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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간개념이 변해야 합니다 (시 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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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가치

2009년쯤 우리나라에도 고액화폐인 5만 원 권과 10만 원 권이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폐의 인물 초상을 누구로 할 것이냐를 놓고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고 하는군요. 현재로는 백범 김구 선생과 광개토대왕 등이 꼽히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미국 달러의 최고액권인 100달러 지폐는 어떤 인물의 초상이 들어가 있을까요?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정치가, 경제학자, 철학자요 문필가와 발명가로도 활동한 사람인데 특히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미국헌법을 제정하는 일에 앞장 선 인물입니다. 그런데 1달러 지폐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5달러 지폐에 링컨 대통령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때 그만큼 이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미국국민 전체의 존경을 받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유명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시간은 돈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입니다. 프랭클린은 1706년 미국 보스턴에서 17형제 중 15번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며 독학을 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위인이 된 가장 큰 비결은 철저한 시간사용에 있다는 것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얼마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철저히 관리했는지 말해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프랭클린은 출판업에도 손을 대는데 1732년에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라는 격언집을 만들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이 책을 사러 왔습니다. "이 책 얼마입니까?" "예, 1달러인데요." "예? 너무 비싸네요. 조금 깎아 줄 수 없습니까?" 그러자 프랭클린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1달러 50센트는 주셔야겠습니다. 그 이하로는 팔 수 없어요." "아니 지금 장난하는 거요? 방금 전에 1달러라고 하지 않았소." "맞아요, 분명히 1달러라고 했지요. 하지만 손님 여기를 보세요. 여기에 '시간은 금이다.'라고 쓰여 있지요? 이 격언처럼 제게 시간은 돈입니다. 그런데 손님은 흥정으로 제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말았어요. 그러니 마땅히 제 시간의 대가를 받아야지요." 프랭클린의 말에 손님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1달러 50센트를 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소중한 시간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가장 소중한 재산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시간개념과 시간관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신약성경에는 '시간'을 뜻하는 말이 두 가지 나옵니다. 우리말로는 그냥 다 '시간'이나 '때'라고 번역되지만 헬라어로는 두 가지가 뜻이 다릅니다. 우선 '일반적인 시간, 일정한 기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가 있고, '특별히 정해진 때'를 뜻하는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어떤 경우는 구분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특별히 일반적인 시간이 아니라 아주 '결정적인 순간이나 시간(때)'를 가리킬 때나 '위기의 때, 적합한 때, 좋은 기회,'를 가리킬 때, 혹은 '종말의 때'가 찼다는 뜻으로 쓸 때는 꼭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를 씁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이 두 가지 시간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가듯이 가만 놔둬도 저절로 흘러가는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그런데 그 크로노스라는 일반적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일반적인 시간인 '크로노스'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똑같이 주어집니다. 이를테면 신자든 불신자든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고, 1년 365일이 주어지지 예수 믿는다고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 되거나 1년이 400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은 가만 놔둬도 저절로 흘러갑니다. 누구도 이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길게 늘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냐? 바로 이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때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아내고 알아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일반적인 시간과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을 가장 잘 구분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한 마디로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살면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따라 사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7:6~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카이로스)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카이로스)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의 시간 속에서 사셨지만 늘 마음속에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를 중심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아직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안 되었다고 생각되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곳곳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때는 언제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시간은 다릅니다. 무엇보다 시간의 주인이 다릅니다. 우리의 시간의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으면 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하기 싫어도, 나중으로 미루고 싶어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으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생명도 다 하나님의 때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내가 원하는 때에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올해가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 해라서 올해 태어나는 아이는 부자 된다고 일부러 출산을 연기한 부모들이 많았다는데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다 하나님의 뜻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어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음도 하나님의 때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나 다 오래 살기 원하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전적으로 달려있지 인간의 뜻대로 안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 3절처럼 하나님이 언제든지 '흙으로 돌아가라' 하시면 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을 포함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모든 시간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비록 나도 모든 사람과 똑같이 세상적인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나의 모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분이 정하신 때를 따라 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간개념의 첫 번째 전제입니다.

