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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어머니의 마음 (삼하 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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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음(삼하 21:7-14) 

  진나라 때 일입니다. 환온이라는 장수가 촉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쯔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그러자 원숭이 어미는 새끼가 잡혀간 배를 쫓아 백여 리를 뒤따라오며 슬피 울었습니다. 배가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 어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미 원숭이는 배에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답니다.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를 태우다가 창자가 끊어진 것입니다. 이게 단장의 슬픔, 단장의 아픔, 가슴앓이입니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마음이 이럴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마음을 표현한 대표적인 말 중에"가슴이 저미다"라는 말은 "칼로 앏게 썬다"는 뜻이고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숨쉴 때마다 기억나고 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은 어미가 자식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감정일 것입니다. 이런 어머니가 있어 오늘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그와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다윗이 통치를 하던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기근이 몰아쳤습니다. 만 3년이 넘도록 기근이 계속되자 다윗은 견디다 못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에 이런 기근이 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사울이 기브온 백성들을 아무 이유 없이 학살을 했기 때문에 그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에 기브온 백성들과 평화조약을 맺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 백성들을 이스라엘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며 그들을 죽이지도 않겠다고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잘 지켜져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고나서는 이 아무 죄도 없는 기브온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평화조약을 함부로 깨뜨리는 일을 큰 악으로 다루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기근이 몰아닥친 것입니다. 다윗은 그 길로 기브론 사람들의 대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기브온 사람들의 대표가 "사울이 자손 중에서 아들 일곱을 우리 손에 내어주면 우리가 그들을 나무에 달아 죽임으로서 맺힌 원한을 풀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협상조건을 수락하고 사울의 자손 중에서 일곱 아들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이 이 일곱 아들을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에 있는 어느 동산의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오랫도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살게 해서는 그래서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밤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원한을 풀어주시고 갚아주소서"하고 탄원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10-13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 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서 너를 축복하면 그것이 네 하나님 앞에 네 의로움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잠자리에 들어서 저주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불의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으로 되돌아가 보면 이 일로 인하여 사울 때문에 비참하게 죽은 두 아들을 둔 리스바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들이 사형당한 언덕에 올라가서 베옷으 바위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아들들의 시체를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낮에는 시체들을 새들이 쪼아먹을까하고 지키고, 밤에는 짐승들이 시체를 훼손할까 해서 지켰습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이러한 일을 6개월 동안이나 계속했던 것입니다. 이 리스바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슬픈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다윗왕도 크게 감동한 나머지 리스바 여인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정은 사울왕 부자와 나무에 달린 일곱 아들의 유골을 가두어서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르게 한 것입니다. 한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이 결국 아들의 죽음을 욕되지 않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동스러운 이야기는 어머니이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랑입니다. 이 세상 어머니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도 큰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약할 때 더 사랑하시며 우리가 병들었을 때 더 가슴 아파하시며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고통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는 아무 조건도 없으십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에 더욱 사랑하시며 우리가 원수가 되고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의 고통과 수치를 함께 나누는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무에 달려죽은 아들들의 저주스러운 주검을 보고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조롱을 하며 그곳에 잠시라도 머물게 된 것을 불결하게 생각했지만 어머니만은 자식의 수치와 고통을 같이 겪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고통과 수치에 처했을 때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지마는 우리 주님은 그때 도리어 내겉에 계셔주시며 우리의 의지가 되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프랑스에는 역사상 69명의 왕이 집권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세 사람의 왕만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세왕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분석해 보면 그들은 모두 친어머니의 손에서 양육된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66명의 왕들은 모두 외부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 자란 왕들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아도 자식 사랑은 나보다 아내 쪽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함평에 어떤 곳은 70%가 조손가정이라고 합니다. 70%가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로 나가면 어떤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걱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이혼읋 해도 서로 아이의 양육권을 가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서로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고아원 아니면 친가나 처가로 맡겨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어머니와 같습니다. 초대교회 교부 중에 이레니우스는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칼빈도 "하나님은 아버지요 교회는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나에게도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 같았습니다. 나는 교회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해주신 것보다 교회가 나에게 해준 것이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자녀를 낳고 양육하도록 교회를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는 자식을 낳아서 양육하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어머니가 자꾸 바뀌면 자식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다 온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어머니이십니다. 그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라면 눈이라도 빼어주시고자 하시며 목숨이라도 주시고자 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건강한 어머니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영적 자녀를 낳고 낳은 자녀를 잘 양육하고 훈련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전인 것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이런 어머니를 사랑하고 공경함이 마땅하듯이 성도가 영적으로 자기를 낳아 길러준 영적 어머니인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머니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가 어디에 가서 하나님 사랑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해주시는 이 땅에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이런 어머니들이 세워져야 이 땅에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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