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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 (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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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살전 1 : 1 - 10
제 목 :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백제의 서동이라는 사람이, 신라 진평 왕의 셋째 딸이 천하제일의 미녀라는 말을 듣고, 그 선화 공주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어떤 꾀를 내었는가 하면, 어린 아이들이 잘 부르는 동요처럼, 노래를 하나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그 노래를, 신라 아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습니다.

그 노래가 어떤 내용입니까?  “선화 공주는 남 몰래 숨겨둔 서방이 있는데, 그 서방은 서동이라.  서동의 방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엔 그 방에서 나온다네.” 이러한 내용의 노래였다는 것입니다.  시집을 안간 처자가, 밤에 남자의 방에서 자고 나온다는 것이 가당찮은 말입니까?  소문만으로도, 충분히 혼사 길을  막을 수 있는 그런 말이지요.  그래서 실제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이 노래를 매일 부르게 되니까,  결국에는 어떻게 됩니까? 
신라 진평왕은 그 소문에 못 이겨서, 선화 공주를 결국 서동에게 시집을 보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서동이 누굽니까?  후에 백제 30대 왕이 된 무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문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들리는 말이지요.  다시 말해, 내가 직접 듣지 아니하고, 또 직접 확인하지 아니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의 귀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을, 소문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 일시적으로 끝나버린다면, 사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소문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어져서 계속 퍼져  나가게 된다면, 그 소문은 엄청나게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쪽으로든지, 아니면 나쁜 쪽으로든지, 반드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진다는 것이지요.  이 소문을, 서동은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동은 선화 공주에 대한 소문을 지속적으로 나쁘게 냄으로써, 진평왕으로 하여금 그 소문을 무마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자기 딸 선화 공주를 서동에게 내어 주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무슨 말입니까?  소문이긴 하지만,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소문이 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참 애매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단지 들리는 소문만으로, 그 대상을 판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는 그 소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소문이 일단 나쁘게 나면, 사람들은 그 소문의 대상자를, 나쁜 사람으로 평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에 있어서, 소문이 어떻게 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소문을 듣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소문을 듣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소문이 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  어차피 전도라고 하는 것도, 결국 이 소문으로 결정 나기 때문입니다.  내 개인의 신앙의 모습이, 주변사람들인 이웃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느냐?  또 우리 성천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교회 주변의 사람들에게, 특별히 불신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고 있느냐? 
이것이 사실 전도의 성패를, 결정하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좋은 소문이 나게 만든다면, 전도는 자연스럽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잘못된 모습으로, 그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면, 소문이 나되, 어떤 소문이 납니까?  나쁜 소문이 나서, 오히려 전도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천 교회가, 주위에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왜 대답이 없어요?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는 우리 모두의, 분명한 바램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교회 주변의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소문이 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바램만 있어서는 안 될 줄로 압니다. 

