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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은사 (롬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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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일,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성품과 관련된 덕목들이다. 이 열매는 인격적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나타나는 열매들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 9가지를 열거한 후 이렇게 덧 붙였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이 말씀을 쉽게 표현한다면, 모든 신자들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 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결혼한 신부가 옛 애인을 그리워하며 자주 찾아가 만나면서, 현재의 남편에게 충실치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야고보선생은 신랑되신 예수님에게 충실치 않고 과거의 옛사람의 습관을 좇는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했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도록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하며, 회개의 생활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육신적으로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다. 그러나 그 안에 진정한 자유함과 풍성함이 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한다. 성령의 열매가 성도 개개인의 영적 덕목이라면, 성령의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다면 먼저 은사에 대한 정의와 특성, 그리고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은사의 정의와 특성

1)은사의 정의
은사란 무엇인가? 영어성경에는 "spiritural gifts", 곧 영적 선물이란 말로 번역할 수 있다. 앞서서 언급한대로 성령의 열매는 성도 개인에 주어지는 덕목이라면, 은사는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2)은사의 특성과 목적
은사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주권성이다. 성령의 은사는 성도들의 노력이나 요청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6절의 말씀대로 “은혜대로 받은 것”이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셨다. 은사에 대한 성령님의 주권성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에서 더 명확히 말씀하고 있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둘째는, 다양성이다. 성도들 마다 받은 은사가 다르다는 것이다. 4절 하반절 말씀에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또한 6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일률적으로 동일한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마다 성령께서 임의로 다르게 주셨다는 것이다.

셋째는, 통일성이다. 은사가 다양하지만 그러나 한 몸이라는 것이다.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왜 성도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는가? 그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 간의 관계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서로 상호보완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성령께서 교회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결론적으로 요약한다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지체들 서로간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교회는 거룩하고, 소중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운 모든 교회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교회들을 아름답게 보존하시기 위해 모든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이다. 이젠 너희들이 멋있게 한 번 만들어 봐라!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2.은사의 종류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어떤 은사들을 주셨는가? 오늘 본문에 소개된 은사들을 중심으로 살펴 보겠다.

(롬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롬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7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예언의 은사
나는 20대 후반, 청년시절 건강이 나빠져서 한달간 휴가를 내서 조용한 기도원에서 휴양하던 중, 그 기도원 원장님이 나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당신은 주의 종이니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주의 종이 될 것이다.” 몇 년간 그분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고민하다가 3년 후에 신학교에 들어 갔다. 그분의 예언이 맞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사사로운 장래사를 말하는 예언에 대하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시대 안디옥교회에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소아시아 전역에 흉년이 들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예언대로 흉년이 들었다(행11:28). 또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계시가 완성된 현대에서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의 설교 사역이나 구원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전도자에게 해당되는 은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날 처럼 진리가 혼탁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일이며, 세상을 향하여 미래를 준비하라는 예언적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점쟁이들이 하는 식으로 예언기도 받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하다.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예언의 말씀인 것처럼 전하는 행위도 속이는 것며, 그런 사람을 찾아가는 것도 건전한 신앙태도가 아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집에서 성경을 더 읽고, 예배에 더 충실해서 설교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이다.

2)섬기는 일(serving)
섬기는 은사는 봉사하는 일을 말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전문적 지식이 필요치 않다. 부교역자 시절 남달리 봉사하는 일을 좋아하는 집사님이 한 분 있었다. 어느 날 본당 예배실을 들어가려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열쇠를 가져다 열어보니 그 집사님이 찬송을 부르면서 의자를 닦고 있었다. 잠군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것이다. 그분의 조용한 섬김이 종종 생각난다.

우리 교회 안에도 섬기는 일이 많이 있다. 차량 봉사, 주차 봉사, 식당 봉사, 새가족 섬김이 봉사등... 하나님 앞에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봉사거리를 하나 소개한다. 오래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것인데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주일 아침 6시나 7시쯤 남들이 안 볼 때 남전도회원들이 띠 두르거나, 모자 쓰지 말고 조용히 집게 하나, 쓰레지 봉지 하나씩 들고 교회 주변 거리 휴지 줍는 것이다. 일명, 넝마봉사를 하는 것이다. 5년 만 해 보라.

3)가르치는 일(teaching)
목사를 포함하여 모든 교역자는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또한 교회 학교 교사와 목장의 목자들은 이 은사가 필요하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분들은 가르치는 일에 익숙할 뿐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30분의 설교를 위하여 10시간 이상을 준비한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분들은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사람이었다고 소개되었다. 그의 가르침을 통해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교회의 뼈대를 세우는 일에 이 은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특별히 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치시는 분들은 교회에서 교사를 안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섭섭히 생각하신다. 여러분의 받은 재능과 은사를 주를 위해 쓸 수 있기 바란다.

