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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리고 가정 달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가정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가이사랴의 오순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는 소중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 강림의 대상이 이방인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점이 철폐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에게나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도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 땅에 임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면 이스라엘에 임해야지 다른 이방의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강림의 장면이 4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행전 2장에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둘째는 8장에 사마리아에서 안수하므로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셋째는 10장에 가이사랴에서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넷째는 19장에 에베소에서 안수하므로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성령 임재의 체험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어떤 방법이든 우리 모두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가정들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이방인도 체험하는 성령의 체험을 우리 모두가 하기를 바랍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구제하는 사람이었고,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환상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집이 성령 강림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대 받으셔서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초대받지 못한 한 죄 많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성경은 그녀의 행동에 대하여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합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던 것같이 우리의 집에도 향기로 가득해야 합니다.

  집에 향유 냄새가 가득해야 하고, 웃음이 가득해야 하고, 사랑이 가득해야 하고, 성령이 가득해야 합니다. 성령이 가득하면 향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성령이 가득하면 사랑이 가득할 것입니다. 성령이 가득하면 웃음이 가득할 것입니다. 성령이 가득하면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온 성전에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연기는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온통 고함 소리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온통 돈 얘기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온통 야단치는 소리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성령으로 가득한 가정이 되세요. 성령을 초청하고, 성령의 임재를 기대하고, 성령이 충만한 가정들이 다 되세요.

  21세기는 영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성령의 체험은 중요한 이 시대의 삶입니다. 과학, 기술, 지식, 정보로 대변되는 이 시대가 영성의 시대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영성이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이념이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북한도 영성 사회입니다. 영이 가득한 사회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이념이 신을 대신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보도에는 세계 10대 종교가 올라왔습니다. 미국의 어느 종교 사이트에서 발표한 세계 10대 종교는 첫째는 21억 명이 믿는 기독교입니다. 둘째는 13억 명이 믿는 이슬람교입니다. 셋째는 무종교로 11억입니다. 넷째는 9억 명이 믿는 힌두교입니다. 다섯째는 3억9400만 명이 믿는 유교, 도교 등 중국의 전통종교입니다. 여섯째는 3억 7천600만 명이 믿는 불교입니다. 일곱째는 3억 명이 믿는 애니미즘, 샤마니즘 등 원시토착종교입니다. 여덟째는 1억 명이 믿는 아프리카의 전통종교명입니다. 아홉째는 2300만 명이 믿는 시크교입니다. 열째는 1900만 명이 믿는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도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개인이나 교회나 사회가 건강한 영, 성령으로 임재하여 성령으로 무장하고 충만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모든 가정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가정이 되어 영성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는 가정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하여 성령으로 임재한 가정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 가정들이 다 이런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이방인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합니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있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성령이 강림한 첫 번째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성령 강림의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45절에는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놀라니”라고 합니다. 신앙이 유대민족에게만 주신 특혜라고 믿던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마땅히 놀랐을 것입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는 완전한 이변이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하였는데 얼마나 성령의 강림이 대단했길래 부어주셨다고 했겠습니까? 엄청나게 크게 역사하신 흔적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엘 2:28에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합니다. 29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성경에는 한 결 같이 성령을 주심을 “부어 주다”라고 하십니다. 잠언 1:23에는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라고 합니다. 이사야 29:10에는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시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라고 합니다. 이사야 32:15에는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라고 합니다. 스가랴 12:10에는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라고 합니다. 성령의 단비는 보슬비가 아닙니다. 성령의 단비는 부어주시는 소낙비입니다.

