 한 인격 안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며,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두 감정 중 하나가 거짓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문제를 풀어야만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공경으로 부모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잘못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인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이미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모의 죄의 유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 아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 원리인 십계명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부모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타락하여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면 우리가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당대에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자녀인데 하나님 앞에서 이 상처를 신령한 방법으로 치유 받지 아니하면 유사한 죄와 상처와 고통을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III. 뿌리 깊은 상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 격렬할 정도의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안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고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의 관계들을 치료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왜 우리의 부모들이 존경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A. 상처의 원인: 하나님의 사랑을 모름

우리의 부모들은 왜 우리가 존경해 줄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아 우리 안에 상처와 아픔을 안겨 주었을까요? 아버지 이외에는 우리에게 존경할 분이 없었고 어머니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왜 그 분들은 그리움과 존경심을 우리에게 남겨 주지 않고 대신 상처와 눈물어린 고통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도록 행동하셨을까요? 왜 그분들은 지금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돌보지 않으셨을까요? 왜 우리 부모들은 마음을 다하여 화해하려고 해도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깨트려진 삶을 살아 우리에게 이러한 갈등을 주었을까요? 왜 이 단순한 하나님의 명령조차 지킬 수 없어 끊임없이 좌절하게 만드셨을까요?

질문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부모가 허울뿐인 그런 그리스도인들 중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일평생 교회를 떠나 본 적이 없지만 일평생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 본 적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분도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들은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의 성품도 낯설고 우리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을 정도로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모르고 하나님이 자신을 가장으로, 혹은 자녀들의 어머니로 불러 주신 그 위치가 얼마나 거룩하고 고귀한 자리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신앙의 허울은 있었으나 신앙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앙 대신 고통을, 사랑 대신 상처를 물려 준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준 상처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자식 된 우리들은 그 상처와 고통을 고스란히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에는 세월도 약이 되지 않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잊어버리는 쪽은 고통을 준 부모들이지 상처를 입은 자녀들은 아닙니다. 이러한 상처와 아픔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치료가 없는 한 우리의 신앙과 인격 속에 잠복되어 굽은 인격과 도덕적 패역을 가져옵니다. 살아가며 부모와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만듭니다. 어떤 지체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제게 고백하는 가운데 “하나님이시라면, 제 부모님을 용납할 수 있으셨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지체의 마음에 파고든 상처가 얼마나 크고 고통스러우면 눈물을 흘리며 감히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우리는 고통 받은 자녀들이 피해자임을 압니다.

부모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 자신도 그런 삶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서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화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알았더라면 그들도 여러분이 싫어하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과의 모든 미움과 상처의 문제를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 관계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B. 상처의 치유: 하나님의 사랑을 앎

