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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잠깐 멈추어 서서 (눅 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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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추고

1998년, 골프의 황무지와 같았던 우리나라에 박세리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LPGA US오픈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이 대회에서 연못가 비탈진 러프에 빠진 티샷을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들어가 쳐낼 때 새카맣게 탄 종아리와 눈부시게 하얀 발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장면이 애국가 화면에까지 나오면서 스물한 살의 이 앳된 아가씨가 IMF로 시름에 잠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각종 대회를 휩쓸며 달려가던 그녀가 몇 년 전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얼마 전 모 골프대회에 참석한 박세리 선수가 아버지가 지켜보던 앞에서 연습을 하다 말고 펑펑 울었답니다. 놀란 아버지에게 딸은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아버지는 골프만 가르쳐 줬지, 쉬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어요." 세계 골프계에서도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이 아버지는 딸이 어렸을 때부터 오직 우승, 우승만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쉼을 모르고, 골프를 즐겨본 적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간 것이지요. 자기가 실수하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용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지친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골프를 즐기면서 치는 법을 배우려 한답니다. 한 번 실수한다고 당장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박세리 선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지금까지 이 골프선수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나? 한 달만 있으면 제가 교회에 부임한 지 만 4년이 됩니다. 정말 세월이 빨리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물론 골프선수에게는 우승이 최종목표이듯 저에게는 목회가 최종목표요 인생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우승만 바라보다가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듯, 잠시의 쉴 틈도 못 가지고 인생을 재충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온 그녀처럼 저나 여러분 모두가 오로지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려가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다 놓치고, 재충전의 기회도 놓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지치고 탈진해버리는 그런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정말 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있음을 오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이제 우리가 걸음을 잠깐 멈추고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일입니다. 복잡하고 바쁜 일상의 삶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삶을 추스르고 앞날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이제 여름이 오면 각 교회학교마다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치르는데 이 '수련회'를 영어로는 retreat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retreat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물러선다, 후퇴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수련회가 무엇이냐? 시끄럽고 복잡한 현실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조용히 지내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이 retreat를 '피정'(避靜)이라고 번역하더군요. "피해서 조용히 지낸다."는 뜻인데 천주교는 피정을 가면 그 기간에 말을 아예 안 합니다. 깊은 자연 속에 있는 수도원에 찾아가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고, 책 보고, 산책하면서 아예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것입니다. 개신교도 깊은 산 속에 있는 기도원에 가기는 하지만 거기 가서 아주 요란하게 기도하고, 설교도 많이 듣고, 말도 많이 하고 오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수련회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늘 이런 식으로만 수련회를 하기보다 가끔 정말 조용한 곳에서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정말 분주한 삶을 사셨습니다. 12절부터 보면 나병 환자를 고치신 후 이 소문이 퍼지자 정말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듭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뒤로 물러가십니다. 설교도 해야 하고 병 고쳐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가장 바쁜 그 순간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16절). 제일 바쁜 그 순간, 가장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 직전 우리는 과감하게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물러나서 또 일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며,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보면 핸드폰 로밍을 해가지고 가서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전화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계속해서 보고를 받고, 이 일은 이렇게 해라, 저 일은 저렇게 해라 계속 업무지시하면서 여행을 나가서까지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조용히 기도한다고 혼자 기도원에 가서도 계속 핸드폰 붙잡고 일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러나면 뭐 합니까? 거기까지 일을 가지고 가서 일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을 내려놓읍시다. 어떤 분이 영성수련회 3박 4일을 갔다 오더니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그 동안 이 수련회가 참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못 간 이유는 일이 너무 바빠서, 제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까 봐서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과감하게 일을 내려놓고 3박 4일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긴 기간 회사를 비우다니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녀와서 보니 회사가 정말 잘 돌아가고 있더군요.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아, 제가 왜 진작 이것을 몰랐을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왜 나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가는 줄로만 알았을까요?" 여러분, 제일 바쁜 바로 그 순간에 잠깐 발걸음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뒤로 물러나십시오. 그리고 모든 일을 내려놓고 쉼을 가지면서 조용히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요란하게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을 많이 듣거나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쉼과 물러남의 순간에 너무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도 보고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위를 쳐다보는 일입니다. 제가 고3 때의 일입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날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버스에서 내려서 제법 언덕 위로 많이 걸어가야 했는데 날마다 늦게 보충수업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그 길을 오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말입니다. 어쩌다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하늘에 별이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적지 않은 충격이 와 닿았습니다. "어? 밤하늘에 별이 있네?" 밤하늘에 별이 왜 없겠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그날 밤만 아니라 날마다 밤하늘에는 별이 떠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하늘 한 번 쳐다 볼 여유조차 없었기에 하늘에 별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밤하늘에 별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언제입니까? 직장에서 퇴근하면 집에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 쉬기 바빠서 하늘도 못 쳐다보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매일 새벽기도회를 오면서도 기도회 가기 바빠서 새벽하늘에 얼마나 멋진 별들이 떠있는지조차 못 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도 여유 없는 삶을 사는 불행한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창세기 15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약속하시는 그 때 아브라함의 손을 잡고 장막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쳐다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을 쳐다보니 그 밤하늘에는 정말 무수한 별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도 성지순례 가서 꼭두새벽에 시내산에 오를 때 새벽하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별이 너무 가득 찬 나머지 금세라도 땅으로 쏟아질 것만 같더군요. 아브라함도 바로 그런 밤하늘의 별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하늘에 별이 정말 많습니다. 셀 수도 없네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내가 너에게 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말로만 약속하셔도 될 것을 왜 이렇게 손수 아브라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별까지 보여주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현장실습, 시청각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말만 가지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위를 올려다보아야 합니다. 위를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해와 달과 별이 보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한 번 쳐다봄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창조세계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무수한 별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상징입니다. 또한 우리가 비온 뒤에 하늘을 쳐다보면 간혹 무지개를 볼 수 있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약속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도 여유를 갖지 못하고 땅만 보고 뛰고 걷고 있노라면 절대 이런 놀라운 것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예배 마치고 한 번 하늘을 쳐다보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질서와 약속이 있습니다.