이런 바램도 분명 있어야겠지만, 그 보다는 먼저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삶이,  오늘 이 자리에게 있는 여러분들의 삶이, 그들에게 어필 될 정도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개개인이, 사실 교회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분명 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지요.  그들은 나와 친한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분명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게 될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때에, 그 사람들의 눈에도, 그 사람들의 귀에도, 내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질 수 있도록, 그래서 나에 대한 평가를 그들이 내릴 때에,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겐, 더욱 더 이러한 모습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고후 2 : 15절에 보세요.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다. 
그리고 고후 3 : 3절에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이 다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메신저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누가 증거 되어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를 통해 누가 나타나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모습을 통해 나타나고 증거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 모두가 인정할 만한 아름다운 신앙의 삶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우리가 삶 속에서 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기능을, 우리의 삶 속에서 전도를 통해 나타낼 수 있다면, 주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칭찬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 성천 교회를 축복하시고, 더욱 더 부흥하며 발전하도록,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복된 성도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부흥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참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에 어떤 교회가 나옵니까?  바울로부터 칭찬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나옵니다.  8절 말씀을 보세요.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의 대부분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질 않습니까? 
그런데 그 내용들이 사실 어떻습니까?  바울이 각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해결해 주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특별히 고린도서가 그러하지요.  고린도 교회 문제 때문에, 사실 바울이 얼마나 염려하며 근심했습니까? 
그래서 고린도 전후서를 보게 되면, 이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외 바울이 쓴 다른 서신들도 보게 되면, 복음으로 인해 환난과 핍박을 받아 쓰러져 가는 형제와 자매들에게 위로를 주며,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이 편지를  하면서도, 그다지 할 말이 없다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너희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지적할 것도 없이,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주 안에서  믿음의 성장을 거듭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세워져 가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칭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다른 교회와 달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왜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사도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문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교회들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바울로 하여금 염려하고 근심케 하는 소식들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런 교회들과 달리 늘 승리의 소식, 기쁨의 소식들만 전해주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지역의 교회들보다 신앙생활 하기가 편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소문이 나는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당시에 교회들은, 어떤 곳에서도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환난이 있었고, 핍박이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든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러한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과 7절에, 바울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이러한 그들의 믿음이 아름다운 소문으로 번져, 각처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바울에게 까지도 들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지요?  그러한 이름다운 모습이 소문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받는 교회들이, 주변에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천 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이러한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이 나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교회의 부흥은, 그 교회에 대한 소문이 주변에 어떻게 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별히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좀 많습니까?  특히 이 서울은, 한 집 건너가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교회가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장해나가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어느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어느 교회는 자꾸만 침체 됩니다.  자꾸만 하양 곡선을 그립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의 이미지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와 봅니다.  교회를 옮길 때 그들이 얼마나 심사숙고 합니까?  설교도 들어보고, 교회 성도들의 모습도 살펴보고, 교회 전반적인 분위를 살펴보고, 또 교회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말들도 들어 봅니다. 
그리고 나서, 그 교회에 등록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이미지와, 좋은 소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 4 : 23절 이하의 말씀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전도하시며  병든 자를 고쳐 주셨는데, 그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떠한 역사들이 뒤따르게 되었습니까?  허다한 무리가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신앙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또 그로 말미암아 칭찬을 듣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행 2 : 47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교회가 이렇게 좋은 소문이 나니까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또 칭찬받는 교회가 되니까, 그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천 교회도 이렇게 좋은 소문이 나서, 교회와 성도들이 칭찬을 들으며,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부흥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지금까지 잘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잘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서로가 또 그렇게 인정을 해 주고 있지만, 우리 교회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별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서둘러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자는 교회는, 죽은 교회나 진배없습니다.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움직이지 않고, 활동하지 않는 것은 똑같습니다.  잠을 깊이 자게 되면, 생명은 유지하고 있겠지만, 결코 성장은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여러분, 잠자는 교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꿈만 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은 현실입니까?  가상입니까?  현실이 아닙니다.  일종의 환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잠자는 교회는, 이러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왜 환상이냐?  다른 사람들은 다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잠자는 교회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 성천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가, 우리 스스로는 은혜로운 교회라고, 또 발전하는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혹 움직이지 않는 교회, 자기들만 모여 있는 교회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게 소문이 나게 된다면, 우리 교회의 부흥은 요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부흥이나 성장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기 딸 선화 공주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게 돌자, 그것이 분명 사실이 아니지만,  진평왕이 자기 딸을 위해서, 그 소문을 수습하고자 서둘러 서동과 결혼을 시켰던 것과 같이, 오늘 우리들도, 교회를 향한 좋지 못한 소문들이 있다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천 교회가, 어떻게 하면 우리 주변에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은, 우리가 두 가지를 힘써야 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상반절을 보세요.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늘 기쁨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늘 사모하며 들었다는 겁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도가 교회에 모여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행 17 : 11절에 보면, 그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 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라고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이것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크리스챤들은 어떻습니까?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또 예배 때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도  적습니다.  아니 예배 시간에 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소리는 있어도 말씀은 없다.”  무슨 말입니까?  목회자의 무능함을 탓하는 소리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그래서 외적으로 볼 때는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가운데서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내적인 성장을 이룩한 사람들이  적다는 뜻의 말인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하나의 교훈으로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저 좋은 말씀, 마음에 새겨 둘 말씀 정도로만 이해한다는 거지요. 

우리가 신약성경 4복음서를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서는, 꼭 끝에 가서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여러분, 들을 귀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귀를 뜻하는 거지요.

