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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안에서 감사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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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쓰고 사십니까?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쓰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소한 세 번은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하루 세끼, 밥 먹을 때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좋은 일이 있을 때에나 비로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감사하다는 말을 할 만큼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정말 감사한 일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자기에게 좋은 일, 혹은 남에게 뭔가 빚지는 일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감사하다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실재로 우리가 ‘감사하다, 고맙다’라는 표현을 많이 안한다는 것은, 그런 말을 자주 듣지 못하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감사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듣나 생각해 보니까,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이 너무나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라는 말은 남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합니다. 감사하다할 때의 감이라는 한자는, ‘느끼다, 마음을 움직이다’는 뜻과 함께 ‘고맙게 여기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항상 무언가에 고맙게 여겨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어의 thank도 ‘생각하다’라는 think와 어원이 같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구약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이 히브리어에서 감사는 ‘야다’라는 단어로 쓰이는데 이는 고백 혹은 찬양이라는 의미와 함께 쓰입니다. 마음의 깊은 것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감사고, 이 감사는 찬양을 통해 드러나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사가 있습니까?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범사란 것은 모든 일을 뜻합니다. 이는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을 가리지 않습니다. 감사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할 만한 때에만 하는 사람의 감사는 진정한 의미의 감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감사의 고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는 범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그 선하심을 기대하는 자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놀랍고 선하신 계획을 바라볼 수 있고 믿음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 감사의 자세가 범사에, 모든 일에 드러나야 합니다. 일을 접하며 드는 생각을 감사로 바꾸어야 합니다. 의심이나 걱정이 아닌, 저와 여러분의 순간순간을 이끌어 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생각이 감사로 바뀔 때 우리의 모든 환경이 진정 감사할만한 상황으로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이 점령당했을 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간 사람입니다. 아동부 시절에 이 다니엘에 대한 설교를 몇 번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 기억나십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형상으로 만든 신상에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무 불에 던져진 사건 말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메데란 나라에서 총리가 된 다니엘은 나라를 잘 다스려 왕의 총애를 얻고 있었습니다. 외국 포로 출신인 다니엘의 출세를 시기한 이들이 꾀를 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 섬기는 다니엘이 왕 만을 섬기라는 명령을 어기도록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어인, 즉 왕이 인정한 도장이 찍힌, 그 나라 백성이라면 무론대소하고 어길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다니엘은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명령을 어긴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모함하기 위해 꾀를 낸 사람들에게 불평하거나 대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하며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사자 굴에 던져 졌을 때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감사한 다니엘을,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이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도와주셨다는 것을 왕이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대신 그를 참소하고자 했던 대적들이 사자 굴에 던져 졌습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의 감사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할 것을 본문 말씀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예수님 안에서 감사해야 하는 지 잘 알고계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함께 계십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화목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길과 진리, 생명이 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 말씀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말이든지 일이든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이 중보자는 관계에 있어서 돕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는데, 우리에게 왜 중보자가 필요할까요? 그것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죄를 가진 인간은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또한 사람이신 이 예수님의 피만이 인간의 죄를 씻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익투스반, 디모데전서 2장 5절 말씀 한 번 외워볼까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왜 익투스반에 외워보라고 시켰는지는 알고 있지요? 바로 익투스 반의 전 이름이 이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의미하는 T-25였기 때문이에요. 어감이 안 좋아서 바꾼 것, 맞나요? 그럼 성현 선생님께서 이 익투스란 단어의 의미에 대해 설교 중 말씀하신 적 있는데, 기억나는 사람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입니다. T-25든 익투스든 저와 여러분에게 가르쳐주는 너무나도 중요한 진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감격하여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힘입지 않고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면, 임마누엘이 약속,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항상 함께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필요 없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셔서 살아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찬양 가운데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능력.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 기도를 누구의 이름으로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합니다. 우리에게 힘주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이와 같이 가르쳐 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저와 여러분이 감사함으로 주님께 아뢸 수 있는 것은 이미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리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영의 권세를 꺾으시고 당신의 자녀를 구해내셨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며 여러분의 대적에 맞서 싸우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승리자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싸움가운데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과의 싸움입니다. 환경과의 싸움입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연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이것들을 이길 수 없지만, 강하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싸우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 싸우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한 적의 팔을 꺾으셨습니다. 악한 세력은 그의 발 앞에 무너졌습니다. 담대함으로 감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인해 구원받고 예수님을 통해 천국가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본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의 정해놓으신 삶의 모습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복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많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인이지만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담대히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셔서 하늘과 땅,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분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삶 속에 아주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특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특별한 사명과 복을 주십니다. 감사는 삶의 자세임을 앞서 말씀드렸지만, 감사의 조건을 찾으라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딸, 아들이 된 저와 여러분은 너무나도 많은 감사의 조건을 아마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감사의 조건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의 감사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가르쳐줍니다. 그 명령을 준행하여 우리는 받은 은혜에 마땅히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감사는 고백이며, 찬양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지음 받은 이유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감사를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다윗은 평생에 하나님께 감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지은 많은 시가 우리에게 시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편의 주제는 하나같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시편 118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니라 이런 구절로 시작하여 같은 구절로 끝납니다. 또한 138편은 26절로 이루어졌는데, 매 절마다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었지만 삶 가운데서 많은 고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체험하였기 때문에, 찬양받기 위하여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감사를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일에 감사함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앞서 알려드린 바와 같이 감사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하나님의 구세주 되심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감사하는 삶의 고백입니다. 고백은 입술을 통해 소리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고백되어질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18편 49절에서 다윗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열방 가운데서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고백되어야 할 감사의 찬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들릴만한 큰 소리로 하는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109편 30절에서 이와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세계 만민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영광스러운 삶을 꿈꾸며 사시는 여러 분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삶은 곧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44편 8절의 다윗의 고백,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리이다(셀라) 이 감사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삶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이지만, 그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50편 23절에서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예배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기도함으로, 인간인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대화를 통해 여러분들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 그 귀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말씀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구하는 기도에 앞서 모든 쓸 것을 이미 아시고 주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복 받은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저와 여러분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고백이 되는 삶을 꿈꾸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의 비전을 주십니다. 학생시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꿈을 꾸어 감사함으로 그 꿈을 향해 나아가세요. 그 꿈을 이루도록 이끌어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에는 선을 이룹니다. 우리에게는 범사가 유익하고 감사 한 것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은 것도 유익하다(빌 1:21)고 믿음으로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비록 좋지 않은 것이라도 그 속에서 감사할 이유가 거기에 한 가지라도 있기 마련입니다. 자, 불길하고 어두운 상황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았던 미국의 개척자 청교도들의 신앙입니다. 1620년 12월 26일 한겨울, 미동북부 해안인 플리머스에 도착한 그들의 일곱 가지 감사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이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둘째, 평균 시속 2마일(걷는 속도 보다 느리다)의 항해였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넷째, 폭풍으로 중심 되는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다섯째, 여자들 몇이 파도 속에 휩쓸려 들어갔으나 모두 구출됨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지를 찾지 못해 한 달을 바다에서 방황했으나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상륙지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일곱째, 고통스러운 삼 개월 반의 항해 중 단 한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감사가 이쯤 되면 전천후 감사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기분 좋을 때만 감사한다면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의 감사입니다. 지금 내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고 하나님 앞에 기쁨의 얼굴을 들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 모습을 살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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