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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유의 길 (왕하 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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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길 (왕하 5:9~14)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왕기하 5:9-14

  오늘 우리는 성경 속의 유명한 한 사람, 나아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은 ‘큰 자’ ‘존귀한 자’라 불리었고, 시리아의 장군으로서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용사’이기도 했습니다. 명예와 재산, 권력을 다 갖추고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문둥병 앞에는 그가 가진 명예와 권력과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을 보니 다들 멋지고 훤하게 보이십니다. 하지만 나아만 장군처럼 인생의 어느 부분엔가 내가 감당할 수 없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문제가 늘 있는 것을 봅니다. 육체적인 질병이든, 경제적인 문제든, 직장문제든, 아니면 가족 간의 문제든지,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에게는 문둥병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기적적으로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한 소녀의 순박한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리아 왕 벤하닷 2세가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는데, 그 중에 소녀 하나를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여종으로 주었습니다. 부모와 생이별하고 남의 나라에 잡혀 와서 종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보통 아이 같으면 낙심해서 날마다 울고 한탄했겠지만 이 아이는 달랐습니다. ‘내 인생에 불행이 왔지만 이 불행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이스라엘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을 알았고, 사마리아의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의 능력 행하는 것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엘리야가 떠날 때 그를 붙잡고 “그냥은 못 보냅니다. 선생님 능력의 2배를 제게 주소서!” 간청했습니다. 소망과 비전이 매우 크고 기도를 강하게 했던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 소녀가 하나님의 선지가 엘리사의 소식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의 작은 믿음에서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단순한 믿음이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저는 모르지만, 그것을 묻어놓으면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꺼내서 사용하면 산도 바다로 옮길 수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에 우리 교회에 오신 유대인 목사님이 제 방을 나와 복도를 지나가면서, 이 건물을 짓기 전에 산을 45m나 파서 제거해 놓은 사진을 보고 “아, 이 교회는 산을 옮겨노았군요!”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겨자씨 같은 믿음도 산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산을 파서 바다에 옮겨놓고 그 안에 교회를 지었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사용하고 행동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지 않은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 어린 여종과 같이 가슴속의 믿음을 사용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믿음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나아만의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라는 분에게 가면 장군님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마음이 비뚤어진 아이였다면 ‘내가 종으로 잡혀온 것도 억울한데 장군이 병에 걸렸다니 잘 되었다. 벌 받았어’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속이 비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4,6). 이런 믿음이 그 여종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여종의 믿음은 장군 부인의 믿음을 일으켰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저 아이가 사마리아에 가면 당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해요.” 여종의 작은 믿음이 주인 부인에게 번져갔고, 그 부인의 작은 믿음은 남편에게로 번져갔습니다. 남편에게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 아, 그럼 거길 가봐야겠다!”하고 왕을 찾아 갔습니다.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벤하닷 왕이시여, 제 여종의 말이, 저 사마리아에 가면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종이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를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가야지!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줄 테니 다녀오게.” 어린 소녀의 믿음이 자기 여주인에게 불이 붙었고 장군에게 붙었으며 드디어 시리아 왕에게까지 믿음의 불이 붙었습니다. 믿음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작은 믿음의 불꽃 하나가 시리아 왕에게까지 전해 졌습니다.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번져갑니다.

  장군은 부하들을 이끌고 믿음을 갖고 길을 떠났습니다. 만약 자신의 병이 낫게 되면 주려고 많은 돈도 챙겼습니다. 재산을 다 주더라고 병이 낫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 쌔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5절). 은 10달란트는 750파운드, 즉 300kg입니다. 제 몸무게의 다섯 배 정도 되지요. 금 6천개는 60kg정도 됩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을 찾아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 왕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위대한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믿음 있는 사람들의 믿음의 불을 끄는 방해꾼이나 될 수 있습니다. 여호람 왕은 이 일을 인간적, 정치적으로만 생각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겁이 나고 불안하고 걱정이 앞서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완전히 막힌 것 같아도 앞이 보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하면 희망이 있고 앞이 보입니다. 여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야 희망이 있습니다.

  여호람 왕은 두려움과 슬픔의 표시로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7절). 큰일 났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옷 한 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망쳐버립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으니 손해가 많습니다. 여호람 왕은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7절)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겠다고 온 것이지 누가 자기더러 병을 고쳐달라고 했나요. 아무리 왕이라도 사람은 기적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노쇠하고 병들고 괴로우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앞이 보입니다.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믿는 그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7절). 믿음이 없는 사람은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이여, 저에게 작은 겨자씨 믿음이라도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가 여러분의 입술에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어린 노예 소녀였지만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 믿음으로 자기 여주인을, 장군을, 왕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자기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왜 옷을 찢어 낭비를 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었다면 옷 한 벌을 벌 수 있었을 텐데. 그를 제게 보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믿음의 진원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욕심이 있었고, 하나님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소녀의 단순한 믿음이든지, 엘리사의 강력한 믿음이든지, 그것을 통해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참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삶으로써 이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왕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결할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8절).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지자가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 때문에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겁니다. 결국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에 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니 종이 나왔어요. “내가 나아만 장군인데 엘리사를 나오라고 해라.” 그런데 엘리사는 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나갈 것까지는 없고 그냥 집에 돌아가면서 요단강에 일곱 번만 들어갔다 나왔다 하시오. 그리고 집에 가면 나을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났습니다. “아니, 내가 누군데 나와서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라고 하느냐? 게다가 우리나라에 가면 더 좋은 강이 얼마나 많은데 이 흙탕물에 목욕을 하라고?”