바로 이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어지고,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지는데, 그저 육적인 귀로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인간의 교훈으로밖에는 들려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그 교훈을 들으러 매 시간 마다 교회에 나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기를 힘쓰지 않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아무리 재정적으로 넉넉하고, 또 성도들의 지식의 수준이 높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없다고 한다면, 그 교회를 어찌 좋은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3절에 보게 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 믿음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이겠습니까?  말씀을 사모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는 겁니다. 
옆에 있는 2 : 13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교회, 또한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성도, 이러한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바로 믿음의 역사가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지는 줄 믿습니다.  또 이런 교회가  주변에 소문이 나되,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뭐니뭐니 해도 말씀이 아닙니까?  그 교회의 성도들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늘 말씀에 은혜를 받는다면, 어떤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그 얼굴이 달라집니다.  그 생활이 달라집니다.  그저 얼굴만 봐도 은혜가 되는 겁니다.  생활도 마찬가지요.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게  되는데, 어떤 소문입니까?  아름다운 소문, 좋은 소문이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문으로 자연히 전도가 되어지고, 그래서 그 교회는 더욱 더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을에 이사를 와서  교회를 정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에 여러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교통 순경이 지나가기에,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정하려고 하는데, 어느 교회를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그 교회를 찾아가 보니, 집하고는 거리가 제법 멀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까, 벌써 몇 교회를 지나가더라는 겁니다.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마침 그 순경을 만났습니다.
“아니 가다보니까, 가까운 교회가 몇 군데 있던데, 왜 그 교회를 소개 시켜  주셨습니까?  혹시 그 교회에 다니십니까?” 
“아니요, 저는 교회에 안 다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교회를 소개 시켜  주신 겁니까?” 
“아 예, 저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제가 순찰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항상 얼굴이 밝아 보이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는 좋을 교회일 것이다. 라는  생각에 그 교회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천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지요.  바로 우리 스스로가 이런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으로 역사로 인하여, 여러분의 삶이 늘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로, 우리 성천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 속에 도를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게 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이 역사와 더불어, 사랑의 수고가 있었던 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으로 인한 기쁨을 그들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을,  그 은혜를, 이웃 사람들과, 또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갔던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속한 그 지역만 소문이 난 것입니까?  아니지요?  그 지역을 넘어서, 멀리 마게도냐와 아가야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저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교회로 끝이 나 버렸다면, 이렇게까지 유명한 교회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주변에 좋은 소문이 난 교회 정도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울이 칭찬하고, 또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져, 지금도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되는 교회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을 실천하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 2 : 1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소문은 누구에게서 나는 것이겠습니까?  소문이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만 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서는 소문이 나질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소문도, 그 교회가 살아서 움직일 때만 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이웃 사랑하기를 힘쓰고, 나누어 주기를 힘쓰며, 항상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힘쓸 때에, 비로소 그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부산에 가면, 해운대 제일교회라고 있습니다. 해운대에서는 제법 큰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해마다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해 와 교인들이나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싸게 팔았습니다.  여러분도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동네가 보통 복잡한 동네가 아닙니다.
바로 길가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물건을 꺼내 놓고 바자회를 하니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자회를 하면 교통 순경들이 옵니다.
구청에서 사람이  나옵니다.  복잡하게 해서 딱지 때러 나옵니까?  아닙니다.  바자회를 잘 진행할 수 있도록 교통 정리를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안내를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바자회 이익금으로 그 구청 관할 내에 소년 소녀 가장 돕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독거 노인들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좋은 일을 하니까,  경찰도 구청 직원도 스스로 나와서 도와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지역의 불신자들도 불평하지 않고 불편한 것을 감수합니다. 
얼마나 좋은 소문이 났겠습니까?  그 교회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그 교회 목사님 백마디 설교보다, 이런 바자회가 훨씬 났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변 사람들의 평가라는 것입니다. 

행 2 :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런 초대 교회와 같은 교회가, 우리 성천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그 말씀을 또한 순종하며 도를 행하기를 힘쓰는 노력이 있을 때에, 믿음의 역사와 더불어 사랑의 수고가 있을 때에, 비로서 우리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서동은 소문을 이용했습니다.  그 소문은 좋지 못한 추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결국 그 소문으로 인하여 배필을 얻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소문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삶에 대한 소문을, 우리가 속한 교회에 대한 소문을 우리 스스로가 잘 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래서 그들의 우리 교회로 인도해 와, 저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우리 성천 교회가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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