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남선교회헌신예배] 이렇게 일합시다 (엡 6:5-9)

  • 잡초 잡초
  • 3089
  • 0

첨부 1


  한 사람이 비행기의 조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본책을 들고서, 비행기를 조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본책에는 엔진 시동은 어떻게 걸고, 조종간을 어떻게 움직여서 이륙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아주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비행기에 대해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책에 써 있는 대로 하나하나 그 과정을 따라했더니 드디어 멋지게 이륙하는 데에 성공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까 아름다운 광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하늘을 나는 그 기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연료도 다 떨어져 가고 해서 착륙을 하기 위해서 다시 교본책을 펴들었는데, 그 사람의 그 즐겁던 얼굴은 이내 사색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유는 그 교본책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륙 편은 다음 호에 계속.”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일들을 한다는 것은 고된 노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작은 움직임 하나도 다 일이라는 뜻입니다. 먹는 것도 일입니다. 그래서, 한자로 ‘먹는 일’이라고 해서 ‘식사’라고 합니다. 노는 것도 일입니다. 저희 집에 우리 신성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유아세례 교인 장병찬 성도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아빠가 반드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아기랑 놀아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녁 먹고 나서 나름대로 열심히 놀아줍니다. 숨바꼭질도 하고, 자동차에 태워서 밀어주기도 하고, 이불하고 벼게를 가지고 장난도 하고 그러는데, 내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그렇게 노는 것이 결코 노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놀아주려면 땀도 많이 나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노는 게 아니라, 놀아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크든 작든 여러 가지 일들을 항상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방법론의 문제입니다. 일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을 전혀 모르고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을 배우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법을 잘 모르면 그냥 날아가는 정도만 할 수 있겠지만, 조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면, 비행기를 멋지게 조종하면서 곡예비행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방법을 모르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일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일 그 자체 못지 않게 중요하고, 어쩌면 일보다도 일하는 방법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종과 주인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노예가 있고,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상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일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든 종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해서 일하고 섬길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워볼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요구되어지는 첫 번째 방법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실함을 얘기할 때에 꼭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제가 군대에 있을 때에 제 동기였습니다. 부득불 군대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축구 얘기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자대에 배치 받았을 때에, 입소대와 훈련소에서부터 자대까지 같이 온 딱 하나밖에 없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키가 좀 작았고, 운동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대에 그 친구랑 제가 처음 배치 받았을 때에, 그 친구는 저와 비교를 당하면서 서러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이 태권도를 할 때였습니다. 태권도를 하려면 일단은 소위 말하는 다리 찢기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고참들이 저와 제 동기의 다리를 찢는데, 그냥 바닥이 아니라 창문틀에 다리를 올리고 다리를 찢게 됐습니다. 그 고통은 정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고, 별로 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은데, 부득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리를 위에다 올려놓고 찢는데, 그래도, 저는 키가 좀 있으니까 창문틀에 다리를 올리는 것이 그래도 좀 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동기는 키가 작으니까, 창문틀에 다리를 올리니까, 다리가 벌어지는 각도가 더 커져서 훨씬 더 힘들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고참들은 뭐 이런 놈이 들어왔냐고 하면서 더 못 살게 굴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비록 체격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아주 성실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을 정도로 성실했습니다.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었냐면, 비상 훈련을 하느라고, 아침에 싸이렌이 울리면 빨리 군장을 완벽하게 싸서 집합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군장을 싸서 모였는데, 수통에 물도 안 채워졌다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빨리 군장을 싸서 집합해야 하니까, 사실 수통에 물을 넣고 할 시간도 없는데, 그래서, 그 친구는 싸이렌이 울리기 전에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서 미리 모든 소대원들의 수통에 물을 다 채워 넣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불침번을 서던 고참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두고두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동기랑 같이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주일 저녁 8시까지 복귀하게 되어 있었고, 당장 월요일 아침에 동계훈련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차가 밀리고 해서 택시까지 타고 겨우 8시 다 돼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제 동기는 오후 1시 쯤에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래서, 고참들이 왜 이렇게 일찍 복귀를 했냐고 물으니까, 내일 동계훈련을 떠나니까 준비할 것도 많고 해서 일찍 들어왔다.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한 마디의 말에 감동의 물결이 파도를 치면서, 이후에는 고참들에게 칭찬 받고 사랑을 많이 받았고, 오히려, 제가 나중에는 제 동기 좀 본 받으라고 욕을 먹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동기를 미워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친구는 그렇게 조건들은 좋지 못했지만, 성실함이라고 하는 무기 하나가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그는 사랑 받고 칭찬 듣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인 조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보다도 내가 가진 조건 속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바빠서 일할 시간이 없고, 내 나이가 이제는 젊지 않아서 일할 수 없다고 핑계하는 것이 아니라, 또, 사람들 앞에서는 성실한 척 하면서, 누가 자신을 봐주고 알아줄 때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에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그런 불성실한 모습이 아니라, 한결 같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 그것이 오늘 헌신하며 나아가는 우리 2남선교회와 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모습입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성실하게 맡은 바 일들을 완수하는 그런 성실한 헌신의 모습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기쁨으로 일해야 합니다. 7절 말씀대로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대단히 열심 있게 모든 교회 일들을 도맡아서 수고하던 여전도회 회장님이 갑자기 하던 일들을 다 내팽개치고 봉사는 하지 않고, 주일에 예배 출석만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분을 불러서 ‘왜 갑자기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전도회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도 이제는 마르다처럼 교회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마리아처럼 예배만 드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저한테 교회에서 봉사하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얘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 앞에서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가서 마리아를 책망하면서 자기를 돕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마리아는 옳은 일을 했고, 마르다는 잘못했다고 책망을 하신 말씀이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잘못 되었고,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마르다가 일을 많이 한 것, 음식을 많이 준비한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하지 못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많은 일로 인해서 마음이 분주했고, 염려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럴 바에는 몇 가지만 하고 분주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마리아에 대해 화가 나 있었고, 나만 고생한다는 피해의식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마르다는 예수님께도 화가 나 있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않으시나이까.”