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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섬김의 리더십 (막 10: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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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리더십(막 10:42~45)
 
  몇해 전 '아멜리에(Amelie)'라는 영화가 상영돼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랑스판 '엽기적인 그녀'로 국내에 소개된 이 영화에는 의사인 아버지에 의해 심장병으로 오진받고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채, 교사인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자란 소녀 '아멜리에'가 등장합니다. 그 후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죽고, 유일한 친구인 금붕어마저 스트레스를 받아 어항 밖으로 뛰쳐나가버려 외롭고 우울하게 살던 아멜리에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벽 틈에서 40여년 된 낡고 녹슨 양철 상자를 발견합니다. 구슬들과 플라스틱 군인, 빛바랜 사진 등이 빼곡히 들어 있는 어떤 소년의 보석 상자였습니다. 그녀는 이 상자의 주인이 이것을 다시 찾게 되면 얼마나 행복해 할지를 생각하고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주인을 찾아나섭니다. 천신만고 끝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의 상자 주인을 찾아 몰래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 중년신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뿍 담긴 상자를 보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글썽이며 행복해합니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멜리에는 인생의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지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일'에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할을 하던 아멜리에에게도 결국 행복이 찾아옵니다. 달콤한 미소를 가진 건실한 청년을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그 청년 역시 아멜리에를 사랑하게 되어 이제 행복은 아멜리에 차례가 되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영화 '아멜리에'에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섬김의 리더십)의 전형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오늘은 사실 청년주일입니다. 청년의 때는 리더십을 기르는 때입니다. 내일의 리더십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길러야 할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일까요? 어디 청년들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리더십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세상엔 많은 종류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리더십보다 섬김의 리더십이 아름답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리더십의 모본인 예수님의 리더십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 제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또 "큰 자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고, 높아지려면 낮아지라"고 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가지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사랑의 실천이 최고 가치의 삶이라고 가르치신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1. 섬김의 리더십은 가장 성경적인 것입니다. 
  섬김은 주님이 보여주신 삶의 모범이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인 것입니다. 주님 백성들은 주님을 본받는게 당연한 것이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21세기를 이끄는 경영철학은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비즈니스든, 정치나 행정이든, 인문학이든 세계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학계에서도 이미 이것은 정설로 굳어진 것입니다. 학계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나 GE 같은 첨단의 기업현장에서도 이 시대를 아우르는 통찰력이나 지도력은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류그룹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자세나 사고방식은 점점 더 성경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점점 더 성경적인 삶이나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자각해가고 있는 반면, 교회는 점점 더 세속화로 기울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앞섭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본질 회복은 참된 리더십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21세기는 섬김지 않고 위대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섬김의 정신을 실천할 때 성공과 축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2. 섬김은 낮아짐으로서만 가능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은 높아지려고 발버둥치고 더 가지려고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보다 많이 얻어 누리려고 서로가 짓밟고 피터지게 싸웁니다. 높은 곳에서 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곳에서는 섬김이 불가능합니다. 섬기려면 낮은 자리로 내려와야 합니다.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가장 화려하게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마구간으로 낮게 오셨습니다. 높게 오셔서는 낮은 곳, 추한 곳, 천한 곳, 죄 많은 곳에 처한 인생들을 구원하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롭게 하시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습니다.
  이처럼 낮아짐으로서만 섬김이 가능합니다.

  3. 섬김이야 말로 관계를 가장 좋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부, 좋은 부모와 자녀, 좋은 노사, 좋은 형제와 친구는 모두 섬김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섬김이 관계의 기본인 것입니다. 주부들이 타락하게 된 첫번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느날 자신이 식모처럼 느껴지고 내가 언제까지 식모처럼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행복은 사라지고 불행한 감정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절제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좋은 부부, 좋은 부모의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김의 행복을 안다면 황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고 즐거워하게 되고 관계는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딸이 시집갈 때 가르치는 지혜로운 아내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남편을 극진히 대접하라. 그러면 남편은 네 머리위에 왕관을 씌워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존경과 사랑은 섬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4. 섬김은 마땅히 복을 사람이 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비록 조카였지만 그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 삼촌을 섬겼습니다. 어려번 속임을 당했지만 그래서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삼촌보다 더 부하게 하셨습니다. 꿈쟁이 요셉은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롯은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몇날 며칠을 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주님은 섬기려오셨고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앞에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뿌린 대로 거루게 될 것입니다. 섬기는 자는 마땅히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것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1주일에 8시간 이상 남을 돕는 자원봉사자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결과 95%가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봉사의 희열감을 경험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불면증이 치료되었고, 만성통증이 줄어들었으며, 감기도 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 아끼고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 일쭉 죽을 가능성이 두배나 높다는게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습니다. 섬김은 반드시 보답이 있는 이유있는 삶의 방법인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의 끝마침은 곧 섬김의 시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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