우리에게 커다란 고통과 아픔을 준 우리의 부모와 그 상처로 말미암아 괴로워하면서도 그분들을 용서하고 공경하고자 하는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몰랐고 지금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모르고 그러한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 준 부모보다 배나 더 악독한 사람들이 되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더 큰 상처와 고통을 남겨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지금 우리보다도 더 많이 고통하며 괴로워하도록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부모들이 누리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감격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지불해서라도 이렇게 망가지고 상처 난 관계들을 고치도록 여기에 세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스스로 대견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찬송 받으실 분이 있다면 오로지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상처와 미움을 극복하기를 원하는 선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가져다 준 것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우리의 신앙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어둠과 무지 속에서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움과 상처를 준 부모들을 용서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상처와 고통 속에서 아파하며 일생을 구겨진 휴지처럼 내던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러분들이 이처럼 문제의 본질을 안고 고민하며 상처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여야 할 부담을 느낍니다. 게다가 그 용서 위에 사랑을 보태도록 촉구 받을 때에는 고통을 느끼기까지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상처를 준 부모를 용서하고, 씻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수많은 날들을 불행 속에서 치를 떨며 괴로워해야 했던 그들을 사랑하라고 여러분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그런 어려운 일을 여러분에게 감히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여러분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여러분들을 아프게 한 것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주고 아프게 한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패역처럼 굳어진 마음속에 존재하는 미움의 고리와 상처받은 사람들 속에 생기는 독특한 독소의 감정들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을 품고야 어찌 데지 않을 수 있겠으며 예리한 미움의 칼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 칼에 피 묻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IV. 부모를 공경하는 길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자식들이 많은 그 공동체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그리하면 유업으로 준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말하자면 보상까지 약속하시면서 부모를 공경하도록 그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A. 약속이 깃든 계명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바쳐서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나를 사랑으로 길러 준 경건한 부모만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낳아 준 그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그 얽힌 미움과 상처받은 채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의 세월들과 화해하여야 합니다. 공경하기 전에 먼저 미움의 가시를 버리고 옛 관계를 청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누구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토록 도달하기 어려운 계명을 그리도 쉽게 우리에게 주시고 부모를 공경하도록 요구하셨을까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십계명을 받은 때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계명은 두 번 주어지는데 한 번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고 막 시내 반도로 들어가 시내산에 머무는 동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광야 세월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올 때에는 별다른 계명도 없이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위대한 능력과 권능을 통하여 조상들로부터 막연히 전해 들었던 여호와의 위대함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애굽 온 땅에 저주가 내려도 당신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지방에는 조용한 평화가 깃듦으로써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독점적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애굽의 군사들에게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홍해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를 받는 백성들임을 깨닫게 해주셨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찬송하였습니다. 마른 땅에서 생수를 내시는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며 장엄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부모 공경의 계명을 주시고 이후로 이어지는 사십 년 가까운 광야에서의 세월 동안 그들을 기적으로 먹이고 입히시고 대적들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광야로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능력으로 인도하신 후에 다시 한번 이 부모 공경의 내용을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 주셨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보상을 약속하시며 이 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그들이 결코 소유할 수 없던 땅까지 약속하시며 부모를 공경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장엄한 임재하심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모세를 통해 주셨을 때 그들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로부터 그런 상처와 고통을 받고도 그들이 부모를 공경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것은 동정심 때문에 그리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심은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우리의 부모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바라보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더 긍휼히 여기셨으며 상처보다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셨습니까? 그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주셨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핍절할 때 만족을 누리도록 진리의 말씀을 주셨고 상실과 고통에 몸부림칠 때 주 홀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그분의 품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미움과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베푸시기를 원했던 사랑이었음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그렇게 상처와 아픔을 안겨 주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참사랑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하셨습니다.

B.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라

인간은 인생의 시기마다 받아야 할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대치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비록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 대신 상처와 아픔을 당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이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 많은 자녀들도 치료하고,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사랑 대신 고통을 받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과 깨어진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부모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사랑이 거의 절대적입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굽어진 인격과 심성을 치료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로부터 아무리 많은 공경과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부부관계가 깨어진 사람들은 결코 온전한 사랑과 아름다운 성품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결핍된 사랑에 대하여 절대적 치료책이 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이처럼 인간의 사랑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위대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상처가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상처를 뛰어 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에게 만족스런 자식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부모도 우리에게 만족스런 부모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만족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망가진 사람들을 고치는 위대한 능력이기 때문에 고침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관계도 고침을 받는 생명의 능력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이 진실로 변했다면 어떻게 그 관계가 고쳐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미움과 상처의 사람이 용서와 화해의 사람으로 변했다면 어떻게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부모와 우리, 그 누구도 우리가 지닌 상처의 가해자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피해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았고 그 은혜 속에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사실을 우리의 부모는 몰랐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먼저 안 우리들이 그 사랑을 모르는 부모를 용서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으로 화해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비로소 그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약속의 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그런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부모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져야 할 것이며, 또 하나는 그런 미움과 상처의 고통까지도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남다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섭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축복과 아름다운 신앙과 부모인 우리를 향한 존경심은 물려주지 못할망정 그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고 저주를 유업으로 남기는 부모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모들로 말미암아 얻었던 상처와 고통은 이제 우리에게서 종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용납하여야 합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부모들조차 용납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V. 결론과 적용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에게 이러한 사실을 깨닫도록 은혜를 주신 것은 바로 가계(家系)를 타고 흘러내려 오던 그 뼈아픈 상처와 실패의 유업을 은혜와 축복으로 바꾸기 위함입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로운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남모르게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슴에 심어 주신 그 놀라운 신앙의 기쁨과 은밀하고 거룩한 교제의 희열들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부모를 용서하고 상처를 준 모든 이들과 화해하게 하기 위하여, 그 비밀스러운 은혜와 기쁨을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일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온전히 버리심으로 우리를 얻으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의 부모가,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든지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의 이름 석 자가 우리 마음에 그리움이 되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영혼이 사는 길이고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빛 가운데서….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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