4)권면하는 일(encouragement)
권면의 은사는 먼저 남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어야 한다.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친절하게 타일러서 선한 일에 힘쓰게 하는 역할을 한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들어주는 것을 잘 못해서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고 지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권면했다가는 도리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안겨 준다. 같은 평신도 입장에서 훈계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가르치려 했다가 도리어 부작용을 낳게 된다.
사랑의 손길로 보듬어 주어야 할 상처난 영혼들이 많다. 권면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을 잘해 주면 용기를 얻고 회복될 수 있다. 특히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 교사와 목자들이 이런 은사를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5)구제하는 자(contributing)
행9장에 보면 욥바에 다비다라하는 여제자가 있었는데,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이 있더니”라고 그 여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이 부자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구제하는 일은 물질적 유무와는 관계가 없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만 가능하다. 세상에서는 부자이나 가난한 봉급생활자보다 인색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우리에게 교훈을 줄 만한 좋은 이야기가 있다.(렌다이크의 [대저택]이란 책에서)

어떤 부자가 죽은 후 천국에 갔다. 천국에서 자기 집에 들어가보니 천장도 없는 오두막이었다. 화가 난 그가 불평을 털어 놓았다. 그런데 바로 옆 집에는 으리으리한 저택이 있었다. 그 집은 아주 검소한 의사의 집이었다. 이 부자가 하나님께 항의했다.
“하나님, 어찌해서 저의 의사에게는 좋은 집을 주고, 나에게는 초라한 오두막을 주었습니까?”
그랬더니 옆에 섰던 천사가,
“이 모든 건축자재는 당신이 세상에서 살 때 보내온 것이요. 저 의사는 세상에 살 때 구제하고 헌금하고 많은 사람을 도와 이렇게 건축자재를 보냈는데, 당신은 거기서 하나도 보낸 것이 없어 천정도 제대로 없는 초라한 집이 되었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다. 구제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함으로”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실함이란 어떤 보상이나 명예를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6)다스리는 자(leadership)
많은 사람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은사이다. 에베소서 4장에 보면, 5가지 은사가 추가적으로 나오는데 그 중에 “목사”가 있다. 목사가 되고 싶어 된 사람도 있겠지만 목사가 되기 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은 “내가 목사로 부름을 받았는가?” 이것에 대한 검증 없이 목사가 된 경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별히 지도자로서 조직을 다스리는 은사가 없으면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별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다스리는 자로서의 리더십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다스리는 은사는 목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장로, 권사, 집사등 중직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은사이다. 이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는 만큼 심리적 부담도 크다. 그래서 교회는 특별히 담임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중직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한다.

7)긍휼을 베푸는 자(showing mercy)
이 은사는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그 고통에 함께 동참하기를 기뻐하는 것이다. 구제의 은사는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돕는 것이라면, 긍휼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구제보다는 영역이 더 넓고 깊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사람들일진대 이 은사는 모든 성도에게 다 필요한 은사이다. (찬 404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경은 오늘 로마서에서 언급한 7가지 은사 외에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3가지, 에베소서에서 5가지, 베드로전서에서 2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다. 이 은사들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도 사용여부에 따라 교회가 건강해지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성령의 은사,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가?


3.이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 것.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 받은 은사를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고 교만히 행하는 것이다.

2)믿음의 분량대로 할 것.
사람마다 받은 은사가 다르고, 믿음의 분량도 다르다. 비교하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은사를 따라 섬기고, 믿음의 분량대로 봉사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이 받은 은사를 무시하지 말고, 자신의 받은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충실히 섬기는 것이다.

3)지혜롭게 생각하면서 봉사할 것
“벼룩 잡다가 초가집 불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로 하여금 그 역할과 기능을 잘 발휘해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케 하는 것이다. 생각없이 행하므로 지체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교회 안에서 섬길 때 항상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교회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행하도록 먼저 기도로 무릎 꿇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성도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잊을 때 교회는 혼란과 분열로 그리스도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표현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교회를 “세상으로 파송한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이다”라고 묘사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인 것이다.

어제 신문에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호감을 덜 받는 이유”라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첫 번째 신앙과 삶의 불일치 57.5% 일부 교회지도자의 물의 41.1% 이단들이 너무 많아서 39% 교단 교파 난립 34.7% 교회의 세속화 28.8%로 나왔다.

성령강림절을 기점으로 4차례에 걸쳐 성령을 주제로 말씀을 증거했다.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심령에 도전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성령에 관한 주제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권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

첫째는, 이 땅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유린되지 않도록 먼저 교회의 구성원이 나 자신부터 작은 예수가 되기를 다시 결단하기 바란다.

둘째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잘 계발하고, 사용하여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덮이도록 서로 사랑하며 협력하며 충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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