둘째, 시간을 하나님 중심으로 사용하라

이렇게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그 시간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만 그 시간이 금처럼 소중하고 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시간은 금이다, 돈이다." 하지만 모든 시간이 반드시 금처럼 귀하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시간의 '양'만 생각하지만 시간에도 '질'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시간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시간이 양적으로 많더라도 질적으로 좋지 않으면 그만큼 괴롭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오래 살면 좋고, 장수가 복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어떤 노 권사님을 심방한 적이 있는데 "목사님, 이 늙은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노인 분들이 으레 하시는 말씀인 줄 알고 "권사님, 왜 그런 말씀 하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했더니 그 권사님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니요. 늘그막에 자식 복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자식 하나는 먼저 세상 떠나고, 남은 자식들은 다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빨리 주님 곁으로 가고 싶어요. 오래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이런 경우에 오랜 시간이 복입니까? 반대로 시편 84편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시 84:10)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천 날을 보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시간의 질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양만 따지지 말고 질과 내용을 따져야 하는데 우리의 시간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정말 복되고 귀한 시간이 되려면 전적으로 시간을 하나님 중심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으로 시간을 사용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 내 가장 소중한 시간을 먼저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시간계획을 어떻게 짜십니까? 몇 주 전에 그런 예화를 들었지만 아이들이 방학 생활계획표를 짜면서 하루 24시간 중에 노는 시간, 자는 시간, TV 보고 게임 하는 시간 다 빼놓고 나머지 시간 가지고 공부하고 책 보는 시간 잡는 것처럼 우리도 혹시 내게 주어진 시간 중에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노는 시간 먼저 빼고, 친구 만나고 취미생활 하는 시간 다 빼고,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먼저 배정하고 남는 시간을 겨우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도 나 하고 싶은 일이나 바쁜 일 먼저 하고 어쩌다 시간이 되면 교회 가는 그런 모습 아닌가 말입니다.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십일조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떼어놓고 나머지 가지고 나 자신을 위해 써야 하는 것처럼, 모든 시간도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시간의 첫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일 먼저 주일성수는 기본, 나머지도 하나님 위한 시간부터 먼저 드리고 나서 그 다음에 남는 시간으로 나 자신을 위해 써야 합니다. 시간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어야 하나님 중심의 시간 사용이 됩니다. 내 시간이 헌신되어야 진정한 헌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몸, 물질, 시간' 이 세 가지를 함께 드려야 진정한 헌신이라고 합니다. 서울 강남의 어떤 교회에 가면 이런 성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라 시간이 돈입니다. 그래서 제가 몸이나 시간은 못 드리고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요즘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엄마들을 불러 봉사하게 하는데 바쁜 엄마들은 대신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보내기도 한답니다.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까지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왜냐? 하나님은 내 가장 귀한 것을 드리기 원하시거든요. 내 가장 귀한 것은 아까워서 못 드리고 넉넉하게 남는 것은 드리겠다고 하면 그것이 진정한 헌신입니까? 여러분도 시간뿐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헌신을 하기 바랍니다.

자, 이렇게 나의 가장 귀한 시간을 최우선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이 내 시간을 그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지 않게 해주십니다.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남들과 똑같이 내게도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데, 우리는 그나마 그 시간 중에도 가장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다른 일은 언제 합니까? 시간이 없잖아요? 그런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같은 시간,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더 적은 시간을 참으로 귀중하게 만드셔서 우리가 그 짧은 시간에도 얼마든지 공부하게 하시고, 일하게 하시고, 넉넉하게 사용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기 때문이라니까요.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이 필요하다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처럼 해가 안 넘어가게 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출 17:12). 또 필요하다면 히스기야 임금처럼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도 해서 정해진 수명을 십오 년 연장시킬 수도 있는 분입니다(왕상 20:6,11). 그러므로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고 사용함으로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이룰 수 있는가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셋째, 시간을 잘 관리하라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시간을 아끼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주어진 시간을 아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의인이나 악인이나 하루 24시간 똑같이 주어지지만 같은 시간도 사용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빠삐용>이라는 유명한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살인죄를 지고 감옥에 갇힌 주인공 빠삐용이 어느 날 꿈속에서 재판을 받는데 "나는 사람을 죽인 일도 없고 지금까지 사나이답게 떳떳하게 살았다"고 항의하지만 재판관이 이렇게 한 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살인을 안 했다 하더라도 너에게는 인생을 낭비한 죄가 있다. 그러므로 유죄다." 너무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면 유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잘 사용해서 방금 전 말씀드린 대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그 다음에 남는 시간 가지고 나 자신을 위해 잘 사용하십시오. 나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창조적이고 선한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썼다고 꼭 낭비는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주님의 공생애를 3년 정도로 보는데 이 짧은 기간 중에 제자들을 불러 훈련시키면서 그들 하고만 보낸 시간이 대략 16~17개월 정도였다고 봅니다. 시간낭비일까요? 아닙니다. 정말 소중한 일을 위해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은 절대 낭비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거룩한 시간낭비'라고 부릅니다. 제 서재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강단에서의 1분이 서재의 1시간!" 설교시간 1분을 위해 서재에서 1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겠다는 각오입니다. '거룩한 시간낭비'입니다. 여러분도 거룩한 시간낭비를 하기 바랍니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지만 하나님께 드릴 때는 아낌없이 낭비하십시오. 기도하고 말씀 보는 일에도 아낌없이 낭비하고 다른 사람 돕는 일, 남을 위로하는 일에도 낭비하고, 특히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는 데 투자하는 시간은 정말 좋은 시간낭비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사용한 시간을 천 배 만 배로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계수하는 지혜