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일한다고 하면서도, 동생에게도 화가 나 있었고, 예수님께도 화가 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힘들고 전혀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봉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아무리 주님의 일을 많이 맡아서 수고한다고 해도,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운동도 즐겁게 해야 건강에 좋다고 하죠? 무조건 운동만 하면 몸에 좋은 줄 알고, 일어나기 싫은데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서, 뛰고 싶지도 않은데, 억지로 달리기를 하고 그러면, 몸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억지로 하게 되면 안하는 것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리빙스턴이 그렇게 좋은 학벌과 조건들을 다 뒤로 하고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선교를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안타까워하면서, 어떻게 당신 같은 인재가 그런 일을 하느냐고 했을 때 리빙스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아프리카 선교에서 희생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생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리빙스턴의 삶이 힘들게 보였지만, 리빙스턴은 그런 힘든 수고가 수고로 여기지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별 것 아닌 일도 억지로 하게 되면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기쁨으로 하면 일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공급원이 되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내게 주어진 일들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바쁘고 분주하고 짜증이 나는데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방법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그 신학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만간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 가능성이 많다. 만약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한다면 그 교제에서 얻어지는 충만함과 마음속의 평안이 없기에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르다는 자신의 분주한 일로 인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맹목적인 수고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없이 하는 봉사는 반드시 마르다의 시험에 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힘을 얻지 못하면, 일로 인해서 지쳐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데가 있습니다. 삶은 힘든 것 같고, 지고 있는 십자가는 몹시 무거운 것 같지만, 그 얼굴에 여유가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재미,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오는 기쁨과 만족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택한 길이었습니다. 그 마리아처럼, 오늘 헌신하는 우리 2남선교회와 우리 모두도 늘 하나님과 교제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일하는 방법은 5절과 7절에서 언급된 대로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겠습니까? 이것은 종이 그 주인이 무섭고 두려워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한다는 것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주님께, 내 최고의 정성을 드려서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일을 할 때에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가 취하는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제가 마티즈라는 경차를 타고 다니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주차 안내하는 분들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에 고급 승용차가 지나갈 때는 그렇게 고개를 숙여가면서 인사를 잘 하는데, 경차가 오면, 인사를 제대로 하지를 않습니다. 그냥 어서 지나가라는 태도를 보일 때마다 상처가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별로 유쾌하지는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분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깍듯이 대하면서, 또 어떤 직분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심하게 표현하면 멸시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대하든지, 한결 같이 주님께 하듯이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어떤 것도 아낌 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 아깝고, 무엇이 힘들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기 위해서, 부득불 또, 이야기 하나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신대원 3학년 때에 저희 집사람을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부산에서 살고, 저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서울역에서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들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희 집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에 별로 첫인상이 좋지 못했습니다. 부산 사투리도 심하게 쓰는 것 같고 키도 작고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처음에는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부산까지는 너무 멀어서 죽어도 못 내려가니까, 서울에 언니네 집에 오게 되면 그때에나 만나자.”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려면 너무 힘드니까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대전이 중간 지점이라고는 하지만, 서울에서 대전은 금방이었지만, 부산에서 대전은 그래도 여전히 멀었습니다. 그러다가, 좀 더 친해지니까, 이제는 제가 대구까지 내려갈테니까, 부산에서 대구까지만 올라오라고 해서 대구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죽어도 부산까지는 못 내려간다던 사람이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새벽부터 교회에 가서 교육전도사로 일하고 저녁에 기숙사에 와서는 잠시 씻고 내려갈 준비해서, 서울에서 막차를 타서 부산에는 새벽에 도착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차 안에서 깊이 자지도 못하고, 역에 도착해서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 사먹고, 아침이 되기를 한참 기다렸다가 아침부터 만나서, 밤늦게 다시 학교로 올라오고 그랬던 적도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산을 향해서 기차를 타고 내려갔을 때 제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잠도 못자고 피곤한데도 전혀 괴롭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니까!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아무리 힘든 일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 그런 경험들 있으시죠? 장병찬 성도와 놀아주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왜입니까?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한다면, 어떤 일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하든지, 사랑하는 주님께 하듯,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일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일 그 자체보다 일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일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고, 주님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헌신하는 2남선교회 모든 일꾼들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에, 성실하게 기쁨으로 주님께 하듯이 일함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더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