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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와 삭개오의 공통점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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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삭개오의 공통점
누가복음19:1~10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를 때 제일 고민되는 순간은 아마도 이름을 지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 이름을 작명소에서 돈내고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제게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장주대 전도사님 딸도 제가 “예영”이라고 지었습니다.
왜 이름 짓기가 어려우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은 한문의 뜻글자로 이름을 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감이 이상하면 놀림을 받는 이름이 많이 있습니다. 뜻은 참 좋은데 성과 이름이 어울려 이상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성은 卞(변)씨인데 이름이 台星(태성)이 있습니다. 성이 方(방)씨인데 이름이 貴男(귀남)인 사람, 성이 趙(조)씨인데 이름이 眞玄(진현)도 있고 성이 禹(우)씨인데 이름이 東國(동국)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름의 뜻은 생각지 않고 놀림감으로 삼습니다.

제 딸도 최선입니다. 기정이 동생이라 ‘기쁨’으로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동사무소에 출생신고 하러 가서 착할 善(선)자가 아닌 베풀 宣(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며 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최선, 너는 최선을 다했나?’ 라고 놀릴 것 같습니다. 우리 막둥이 ‘기상’이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군대에서는 좀 놀림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이름은 저희 부친께서 ‘一煥’으로 지어주셨는데 ‘하나의 빛’이란 뜻입니다. 그때 당시는 저희 아버지는 예수를 믿지 않으셨으면서도 아주 성경적인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신데 그 ‘한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람이 되라 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울로 개명하셨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뜻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 주인공 삭개오도 이름의 뜻이 참 좋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원뜻은 ‘청결’, ‘순수’ ‘단순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서 그렇게 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고 그는 세리라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는 세리라는 직업은 돈은 많이 벌수 있었으나 사람들에게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왜냐하면 로마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면서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 이스라엘 사람 중에 세무 공무원을 택합니다. 그 세리로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그 거둔 세금 중에서 자기 몫을 챙기게 했습니다. 그러니 세금을 악착같이 철저하게 거두어들이면 자기 몫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취급 받지 못하고 개, 돼지처럼 여기거나 죄인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도 세리가 되면 돈이 생기고 돈이 있으면 힘이 생기고 결국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욕을 먹어도 세리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오늘 우리 중에도 돈이면 뭐든지 다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돈이면 권력도 얻고 돈이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러나 의외로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돈으로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돈으로 침 대(Bed)는 살 수 있지만 잠(Sleep)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시계(Clock)는 살 수 있어도 시간(Time)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책(Book)은 살 수 있어도 지식(Knowledge)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지위(Position)는 살 수 있지만 존경(Respect)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약(Medicne)은 살 수 있지만 건강(Health)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피(Blood)는 살 수 있어도 생명(Life)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친구(Friend)는 살 수 있어도  친구의 사랑(Love)은 살 수 없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돈으로 편안은 살 수 있으나 평안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삭개오는 신분이 여리고의 세무서장입니다.
당시 여리고성은 전 이스라엘 국토 중에서 가장 무역이 왕성한 곳입니다. 그런 몫이 좋은 도시에 ‘세리장’오늘날로 말하면 세무서장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인 것입니다.
최소한 세리 경력이 10년에서 20년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 정부 고위층과의 관계로 밀착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부자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살아 왔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세리에게도 만족치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람대접을 받아 보는 것입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기에 장사꾼들이 그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잘 봐달라고 허리를 굽히지만 뒤에서는 온갖 욕을 다 합니다. 그리고 세리이기에 남에 집안에 들어가서 대접을 받는다거나 남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대접을 해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슴속에는 사람대접을 받아 보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돈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과 참 마음으로 교제를 하고 싶었고 사랑을 나누며 식사를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부인도, 자식들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가장인 삭개오가 세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인도, 자식도, 온갖 욕을 먹고 살기에 하루도 평안하게 웃으면서 식사를 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동네 아이들과 지내기도 어렵고 부인도 동네 아낙네들과 어울려 빨래도 못하고 늘 혼자서 하든지 또는 같은 세리들끼리만 모여서 뭘 하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나타났는데 어떤 이는 그를 메시야라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선지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분은 사람을 차별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등병자도 고치시고 각색병자들을 다 치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도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는 그분은 세리도 가까이 해주고 죄인들을 차별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여리고성에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복음 중에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그 예수님을 뵙고 싶어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삭개오가 복음을 들었듯이 여러분도 오늘 이시간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으시는 시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삭개오는 그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삭개오는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많기도 했으나 실상은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러 길거리로 나온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왜요? 그는 세리장입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수많은 군중들에게 뭇매를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다는 그 하나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만나려 한다는 자체가 모험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걸어가실 예상 로를 짐작하고 그 길가에 있던 나무에 미리 올라가 앉고 예수님이 지나 가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그 나무 아래로 지나다가 갑자기 삭개오를 쳐다보더니 말을 먼저 겁니다.
5절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난생 처음본 분이 자기 이름을 알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삭개오 집에 들어가 하루 밤 머물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삭개오에게는 완전 충격입니다. 그날 삭개오는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삭개오와 여러분과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1)말은 그렇게 안했으나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았던 점
2)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돈만 벌면 큰소리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점
3)그러나 심령 깊은 곳에서 생겨나는 갈증, 외로움, 고독,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것
4)그렇든 저렇든 돈을 많이 벌어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옛날 여리고에 살던 삭개오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불러주시고 그의 집에 유하셨던 예수님! 오늘 우리에게도 치료하시고 싶어 하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 말씀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어떻게 삭개오를 대해주셨나요?
우리 예수님은 삭개오 같은 우리를 어떻게 대접해 주실까요?

