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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깨어 살 때 (롬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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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우리가 오늘 숨 쉬고 있는 것 …, 오늘 살아 있는 것 …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복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도 ‘내가 오늘 살아야지’결심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심하고 살면 이 세상에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이 살라고 명했기 때문에
명령 받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어제까지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오늘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았으니 감사요, 희망이요, 축복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을 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옆의 분과 “살아 계심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강림주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래서 강단의 십자가에 붉은 색이 나게 했고,
강단 꽃꽂이도 성령의 불길처럼 붉은(빨강색 꽃) 장식을 해 놓았습니다.
성령이 불같이 임했다는 말씀을 따라 모두 붉은 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이 되었을 때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활동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는 말씀에 순종한
120명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행1:15).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있던 곳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길과 불의 혀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졌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처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말을 각기 자기들의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신기해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고향말로 들리지!… >(행2:8)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이상한 말(방언)을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행2:13) 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행2:15~16) 라고 했습니다.(요엘2:28~32)
그리고 베드로는
“ …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고 선언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비웃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셨을 때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하며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행2:38~42).

오늘 우리도 말씀 듣는 중에 … 찔림을 받고, 회개도 하고, 성령을 선물 받고
성령 받았음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회개하고, 세례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은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구원 받아 영생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된 것을 믿으십니까?
(요 1:12, 요 3:16, 빌 3:20)
☞ 여러분이 세례 받을 때 고백했던 대로, 믿음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이미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4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했습니다.
☞ 여러분이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6:19).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와 상관없는 상상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쉽게 듣는 이야기가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회개운동
그리고 그로 인해 퍼져나간 영적대각성 운동과 성령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Again 1907, Beyond 1907 … 등의
1907년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가 다시 있기를 소원하며,
그때의 역사를 뛰어 넘는 역사가 있기를 소원한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지금부터 100년 전에 있었던 회개운동과 성령의 역사를 돌아보고
단순히 기념하는 “100주년”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교계 지도자들은 자신이 “회개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때 회개 운동이 일어나서 성령이 역사했으니
당신들도 회개하시오.”라는 타인지향적인 100주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Again or Beyond 1907이라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회개운동이나 성령의 역사는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지금) 우리가 회개해야 하고
오늘(지금) 우리가 성령 충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대로
오늘(지금)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도
요한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를 돌아볼 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야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자다가 깰 때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예수 믿는 성도들이나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눈 똑바로 뜨고/흔들림이 없이 …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으로/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11절에 보면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은 육체적으로도 잘 때가 아닙니다.
영적으로도 자다가 깰 때입니다.

사람은 잠 잘 때 외부의 변화에 무감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주 예민해서 자다가 작은 소리가 나도 깨서 잠을 잘 못 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잠들려고 했을 때 잠깐입니다.
누구나 잠을 자기 때문에 살아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잘 때는 아무 것도 모르게 푹 자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사람은 잘 때 외부의 변화에 무감각합니다.
회개는 이런 잠으로부터, 무감각함으로부터 깨어 일어나
잘못된 길에서‘길을 바꾸는 것(change the way)’을 말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방법(think)과 살아온 삶의 방법(act)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 받은 확신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가만히 앉아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변화된‘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키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세상이 점점 좋아져 마침내 지상 낙원이 된다는
유토피아적 이상주의(Utopianism)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보세요.
요즘 세상의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놀랍습니다.
그런데도 불치의 병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지간하면 된장 바르고, 간장 바르면 다 나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모기에 물렸든지, 상처가 났든지
할머니께서 간장이나 된장을 발라 주셨습니다.
배 아프다고 하면 할머니가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하시며 배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병은 나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온갖 좋은 약을 먹어도 치료 되지 않는 병이 많습니다.

옛날보다 생활이 윤택해졌고,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왜 이혼이 늘고 정신병자들이 늘어 가고 있습니까?
공부도 많이 해서 지식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도의 지능화된 범죄가 더 늘어갑니다.
점점 더 캄캄한 세상이 되어 갑니다. 사람은 낙원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염세주의(pessimism)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이 허무하다고 쓸모없다고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시간

