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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아 일어나라 (눅 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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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 삿보로에 갔습니다. 내년이 일본 선교 100년이 되는 해인데 일본 선교 100년을 돌아보는 세미나에 제가 주제 강사로 초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본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무척이나 사랑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일본의 인구는 약 1억 2천 5백만 명입니다. 그중에 개신교는 0.6프로밖에 안되니 선교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일본국영 방송국인 N.H.K의 방송여론조사에 의하면, 종교를 믿고 있느냐의 질문에, 있다가 33%, 없다가 65%, 무응답이 2%로 나타났다.(미국의 경우 있다가 93%, 없다가 7%). 이와 같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일본인들이 65%나 되지만 일상생활 가운데서는 여러 가지 종교적 행사나 의식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일본인들은 정월 1-3일 사이에 신사나 절을 방문하는 사람이 약 9,000만 명 이상인데 이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한해의 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태어나면 3살, 5살, 7살 (시치7고5산3:한국의 백일과 돌과 같이 자녀의 무사를 기리는 의식을 행합니다) 이 될 때, 집을 새로 지을 때, 시험을 칠 때, 결혼을 할 때, 병이 들었을 때, 부락 축제나 스포츠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신사나 사찰을 방문하여 참배를 하면서 축복을 비는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삿보로 대학의 정문에 들어가면 동상 하나를 보게 되는데 윌리암 스미스 클라크박사의 동상입니다. 클라크 박사는미국 메사츄세츠 출신인데 1876년에 일본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아 일본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일본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철저한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8개월 후에 그가 다시 일본을 떠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던 날,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전송하러 모여 있었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교문에 모여선 학생들에게 한 마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갔읍니다."젊은이여, 꿈을 품으시오!"(Boys, be ambisious)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꿈과 비젼을 깨달았던 젊은이들은 후일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따릅니다. 일본의 초청을 받은 클라크는 구로다와 미국인 조수 2명, 학생 11명과 함께 1876년 9월, 황무지 삿포로에 농림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이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인 관리가 교칙(校則)을 만들겠다고 하자, 클라크는 웃으며 규칙으로 인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신사가 되라(Be gentleman)’하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규칙을 없앴습니다.

1877년, 1년의 체재 기한이 끝나고 이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는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기고 숲 사이 언덕길을 넘어 사라져 갔습니다. 그래서 삿보로 대학에는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의 동상을 세우고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안타까운 것은 선교 100년이 지나고 훌륭한 스승을 기리고 있으면서도 일본은 죽음의 행렬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두부류의 행렬이 길을 가다가 마주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일행이고 하나는 나인성에서 나오는 장례 행렬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소망의 무리이고 하나는 죽은 청년을 바라보는 절망의 무리들입니다. 한쪽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돌고 있고 한쪽에서는 죽음의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두부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두려움과 절망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고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생명입니까? 죽음입니까? 나는 오늘 여러분이 생명을 바라보며 살기를 희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곁에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를 보세요. 예수님이 나인성이란 곳으로 가는데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동행을 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성도들이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삿보로 교회의 천 목사님에게 아주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는 일본교인들에게 일을 맡기면 걱정을 안 한답니다. 그런데 한국교인들 한테 일을 맡기면 염려가 된 답니다. 일본사람들은 예수를 믿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이성으로 이해되기까지는 절대로 믿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교회에 잘 출석을 해서이제는 교인이 되었는가 보다 하고 세례 받으시지요, 그러면 그다음 주일부터 편지 한 장을 남겨놓고 나오질 않습니다.

그동안 좋은 말씀 들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사람은 본인이 세례 받겠다. 하기까지는 가만히 놔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 예수 믿겠다. 하고 세례를 받으면 철저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 와도 예수를 믿습니다. 교회 봉사를 그렇게 합니다. 목사님과 똑같이 아침 7시에 나와서 오후 4시 목사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에서의 삶도 그렇게 철저히 살아갑니다. 깨끗하게 살아갑니다. 성경대로 실천하려고 애를 씁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정직 합니다. 그러기에 N,H,K 방송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앞으로 종교를 갖는다면 어느 종교를 가지고 싶습니까? 하는 질문에 60프로이상이 기독교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비록 수는 적어도 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성도들에게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답니다. 나이 많은 한 할아버지가 혼자 손을 드시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다시 "아니 할아버지는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셨습니까?"했더니 할아버지 왈 "아니 옛날에 많았는데, 다들 죽었지" 정말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 합니다. 그런 교인들이 많아 질 때 교회가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성문가까이 갑니다. 거기서 한 무리를 만납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입니다. 한 과부의 독자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의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보면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그곳에는 절망이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망이요, 그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 할 수 없는 이웃들의 절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절망들을 수도 없이 많이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어머니로서도 할 수 없는 한계가 옵니다. 일가, 친척이면서도 더 이상 해 줄 수 없는 한계가 옵니다. 다정한 이웃들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옵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무능함과 연약함 때문에 절망 하는 것입니다.

이 절망의 무리들을 주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절망으로 가득차 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겨 울지 말라 위로하시고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니까? 죽은 자가 일어나 앉아 말을 합니다. 어머니도 놀라고 그 곳에 모든 자가 놀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절망의 행렬이 생명의 행렬을 만났습니다. 생명의 행렬을 만난 그들에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둠은 절대로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죽음은 절대로 생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이시기에 죽음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이 청년은 죽었으나 살아났습니다. 죽음에 끌려가던 한 영혼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생명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생명을 주려면 생명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소유하려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교회의 지체된 여러분 심령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심령 속에 예수님이 모셔진 것이 교회가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생명을 가지면 지금 이 자리에 죽음의 권세가 물러 갈 줄로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음의 권세에 붙들린 자들이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출발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걸음들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슬픔의 자리에서도 일어나세요, 병상의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그리고 예수 안에서 소망을 보고 살고 생명을 바라보며 사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1절: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보면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이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수 있잖아요

2절: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이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수 있잖아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수 있잖아요
견딜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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