오늘은 총회가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저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너무' 좋습니다. 잘 생겼던 못 생겼던, 공부를 잘하던 못 하던 마냥 좋습니다. 젊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때에 세상 유혹에 빠져 시간 낭비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청년들은 주님께 그 귀한 시간을 드리는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젊디젊은 청년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90편 말씀에 나온 대로 풀의 꽃이 아침에 잠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드는 것처럼 헛된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10절 말씀처럼 좀 덜 살고 더 사는 것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 헛된 것이요 그 시간은 날아가듯 지나가 버립니다. 이 헛된 시간이 바로 앞서 설명한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제 신학교 동기 목사들이 모였는데 너도 나도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네요. 어떤 친구는 벌써 오십 견이 와서 축도할 때도 팔을 높이 못 든답니다. 저도 눈이 침침해서 안과에 가보니 노안이 일찍 찾아온 것 같답니다. 거기 모인 사람 모두가 25년 전 대학 1학년 때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청년으로 만난 친구들인데 벌써들 이렇게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며 아쉬워합니다. 아직 마흔 다섯도 채 못 넘긴 제가 이러니 어르신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우리 청년들은 본문 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청년들만 아니라 나이 든 분이나 젊은 분이나 모두가 지금 우리 날을 잘 계수하고 아껴서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소중하게 사용할 것인가 결단하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이 세월의 무상한 흐름 속에서 이 날아가듯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에게 그 시간을 사용해 어떤 일을 이루시기 원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이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준비할 때인지, 아니면 나아가서 실천할 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 출신의 한 청년이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로 섬기며 교사와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있는데 청년부를 지도하는 목사님이 개척을 하게 되어 함께 나가서 일하자고 한답니다. 좀 더 남아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좋을 지, 지금 나가서 개척교회를 섬기는 것이 좋을지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때가 문제다. 지금이 내가 교회에 더 남아서 더 훈련 받아야 할 때인지, 아니면 바로 밖으로 나가서 개척교회를 섬기고 실천해야 할 때인지 잘 구분하도록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결정해라." 그러고 난 후에 제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결정은 네가 할 일이지만 나는 아직 네가 남아서 훈련 받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지 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때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입니다. 남아서 좀 더 훈련 받으라 하시는데 나가면 실패합니다. 지금은 나가서 실천할 때라고 하시는데 아직 더 남고 싶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변화산에 올라 주님이 변모되는 찬란한 환상을 본 베드로는 엉겁결에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면서 그 산에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 나머지는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마 17:4).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고 곧바로 산에서 내려가는데 산 밑에는 귀신 들린 아이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황홀하고 좋아도 산 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두가 주님이 하나님의 때에 따라 사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요 이것이 주의 날 계수하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시간에 대한 많은 말씀을 나누었지만 결론적으로 이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또한 '이 세상의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살아가지만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입니다. 본문 2절의 고백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관이 이렇게 달라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모든 시간과 인생 전체를 정금처럼 아름답고 귀하게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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