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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을 돌이키시리라 (렘 26: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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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섭리하시며 운행해 가고 계십니다. 섭리하시는 방법은 미래에 어떤 작정하신 계획과 뜻을 하늘에서 먼저 세우시고 그 뜻대로 이 땅 위에 쓰고 계시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미래의 설계도를 먼저 작성하시고 그 설계대로 이 세상의 일을 진행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에 섭리하시는 방법입니다. 그 설계도가 바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뜻대로 이루어 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이 진리가 나옵니다. "하늘에서 뜻이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먼저 하늘에서 뜻이 세워지고 그 다음에 그 세워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단 세우신 뜻은 엄하고 중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몬테스퀘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자신에게 유익해도 내 가정에 해로우면 하지 말아야 하고 내 가족에게 유익해도 내 나라에 해로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내 나라에 유익해도 전 인류에 해로우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 인류에게 유익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요 과히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이 땅에서 무슨 건축물 공사를 하는데도 설계도가 없이 하지 않습니다. 다 계획을 먼저 세우고 설계를 먼저하고 그 다음에 그 설계도를 따라서 어떤 일을 진행해 갑니다.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공사기간이 딱 1년 7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전의 그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과 설계를 세웠는데 그 계획과 설계를 하는데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공사기간보다 2배나 더 걸린 것입니다. 건물 하나 짓는데도 계획과 설계가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어떻게 작정되었고 우리 앞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작정하신 것인가 하는 하늘의 뜻,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짓다가도 간혹 설계도대로 공사를 해 가다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설계를 수정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히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작정과 하나님의 뜻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이 바뀌어 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예상을 우리가 해 볼 수 있습니다.

