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11)

  • 잡초 잡초
  • 1871
  • 0

첨부 1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3:10-11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여인 한나를 아실 것입니다. 한나가 하나님의 응답으로 얻은 아이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며 최초의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가 열리게 되는 전환점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입니다.

이 사무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에게 아이를 주시면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아이의 젖을 떼게 되자 엘리 제사장에게로 보냈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제사장을 도우며 하나님의 전에서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전에서 잠을 자던 사무엘에게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제사장이 부르는 것으로 알고 달려가 절 부르셨느냐고 물었습니다. 엘리는 내가 부르지 않았다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거듭 세 번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은 부르신 줄 깨닫고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그가 너를 부르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 준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들려왔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면 여러분의 인생은 풍성해지고 복되어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사무엘처럼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가 영적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는 것입니다.
삼상3:1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는 각각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삿21장25절에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은혜요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리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제 소견에 옳은 대로만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주 속회공과에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내용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 하였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의 이유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불을 사용했다는 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않고 자기의 소견대로, 편리대로 제단의 불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답과 아비후를 죽이신 이유입니다.
조금 너무하다 생각하겠지만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는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것입니다. 듣고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듣고자 하지 않으면 아무리 들려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욥37: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55:3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영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이 죽습니다. 영이 죽으면 육신의 형통과 복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원하십니까? 영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영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렘7:23-24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팍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잠29:8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사람이 방자히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팍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만하여 제 소견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결국 영이 죽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지요. 육신의 빈 껍데기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빈껍데기의 육신으로만 사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영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껍데기 뿐이 육신의 삶이 아니라 영이 살아 충만한 영육의 강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영육의 강건함으로 살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순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기도를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기도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무시로 성령안에서 이와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우리에게 들려올까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음성은 귀로 들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들으면 안됩니다.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입술로만 읽으면 안됩니다.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8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심중에 있는 것,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입니다.

한 인디언 청년이 뉴욕의 거리를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디언 청년은 다른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라고 여기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친구들은 자동차의 소음과 도시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과 기계들의 소음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인디언 청년은 깊 옆 풀 숲에서  작은 풀벌레 한 마리를 찾아 내었습니다. 인디언 청년이 들었던 아름다운 소리는 그 풀벌레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고요한 가운데 기다리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마음 깊은 곳까지 들려지게 될 것입니다.

마음으로 들으라는 것은 겸손히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고백은 겸손히 순종하겠다는 자신의 고백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귀로 들으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듣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겸손함으로 순종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십시오. 그리하면 세미한 가운데 들러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를 기우려 보십시오. 마음의 귀를 열어 들어보십시오.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 속에선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음성은 깨달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듣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함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동안 순간순간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복되고 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잠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오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그때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의 음성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것입니다. 야곱은 깨달음으로 비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보면 집을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이 돼지를 치면서 돼지의 쥐엄 열매를 먹으며 비참한 가운데 있을 때 아버지집의 풍성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고 아버지는 그를 기뻐 맞이하시면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집에 풍성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리라 결심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깨달음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하였을 때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깨달음이 내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혹은 기도할 때, 때로 문득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이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고 깨달은 대로 순종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6.25동란이 발발한 후 북한에 계신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버리고 피난을 가야할지 안 가야할지 알지 못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났더니 새들이 머리 위를 맴돌다가 남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가곤 하더랍니다. 그리고 나서 마음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두려워 말고 남쪽으로 피난가라” 하시니 마음에 평안이 와서 피난 나와서 하나님의 큰일을 많이 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신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들으려고 기대하고 듣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인간의 정욕대로 무슨 일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익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분별해 듣지 못하고 인간의 고집과 정욕대로 행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어떨 땐 사람을 통해서도 들려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발람의 길을 막아선 나귀새끼처럼 짐승의 울음소리로도 들려오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자연 만물속에서도 하나님의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겸손과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듣는 것을 넘어서 깨닫는 것입니다.
혹은 사람과 환경과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에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살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장 8~9절).

어떤 이들은 제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제 자신에게서 듣기를 원하는 음성인데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항상 자기 주장과 뜻대로만 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사사시대 영적 암흑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가운데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며 마음으로 깨달음으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와같이 고백한 사무엘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고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