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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필요합니다 (눅 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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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25일 시카고 세계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6분 벽을 깨뜨리고 2시간 5분 42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한 할리더 하루치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하루치는 결혼하기전 자신의 조국 모로코에서 실시한 몇 번의 마라톤에서 우승한 일이 있었지만 세계 유명대회에서는 그를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때만 해도 하루치는 무명선수였고 그의 기록 또한 썩 좋은 기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치는 청운의 꿈을 품고 1992년에 미국으로 마라톤 유학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하루치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하루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고 뛰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기록은 향상되지 않고 외국 생활에 의한 외로움으로 하루치는 점점 지쳐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산드라 라는 여자가 하루치에게 다가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하루치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훌륭한 선수가 될 겁니다" 산드라의 위로와 격려는 타국에 와서 외롭게 달리고 있는 하루치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루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산드라는 틈나는 대로 하루치를 찾아와 훈련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를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더욱 마음의 안정을 찾게된 하루치는 코치 겸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내 산드라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날로 실력이 향상되어 갔습니다. 결국 무명 선수나 다름 없었던 하루치는 마의 2시간 6분 벽을 깨뜨리고 시카고 세계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힘들고 지치고 괴롭고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어 버리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제일로 생각나는 사람은 없습니까? 과학과 의학이 발달되고 경제가 발달되어지게 되면 나타나는 사회 현상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외로움입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도 과거에 비해 자살율이 계속 증가하여 OECD 국가 중 2위에 올라 있습니다.

바쁜 일과로 인하여 가족끼리의 대화가 단절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풍요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비, 곤충들, 새들, 동물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수많은 과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에 아담이 혼자 독처 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한 후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는 즉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담은 대단히 만족 해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내 말을 잘 알아 듣는 개가 수십 마리 있어도 그것은 개일 뿐입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곁에 사람이 없으면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려움이 있거나 병이라도 들게 되면 그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웃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생각나는 사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즉 만나보고 싶은 사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전화국에서 주부나 여성들의 정서에 도움을 주는 자동 응답기를 개설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출근할 때 화를 내고 나갔다든지 자신의 생일을 잊어 심한 분노를 느꼈을 때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질러 화가 났다든지, 이웃에 사는 주부가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집기를 사들여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문제의 주부나 여성이 전화를 하면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당신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지요?"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의 갈등이 해결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날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 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 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을 하니 마리아가 이런 인사가 무슨 뜻인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 천사 가브리엘이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 어지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을 했으나 사실 마리아 자신에게 되어질 일들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처녀의 임신은 당시 시대적인 수준이나 상황으로 볼 때 쉽게 설명하여 이해 되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혼자 요셉 조차도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조용히 끊고자 했을 정도 였습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 뿐만 아니라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사람들은 말을 만들어 가려고 하지 그것을 덮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며 함께 하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갑절의 아픔과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현 상황을 정혼자인 요셉도 이해해 주지 않고 의심하며 오해할 때 자신의 현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사가 말해준 엘리사벳을 찾아가기를 결심을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리아는 마을 사람들의 싸늘함과 모진 험담을 뒤로하고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 나사렛을 떠났습니다. 사실 마리아의 처녀 임신은 마리아가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뜻대로 순종하고자 결단을 했지만 순종의 대가로 찾아온 것은 조롱과 멸시, 무거운 마음의 고통 뿐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을 찾아 가기전 마리아는 상심한 자신의 영혼을 간신히 부여잡고 슬프게 울부 짖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마리아가 찾아가고자 했던 엘리사벳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든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엘리사벳도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 나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은 폐경기 이후 임신함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능글맞은 비웃음을 당하거나 혹시 다 늙어 아이를 갖게 됨으로 인하여 나타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기형아는 되지 않을까 태어난다 해도 정신적 장애는 생기지 않을까 등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아픔들을 가슴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어느날 방문을 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안아 주었습니다. 이때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본문 41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 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의 문안을 받고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기뻐 뛰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에게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사벳의 마리아에 대한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어지고 힘이 되었을까요?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이 말을 원문대로 보면 "네가 여자들 중에 복 되도다 그리고 너의 복중의 열매가 복 되도다"라는 말입니다. 왜 이 말이 귀합니까? 왜 이 말이 마리아에게 그렇게도 위로가 되었을까요? 사실 마리아의 처녀 임신은 엘리사벳 처럼 남편이 있는 여인이 임신한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사실입니다.

정혼자인 요셉도 마리아와의 관계를 조용히 정리해 버리고자 할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변의 가족들, 친구들, 동네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여 짊어져야 할 짐이 무겁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며 치유할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억울한 경우를 당했을 때 우리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함께 아파해 주는 사람이 우리들 옆에만 있어도 얼마나 힘이 되고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지쳐있는 자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하는데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스코틀랜드의 섬 앤드류 대학 총장 튤록 부부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1861년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공이 별세하므로 여왕은 외로운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튤록 총장이 죽게 됨으로 그 부인 역시 외로운 여자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여왕은 아무런 예고 없이 과부된 튤록 부인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툴록 부인은 여왕을 보고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려는데 여왕이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어나지 마시오. 나는 오늘 여왕의 신분으로 당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오. 남편 잃은 한 여자가 남편 잃은 여자에게 찾아온 것이오"

성도 여러분! 엘리사벳의 "여자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는 말은 그대로 마리아의 아픈 마음을 관통했고 즉시 치유하였습니다. 상한 마음이 치유된 마리아가 어떻게 했습니까? 마리아는 즉시 엘리사벳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본문46절을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상처진 심령이 치유된 자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게 됩니다. 세상을 향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말 한마디에 지금까지 지고 있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것, 어깨를 짓누르던 것이 다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숨을 쉬며 살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들이 없으십니까? 이런때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짓밟고 무너 뜨릴 수도 있고 세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에 상한 심령이 치유되어지고 답답함과 괴로움 속에 있는 사람을 새롭게 회복시키는 은총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고인 되신 김우영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목사님을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시집살이 하는 동안에 저는 우리 영감님 때문에 그나마 살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얼마나 못살게 하시 던지 도저히 살수가 없었습니다. 치마 뒤집어 쓰고 저 깊은 방주에 나가 빠져 죽으려고도 했고, 양잿물 마시고 죽으려고도 하는등 몇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밤에 잠들기 전에 제손을 꼭 붙잡아 주었답니다. 거칠 거칠한 손, 고되게 일한 그 큰손으로 꼬옥 잡아주면 눈물이 흘러 넘쳤지요"

성도 여러분! 필요로 하는 자, 잡아 주는 자, 위로해 주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땅 위에 널리 펼쳐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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