참 조심스러운 예견이지만 성경에 그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과연 성경에 그와 같은 증거가 종종 나타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도 때로 변경되고 수정되고 돌이켜 질 수도 있다는 것이 성경곳곳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구약의 출애굽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금송아지로 된 우상을 만들고 술을 먹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멸망시키겠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 백성을 멸망시키겠다. 그리고 모세야 내가 너에게 씨를 주어서 너로 하여금 이 지면에 백성이 많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작정하시고 멸망시키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모세가 하나님의 이 맹렬한 진노의 작정하신 말씀을 듣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출애굽기 32장 12절에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언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고 했고 그 말씀을 다시 삼키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선포하신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돌이키신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요한일서 2장 13절에 보면 "너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서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할 줄 누가 알겠느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셨는데 우리가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신 것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복을 끼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2예언서 중의 하나인 요나서 에서도 주께서 뜻을 돌이키시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라는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40일 후면 이 큰 성 니느웨가 멸망하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부하여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 3일간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회개하고 결국은 니느웨 성읍에 가서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40일 후면 이 큰 성 니느웨 성을 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회개하면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사 우리로 멸망하지 않게 하실 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께서 이미 40일 후에 라는 때까지 정하셨습니다. 니느웨를 멸망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그렇게 선포했으나 은근히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요나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은근히 그렇게 기다리면서 이제 40일째 되는 날이 오자 니느웨 성읍이 보이는 동산에 올라가서 있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이 성읍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할 것을 기대했지만 니느웨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요나서 3장 1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가축에 이르기까지 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그 모든 백성이 그렇게 하자 하나님께서 날짜까지 정하여 주신 뜻을 놀랍게도 돌이키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요나 선지자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이 쨍쨍한 곳에 있는 요나에게 박 넝쿨이 나게 하셔서 그늘로 덮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벌레가 나타나서 줄기를 잘라버렸습니다. 금방 말라버리고 그늘이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또 하나님께 소리를 쳤습니다. 하나님 왜 그전처럼 놔두시지 왜 벌레를 보내어 잘랐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그래서 내가 뜻을 돌이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서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뜻을 세우셨다가고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며 기도하며 자복하며 통회하며 하나님을 찾으면 놀랍게도 하늘의 그 작정하신 뜻까지도 바꾸면서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 왕 여호야김은 비극의 왕으로 끝난 왕입니다. 자신은 왕으로서 자신의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아야 했고 그리고 자신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죽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도 자기가 끌려갔기 때문에 그들이 유다의 왕이 되었지만 3개월 반 동안만 왕이 되었고, 이 아들도 바벨론으로 끌려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땅 위의 사람들의 장래와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작정하심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 가정에 작정을 하셨습니다. 여호야김의 앞날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작정하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정되었던 그의 운명도 바뀌어 질 뻔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자신의 운명도 바뀌어지고 그 나라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3절입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여호야김 왕이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통회하고 회개하면 그에게 작정되었던 운명이 돌이켜 질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1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재판도 법정에서 법관이 선고하면 끝이 납니다.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미 말씀으로 선고하시면 뒤집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후라고 할지라도 이 여호야김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고 통회하면 하나님이 재앙의 뜻을 돌이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호야김 왕은 가만히 있다가 재앙을 당하고 맙니다.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가 말을 할 때 무릎 꿇어 하나님께 간구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때 뜻을 돌이켜서 히스기야 왕 때에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야김왕도 이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앙의 선언을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죽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뭐합니까? 가만히 있으면 하늘에서 작정된 뜻이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하늘에서 작정된 뜻을 알고도 가만히 있으니 그 말씀이 땅에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매달려 간구하며 부르짖어야 되는데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듣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되받아 치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입니다. 좋은 말씀이라고 듣긴 듣는데 행하지는 않습니다.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26장은 대조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조비교로 인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18절부터 나오는 히스기야 왕입니다. 18절에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갈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히스기야 왕 시대에 완전히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유다의 역사가 끝날 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의 부친인 아하스라는 악명이 높은 왕때문이었습니다. 북쪽에는 아합 왕, 남쪽에는 아하스 왕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는지 하나님께서 유다 12만 명의 군대를 적에 의해서 죽이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통을 계속해서 주셨지만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와서 기도하지 않고 세상의 도움을 요청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셔서 네 아들의 대에서 이 나라를 끝장내리라고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히스기야 왕 때에 끝날 뻔하였습니다. 시온이 밭갈이 경작이 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히스기야는 참 대단합니다. 19절을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가 바뀌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대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끝장 내려고 하였으나 히스기야 왕은 즉위되자마자 놀랍게도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간구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뜻을 돌이켜 달라고 하였더니 히스기야 왕 때에 이 예루살렘이 솔로몬 시대 이후로 엄청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성을 많이 쌓고 형통하고 부귀와 영화가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윗 왕 때부터 솔로몬 왕 때에 극치를 이루었다가 완전히 급강하로 떨어졌지만 놀랍게도 히스기야 왕 때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로 인해 뜻을 돌이키셨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목을 놓아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뜻을 완전히 돌이키셔서 히스기야 왕 때에 오히려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때에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유월절 제사를 부흥시켰습니다.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을 버리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였더니 재앙이 아니라 큰 축복이 나온 것이 성경에 보면 몇 장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호야김도 이제 이런 재앙이 하늘에 있음을 깨달았으면 빨리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나라의 역사가 바뀌고 여호야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듣고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정된 역사는 이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또 한번 하나님의 뜻을 바꾸었습니다. 한번 체험한 사람은 계속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이 히스기야 왕이 큰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 이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네 수명이 여기까지니 자녀들에게 유언을 하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히스기야의 수명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전에 작정된 뜻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더니 하나님이 뜻을 바꾸어서 화를 복으로 바꾸었던 체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자기의 수명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간구하며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다시 보내서 "내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고 내가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았느니라."하시며 그의 수명을 15년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람의 연대는 하나님이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언제 망하고 세워지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도로 인하여 이 연대 언제 죽는 수명까지도 연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너희가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계획하고 작정하신 하늘의 뜻을 이루고 풀고 하는 것이 놀랍게도 하나님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기도하는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고 매어주시기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에는 이런 놀라운 능력과 역사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운명론과 숙명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번 정한 것은 내 운명이라고 하며 어떻게 사람이 운명을 바꿀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포기합니다. 불교에서도 숙명론을 가르칩니다. 전생의 무슨 업보 때문에 내 앞길에 이런 것이 작정되었고 이것을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앞날을 작정하셨지만 내가 기도하고 간구하고 부르짖고 매달리면 아버지의 뜻을 바꿀수 있습니다. 내 앞길에 정해진 운명까지도 하나님이 바꾸어 줄 수 있습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식언치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위엄이 혹시 떨어질지 몰라고 자녀의 모습을 보고 사랑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 보면 계속 앞날의 재앙에 대해서만 그것을 돌이킬 수 있다고 하지만 예레미야 18장 7절부터 보면 재앙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날에 선한 것을 작정하셨지만 내가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면 내 앞날에 선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꾸어 버릴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우리 앞길에 재앙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선한 것이 작정되어 있는데 내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것도 돌이킬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앞날에도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앞길에 언제 어느 때 어떤 수고와 고난이 작정 되어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이를 작정하신 것은 여호와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불충성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앞날에 어떤 어려움을 작정하고 계신 줄 누가 알겠습니까? 이런 것을 두렵게 생각하며 기도의 때가 오면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정하셨더라도 재앙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재앙을 바꾸어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기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나라의 운명까지 역사까지 뒤바꿀 수 있는 기도의 힘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우리는 국제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운 가운데 있는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혹시 특별한 응답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아닙니까?

어떤 집사님이 예수 믿으신 다음부터 바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계속 새벽재단을 쌓아오시는 8남매를 길러오신 귀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 집사님이 구파발에 사실 때 그곳의 큰 교회에서 다니시면서 새벽기도회에 다니셨습니다.

하루는 장마철에 밤새도록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홍수가 났습니다. 큰 홍수가 졌는데 새벽기도회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을 하다가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나님 앞에 매일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며 그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교회를 갔더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다들 이렇게 날씨가 안 좋으니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되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지 아무도 안 나오고 집사님과 목사님 부부 딱 세 사람이 새벽기도회를 하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새벽기도회를 하는데 "사랑하는 딸아"하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혹시 목사님이 부르셨나 해서 돌아보니 목사님도 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안 나온 궂은 날씨에 나온 이 집사님을 기특하게 여겨서 집사님의 귀에 두 마디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역사 하십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대충 기도하고 적당하게 기도하고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지 다니엘처럼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변함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하는 하나님을 찾는 소수의 사람의 기도를 보시고 지금도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정말로 기도를 하여도 목숨을 걸고 벼랑끝에 선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면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만나 주십니다. 이제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절박한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이번에 가족을 위해 내 자신의 앞날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여 반드시 하나님 응답을 받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하셔서 이번 기도기간에 정말로 예전과는 다른 큰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앞날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기도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주시는 이러한 주인공들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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