1. 이름을 불러 주시며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는 오늘 만남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을 부르듯이 이름도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를 다정스럽게 불러주셨습니다.
이렇게 불러주지 않습니다. “어이~ 세리 이리 내려와”
마치 잘 아는 친구나 동네 어른처럼 “삭개오야! 내려오라”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처음 만나지만 예수님은 그를 오래전부터 아셨고 또 그를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30년 전에 예수를 믿었으나 예수님은 내가 이 땅에 오기도 전에 먼저 나를 아셨고 택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 대접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알고 기억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제가 지난주간 경주에서 목회자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5월 15일을 맞아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선생님의 막내동생이 제 동창이기에 전화번호를 알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더니 저를 알아보시는것입니다. 그리고는 경주에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오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날 저녁 선생님이 계신 숙소로 달려갔습니다. 37년만에 만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올해가 회갑이셨습니다.
선생님이 내 이름 불러주며 “일환이 자네도 늙었구먼” 하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그런데 제가 또 놀란 것은 제동생도 그 선생님에게 배우셨는데 제 동생이름을 기억하며 물어보시는 것이였습니다. 자네 동생 성환이는 어디 있나? 얼마나 고마운지요. 38년을 교직에 계셨다는데 제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도 기억하고 계시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우리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를 불러 주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당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선택하셨던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그 사랑과 은총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삭개오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세리 세리 지겹게 들었는데 예수님은 세리라고 부르지 않고 사람대접하시며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세상은 출신 환경 때문에, 직업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지만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외적 조건 때문에 사람을 차별치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와 있음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나와 함께 하시겠다며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내려오라 하시면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세리 삭개오와 함께 하세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시대에는 세리 집에는 어떤 사람도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세리는 극악한 죄인과 같은 부류로 취급했습니다. 그러기에 세리 집에 들어가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셔서 머물겠다 하십니다. 삭개오가 초청을 한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자원하여 오시겠답니다.

대단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집에 들어가면 당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여러 사람들이 비판하고 정죄할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열정은 그런 비판과 정죄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인과 함께 거하시면서 위로하시고 함께 식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내게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도 삭개오처럼 기쁨으로 영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내모습 이대로 받으시며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치 않으십니다. 절대로 세상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물론 악인과 의인, 믿는 자와 불신자를 차별하십니다. 그러나 직업으로, 신분으로, 외모로 사람을 차별치 않으십니다. 세상은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노인과 청년, 고학력과 저학력, 심하게 차별합니다. 특히 사람을 외모로 차별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하나 우리 주님은 절대로 차별치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시대 사람들은 세리, 창녀, 죄인, 문등병자, 환경과 형편을 따라 철저하게 차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람들의 그런 기준으로는 차별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 같은 사람도 목사가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도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아멘?


4. 훈계하거나 책망치 않고 함께 거하여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삭개오집에 들어오셔서 한마디도 그를 책망하거나 훈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대접을 받으시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냥 삭개오를 사람 대접을 하셨습니다. 그랬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냥 유하기만 하셨는데, 그냥 들어가 거하시기만 했는데 삭개오는 엄청난 변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맺어졌나요?
1) 인생관도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신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의 물질관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행복은 돈으로 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돈보다도 주님을 만나니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사람에게 사람대접을 받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나니 너무 좋았습니다. 이젠 돈도 필요없게 되었고 오히려 자기 돈으로 가난한자들을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8절을 보세요.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모셔 들여지면 인생관, 재물관이 바뀌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참 행복, 인생의 참 보람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 줄 알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속입니다. 명예와 권세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속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재물은 일시적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불안도 동시에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명예와 권력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임마누엘의 평안, 나와 함께 거하시면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그 평안을 삭개오가 누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토록 욕먹어 가면서 얻은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재물과, 인생관, 행복관이 주님을 온전히 만나 바꾸어지는 체험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삭개오가 자원하여 자기 죄를 들어냅니다. 
8절 하반절을 다시 보세요.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주님이 말하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면서 만약에 뉘 것을 도적질한 것이 있다면 4배를 갚겠다고 스스로 자원하여 고백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난자의 변화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자기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자신의 부끄러운 것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들어내어 치료를 받게 됩니다.
삭개오가 말한 4배 보상은 율법의 2배 보상 제도를 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장 9절에 보면
“어떠한 과실에든지 소에든지 나귀에든지 양에든지 의복에든지 또는 아무 잃은 물건에든지 그것에 대하여 혹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두 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2배 배상만하면 될 것인데 4배를 배상하겠다고 합니다. 완전하게 완벽하게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허풍이 아닙니다. 참다운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면 자기 죄가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회개를 안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온전히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그의 영혼이 구원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회개하는 삭개오를 향하여 주님이 선포합니다.
9절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삭개오를 잃어버린 자로 취급하시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 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은 일부러 여리고로 지나갔고 일부러 삭개오 집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일부러 내게 찾아 오셨고 내게 유하신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도 삭개오와 같은 갈급함의 갈증이 있었습니다. 사람대접 받고 사랑받고 살고 싶은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 오셨어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다 용납하시고 품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결과로 나는 구원을 누렸으며 우리의 가치관은 바뀌었습니다.


혹시나 아직도 이 자리에 재물이 하나님인 것처럼 여기며 사시는 분이 있습니까?
말은 그렇게 안하지만 돈이면 다된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다고 믿으며 돈의 전능성을 믿고 사시는 분이 있습니까?
얼마 못가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행복을 누리시려면 주님을 모셔 들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사회적인 체면과 자존심 다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길이 막히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찾아와 주시고 여러분 이름을 불러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과 함께 유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의 나는 여리고위 삭개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가 느꼈던 그 갈증이 주님만나 해갈 되었듯이 오늘 여러분이 느끼는 그 갈증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해결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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