  ‘부어주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샤파크’(shapak)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주시는 것이 아니라 풍성히 넘치게 주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성령의 단비는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풍성히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셨다 하면 조금씩 감질나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풍성히 충만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에는 성전에서 흐르는 물을 묘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흘러 발목까지 차게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는 무릎까지 차게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그 물이 허리까지 찼습니다. 나중에는 건너지 못할 만큼 많은 물이 되어 그 물에 고기가 살고 물 곁에 과실이 풍성히 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차고 넘치게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임재도 부어주실 만큼 풍성하고 넘치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재하였다는 것은 모든 사람, 모든 가정, 모든 민족이 성령을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개인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령의 임재를 맛볼 수 있고, 누구나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큰 믿음을 보인 사람을 보세요. 가나안 이방인이었던 수로보니게 여인과 로마인인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한센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열 사람이 다 고침을 받았지만 그 중에 한 사람만 감사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이방인인 사마리아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이 오히려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더 감사하며, 이제 성령의 임재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다 복음을 받게 하십니다. 로마서 1:5에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합니다. 이방인이 믿고 순종합니다. 이방인이 성령을 받아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강림합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믿은 자 같은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긴한 때에 막차를 타게 하신 사람들입니다. 서구는 이미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방인 같은 우리가 성령강림의 주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가정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평양 대 부흥 운동의 성령 충만을 회복하여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성령 충만의 주역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고 합니다. 성령의 임재의 결과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을 높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사람들이 방언으로 무엇을 말했을까요? 어떤 학자는 그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면서 은사를 자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면서 자기를 자랑할 수 있습니까? 이런 자랑은 진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게 되고 내가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높임’(exaltation)이란 말은 높인다는 말 외에도 찬양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찬양입니다. 철학적으로는 하나님을 ‘우주적인 힘’, ‘제일 원인’, ‘부동의 동자’ 등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창조자’, ‘영원한 분’, ‘만유의 주’ 등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표현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최상의 언어로 표현하기 부족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최상의 높임말을 사용한다고 해도 부족할 만큼 높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산성입니다. 히브리어의 산성을 뜻하는 ‘미쓰가브’(misgab)는 높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광의로는 ‘안전하다’는 뜻을 지닌 ‘싸가브’(sagab)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마사다’(masada)라는 성이 있습니다. 이 말도 산성이란 ‘미쓰가브’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하나님은 산성처럼 높은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산성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높으신 분이십니다.

  사막의 교부들의 말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인 ‘깨달음’이란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방앗간 주인이 당나귀의 눈을 가리지 않으면 당나귀가 빙글빙글 돌면서 곡식을 다 먹어치운다. 하나님께서도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가 행한 선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 마침내 상급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높은 자일수록 낮추십니다.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일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높이는 일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자신 대한 겸손을 주시고, 하나님께 대한 높임을 주십니다.

  갈보리 사랑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에서 높이셨습니다. 우리의 예배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찬양이란 하나님의 높으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을 잘 살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영혼을 만족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시편의 가사를 인용한 좋은 노래가 있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정말 이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가 주를 높이고 송축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가정에 심방 가보면 예배 시간에 찬송만 하면 개가 죽을 듯이 짖어댑니다. 평소에 얼마나 찬송을 안 했으면 개가 그렇게 짖어대겠습니까? 반면에 어떤 가정에 가면 찬송을 부르면 개가 따라 찬송을 합니다. 물론 가사도 곡도 있는 노래가 아니지만 개가 함께 소리를 냅니다. 개가 무슨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이 있겠습니까만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개가 길들여진다는 말입니다.

  ‘엉클 톰스 캐빈’이란 소설을 쓴 스토우 부인과 링컨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링컨은 “부인을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작가가 아주 강한 장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연약한 부인이시군요.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스토우 부인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건 제가 영광 받을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시고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각하의 공이야 말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링컨 대통령은 “나는 단지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나는 아무 힘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두 사람이 서로 하나님을 높이는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의 대화의 모습입니다.

결론

  우리 가정이 가장 기쁠 때가 언제입니까? 성령이 충만할 때입니다. 성령이 임재하시고 성령이 충만하면 모든 것이 골고루 갖추어집니다. 찰스 윌리엄스의 짧고 재미있는 희곡 ‘그랩과 그레이스’가 있습니다. 색다른 체험을 하기 위하여 이번 주에는 요가, 다음 주에는 불교, 그 다음 주에는 심령술 등 각종 종교를 섭렵한 한 남자와의 대화에서 그레이스는 성령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랩이란 이 남자는 “성령님, 그 좋지, 기분 내키면 한번 오시라고 그러리다. 그런데 그 기분이라는 것이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이내 시들고 말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레이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목적의식은 오래 갑니다”. 성령의 임재는, 성령의 충만은 일회적인 경험이나 오락이 아닙니다. 삶의 목적입니다.

  성경의 교회들을 보세요.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눔바의 집은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루디아의 집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빌레몬의 집은 골로새 교회였습니다. 가이오의 집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두가 가정들이 교회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가정, 지금도 그런 가정은 교회입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작은 교회입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성령이 충만한 가정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초청하여 성령이 임재하고 성령이 충만한 우리 모두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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