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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축제] 교회와 잔치집의 성격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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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잔칫집의 성격 / 누가복음 14:15~24

우리 갈보리교회가 창립 2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원로 목사님과 여러분이 거룩한 결단을 하셔서 이 땅에 갈보리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에 지나간 22년 동안 수많은 영혼의 인도자가 되어 왔으며 지금은 세계 선교에 공헌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지금까지 이렇게 잘 섬겨주신 것에 대해서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것은 교회와 잔칫집의 성격이 같다는 것입니다. 옛날 왕들의 즐거움은 잔치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러한 일들이 흔하게 있었기 때문에 당시 문화에서 흔한 일을 하나의 소재로 하나님의 마음과 교회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등장하는 잔칫집의 주인을 어떤 사람은 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왕을 하나님으로 조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을 오라고 초청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초청의 장소를 교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잔칫집은 비슷한 몇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비교해보면 교회의 성격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잔칫집은 초청장을 보내서 사람들을 오라고 초대를 합니다. 여러분도 아들, 딸 결혼식이 있으면 미리 초대장을 예쁘게 인쇄해서 보는데 그 내용을 보면 대단히 겸손하게 되어 있습니다. “○월 ○일 ○시에 저희 집 아들 ○○○가 여러 어른들을 모시고 결혼을 하고자 하오니 부디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영광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 자리에 오시는 것만 해도 그 자리는 빛이 날 것이며 우리 가족은 당신 참석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한 초대입니까? 이것이 초청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교회 성격을 보세요. 똑같습니다. 어쩌다가 교회가 부흥회를 하면 광고지를 만들어서 집집마다 돌리기도 하고 혹은 경비를 들여서 신문에 광고를 내고 비슷한 말로 초대합니다. “금번에 저희 교회에 이러한 말씀의 잔치를 배설하고 귀하를 초청하니 오셔서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주소, 전화번호, 약도를 자세하게 써서 정중하게 초대합니다. 그런가 하면 모든 교회들은 매주 영적 잔치를 베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초청합니다. “부디 오셔서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일 년 내내 열심히 합니다. 잔칫집과 똑같습니다.

구약에 노아 방주 사건 때도 보십시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해놓고 밤낮없이 나가서 많은 사람을 방주에로 초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믿음이 좋은 신자들의 삶의 최대 관심사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때로는 희생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시간을 내기도 하고 경비도 쓰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잔칫집에 초대하려고 합니다.

저희 교회에 배달되는 몇 가지 교회 신문이 있는데 거기 보면 수백 개의 교회들이 번갈아 가면서 교회를 광고하는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초대장입니다. 오십시오. 저희 교회는 말씀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해놨으니 저희 교회로 오십시오.” 항상 광고합니다. 그리고 또 목사님들 사진도 그곳에 냅니다. 제가 알기로 저와 비슷한 나이인데도 30대의 사진을 내어놓고 무엇을 보고 오든지 “우리 교회 오십시오. 잔치에 오십시오.”

요즘에는 용어 자체도 아예 “잔치”라고 말합니다. 갈보리교회는 그런 프로그램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 잔치”라고 해서교인들에게 나가서 교인 한 사람이 다섯 명씩 “책임 할당직”을 주고 마켓에 가서 누구든지 그 날만 오시라고 열심히 전도합니다. 그래서 오기만 하면 선물도 줍니다. 쌀 한 포대씩 선물을 주는 교회도 있고, 수건 주는 교회도 있고 오는 것에 대한 감사표시를 열심히 합니다.

그 다음에 잔칫집에는 음식이 풍부합니다. 제가 어쩌다 교인들 집에 심방가면 가정에서 음식을 차리는 것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아주 많이 차립니다. 늘 말합니다. “어이구! 잔칫집같이 했네요.” 이것이 잔칫집의 성격입니다. 잔칫집은 음식을 먹고 즐기는 장소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영의 양식이 항상 풍성합니다. 영의 양식을 즐기는 잔칫집이 곧 교회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잔칫집 주인은 손님을 맞이할 모든 것을 잘 준비해 놨습니다. 17절에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봉사하는 교회를 보세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잔칫집과 똑같이 움직입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를 청소하는 분이 계셔서 교회 곳곳을 때 하나 묻지 않게 깨끗하게 합니다. 왜? 사람들이 와서 잔칫집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이런 소리를 하니까 신경을 써서 깨끗하게 합니다.

