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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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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본 문: 골로새서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 2:6~7)

다음 주일은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이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령하신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6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귀한  맥추감사 절을 앞둔 이 시간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하신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영국의 작가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로빈슨 표류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년이 집을 나가 뱃사람이 되어 항해를 하다가 배가 파선하여 무인고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이렇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파선은 불행하나 죽지 않음이 감사하고, 고립되어 있으나 굶지 않음이 감사하고, 입은 옷이 한 벌밖에 없으나 기후가 따뜻하여 옷이 필요 없으니 감사하고, 방비할 무기가 없어 불행해 보이나 맹수가 없으니 감사하고, 친구가 없으니 불행해 보이나 섬의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즉 불행한 것 같으나 생각해보면 감사한 면이 더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인간의 편견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형편이라 할지라도 깊이 생각하면 감사할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박해로 인해 로마 감옥에 수감 중인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이므로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생명같이 소중한 자유가 박탈된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를 향해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되 “넘치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넘친다는 이 말씀은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하되 이처럼 감격에 찬 풍성한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록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이스라엘 나라의 성군인 다윗 왕은 시를 쓰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1~6)라고 했습니다.

시편 23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들이 받아 누릴 은총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주님은 그를 섬기는 성도들을 지키시되 양떼를 지키는 목자처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십니다. 사악한 원수로부터 보호하시며 승리케 하십니다. 그 지키심은 평생 동안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은 밀 보리를 수확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밀 보리 수확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요즘은 농촌에 가도 밀과 보리를 보기 어렵습니다. 밀 보리는 저소득작물이기 때문에 밀 보리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또한 밀 보리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 대한민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선망의 대상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렇게 큰 복이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상 2:6~8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토록 넘치는 복을 주신 하나님이시므로 넘치는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생명의 주님을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한복음 6:44)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혀 자격이 없는 죄인 된 우리들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물이 제방을 넘치듯, 넘치는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성자로 널리 알려진 성 프란시스코를 괴롭히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하루는 두 사람이 격렬한 신앙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 앞에 한 걸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걸인은 맹인으로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프란시스코가 맹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내 명령에 순종하겠소?" 맹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디 순종뿐이겠습니까?. 평생 선생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섬기겠습니다." 프란시스코는 무신론자인 친구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이 맹인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면 평생 노예가 되겠노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자네는 밝은 눈과 명석한 두뇌를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그 친구는 그때서야 자신의 우둔함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넘치는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되 강물이 제방을 넘치듯 풍성한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2.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는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라면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하셨습니다. 행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 것 가운데 하나가 넘치는 감사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넘치는 감사가 있습니까?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없다면 우리들의 심령은 탐욕으로 가득한 형식적 신앙생활로 변질되어가는 증거입니다. 이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저주하신 그 나무는 곧 말라 죽고 말라 죽었습니다. (마태복음 21:19) 이처럼 감사함은 신앙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신 은혜, 내가 받아 누리고 있는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3.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내린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나무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그 나무의 뿌리가 어디에 심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 할지라도 그 나무의 뿌리가 어디에 심겨져 있는가에 따라 그 나무의 성장에 큰 차이를 나타내게 됩니다.

본문에는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하셨는데 “그 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삶의 뿌리를 내린 성도는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감사에 뿌리를 내릴 때 감사의 진액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가 있는 곳에 만족함 즉 행복함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 코넬대학의 H. D 교수는 <스트레스와 질병>이란 책에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억울해 하고 분을 내면 창자가 상하고 위 점막이 상한다. 체질도 산성으로 변해서 저항력이 없는 약한 체질이 된다. 만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최고의 약은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되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감사가 예수님께 뿌리를 내린 삶이라면, 원망과 불평은 어디에 뿌리를 내린 삶이겠습니까? 마귀 사탄에게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감사에 뿌리를 내린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입은 증거입니다.

본문 7절에 “그 안에....세움을 입어....”라고 하셨습니다. 세움이란 신앙생활을 건물에 비유한 것입니다. 건물은 세워진 위치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큽니다. 같은 아파트라 할지라도 서울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관 좋은 아파트는 값이 훨씬 더 비싸다고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 위로 떠다니는 유람선, 그리고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은 또 다른 안식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며, 우리의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감사함의 조건입니까? 아니면 불만스럽고 원망스러운 조건만 바라보십니까? 이러한 시각의 차이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행복하여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터 위에 우리들의 삶의 집을 세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감동이 됩니다.

헤럴드 러셀이란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수부대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불구자가 된 상이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온갖 어려움을 딛고 금속 의수로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그는 이런 투지를 인정받아「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아카데미상까지 받았고, 상금을 모두 자선사업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신체적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장애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잃은 것에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헤아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감동이 있습니다.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5. 감사는 믿음에 굳게 서있는 증거입니다.

본문 7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에 굳게 선 사람들의 특징은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골로새서를 기록한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신앙 까닭에 로마 감옥에 갇혔으나 감사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믿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신앙의 박해로 인해 장작더미에서 화형을 당하는 순간에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신앙의 박해로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질것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하바국 선지자는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이렇게 감사하기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바국 3:17~19)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에 굳게 서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크신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바울사도에게는 굳게 잠긴 옥문이 열렸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천사가 나타나 다니엘을 삼키고자 달려드는 굶주린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순교자 스데반 집사에게는 하늘 문이 열려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기뻐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심리학자는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속에는 고마움은 곧 잊어버리나 좋지 않은 피해 의식은 강하게 기억되는 습성이 있는데 이것을 반역적 기억작용”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사하지 않는 좋지 못한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좋지 못한 습관을 버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되, 넘치는 감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심령위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메마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큰일에만 감사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쌀 한 톨을 만들려면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뜻의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흘리고 또 전혀 아까워 하지도 않는 쌀 한 톨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 쌀을 위해 땀 흘린 수많은 손길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넘치는 감사가 있는 곳에 만족함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되 넘치도록 감사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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