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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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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마9:27-31

오늘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결론적으로 {“믿음이라는 것은 기대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대하는 것과 욕심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 기대를 하고 삽니다. 그러나 그 기대들을 분석하여 보면 사람의 욕심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지만 길이 보이지 않자 무리를 해서 복권에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가 아니라 욕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대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기대는 그 기대가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하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기대는 아주 영적입니다. 기대는 믿음의 요건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개념으로 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여러 가지 말씀 중에 특별히 두 가지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기다릴지니라.”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이 두 가지 말을 묶어서 보면 “믿음으로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믿으라.’는 것이고, 기다리라는 말은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소경 이야기가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기 부모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날 때부터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있는 곳을 지나가실 때에 왠지 모르게 그 예수님을 놓치면 자기들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두 소경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가시니 거기까지 따라 들어와서 계속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서 간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행동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1. 최선을 다하고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실 소경은 앞을 볼 수 없으니 다리가 건강하다고 해도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비장애인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다 장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기대 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계속해서 한 일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만 외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그들은 볼 수는 없었지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말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들에게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들을 수 있는 청각을 가지고 있었고, 능력의 주님을 입으로 부를 수 있는!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들을 수 있고, 말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볼 수 없다는 것! 하나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불평하며, 원망하면서 인생을 비관하고 저주 할 수 있을 텐데 이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여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내게 남겨 주신 것들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가지고라도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두 소경들이 결사적으로 불렀던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하는 말씀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저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분이 바로 지금 내 앞에 계신 예수님이신데! 이 분이야말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으시다.’라고 믿고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소경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심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임을 믿으면, 그 믿음이 바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입니다. 두 소경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메시아임을 믿고 예수님께 자기들을 맡긴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씀은 ‘당신의 능력만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메시아 그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분만이 나의 모든 사정을 해결 하실 수 있으시다는 믿음입니다. 본문의 두 소경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2. 기도하며 일하고, 일하며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곳에는 믿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없는 곳에는 두려움만 가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자기를 팔았던 악한 형들은 지금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요셉은 예전에 아픈 감정을 다 버리고 형님들을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요셉 덕분에 7년 흉년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하여 기름진 고센 땅에서 평안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이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로 그 형제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요셉은 우리에게 보복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지금까지 참았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형제들이 요셉에게 몰려와서 용서를 빕니다.

이때에 요셉은 창50:2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요셉은 울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본심을 몰라주고 살았던 형님들, 자기가 용서해 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그 형님들을 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대가 없는 믿음은 두려움으로 대신합니다. 우리의 믿음 속에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두려움이 한 가운데 자리 잡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나와서 처음으로 전쟁을 한 것은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전술이 아주 특이합니다. 지도자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는 동안 여호수아가 전장에 나가 승리를 했습니다. 이 아말렉 전투를 통해 우리는 영적인 승리의 전략을 터득하게 됩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적군을 무찌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장에서 직접 적군을 물리친 것은 여호수아와 그 군대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일과 나가서 싸우는 일은 늘 동시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모세가 기도하는 일만 있다면 이스라엘은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모세의 기도가 없이 여호수아가 무작정 전장에 뛰어든다 해도 승리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여호수아의 전투는 과정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힘입어 믿음으로 기대하면서 전투할 때에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식구가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는 식구가 있어야 신앙가정으로 바로 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식구는 열심히 나가서 장사도 잘하고 직장에 나가서 직장생활도 잘하는 식구도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기도했다가 또 산에서 내려와서 전쟁하는 것은 혼자서 못합니다. 모두 기도하고, 모두 일하고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역할이 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한 가지씩은 확실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일에 참여하시던지, 아니면 열심히 전도해서 아버지의 집을 채우시던지, 아니면 사업을 열심히 해서 많은 물질로 봉사하시고 헌신을 하시던지, 아니면 있는 재주로 교회를 섬기시던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되고 집안이 되고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교회에 와서 기도할 수 없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분들이 새벽마다 열심히 오셔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지도 못하는데....’하는 그런 일로 약해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대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을 힘입어 열심히 사업을 하시고 소득을 얻으시고 그것으로 물질을 많이 드리시고, 봉사하시고, 하나님의 사업을 뒷받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노라면 자주 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의 기도 중에 사용하는 말인데 “내가 아침에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는 표현입니다. 기도는 시작입니다. 기도했으면 이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바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믿었으면 믿음으로 사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믿었으면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무엇인가를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일하시고, 일하시고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3. 끝으로 기대하는 믿음은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두 소경의 애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에 이 두 소경은 “주여 그러하외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소경은 아무리 장애물이 많아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사모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나의 문제를 해결 할 길은 없다.”라고 확신하고 주를 따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으로 따른 것입니다. 그런 집념과 끈질김과 기대가 오늘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예수님은 두 소경의 믿음을 시험하여 보신 것입니다. 믿는 줄을 아시지만 얼마나 믿음으로 주를 따라 섬기고 있는지! 기대하고 있는지를 보시기 원하신 것입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Yes, Lord)} 사랑하는 여러분!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키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두 소경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지만 그들에게 주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


그렇습니다. 부디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새 역사를 기대합시다. 기대하고 살아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역사합니다. 기대를 버리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역사하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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