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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시 104:24-34, 행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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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시편 104:24-34, 사도행전 2:1-13, 요한복음 14:12-17

1.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1903년의 원산에서의 일을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당시 하디선교사는 한국에서 선교한지 13년이나 된 고참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원산을 거점으로 강원도 북부 선교를 담당한지 3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눈에 띄는 결과가 없어서 몹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김화의 「지경터 교회」는 1889년에 설립되었고 예배당 건물도 마련하였으며 교인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강원북부 전도의 거점을 마련하였는데 자기가 맡고부터는 오히려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그 이유가 「지경터 교회」 교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조선 사람들의 종교성이 기독교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참에 선교사직을 그만두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03년 8월 24일부터 원산에서 일주일간 여자 선교사들의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여선교사들은 연장자인 하디에게 성경공부인도를 부탁하였습니다. 바로 그 성경공부를 통하여 하디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애써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밖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힘으로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된다”고 하셨는데 그 성령의 능력이 없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을 말했으나 성령의 체험이 없었고, 회개를 말했으나 회개의 체험이 없는 이론적 신앙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하디 선교사는 기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드렸고, 그 결과 마침내 성령의 임재와 회개가 터져 나오는 은혜를 체험하였다. 하디뿐만 아니라 그 기도회에 참석했던 모든 여자 선교사들에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원산교회 주일예배 설교에서 하디는 조선교인들 앞에서 그동안 자기가 선교사로 사역하면서도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며, 고집불통이었으며, 교만했었던가를 눈물을 흘리면서 자백했습니다. 교인들은 그 잘났다던 선교사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처음 보았거니와 그것도 자신의 오만과 잘못을 회개하며 용서를 비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하디의 “눈물의 설교”는 교인들에게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곧바로 감동으로 바뀌었고 교인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주일을 지나고 곧바로 원산지방 남감리교 선교부 사경회가 열렸는데 하디가 인도한 그 사경회는 처음부터 은혜의 바다였습니다. 사경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앞  다투어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주일 후 원산을 방문한 미국인 부흥운동가 F. Franson의 부흥집회가 열렸는데 여기서도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유명한 1903년 부흥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원산에서 시작된 이 부흥운동의 불길은 서울과 개성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원산에서의 부흥운동은 하디의 회개에서 출발했습니다. 밖에서만 찾던 실패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 회개의 역사였습니다. 코가 높았던 외국 선교사가 자존심을 꺾고 교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이 회중들의 회개를 끌어냈습니다. 결국 눈물과 회개는 전염성이 강해서 눈물은 눈물을, 회개는 회개를 끌어냈습니다. 그 배후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결론은 부흥은 아래에서부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즉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연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으나 여호와의 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2.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2:에는 최초의 성령강림의 놀랍고 극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그리고 복음의 새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나타난 성령강림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2절에 “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3절에는 “혀처럼”, 4절에는 “말한다”, “말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6절에는 “자기의 방언으로...말한다”라고 했습니다. 7절에는 “이 말하는 사람들”, 8절에는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11절에는 “우리 각 사람의 방언으로....말함”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님의 강림과 말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의 사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6, 8, 11절에는 “듣는다”는 단어가 연거푸 등장하는 것을 보면 단지 말하는 사건만이 아니라 동시에 듣는 사건인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이란 “주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시1:에도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 즉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 원산에서의 부흥도, 결국 1907년의 평양 대 부흥운동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강론하고, 듣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본문을 잘 살펴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 8, 11절에 보면 “각각 자기의 방언...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우리의 각 언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본문에 나타난 대로 “바대, 메대, 엘람, 메소포타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아,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 소아시아와 심지어 일부 유럽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주로 흩어진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들이었으며 그중에는 이방인으로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들은 이미 고국을 떠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모국어인 유대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사는 곳의 외국말을 사용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령 받은 사도들이 설교할 때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큰일에 관한 설교를 각기 자기들의 방언으로 알아듣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언어의 통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교회 역사상 이루신 최초의 역사였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그 힘을 단합된 힘을 모아서 하나님께 까지 닿을 수 있는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요 반역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교만한 마음으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추방한 하나님은 저 바벨탑 공사를 하던 인간들도 역시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 저들을 흩으셨습니다. 결국 흩어짐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도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 역사에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선지자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흩으셨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남조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적군들에게 끌려가서 망국의 한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들이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오순절 절기를 당하여 저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바로 그때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도들이 설교할 때 신비스럽게도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사는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말씀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교회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여기 오순절 즉 성령강림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3.  그러면 오늘 여기서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맞게 되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어떻게 체험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엄청난 문제들이 들어났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교회의 분열현상이었습니다. 교인들 개인적으로는 서로 자기가 더 훌륭하다고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자기 은사가 정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거기다 교회 주도권 쟁탈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파니, 게바파니, 아볼로파니, 그리스도파니 하면서 파당을 이루기까지 했습니다. 소위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불신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결국은 세속의 온갖 죄악이 교회 안에서 그대로 벌어졌습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외친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고전1:10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저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일어났던 그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흔히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어떻게 역사를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단지 그때 거기서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오늘 여기서 역사할 때 초대 교회와 같은 형상이 우리 가운데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또 금년 들어 한국 교회가 “Again 1907”이라고 하면서 100년 전 평양에서의 그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기를 원하지만 역사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단지 성령께서 그때 거기서와 같이 오늘 여기서도 같은 현상을 이루어주실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디의 경우를 봅시다. 그는 문제가 한국 교인들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적어도 자기는 그 책임권 밖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한국교인들을 경멸하고 미워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같이 일해 봐야 아무런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선교사역을 그만두려고 했던 것은 그 노력을 다른데 기울이면 오히려 훨씬 놀라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이미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풀린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끝없이 “너 때문이야!”를 외칩니다. 책임질 사람을 색출하려는 내 손가락은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총을 겨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저 바벨탑 건설현장에서 서로 의사가 소통되지 않아서 혼란 끝에 공사는 중단되고 다 각기 흩어져 버렸던 것과도 같습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내 탓이요!”라고 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 생각만을 내세우고, 자기주장만을 고집하던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 대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같은 말을 하게하고, 같은 마음을 품게 하고, 같은 뜻을 가지게 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교회를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람들이 한 가지로 들은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베드로의 언변이었습니까? 베드로의 자기 소개였습니까? 베드로가 전해준 저 갈릴리 시골의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까? 아닙니다.“우리가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불통의 세상에 소통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물질,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적 불통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소통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으되 여호와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기 2007년도 성령강림절을 맞는 우리 교회에 성령께서 오셔서 이렇게 소통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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