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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비량 선교사의 정체성과 비젼 (행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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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학자들은 21세기를 가르쳐 '전문인 선교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문인 선교사'는 때로 '비직업적 선교사' 즉 선교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선교사 (Non-professional missionary)' 그러니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자기 생계를 자신이 해결하면서 선교하는 선교사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목사나 전임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들이기 때문에 '평신도 선교사'(Lay missionary)로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전 18:2-3을 보면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는 중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부부를 만나 함께 선교 사역을 했는데 그들의 만남이 직업 즉 하는 일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적어도 그들의 직업은 장막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들은 장막을 만들며 선교하는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장막 만드는 사람이란 영어로 “텐트메이커”입니다. 이 말을 크리스티 윌슨(Christy Wilson)이라는 분이 선교에 적용하였습니다. 그는 아프카니스탄 선교사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보스턴의 골든 콘웰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면서 "현대의 자비량 선교사들"(Today's Tentmakers)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Tentmaker를 자비량 선교사라고 정의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텐트메이커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며 주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 텐트메이커는 자비량 선교사입니다.

텐트메이커는 '자비량 선교사' (self-supporting missionar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선교를 위해 다른 이들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여 선교비를 충당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선교에 필요한 자기 소모비용을 충당한다 해서 '자비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9:7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라고 했는데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고, 바울과 동역한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행 18:3절을 보면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며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했습니다. 여기 천막 만드는 직업이 바로 텐트 메이킹 (tent making )인 것입니다. 영어로 "He was a tentmaker"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고향인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터키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는 특히 이 염소 털이나 가죽을 가지고 천막을 만드는 직업이 크게 성행했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 직업에 종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키면서도 반드시 거친 세상에서의 생존 수단으로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학자이면서도 천막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굴라 역시 소아시아 동북부 지역 출신으로 같은 생업을 가지고 있어서 동종 직업인으로 쉽게 만남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굴라는 본도 출신이었지만 로마에가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 (로마의 4대 황제로 41-54년까지 통치 네로 황제의 아버지) 시절 유대인 추방명령이 내리자 그리스의 고린도로 이주했다가 거기서 전도 여행 중인 바울 사도를 만나게 되어 함께 복음을 나누면서 전도 팀이 된 것입니다.
특히 바울의 전도 사역에 아굴라 부부의 헌신은 대단한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꾸준히 선교만 전임으로 하는 전임 선교사들이 헌신되어지고 보내야 하지만 세계 선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비량 선교사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교회의 선교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선교를 완수하려고 하면 엄청난 인력과 재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재정과 인력을 교회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텐트 메이커 사역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이런 텐트 메이커들에게도 때때로 그들의 사역이나 특별한 선교 프로젝트를 위해 재정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경우에도 빌립보 교회나 그 밖의 다른 이들에게 재정 지원을 받은 성경적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텐트 메이커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계문제에 관한 한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는 지상 명령의 남은 과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비수용 지역 즉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나 어려운 지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전도하면 직업이 성직자이기 때문에 전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의 분명한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전도하면 우선 그들의 순수한 동기를 사람들이 더 잘 믿어주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목사나 선교사의 이름을 가지고 들어가 선교할 수 없는 나라가 세계의 70-80%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촌 어느 나라도 과학자의 이름으로 또는 의사나 간호사의 이름으로 혹은 비즈니스 맨, 농업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산업 기술자 심지어 연예인, 예술인 혹은 체육인의 이름으로 갈 때 반대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선교 전략상 창의적 접근 지역이라고 불리우는 북한과 같은 공산권과 이슬람 지역들까지도 전문인 선교사는 들어가서 신분의 보장을 받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2. 텐트 메이커는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전문인 선교사란 바울과 아굴라 부부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하는 일 외에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문적인 기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텐트 메이커 선교사는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선교 수행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직업적인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탁월성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의 직업을 잘 수행하고 자기의 직장 혹은 사업의 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직업 현장에서 사고나 치고 왕따 당하고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전도하면 사람들이 누가 우리의 메시지를 신뢰해 주겠습니까?
엄밀히 보면 예수님도 텐트 메이커 셨습니다. 공생 사역을 하시기 전 30년 동안 어린 유아 시절을 지나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육신의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공실에서 일하셨습니다. 눅 2:51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들었던 예수님은 자연히 요셉이 목공소에서 일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나중에 육신의 부친 요셉이 세상을 떠나고 예수님은 목공소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의 목공실에서 만든 소의 멍에나 가구가 밤낮 고장 나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어땠을 까요? 아마도 예수님의 목공 실력은 주변에서 이름나 있었을 것입니다. 전문성에서도 그랫겠지만 무엇보다도 성실성에서 그리고 친절성에 나사렛 목공소 예수님에 대하여 사람들의 칭찬은 자자했을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가 만든 천막이 자꾸 고장이 나서 반납된다면 그들의 복음 전도가 고린도에서 통했겠습니까? 사람들이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일 잘하는 것 까지는 몰라도 평균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들 즉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실성에 관한 한 불신자들에게 뒤지지 말아야 합니다. 잘 하지 못하면 성실로 임해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 직업에 전문성을 가져야 합니다. 전문성에 성실성까지 겸하여 직장에서 섬기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전문인 선교사요 텐트메이커 미션너리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전문성과 성실성이 요구되는 텐트메이커 선교사들입니다.
우리는 행전 20:33-35에서 바울이 자신의 직업과 선교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 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당당한 고백이요 증언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바울을 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텐트 메이커의 꿈을 가진 사람마다 성실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성실하지 못하면 결국 실성한 사람이 됩니다.

