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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 도상의 존재(2) (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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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지식들이 있습니다. 이 지식들을 어떻게 알아서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뒤처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갑부이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인 빌 게이츠는 정보가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정보가 힘이 되고, 돈이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정보를 얻어야 합니까? 정보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개인의 삶이나 가정이나 직장, 더 나아가서 우리 한국의 장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부동산에 관한 정보가 있어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수도권 신도시 개발을 한다고 하여 벌써부터 예측되는 도시의 땅값들이 들썩거린다고 합니다. 한때는 이런 땅의 정보를 높은 양반들은 미리 알아서 챙겨놓곤 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한국 교회에는 세미나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꾸물거리면 등록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유행처럼 주제를 따라서 몰려들곤 합니다. 무엇인가 늘 허기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인가 어떤 정보를 얻고 싶은 것 아닐까요? 과연 어떤 정보가 필요할 까요? 이 허한 심령을 채울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요?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은 더 이상 갈급함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절기를 지키러 모여 온 사람들에게 나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도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사업이 성공하고 죄짓지 않기 위해서도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을 빛내고 위대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도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중요한 정보는 “성령”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도 성령 충만하여서야 새로운 목회를 하실 수 있었습니다. 거리로 몰려나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한 웨슬리 목사님은 구원의 도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도상이 선행 은총, 회개, 칭의, 중생, 성화, 완전(영화)입니다. 오늘은 중생과 성화와 완전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중생(Regeneration)입니다. 성경에는 거듭나야 된다는 말씀도 여러번 나오지만, 실제로 거듭나므로 인해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일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근심 띤 얼굴을 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에게 있어서도 의인과 중생은 동시적인 것이지만 분명히 구별되어지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의인은 다만 관례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중생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인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외적인 관계를 변화시키고, 그로 인하여 원수 되었던 우리가 자녀가 된다. 중생은 우리 영혼의 깊은 속이 변화되어 죄인이 성도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화(Santification)입니다. 대개의 경우 기독교적인 개념이나 용어가 일반적인 것과는 구별되기 때문에 오해를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생이나 성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거룩’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의미는 성스럽고 위대하다는 뜻이지만, 성서적인 의미는 성별 또는 구분의 의미를 포함하여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이 거룩함이 성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성화에도 점진적인 성화냐, 순간적인 성화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성화는 죄의 용서로 인하여 구별되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 과정을 의미하여 체험적인 결과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성화, 혹은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성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완전은 끝이 아닙니다. 완전한 자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에 최종적인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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