잔칫집에는 음악 소리가 나와 즐거움을 더해 주는데 교회 잔치도 성가대원들이 예배 끝나자마자 다음 주일 잔치의 음악 준비를 열심히 합니다. 좋은 성가곡들을 선곡해서 열심히 들려줍니다. 안내 집사님들은 저 성남대로에서부터 교회 앞까지 줄줄이 봉사하면서 열심히 움직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모든 준비를 다 초청자가 합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일주일 동안 잔치 음식인 영의 양식을 열심히 장만합니다. 저도 주일 설교가 끝나면 다음 주일 설교를 바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다 준비가 되었나이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잔칫집과 교회의 유사점입니다.

그 다음에 잔칫집에는 손님이 많이 와야 합니다. 많은 손님들을 위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정성껏 준비해 놨는데 초대한 손님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잔치의 실패를 뜻합니다. 많이 올수록 좋습니다. 교회도 교인이 많이 와야 합니다. 교인이 안 보이는 교회는 뭐합니까?

오늘 말씀에 집 안과 밖을 가득 메울 손님을 기대하고 완벽한 잔치 준비를 했는데 초대받은 사람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 사양하여 하나도 안 왔다고 했습니다. 오지 아니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나는 밭을 샀으매” 또, “나는 소를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바빠서”입니다. “나는 인간의 기본적 생활 요구가 더 바쁜 사람이라 밭을 사서 갈고 소를 사서 팔고 사고 이런 것을 해야지 한가하게 가서 음악이나 듣고 앉았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바쁜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편안히 가서 음악을 듣겠습니까? 그건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 같이 바쁜 사람은 여유가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으므로 잔칫집에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가면서 잔치를 즐기는 것은 다 당신처럼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요 나같이 살기 바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나는 기업의 회장이요, 한 시간이 귀한 생활인데 날마다 교회 나가서 여유롭게 보낼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대 중반에 퇴계원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부에 나오는 여학생이 “전도사님!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전도 좀 해주세요.” “그래? 그러면 내가 한번 가겠다.” 그래서 함께 갔습니다. 그 집안은 그 지역에서 당시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을 따라서 그 집에 전도하러 들어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에서 계를 타는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음식을 먹으면서 마룻바닥에 돈이 이렇게 쌓여있고 난리를 치는데, 저를 보시더니 “당신 누구야?” “우리 교회 전도사님이세요. 아버지, 어머니 예수 믿으시라고 전도하러 오셨단 말이에요.” “뭐라고? 나를 교회 나오라고 전도하러 온 전도사라고?” “그렇단 말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여보쇼! 전도사!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 당신과 같이 다 예수를 믿는다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 사람이요. 아니, 세상이 이렇게 바쁜데 사람들이 당신 같이 일요일 날 일도 안하고 노래나 부르고 가서 앉아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소. 그러면 나라가 되겠소?” “나는 밭 갈고 소를 사고하는 이 문제가 더 바쁜데 어떻게 내가 교회를 다니란 말이요?”라는 말과 같습니다. “노동력의 손실이요. 당신이나 가서 잘 하세요.” 자기 딸에게 아주 쌍스러운 욕을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하니 문전에서 말도 못 붙이고 쫓겨났습니다.

한 2년이 지난 후 그 학생이 고3이 되었을 때 “전도사님! 아버지가 만나자고 하십니다.” “뭐라고? 또 야단치려고 그러시는 거냐?” “병원에 계세요. 전도사님을 꼭 뵙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조마조마하면서 찾아갔습니다. 날 보시더니 “그때 일을 기억하고 계시오?” “네, 지금도 떨고 있습니다.” “미안하오. 나 예수 믿겠소. 기도해 주시오.” 병원 침대에서 성경을 읽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시는데 “전도사님!”하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이 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소 사고 팔고 밭 가는 일 여기에만 내 인생을 바쳤소. 그래서 동네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소. 나는 지금 두 달 밖에 못산다고 하오. 그동안 내 인생을 다 바쳐서 수고했던 것과 나는 무슨 상관이오? 나 어떡하란 말이요? 인생이 이게 뭔가? 그래서 내가 전도사님을 좀 보자고 그랬소. 평생 안 보던 성경을 이 병원에서 거의 다 읽었소. 내 인생이 이게 뭐요? 헛살았소. 먼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제야 깨달았소. 전도사님! 기도해 주시오.” 제가 가서 세례를 줬습니다. 두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배고픈 시절에 먹는 것 때문에 질문했던 것은 사실 예수님께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경제 부흥을 시켜서 먹는 것 잘해주겠다. 날 믿어라.”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그런 일들은 자연히 해결된다.” 이것을 패러독스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보세요. 지금 우리나라에 5만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오늘 다 일 안하고 와서 찬송을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라가 못살아야 하는데 그렇습니까? 잘 살잖아요? 반대의 나라들은 다 못살잖아요?

