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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창조의 영 (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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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한 날입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때 여러 나라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모이기 시작하여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하나 묻습니다. OX 문제입니다.
‘성령은 오늘, 성령강림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오늘 처음으로 강림했다. 그래서 오늘을 성령강림절이라고 하는 것이다.’ O입니까? X입니까?

X입니다.
성령은 그 이전에도 계셨습니다.
그 이전에도 역사하였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잉태할 때도 역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도 강림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의 일을 마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

성령은 구약에도 나옵니다.
한글 성경에 성령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곳은 열왕기하 2장 9절입니다.
엘리야가 승천하려할 때 제자 엘리사가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일의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의지해서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보다 갑절의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성령은 언제부터 역사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입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계셨습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역사하셨습니다.
본문의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계셨고, 역사하셨고,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입니다.

성령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는 “보혜사” 17절에서는 “진리의 영”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창조의 영”이라는 이름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근거를 두고 이런 이름을 만들어 놓고 보니 참 적절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고, 교회가 하나 되게 하시고, 은사를 나누어 주시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 ‘성령은 창조적인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창조의 영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이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령은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악령은 파괴의 영입니다.
나의 심령을 파괴합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가정을 파괴합니다.
나가서는 교회를 파괴합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비난하고 싶고, 그리고 깨뜨리고 싶고, 이런 생각이 들면, 그것은 파괴의 영인 악령이 하시는, 아니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는 일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은 얼은 물리쳐야 합니다.
오늘 전도 나가기 싫은 생각이 들면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은 우리에게 첫째, 모든 일에는 성령이 앞서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기록, 천지창조의 장엄한 대사서시입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 낮과 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둘째 날,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셋째 날, 땅과 바다를 만드시고 채소와 나무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섯째 날, 새와 물고기와 모든 생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제가 지금 매일의 창조를 말하면서 “하나님은” 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넣은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신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천지를 지으시는 이야기 앞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창세기는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으면 바로 첫째 날 창조 이야기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는 이야기를 하고 비로소 3절, 첫째 날 창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천지창조의 대작업 앞에 성령이 있었습니다.
천지창조를 군대의 행진에 비교하면 성령이 기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건축공사에 비교하면 성령이 설계와 감리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창조를 자동차 운전에 비교하면 성령이 네비게이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성령의 인도에 따라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행진을 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에 따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이 멈추면 우리도 멈춰야 합니다.
성령이 떠나라고 하면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성령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 일은 하지 말아야합니다.

성령의 운행이 있고 천지창조작업이 진행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날, 빛을 만드신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4절 앞부분,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셋째 날, 땅과 바다를 만드신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10절 뒷부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넷째 날,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신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18절 뒷부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건너뛰어서 31절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렇습니다. 성령이 앞서고 그 다음에 우리가 일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됩니다.
가치가 있는 것이 됩니다.
쓸모가 있는 것이 됩니다.

전도는 성령이 도우시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가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면서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새벽부터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다시 사도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대제사장이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협박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사도행전 5장 29절 중간에서 3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먼저 여러분,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 성령은 우리가 증인으로 일하는 것을, 전도하는 것을 도우십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을 하려 하십니까?
‘성령님, 이 일을 원하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성령님 이 일을 도우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아니 모든 일을 할 때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하고, 그래서 보기에 좋게 되는, 가치 있게 하는, 유익하게 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 바랍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성령은 늘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난날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브리말로는 “바라 엘로힘” 이렇게 되는데요, 「새번역 성경」은 이 말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 말의 시제가 무엇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했으니 두 말 할 것 없이 과거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여러분, 영원한 현재진행형입니다.
왜? 태초에 창조하신 천지를 세밀하게, 잘 관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잘 관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컴퓨터를 살 때 될 수 있으면 어느 한 회사 제품을 사려고 애씁니다.
그 회사가 애프터서비스를 철저하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한번은 노트북에 이상이 생겼는데 애프터서비스 하는 사람이 와 보더니 하드를 통째로 바꿔 준 일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얼마 뒤에는 그 상급자에게서 전화가 오지요.

‘고객님께서 애프터서비스를 의뢰해서 우리가 기사를 보냈는데 그 기사가 빨리 갔습니까? 친절하게 고쳐 주었습니까? 만족하십니까?’ 확인하는 전화가 옵니다.
컴퓨터를 많이 쓰고, 컴퓨터에 많이 의존하는데 컴퓨터가 고장 나면 야단입니다.
젊은 부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은 그럴 때 자기 손으로 뜯어 고치기도 하고 들고 용산에도 가고 하는데 저 같이 컴퓨터에 미숙한 사람은 애프터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회사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그 회사 이상이십니다. 늘 새것과 같이 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창조하신 천지를 세밀하게 잘 관리하는 것을 제2의 창조라고 합니다.
현재적 창조라고도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현재적 창조를 하시지 않으신다면 오늘 해가 서쪽에 떴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금까지 아예 해가 안 떴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이 현재적 창조를 하지 않으신다면 이 앞의 동막천이 분당 쪽으로 흐르지 않고 저 위 고기동쪽으로 흐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지구와 달이 충돌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현재적 창조를 하시니까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운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영원한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창조의 영인 성령도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태초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카오스라고 하지요.
아무런 형체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2절에 나오는 “수면 위”라는 말은 아무런 형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불안정해 보였으나, 일정한 모양 없이 공허했으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세상이나 우리의 삶이 마찬가지입니다.
공허하고 질서가 없어 보이고 뚜렷하게 이뤄지는 것이 없어 보여도 그래도, 여러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함께 하셨고, 지금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함께 하실 창조의 영, 성령님이 계심을 믿고 그 성령을 의지하며 든든함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 교훈은 성령은 필요한 때 강하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은 창조 때부터 계셨던 성령이 가장 강하게 임재한 날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히브리말로 “루아흐 엘로힘” 입니다.
“루아흐”라는 말은 바람, 영, 혼, 숨, 신, 여러 가지로 번역됩니다.
「새번역 성경」난외주를 보면 이 말은 “강한 바람”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천지창조 때 성령은 강한 바람과 같이 운행하였습니다.

