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찬양대헌신예배] 찬양대원의 옷차림(삼상 2:18-21, 골 3:12-17)

  • 잡초 잡초
  • 884
  • 0

첨부 1


찬양대원의 옷차림(사무엘상 2:18-21절, 골로새서 3장 12-17절)

시온찬양대 헌신예배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우리나라 속담에 '옷이 날개다(fine feathers make fine birds= Fine clothes make the man).'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의믄 '못생긴 사람도 옷을 잘 입으면, 멋있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도 '옷이 사람을 만든다(The coat makes the man).' , '깨끗한 의복은 좋은 소개장이다(A smart coat is a good letter of introduction).'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아라비아에도 "나무 등걸이에도 옷을 입히면 아름다워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 속담에도 "사람은 옷에 따라 환영을 받고 지능에 따라 내쫓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얻어먹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처럼 옷차림이 귀중하다는 말이 세계 각국에 있습니다.??

옷차림도 남녀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남자 옷차림을 보면 '공복(公服- 대소 관원의 의복)', '철익(天翼- 무관의 의복: 천익으로 읽지 말것, ‘철릭’의 잘못. ‘철릭’을 한자를 빌려서 쓴 말이다.)', 시복(時服- 入侍할 때 입는 옷), 대례복(국가에 중대한 의식 때 입는 예복), 앵삼(鶯衫- 이조 때 년 소자가 생원, 진사에 급제할 때 입는 황색의 옷), 단령(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

이 외에도 '갑주(甲胄- 갑(甲)은 갑옷, 주(胄)는 투구를 이른다.)', 무복으로 '답호'가 있었는데 조선시대 관복과 군복에 입은 소매 없는 옷작자(綽子) ·쾌자(快子: 掛子) ·전복(戰服) ·전포(戰袍)라고 하였고,

'전복(戰服- 무신들이 동달이 위에 입는 옷.)'과 '더그레(임금과 사대부가 통용한 답호는 후대에 군졸 ·나장<羅將> 등 조례<조隷>의 제복으로도 착용하였는데, 이것이 쾌자<快子> ·더그레이다. 개화기에 의제개혁이 시행됨에 따라 답호는 통상복의 겉옷으로 서민의 민두루마기<周衣>와 구별되는 관원의 제복이 되었다.)'가 있었고, '심의(深衣- 많은 유학자들이 심의를 착용한 초상화가 남아 있다. 심의는 중국 고대의 복제가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따로 인 것이 통례인 데 반하여 의<衣>와 상<裳>이 서로 잇닿아 몸을 휩싸게 되어 있어 심원<深遠>한 느낌을 주었다.)'가 있었으며,

'중치막(실물에 의하면 조선 중기 이후에 널리 입었다가 1884년 고종 21년 5월 갑신의제<甲申衣制> 개혁 때 도포 ·대창의 · 직령 등 소매가 넓은 옷<廣袖衣>과 함께 폐지되었다.)과 학창의(鶴창衣- 남색 명주<明紬>에 백공단 동정, 검은 명주 선을 대어 만든 홑옷으로서, 소매에 이은 곳이 없다.)'과 '도포(道袍-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통상 예복으로 입던 웃옷), 직령(고려∼조선 후기까지 남자들이 입은 직령으로 된 겉옷<袍>도 직령이라 한다.)', 그리고' 장삼(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가 넓은 승려의 겉옷, 또는 조선시대 여인의 예복.)'과 '상복(常服- 조선시대의 왕 ·왕세자 ·문무백관이 평상시 집무할 때 입은 옷.)' 등 숫자를 셀 수 없는 복잡한 옷차림을 하고 우리 민족의 남자들은 살았습니다.

여자들의 옷차림을 보아도 대례복인 '활옷(가례<嘉禮> 때 주로 상류 계급에서 착용한 예복이나, 나중에는 서민도 혼례 때에 한해서 착용하였다.)'을 비롯한 수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보면 어느 민족인가도 알고 그의 신분도 알고, 그 사람의 교양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옷차림을 보고 상대방에 대하여 일단 간략하게 평가해 보지 않습니까?

사실 '옷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였을 때 옷이 없이 누드로 살도록 창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 함으로서 '수치를 가리는 옷'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부끄러운 정체를 가리려고 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이 옷의 시초가 되었습니다(창3:7).

그러나 창 3:8절을 보면 그 나뭇잎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는 여호와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 3:21절을 모면 범죄 한 인간과 범죄를 제공한 뱀(마귀)을 심문하고 벌주시고 회개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이 의복의 혁명이요. 최초의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패션'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자 값진 옷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옷으로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그것을 능가할 어떤 옷도 나올 수 없는 영원한 패션있는데 바로 그리스도를 옷 입혀 주시는 '의의 옷(요한계시록 19장 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어 입혀주신 '가죽 옷'을 많은 신학자들은 '원시복음'이라, '그리스도의 모형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가죽옷은 피를 흘려야 만들 수 있는 옷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피 흘려주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리어 주는 의로운 옷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골로새서 3장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라."(Rather, clothe yourselves with the lord jesus christ)고 권하였습니다.