아래도 보고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아래를 보는 일입니다. 며칠 전 교회 주차장을 돌아볼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 주차장을 포장한 지 벌써 몇 년째가 되는데 그동안 거의 교회 주차장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돌아본 주차장 끝에 화단이 있더군요. 거기 보니 주차장 포장할 때 심었던 향나무가 대부분 뿌리를 잘 박고 잘 자라고 있어요. 또 못 보던 꽃과 작은 나무들도 제법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어떤 집사님이 심은 고추와 채소들도 자라고 있고요. 참고로 이 야채들은 우리 성도들 중에 누구든 따먹어도 좋답니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랍니다.

저는 이 나무들과 꽃들을 보면서 참 내가 이렇게 정신없게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교회 꽃밭조차 몇 년 동안 못 돌아볼 정도로 제가 그렇게 바빴습니까? 아니요, 바빴다기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게지요. 여러분 중에도 대부분이 늘 우리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도 꽃밭에 어떤 나무나 꽃이 피었는지 단 한 번도 안 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하나님의 창조세계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늘 다니는 길에는 계절마다 꽃도 피고, 벌레도 다니는데 우리가 그 길 위를 정신없이 지나가기만 하면 그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못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 위에서 말씀을 하시다말고 하늘을 가르치며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고(마 6:26), 땅을 가르치며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6:28). 저도 성지순례를 갔을 때 마침 백합화가 필 때라 이 백합화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백합화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희고 큰 꽃이 아니라 붉고 자그마한 아네모네 꽃이더군요.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땅도 한 번 내려다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 주변 땅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저 붉은 색 아네모네가 백 마디 천 마디 설교보다 더 확실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즉 흔하디흔한 백합화 한 송이도 하나님이 보살피시면 솔로몬보다 더 아름답게 옷 입고 사는데 하물며 너희 하나님의 자녀들이야 하나님이 어떻게 보살피고 도우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말씀 듣는다고 바빠서, 세상 일 한다고 바빠서 땅을 못 내려다보면 이 놀라운 진리를 절대로 못 깨닫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바쁜 발걸음이라도 잠시 멈추고 땅을 한 번 내려다보세요.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질서가 있습니다.