  엘리사가 예의가 없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믿음에 대한 시험입니다. 나아만은 화를 내는 바람에 믿음을 확인하는 관문에서 낙제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만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을 몇 번이나 공격해서 망하게 한 시리아의 총사령관인데, 왕도 인정하고 온 국민이 존경하는 나를 이스라엘 선지자가 인사도 하지 않고 이렇게 푸대접을 해?” 이 자존심이 방해물입니다. 작은 인간 속에 있는 이 큰 교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아만은 자기가 위대하고 명예로운 사령관인 것만 생각했지 문둥병자라는 사실은 잊어버렸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문둥병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나아만 장군의 부하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한 소녀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불씨가 그의 여주인에게, 장군에게, 또 왕에게 붙었고, 드디어 이 모든 불의 진원지인 엘리사에게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작은 자만심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망칠 위기에 빠졌습니다. 어떤 박사학위를 가진 분에 제게 그래요. “목사님, 저는 과학을 공부하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학자들 중에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믿기 싫어서 안 믿는 겁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과학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지식에 대한 교만입니다. 세상의 박사가 무엇입니까? 세상 만물 가운데 조그만 한 영역을 연구하고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 아닙니까? 그 박사 학위가 하나님입니까?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께로 오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박사학위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입니까?

  나아만은 믿음이 없었으나 다행히 그의 부하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교만 때문에 화가 나서 문둥병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가는 나아만에게 부하들은 “아버지여!” 하고 아주 부드럽게 접근했습니다. “만약 선지자가 나와서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하라고 했어도 병이 낫기 위해서는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물속에 일곱 번만 들어갔다 나오라는데 그것을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번 해 보십시다.” 나아만이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아요. 다시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평양에는 두 개의 강이 있는데, 하나는 대동강, 또 하나는 보통강입니다. 대동강은 물이 깨끗했지만 보통강은 흙탕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동강보다 보통강을 더 좋아했어요. 보통강에라도 들어갔다 나와도 몸에 더러운 것이 묻어서 나오는 법은 없었어요. 어려서 장난해 본 사람들은 알지요. 비 오는 날 개울물에 들어가도 나올 때는 깨끗하게 나오잖아요?

  한 어린 여종에게서 출발한 믿음의 불길이 여러 사람을 거쳐 나아만의 종들에게까지 번졌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 들어오면 불이 붙습니다. 믿음을 기적을 일으킵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하여 의심이 생겼어도 믿음 있는 사람들 속에서 들어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작은 불길들이 모여 큰 불길이 되거든요.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땅에서 기도하면 하늘에서 응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믿음이라도 옆 사람에게 보태어 믿음의 공동체 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과 역사들을 함께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나아만은 드디어 믿음으로 요단강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요단강에 들어가는 나아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총사령관으로서 장군의 큰 병거를 타고 왔습니다. 하지만 그 병거 위에 그냥 있어서는 병이 낫지 않습니다. 병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합니다. 장군의 옷을 벗고 훈장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옷을 다 벗고 나니 드러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문둥병자입니다. 훈장이 무슨 소용이며 병거가 무슨 소용입니까? 여러분, 인간은 적나라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장군의 옷도 벗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으로 내려와 겸손하게 요단강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바랐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들어갔다가 나와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다 집어치우자.” 지금은 장군이 아니지요. 문둥병자일 뿐입니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을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아,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요단강 물이 치유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겸손하게 문제를 내려놓고 간구해야 합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 나의 고통들을 적나라하게 내려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부족한 인간입니다. 문둥병자처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능력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 어린 여종의 믿음처럼 여러분에게도 작은 믿음이 있다면 오늘 이 아침, 그 믿음을 꺼내어 산을 향하여 바다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의 불길이 옆으로, 옆으로 번져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아픔과 슬픔을 놓고 함께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그 믿음으로 인해 여러분 주위에 하나님의 역사들이 많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주여,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령이여, 저를 깨끗하게 하사 저의 불신앙을 제거해주옵소서. 작은 믿음이지만 이 믿음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합하여 공동체 믿음을 이루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 땅에서 체험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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