3. 텐트 메이커는 선교적인 협력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선교 현장에 크게 장애가 되는 두 가지 의식이 있다면 하나는 '자민족 중심의식'(ethno-centrism)이고, 또 하나는 '개인적 영웅의식'(individual heroism)입니다.
혼자 영웅이 되고 혼자 스타가 되려는 것입니다.
세계 선교는 혼자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한 개인, 한 교회, 한 교단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광범한 사역입니다. 그러기에 협력정신이 필요합니다.
당시에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사람(사도의 의미-보냄 받은 자)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는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보냄 받은 지역에 영적 책임을 갖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아볼로 브리스길라 부부는 오늘날로 말하면 평신도 사역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얼마나 바울사도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는지요?

협력의 관계는 외국 선교 현장에서 뿐아니라 국내 교회 사역에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날 평신도가 교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서게 되면 행정 책임자로서의 역할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와 함께 일하는 동역의 관계가 아니라 목사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아는 분들이 많아져 교회마다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현실의 일차적 책임은 소위 영적 지도자들이 그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이 일차적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본질적으로 새로워지려면 평신도 지도자의 정체성이 달라져야 합니다. 행정책임자의 역할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라면 손과 발로 뛰는 일군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신도 지도자의 정체성은 복음사역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회자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함께 선교하고 함께 복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에게 아볼로 부부는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롬16:3-4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 딤후4:19에 보면 인생의 석양녁까지 바울이 기억하고 싶은 동역자가 바로 이들 부부였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이것이 동역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가 여전히 요구하는 텐트메이커들의 동역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4. 텐트메이커는 주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조건은 텐트 메이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영적 지도자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규범이지만 시시각각 변화가 기다리는 선교 현장에 대처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민감성을 가지고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원칙입니다.
A.W.토저라는 분은 "사역의 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은 기도 안하는데도 잘되고 있다는 의식이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조지 뮬러는 동역자 들에게 "기도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성령보다 앞서지 마십시오."라고 강조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만나후 적어도 두 번 이상 주거지를 옮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에는 불가피하게 상황 때문에 옮겼으나 이제는 달랐습니다. 이제는 이사도 선교 목적 때문에 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님의 뜻을 살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를 목적으로, 사역을 목적으로 집을 옮겨 보셨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없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고린도에서 약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동역하였습니다. 그후 바울이 에베소로 떠나 갑니다. 그러자 아굴라 부부도 다시 에베소로 갑니다. 거기서 다시 약 3년간 바울과 동역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최종적으로 기도하던 곳은 로마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복음화 없이 세계 복음화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롬1:10절에 보면 로마로 나아갈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로마에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에게 핍박이 덜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본래 로마에서 살았던 아볼로 부부가 바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때 아굴라 부부는 바울에게 "우리가 먼저 로마로 가서 사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겠습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롬16:5에 보면 바울의 로마로 보내는 편지 마지부분에 아굴라 부리스길라의 집이 교회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가자마자 집을 오픈하고 자기 집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2년 동안 투옥되어 있는 동안에 자기 집에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며 바울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6. 실버 텐트 메이커들이 일어나는 꿈..

