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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 부흥! 변화! (시 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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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 100주년을 넘어 새로운 1년을 맞는 아주 뜻깊은 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여 작년 2월에 비전선포식을 갖고, 3월에는 서울에 있는 장충체육관에서 전국대회를 시작으로 하여, 각종 세미나 및 집회 등이 전국 각 도시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행사들은 단지 평양대부흥의 100주년을 맞아 기념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100여년 전의 평양대부흥의 물결을 다시 한번 한국교회에 일으키려는 소망 가운데서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과연 성경적 부흥의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대영제국의 왕실은 당시 존경을 받던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에게 대국민 방송설교를 요청하게 됩니다.
당시의 영국은 나치 독일에 대항할만한 객관적인 전력을 보유하지 못했고,  국민들은 싸움을 하기도 전에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두려워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윌리암 템플이 무슨 말을 할 것인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그의 설교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대영 제국의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내일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종을 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주재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끓고 그분을 경배하며 그 동안의 우리의 죄,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십시다”
실제로 영국인들은 그렇게 예배했고, 그래서 그들은 전쟁 가운데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전쟁의 승리를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1905년 11월 17일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의 국권이 사실상 일본에게 넘어가는 민족적인 치욕의 날입니다.
그래서 비통에 젖은 민영환대감은 조국의 주권이 사라진 이상 이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몇 개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는 자살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런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제1대 총독으로 취임했고, 국민들은 깊은 절망 속에 1906년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창립되던 1906년 봄부터 이 땅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디(Robert Hardie)선교사가 봄학기 시작하면서 부흥회를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서 열었는데, 거기에 성령이 임하여 학생들이 놀라운 흡인력으로 말씀을 받아드리게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 죄를 자복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성령운동은 인천 제물포로 이어졌고, 이어서 다시 서울지역에 연동교회, 상동교회, 정동교회, 자교교회 등에서 각 교회 부흥회로 이어집니다.
이때 부흥회의 공통현상은 죄에 대한 강력한 회개와 자복현상이었습니다.

총신대학교의 박용규교수가 쓴 “평양대부흥운동”에 보면, 1906년 2월의 자교교회 신년사경회 중 아침예배에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나 “나는 술꾼이요, 노름꾼이며, 사깃꾼”이라고 눈물로 자백하자, 교회 안의 온 회중이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느끼며 죄를 회개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불길은 다시 북으로 가서 선천, 개성, 마침내 원산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1906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 원산에서 열린 원산 지방 사경회에서, 하운셀(C.G.Hounshell), 펜윅(M.C.Fenwick)선교사 등이 인도한 이 집회에서 강사였던 선교사들이 먼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하면서, 참석한 모든 성도들이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1906년 10월에는 같은 유형의 성령의 임재가 목포에서 일어납니다.
프린스톤 출신의 남장로교 선교사 프레스톤(John Preston)은 감리교 선교사 저딘(J. L. Gerdine)을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는데 ”300명이 모인 이 부흥회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강력한 성령을 체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한국교회에 통성기도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7년 1월 2일부터 두 주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남자사경회에 약 2,000명이 모인 집회가 바로 대 부흥의 진원지가 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성도들은 전국 도처에서 일년 내내 교회로 교회로 모여들어 새벽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기도하고 일어설 때마다 그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새로워지는 영적각성운동이 전국으로 번져가게 된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총장이었던 백낙준 박사는 증언하기를 “이것은 장차 한국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자 그리스도인이 직면해야 할 더 큰 시련의 때를 예비하려는 깊으신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처방이 영적부흥이었고, 그 핵심에 예배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위기를 만날 때,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는 위기를 만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해야할 일에 대하여, 1절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자”라고 했고, 6절에서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위기를 만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위기를 만났을 때, 왜 우리가 예배에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시편기자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 그가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6-7절을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여호와를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여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라는 말씀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만드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양육하시는 목자라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분을 바라보고 그의 음성에 순종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목자를 따를 때, 그분의 양이신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자는 양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먹고 쉬게 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는 가야할 방향을 보여 주며, 두려워하는 양들의 곁에 계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요, 목자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경베해야 하고, 그분이 들려주시는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중에서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아멜렉 군대로부터 승리하게 하셨고, 호렙산 반석에서 생수를 솟아나게 하셔서 먹이셨으며, 광야의 온갖 맹수들로부터 보호하셨고, 사십년 동안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손과 발이 불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정한 예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목적은 순종이기 때문에, 그들이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이제는 즉각적으로 삶에 적용하여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 그 자체도 게을리 했고, 또한 예배를 드리더라도 예배는 의식에 그쳤고, 말씀에 민감하게 순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10-1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사십 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저희를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에 미혹되어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근심하시고 그들에게 매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그리고 당신은 어떤가요?
이제라도 우리가 진정한 순종의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마을 목장 모임에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일 날 교회의 예배에서 들었던 주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목원들과 함께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하며 순종할 것인가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현장에서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시며 축복의 통로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는 우리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 인생길에서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우리 스스로를 그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다시 찾아 주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우리가 죽을 자리에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이제는 우리 인생 길에 반석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굳건한 반석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반석의 그늘에서 참된 쉼을 얻게 되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오늘 우리를 이렇게 초대합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한마디로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찬양과 감사로 예배하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조자이신 그분이 우리의 인생 길에 반석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62:1절을 보면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연약한 약한 육신을 갖고 사는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누구나 조금은 흔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크게 흔들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아래에서 혼돈하며 방황하던 시절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셨고, 지금도 그분은 여전히 오늘의 방황과 혼돈 속에서도 저와 여러분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반석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19세기에 가구점 목공출신으로 나이 16살에 예수를 영접한 영국의 에드워드 모트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열심히 일하여 가구점 하나를 경영하는 일종의 중소기업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소망하던 자신의 회사를 갖게 된 그날, 에드워드 모트는 그가 일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때마다 늘 찾았던 가구점 뒤에 있는 홀본 언덕에 올라가 자기에게 성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마침 그가 앉아서 기도를 드리던 그곳은 넓게 펼쳐진 바위언덕이었는데, 그는 이 바위언덕 위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마을 전경을 바라보다가 바위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제가 조금 성공했지만 저는 이런 성공은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제 인생의 흔들릴 수 없는 반석은 오직 주님 한 분뿐이십니다. 제 평생에 저의 반석이신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살겠사오니 제가 한 평생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기도를 마친 그의 마음에는 하늘의 기쁨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모트는 그날 집에 돌아오는 즉시 한편의 찬송 시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오늘 불모지 이 땅에 익산최초로 감격스런 교회창립 100년을 넘어 첫돌을 맞이하여 새로운 1세기를 열어가는 역사의 현장에 지난 믿음의 선진들을 계승하여 주인공으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시대에 보고싶어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목회4대비전” 평신도를 깨워 동력하는 교회, 선교명령을 순종하는 교회, 천국일꾼을 양성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복음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를 이루기를 위해 비전을 공유하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비전성취를 앞당기고 우리 모두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어 익산시를 가슴에 안고, 내 민족을 살리고, 세계 열방을 살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 일을 위해 “전진 그리고 또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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