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 (잠 8:22-31, 롬 5:1-11, 요 16..

  • 잡초 잡초
  • 552
  • 0

첨부 1



1.  한번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께서 오시기 2000년 전에 살던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도 없었거니와 오히려 매우 황당하여 예수께 물었습니다. “네가 아직 50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그러자 예수님은 한술 더 떠는 식으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그냥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했고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여 숨었습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느니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영어로는 “I AM”입니다. 옛날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있느니라”고 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미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이런 식으로 자기를 소개하신 일이 일곱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럴 테면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등등인데 여기 한결같이 “I AM”으로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로서는 예수님과의 이별을 생각하기조차 싫었는데 오히려 주님은 당연히 떠나야 하고 떠나는 것이 더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가면 보혜사가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보혜사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신비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예수님이 지상에 계시지 않는 지금도 역시 성령께서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고후13:13에 나오는 축도 즉 오늘 목사들이 하는 축도의 원전을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성 삼위의 이름으로 축복을 했습니다. 마28:에는 교회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여기 우리가 믿는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먼저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하신 후 이번에는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순서를 거꾸로 하면 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교회력으로 삼위일체 절기로 들어가됩니다. 그리고 오늘이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우리는 무슨 우상도 아니요 철학자들의 하나님도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즉 삼위로 일체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면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을 때 받게 되는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롬4:24에는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듯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에게 주신 복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오늘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했습니다.

    2차 대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부대가 적들의 포위망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만일 지금 즉시 본부에 연락하여 지원군을 요청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전멸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부에 연락하려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부대 밖으로 나가는 전기와 모든 통신수단이 적군의 폭격으로 인하여 두절되고 만 것입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그 부대의 통신병이 어떻게 하서라도 본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끊어진 전선을 찾아 나섰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선을 하나 찾아서 이어보려고 시도했으나 불행하게도 선이 짧아서 도저히 연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통신병은 비상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한 손으로 부대로 가는 선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본부로 통하는 선을 잡았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몸을 전선으로 대신 사용했습니다. 통신병의 몸으로 전선이 이어졌기 때문에 본부와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고 포위당한 위치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원군이 도착하여 그 부대는 포위망을 벗어나서 모두 생존하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양손으로 전선을 잡고 있던 통신병은 감정이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로마서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치 전선이 짧아 양쪽을 연결할 수 없었듯이 우리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런 현실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나와 하나님 사이를 이어준 유일한 전선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로마서 본문 아래 부분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선험적 은혜(先驗的 恩惠)라고 합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알기도 전에, 내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다 이루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구원 받은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늘나라 약속을 받게 된 것, 아니 지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서 일마다 때마다 도우시는 이 사실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보증이요,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그 놀라운 사실을 확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큰 소리로 외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사도 바울과 함께 확신을 가지고 외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롬5:2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과거에 성취하신 일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그 사건이 오늘 여기 살고 있는 내게 주는 은혜 무엇입니까? 여기 대하여 본문 2절에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 서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끝내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에서 지파마다 바위 하나씩을 가지고 나와서 길갈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았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가 마침내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기념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생활하고 나서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여러분 생애에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있습니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돌베개로 단을 쌓고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하면서 기념비를 남겼습니다.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으로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증거, 은혜 받은 증거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고 할 수 있는 확신을 체험하셨습니까?

    미국 남북전쟁 때 수많은 남부군들이 포로로 잡혀서 수용소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군인이 온 몸에 부상을 입고 있으면서 링컨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청원하려고 하였습니다. 자기 형님이 지금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는데 그 형님이 일을 해야만 남부에 홀로 남으신 어머니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나와 백악관 정문에 가서 링컨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고 떼를 썼습니다. 그러나 경비병들이 허락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 군인은 애걸복걸했습니다. 그래도 경비병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 군인의 사정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 군인의 손을 잡고 백악관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못 들어간다고 하던 경비병들도 그 군인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그 소년과 군인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소년은 바로 링컨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롬5:2 하반 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는 우리가 누리게 될 미래의 축복을 말합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게 된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단지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영원한 영광의 소망, 복스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밭에 감추어진 보화라고 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소유할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그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소망에 대한 신앙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것 때문에 신앙을 훼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전에 좋다고 하던 모든 것은 분토와 같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과 하늘나라의 소망에 대하여 믿지 않거나, 시들하게 여기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세상 것 때문에 에서처럼 믿음을 팔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고, 명예나 권세를 더 소중히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음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 삼위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쳐 베풀어 주신 은총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신앙의 중심을 바로 잡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