우선 우리가 '옷'을 통해 제일 먼저 생각할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의 인격과 삶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옷은 우리 몸의 수치를 가리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기능성이나 보호를 위해 혹은 신분과 직분을 나타내기위해서 입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속옷도 있습니다만 골로새서 3장에 바울사도께서 말씀하는 옷은 내면적인 마음이나 신앙인격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우리들이 입는 겉옷이요. 눈에 보이는 옷에 관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웃을 대하는 태도나 교회에서의 생활에서 자신의 옷이 무엇인지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든지 사업을 하는 사람이든지 숨길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학교의 선생이든지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인격과 삶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옷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4-16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찬양대원들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옷을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입은 옷이 여러분을 나타내듯이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밖에 없는 옷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찬양대원 여러분의 옷에 신경을 쓰십시오. 여러분이 입는 가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격과 삶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옷에서 생각할 교훈은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은 그들의 믿음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때와 장소에 합당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인격과 삶도 그이 신앙과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1: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고 권합니다. 여기 "합당하게"란 말씀은 "어울리게"란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에 어울리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다른 속담에 "없어서 비단 옷"이란 속담도 있는데 '집이 가난하면 보통 때 입을 옷을 따로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혼인 때 입던 옷이나 나들이 할 때 입으려고 준비한 옷까지 할 수 없이 입게 된다는 말이니, 일부러 비단 옷을 입으려고 입는 것이 아니고, 별수 없이 입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속담입니다. 우리가 찬양대원으로 신앙인으로 우리가 '외형적으로 나타내는 옷'과 '내면적으로 갖추어야 할 옷'은 우리 몸과 어울려야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합당하게 입어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수영복을 입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양복을 입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옷은 때와 장소 그리고 연륜과 어울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도 우리의 신앙과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에 합당한 인격을 갖추고 믿음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오래 믿고 신앙의 연륜이 있는 사람은 그에 따른 합당한 인격과 삶을 가져야 하며, 그 신앙의 연륜과 어울리게 믿고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옷을 통해 교훈하는 말씀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성도는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새로운 옷인 '그리스도의 의(요한계시록 19장 8절)'를 입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골3:10)들입니다. 성도들은 사람을 창조하신 자 하나님의 형상, 곧“의와 진리의 거룩함”(엡 4:24)을 따라 하나님의 지식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재창조 된 자들입니다.

처음 창조하신 인간인 아담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성도들을 구속하시고, 자기 형상으로 성도들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재창조에 의해 새롭게 된 피조물인 성도들은 이제 완전하고도 영원한 존재로 지음 받은 영광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바로 이 재창조를 입은 성도들을 가리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라고 설명하였고, 그들은 이제 새로운 신분으로 완전히 거듭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의 신분이 이제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에게 '에봇' 옷을 지어 입게 하셨습니다. 찬양대 헌신예배를 드리는 찬양대원 여러분! 여러분이 입은 성가대 가운은 참으로 구별된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특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3: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한 본문의 참된 의미로 헌신의 의미를 찾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그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골로새서 3:12절을 읽어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하였습니다.

1.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행해야 합니다(골로새서 3장 12-14절)

사도 바울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옷 타령이 심합니다. 남자들은 옷이 5벌만 있어도 '입을 옷이 많다.'고 합니다. '절대로 내 옷은 사지 마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30벌이 되어도 어디 외출 할 때면 '입을 만한 옷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벧전 3:3-4절은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랑하는 성도들은 말씀 그대로 창세 전 부터 택함을 입은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거룩하게 됨을 받은 자들이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과 찬양대원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무한한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마땅히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溫柔)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즉, 이 다섯 가지의 덕목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과 찬양대원들이 지니고 있어야 할 속성들입니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을 '옷 입고'라고 했습니다. '옷 입고'의 헬라어는 '엔뒤사스데' 입니다. <부정과거 명령법>으로 새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등의 덕목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함을 의미합니다.

1) 여기서 '긍휼'은 동정심과 너그러운 마음을 말하는데 헬라어로는 '스플랑크나 오이크티르무'인데 70인 역에서는 하나님이' '가엽게 여기는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시24:6; 102:4; 144:9).