옆도 보고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네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옆을 보는 일입니다. 제가 늘 예배 마치면 앞에 옆에 뒤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하라고 시키지요? 예배를 드리면서 누가 내 옆에 앉아있는지조차 모르고 돌아가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너무 분주하고 바빠서 옆도 못 보고 삽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옆 통로에 누가 사는지, 이사를 왔는지 갔는지도 모르며 삽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만한 조금의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도 같은 교회 다니면서 자기 일 돌아보는 데만 바빠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나봅니다. 그 옛날 교회가 작을 때도 그랬는데 하물며 오늘날처럼 교회가 커지고 성도가 많아지면 더 돌아볼 여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참 불행한 일입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는 너무 커서 부목사님만 수십 명인데 그러다보니 성도들이 자기 교구 담당하는 목사님 외에는 얼굴도 잘 모른답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아무리 내 일이 바쁘고 분주하다 해도 우리는 옆을 돌아봐야 합니다. 주보에 보면 환자들 명단이 올라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아픈 분도 많고 힘든 분도 많습니다. 혹시 그 분들에게 "힘드시죠?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하고 따뜻한 말 한 마디 하셨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누군지 얼굴도 모릅니까? 오늘 주보만 해도 자녀를 낳고, 손자손녀를 보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축하할 일이 참 많습니다. 혹시 그 분들에게 웃으며 "축하합니다. 저도 참 기쁩니다." 축하의 말 한 마디 해 주셨습니까? 이런 내용을 아무리 주보에 실어도 관심 없이 지나친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돌아보며 기쁜 일이 있다면 함께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하라고, 슬픈 일이 있다면 함께 아픔을 나누고 격려하고 내 일처럼 기도하라고 싣는 것입니다. 옆을 봅시다. 너무 바쁘고 분주해서 앞만 보고 산다면 절대 볼 수 없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뒤도 보고

이제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해야 할 마지막 일은 뒤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가 있었지요? 이 가사처럼 과거는 자꾸 묻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니까요. 어디 그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하셨고(눅 9:62) 롯의 아내도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창 19:26). 하지만 이것은 지나간 것들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뒤를 돌아보면서 지나간 것들에 미련을 갖거나 포기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뒤돌아봄은 미련을 갖고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뒤돌아봄이 아니라 자신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점검하는 뒤돌아봄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회고합니다. 디모데후서라면 바울이 제일 마지막에 쓴 서신으로 여겨지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이 지금까지 달려온 믿음의 길을 돌아보며 회고하는 것입니다. 이 돌아봄이 결코 미련이 아님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달려온 인생길을 반성하고 점검하는 돌아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인생길, 믿음의 길을 달려가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또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한 번씩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 달려왔는지, 제대로 왔는지, 그 길이 과연 내 자신을 위한 길이었는지 아니면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 믿음을 지킨 선한 싸움의 길이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돌아봄이 없으면 간혹 실컷 끝까지 달렸는데 정작 목적지에 도달해보니 잘못된 길인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열심히 운전해서 달려갔는데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엉뚱한 곳일 때가 있습니다. 실컷 밤새도록 공부했는데 시험지를 받아보니 앞이 캄캄합니다. 시험범위를 잘못 안 것입니다. 길이야 유턴해서 돌아가면 되고, 시험이야 망쳐도 다음에 잘 보면 되지만 인생은 아닙니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바른 인생이요 참된 인생이 되기 위해 가끔 뒤를 돌아보며 내가 제대로 왔는지,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참된 믿음의 길을 달려왔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설교를 듣는 순간 잠시 걸음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한 발짝만 물러나 뒤를 돌아보십시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위를 보고, 아래도 보고, 옆도 보십시오. 이 잠깐의 멈춤이, 이 잠깐의 쉼과 점검이 내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줄뿐 아니라, 앞으로 남은 내 인생길을 더욱 아름답고 값지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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