두 번째 이유! “나는 장가들었으니 못 가겠노라.”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더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밭을 사서 터전을 마련한 후에 사람들이 찾는 것은 재미있는 향락일 것입니다. 취미생활도 하고 문화생활도 즐겨야 되고 “교회 때문에 뺏기는 시간을 인생을 위해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다.” 주일마다 여행을 떠나도 됩니다. 최소한 일 년에 50번 이상 떠날 수 있습니다. “10년이면 500번이요 50년이면 2500번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내가 허비하란 말이요? 장가 든 기쁨이 내게 있는데 그것을 나더러 희생시키란 말이요? 못가겠소.” 밭 가는 일처럼 바쁜 일과 장가들어서 재미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거절하니까 이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초대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잔치의 초대가 황송하리만치 느끼는 사람들을 부르라.”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유대주의자들에게 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잔치를 마련하고 유대인 즉, 택한 백성을 초대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출생하지 아니하시고 유대 땅에 유대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초대를 유대 백성이 거절하고 예수를 배척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취급하지 아니하는 이방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고, 또 다른 해석은 준비된 하나님의 잔치는 누가 참여하여도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만일 네가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뺏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1장 4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에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주어도 거절하는 사람이 뺏기리라.” 본래 에서가 장자이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에 들어가야 됩니다. 에서가 장자의 권한을 세상의 팥죽 한 그릇만도 못하게 여겼을 때 로마서 9장 3절에 “하나님이 내가 그것 때문에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잔칫집에 주님의 초대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어떠한 중요한 일도 다 버리고 초대에 응답하셨습니다. 잔칫집의 성격 또 하나! 삶에 지치고 고달픈 인생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동네 잔칫집 하나가 있으면 그 날은 그 집으로 다 몰려듭니다. 그래서 배부르게 먹고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마치 오늘 살다 내일 죽어도 좋은 듯 모든 근심 걱정은 잊어버리고 그 하루를 흥겹게 춤추며 즐깁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이런 마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하루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말씀의 잔치에 참여하고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한번 결산해 볼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밭을 갈고 소를 팔고 사는 것들을 중요한 인생의 문제로 우선시해서 주일마저도 다 없애버리고 노동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것이 공산주의였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도 5만개 교회의 교인들이 이렇게 나와서 노래 부르며 잔칫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않고 열심히 노동하는 나라는 잘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같은 문화권 안에서 같은 인종이 같은 땅 덩어리에서 같은 토지를 가지고 사는데도 북한은 어떻게 GNP가 960달러 밖에 안 되느냐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20분의 1도 안됩니다. 이것이 패러독스 진리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다른 것도 해결될 것이다.” 또 하나, 향락 문화의 극단화가 인간의 행복이라고 실천한 서구 문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덕과 윤리의 사망, 영혼의 갈등, 가정 파탄, 인간 세계의 파멸, 질병과 허구성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헬레니즘의 사치성 문화는 다 몰락하고 영혼의 갈 길을 더 중요시 했던 헤브라이즘,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이 지금 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은 주님이 여러분의 손에 들려주신 구원의 촛대를 요한계시록에 뭐라고 했습니까? “굳게 잡아 빼앗기지 못하게 하라.” 오늘 주님은 자신이 마련하신 거룩한 식탁에 우리를 또다시 초대하셨고 우리는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 이 떡과 잔이 모두의 인생을 거룩한 축제의 인생으로 만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들은 주님의 초대를 받았고 주님이 직접 마련하신 떡과 잔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거룩한 영적 권위가 모두에게 주어져서 인생이 달라지고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며 먼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분별할 줄 아는 영적 능력이 주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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