성경을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세상에서
빛 되고 소금되게 예수 향내 풍기며 살아야 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늘 갈등하고 흔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에 얽매여 사는 나의 시간과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살아도 감사하고 시간의 길이에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죽을 줄 알고도 예배 드렸습니까?
오래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뱀에 물려 죽고, 총에 맞아 죽고,
힘들고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선교지로 갑니까?
삶이 길이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 70, 강건하면 80”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한 번 산다.”(You live one life)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은 70년이냐 80년이냐 하는 길이보다
‘한 번 산다.’는 시간의 뭉치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벧후3:8)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30년 조금 넘게 사신 분이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가 하면
70, 80년 살아도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루씩 살아가는 것이고
매일 매일 새로운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을 입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경찰관을 경찰복을 입습니다.
소방관은 소방관의 옷을 입고, 발레리나는 발레복을 입고
야구선수는 야구복을 입습니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표현하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 예수 그리스도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12절 말씀대로 “빛의 갑옷”입니다.
그것은 14절 말씀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에
우리를 새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전의 것은 모두 지나갔고, 예전 것은 다 지나갔으니
이제 새 것/새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하며 사는 사람,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자막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약2:26).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안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안했어. 나는 죄 짓지 않았어.
‘나는 나쁜 짓 안했어.’라고 안심하는 사람,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할 것을 하지 못해 안타까와해야 합니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죄 때문에 회개해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레지스땅트에 관한 영화 <로베로장군>에는
레지스땅트(저항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처참하게 처형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 중에는 레지스땅트와 동행하지도 않았고
저항운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끼어 있었는데
그래서 그는 함께 처형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변하였습니다.
“나는 장사나 하고 돈이나 벌며 살다가 잘못 잡혀 온 사람이오.
나는 저항운동과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소.
나는 무죄요! 내가 왜 억울하게 죽어야 한단 말이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그 때 한 저항운동가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잘못이오.
전쟁은 지금껏 5년이나 계속되었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무참하게 피를 흘렸으며,
수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소.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에 놓여 있었는데도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사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살려고 그 무서운 전쟁터에서 자신만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선한 일에 동참하지 않음이 죄이며(약4:17),
화평케 하는 일에 제외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마5:9)
무관심의 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
그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이 혹시 여러분은 아니십니까?

열정으로 깨어 일어나

5월 22일자 신문에 난 서울의 어느 여자대학교 광고에 보니까

컴퓨터로 유명한 인텔사에는“미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Only the paranoids survive.”)

피카소는 그림에 미쳤기에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고
빌게이츠는 컴퓨터에 미쳤기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성공의 이유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미지근함이 아니라 간절함이 서려있을 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무덤덤함이 아니라
충분히 어떤 일에 미쳐있을 때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것에 미쳐 있습니까?
미친 것 같은 열정만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2007.5.22. 조선일보, 「서울여자대학교」광고문 참조)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 …”(고후5:13) 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저 사람 예수에 미쳤나봐’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세상 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 무섭게 밀려드는 파도,
견디기 어려운 강한 바람이 … 많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삼키려 하는 것들이
우리를 향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인 골리앗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창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군의 적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 가노라”(삼상17:45) 고
소리쳤던 다윗처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가두어 놓고
‘나는 이정도로 족한 사람이지. 나는 이렇게 살다 죽을거야’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
하나님은 문을 열어 놓으셨는데,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리고 …
하나님은 넓은 생각을 갖게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는데
스스로 좁은 생각을 가지고 …
자기 울타리 안에 자기를 가두어 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꿈의 넓이가 얼마나 되십니까?

‘코이’라는 비단잉어가 있습니다.
이 비단잉어의 사는 모습을 보면 참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는 공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집니다.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cm 밖에 자라지 않지만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랍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강물에 방류하면 90cm~1m까지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2007. 5. 22. 중앙일보, 「서울여자대학교」광고문 참조)

여러분 중에도 스스로 자기를 어항 속에 가두고
스스로 작아져서 작은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자기 스스로를 어디에 넣어 두고 계십니까?
어항 속에 가둬 두셨습니까?
그 어항을 깨시기 바랍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내 속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 …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나와 동행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시고
오늘도 내 속에 함께 계시는 그 하나님이 계신데도
스스로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더 크려 하지 않습니다.
더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더 잘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령강림절은 옛날을 추억하는 날이 아닙니다.
성령강림절은 옛날을 기억하는 날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회복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친 것 같은 열정만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비교하고, 상처 받고, 투덜대지 마세요.
오기 부리지 말고, 샘내지 말고, 싸우지 말고,
부러워 말고, 궁상떨지 말고 …
아이처럼 순진하게 하늘처럼 맑게 살아 보십시오.
무엇을 하든 열정으로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미친 듯이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사업을 하는 분들, 적당히 되는 길은 없습니다.
미친 듯이 사업해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에서의 삶,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에서 …
모두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입니다. 깨어 살 때입니다.
오늘 강단에 장식된 빨간 꽃만 보고 가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령강림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가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성령의 역사,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역사를 거절하지 마세요.

캄캄한 어둠입니까?
‘목사님, 저는 지금 어둡습니다.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들으세요.
밤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아침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에‘환해질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로 옷 입고 단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하나님의 사람,
스스로 포기하고 어항 속에 가두는 자가 아니라
넓은 강물에서 마음껏 크는 잉어처럼 사십시오.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뿐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세요.
큰 군인 앞에, 많은 군인 앞에 벌벌 떠는 어린 다윗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나아가는 다윗의 당당함이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속에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오늘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기념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도 우리 속에 같이 계시고,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불일 듯, 불타오르듯
우리들의 심령이 일어나기를 소원하시며
깰 때가 되었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속 깊이 담게 하여 주시옵소서.
캄캄한 어둠 같은 고통 중에 있다 할지라도
아침이 다가옴을 기대하며 그리스도로 옷 입고
단정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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