성령강림절의 기록인 사도행전 2장을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천지창조 때 운행한 강한 바람이 오순절에 다락방에 다시 한 번 임한 것입니다.

온천 가운데 간헐천(間歇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분출하는 온천을 간헐천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에는 간헐천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간헐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교는 정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우리나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에 간헐천이 하나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상하게 여기고 클릭해 보니 온천이 아니고 폭포입니다.
간헐천이라고 할 때는 샘 천(泉)자를 쓰는데 이 경우는 내 천(川)자를 쓰고 있습니다.
이 폭포는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가뭄 때면 두 시간, 혹은 한 시간 간격으로 ‘쏴’ 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30분쯤 계속되다가는 서서히 물줄기가 작아지다 물이 뚝 끊겨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시시때때로 나오는 물이라 해서 이 폭포를 ‘때때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물이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이유는 큰 함지박 돌덩이가 있어 지하수가 가득 차면 바깥쪽으로 숙여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폭포는 세계에 여기 하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의 기록인데 이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면서 하나님의 창조는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는 연못입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도 간헐천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은 간헐천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지하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필요한 때 뜨겁게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우리가 그 물에 흠뻑 젖게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처럼 치유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은 성령의 물이 최고로 강하게, 최고로 뜨겁게 솟구쳐 오른 날입니다.

성령의 뜨거운 물은 언제 솟구칩니까?
비유적인 표현을 그만 두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성령은 언제 강림하십니까?
중요한 일이 시작되려고 할 때, 강하게 강림하십니다.

천지창조, 중요한 일입니다.
그 때 오늘 본문과 같이 성령이 운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 인류구원 역사의 대서막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 때 처음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습니다.

교회 탄생, 중요한 일입니다.
8년 전, 19999년, 2000년,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였느냐?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느냐?‘ 이런 것들에 대한 논의가 많았습니다.
2000년의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은 두말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00년이라는 것도 그 분의 탄생을 기준으로해서 계산된 것입니다.
2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교회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탄생한 날,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생긴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할 때 강하게 뜨겁게 솟구칩니다.

18세기의 영국사회,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사회는 타락하고, 종교는 무기력해졌습니다.
무엇인가 변화가 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은 형편이었습니다.
269년 전 지난 주간의 목요일, 1738년 5월 24일, 성령은 웨슬리 선생의 마음속에 뜨겁게 솟구쳐서 영국의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한국,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영적으로도 침체된 분위기였습니다.
꼭 100년 전인 1907년, 성령은 평양에서 뜨겁게 솟구쳤습니다.
그 물줄기가 전국으로 흘러나가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라는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성령은 준비가 되었을 때 강하게, 뜨겁게 역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그 때 몰랐지만 성령 받을 준비를 한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 회심 이전에도 경건의 최고봉에 서 있던 분이었습니다.
규칙적으로 모여 성경 읽고,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규칙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구령의 불타는 열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품고 선교사 생활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해서 성령체험하고 성령의 쓰임 받기에 필요한 준비를 모두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1907년의 대부흥운동, 그 몇 해 이전, 원산에서부터 준비되어 왔습니다.
결정적인 준비는 회개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부흥에의 열망, 성령 받기에 합당한 준비인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이 이 가운데에서 뜨겁게 솟구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머내쪽에서 저희 교회에 오려면 남영골프랜드 앞을 지내야 합니다.
지금은 만성이 되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 앞을 지나려면 아쉬운 생각도 들고 속이 좀 상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 거기에 높게 처진 그물 때문에 우리 교회가 가려져서 그렇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는데 그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 큰 이유는 탄산수 때문입니다. 거기 보면 탄산수 사우나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골프연습장 안에 탄산수가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수맥이 이 부근을 지날 텐데, 그것이 우리 교회 부지 안에서 솟구쳤으면 교회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되었을 텐데 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탄산수는 솟아나지 않더라도 성령의 샘물은 뜨겁게, 뜨겁게 솟아나도록 다같이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입니다.
창조 때부터 계셨고 창조 때부터 역사하셨으며 지금도 모든 창조적인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창조적인 일 가운데 창조적인 일이 무엇입니까?
전도입니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요, 그 사람을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에서 운행한다는 말은 암탉이 알을 품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암탉이 알을 품듯이 우리를 포근하고 소중하게 감싸고 계십니다.
성령은 암탉이 새 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새생명으로 거듭나기 바라며 깊은 관심으로 소중하게 돌보십니다.

여러분, 그 성령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세요.
어미 품에서 벗어난 달걀은 부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의 품에서 벗어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성령의 품에 포근하게 안겨서 새생명으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품안에 들어와서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을 위해 힘쓸 때 119 새생명 큰 잔치가 이름 그대로 풍성한 잔치가 될 줄로 믿습니다.

천지창조 기사에 하나님의 영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천지창조는 성삼위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협력하여 이뤘다.’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지창조는 단독사역이 아닙니다.
천지창조는 성삼위의 협력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협력하여 전도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성령이 앞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 뜨겁게 솟구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과 함께 창조적인 삶을 살고 귀한 창조사역을 이뤄나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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