긍휼"이란 말씀은 원어로는, "긍휼의 감정"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인격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불쌍히 여기는 열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고통 받는 이에 대한 아픈 마음"입니다. 그래서 긍휼이란 말을 구약에서는 "창자가 아프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연민'을 나타냅니다(롬12:1; 고후1:3). 또한 '스플랑크나'는 문자적으로 '감정의 자리'즉 마음을 의미하는데 두 단어의 합성어 '스플랑크나 오이크티르무'는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겪는 자들에게 나타내는 사랑으로 '동정 어린 마음' 혹은 '자비로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2) '자비'는 자비"란 말씀은 "인자한 성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엄위(嚴威)에 반대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자비는 긍휼에서 나옵니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자비를 베풉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면 이러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죄에 대해 엄할 때 형벌을 내립니다. 이것이 '엄위'입니다. 그러나 이 큰 죄에 대해 긍휼히 여길 때 용서를 베풉니다. 이것이 '자비'입니다. 그래서 긍휼과 자비의 차이입니다.

'자비'는 '긍휼을 근원'으로 합니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에서 자비가 나옵니다. 자비는 행동으로 표현된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이 여기는 자가 자비를 베풉니다. 사랑하는 찬양대원들과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사도는 '우리가 이런 긍휼과 자비로 옷 입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이런 증거들을 보이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긍휼로 친절하고 상냥하고 부드러움을 나타낼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활입니다.

3) "겸손"은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는 뽐내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는 흔히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겸손은 교만의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겸손히 행하는 모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결국 먼저 하나님을 높이는 태도가 됩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리고

4) '온유'는 "온유"는 겸손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움을 의미합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통한 부드러운 마음상태를 지칭하는데 메시야를 설명하는데 사용하기도 하며(슥9:9), 신약에서는 주님이 자기 마음을(마11:29)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구원을 가져다주실 '예수님의 메시야적 왕의 역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마21:5). 그래서 겸손이 온유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온유는 겸손의 활동이며, 겸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온유"는 날카로움의 반대요 쏘는 것과 찌르는 것의 반대말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 중엔 많은 경우 교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자신을 과신하거나 자아도취에 빠져 자기 외엔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거만을 떱니다. 그리고 말을 해도 냉정하게 쏘고 찌르는 듯 말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겸손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교만한 사람은 결코 온유할 수 없습니다. 온유는 겸손에서 흘러나오는 덕이기 때문입니다.

5) '오래 참음'은 '복수하지 않고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은 물론(눅18:7)불신자에게도 보이신 하나님의 속성입니다(롬2:4). 결국 이러한 덕목들은 서로 용납함으로 드러나며 피차에 서로 용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오래 참음은 먼저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괴로움에 대해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합니다. 우리의 인격에 비난을 가합니다. 그러나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들의 비난과 비웃음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으로부터 이 오래 참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참으로 "오래 참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케 하며,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역설하는데, 이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14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위의 모든 덕목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결국에는 모든 것을 완성하게 합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시온 찬양대원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이런 덕목들을 가지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새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항상 입고 다녀야 합니다. 그 옷을 자주 빨고 세탁하며 항상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새 옷을 입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2. 평강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합니다.

베드로후서 3:14절에도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 5절을 모면 "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and from Jesus Christ, who is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from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has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마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평화와 안녕'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였고 요16:33절에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강을 선언 하십니다. 요 20:19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 찬양대원들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이 평강이 가득히 충분히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습과 찬양 소리를 듣고 평안이 가득한 것을 다른 분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26절에도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성도들이라고 해도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진정 조화 있는 삶을 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언제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여전히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을 공격하며,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서로 간에 미워하며 실족하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진정 서로가 계속해서 화평을 이루며 살려고 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을 온전히 소유해야 합니다.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 화평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이의 '용서'와 ''사랑'은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사실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평강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내어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찬양대원들과 성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헌신이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3. '항상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15하-17절)

골 3: 15절 하반 절에 "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고, 16~17절에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는 구원받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가장 귀한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처럼 구원과 사랑과 평강의 은혜를 넘치게 허락하셨으니, 성도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반응은 감사요, 마지막 반응도 감사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과 찬양대원들은 항상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감사가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는 모습은 '찬양'으로 나납니다. 찬양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이 해야만 하는 신앙생활의 꽃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가장 드높이는 결정이며, 감사를 나타내는 최고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 한다."고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의 영향력 아래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 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는 구약의 시편과 시 형태의 새로운 노래를 말하며, "찬미"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지은 노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신령한 노래’는 성령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일반적인 성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성도들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욱 찬양을 열심히 불러야 하고 예배시간에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찬양대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오늘 찬양대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삶에 적용을 해 봅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새로운 신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삶의 모습은 세상의 자녀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사랑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이루어 가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합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사무엘이 어머니였던 한나가 기도함으로 지어준 옷을 입고 그 어머님의 기도와 말씀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의 사자 엘리 제사장을 잘 섬기고, 성전을 잘 섬겨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위대한 선지자가 된 것처럼 우리가 입어야 할 신령한 옷들을 입을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감사와 찬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대 직분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섬기며, 이전보다 더욱 귀하게 쓰임 받는 찬양대원들과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