나는 우리 교회에서 아굴라와 부리스길가 같은 '평신도 선교사'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특히 노후에 직장에서 또는 일터에서 은퇴하는 시점에서 아니 선교사로 지원하는 교우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은퇴후에 선교지에 가서 자신이 평생 사용했던 기술이나 재능 또는 재정 등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을 마칠 때 까지 하자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 나가는 선교사 이런 분들은 실버 텐트메이커 선교사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오늘 밤에 파송식을 하는 황영호 안수 집사처럼 여러분 인생의 어느 싯점에 이르렀을 때 정말 주님이 자신에 베푼 은혜에 감사하며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받은 은혜를 되돌려 드린다는 생각에서 은퇴 텐트메이커들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가 머물고 있는 필리핀에 은퇴 이민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필리핀이 정부가 50세 이상인 자가 약 2천 만원 정도만 가지고 와서 은행에 예치하면 정식으로 필리핀에서 살 수 있는 영주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은퇴할 때 받은 은퇴 자금을 필리핀에 투자하고 평안한 노후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필리핀 정부 산하 기관에 은퇴청이라는 공식 기관이 있습니다. 더 많은 외국인 은퇴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선전합니다.
한 사람당 약 4-5만원이면 가정부와 운전사를 둘 수 있고 저렴한 비용으로 골프를 즐기며 왕처럼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유혹합니다. 정말 그렇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말도 잘되지 않는 곳에서 정말 왕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하는 일 없이 그저 늘 골프나 치러 다닌다고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지난번에 최정호 선교사님의 사역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만난 노구의 한 텐트메이커 부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재미 교포로 조금 일찍 은퇴하신 후 아프리카 우간다에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생 가운데 이제 남은 시간..
사실은 한국에서는 할 일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직 힘이 있고 아직 의욕이 있는데 그저 은퇴자로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 조용히 있다 가시겠습니까? 노후에 남은 귀중한 삶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소비하다가 가시겠습니까? 남은 삶을 이제 주님을 위하여 바치며 살겠다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텐트메이커입니다.

무엇을 주저하십니까?
언제까지 사시겠습니까? 주님 앞에 서실 날이 가깝지 않으십니까? "무엇하다 왔니?"하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푸른 초장 거닐다보니 세월 다 갔습니다"고 하시겠습니까?
"맛있는 집 식당 순례하다보니 인생이 이렇게 되었습니다"고 하시겠습니까? 이제 순종이 시간이 되지 않으셨나요? 아직 결단의 시간이 되지 않으셨나요? 텐트 메이커의 비전이 보이지 않으시나요?
젊어서는 자식 수발하는 라고 정신없이 살았지만 언젠가는 그 자식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때가 옵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텐트메이커의 꿈을 꾸십시오.

근대 선교의 아버지인 침례교인 그리스도인이었던 윌리암 케리는 본래 평범한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고 구원받은 후 인도로 간 것이 근대 선교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 최초의 침례고 선교사라고 할 수 있는 카나다 출신의 말콤 펜윅, 그는 처음 한국에 올 때에는 평신도 독립 선교사였으나 나중에 미국 보스톤의 한 침례교회에서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본래 카나다에서 철물상과 도매업에 종사하던 사업가였습니다
선교의 열정 하나로 26세의 피 끓는 젊음으로 한국을 찾아와 처음엔 언더우드 목사등과 동역으로 선교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원산으로 옮겨 독자적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효과적인 한국 선교를 위해 농사를 배워 거의 농업 전문가의 수준이 되어 농사를 지으면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합니다. 이런 분들의 헌신으로 오늘의 교회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한다면 이제 우리의 헌신의 차례입니다. 누가 이 텐트 메이커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언제 응답하시겠습니까?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십시오.
텐트 메이커는 자비량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분명한 뜻을 밝혀 두시고 자녀들을 든든한 선교의 후원자로 만드십시오.
재정적 준비 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 특기 등을 살리고 직업적 전문성을 개발하십시오. 구원해야 할 영혼은 많고 일군은 적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달려온 삶의 끝자락에서 더 늦기 전에 주님을 위해 살고 누군가를 위해 살 수 있는 거룩한 설계도를 그리십시오.
저는 제가 은퇴할 때 되면 우리교회 실버 텐트 메이커들이 세계 각지 우리 선교지 각지에서 흩어져서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 그림에 함께 붓을 들지 않겠습니까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찬송을 부르면서 말씀을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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