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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노가 주는 교훈 (창 3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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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디나가 세겜 땅에서 봉변을 당합니다. 상대방은 그 지역 추장인 하몰의 아들 세겜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딸입니다. 그런 딸이 이제 겨우 14살이나 되었을 법한 어린 딸이 봉변을 당했습니다. 분통 터지고, 분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일입니다. 동생 디나의 일로 오라비들도 화가 치밀었습니다. 치미는 분노를 추스리지 못하고 있을 즈음에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정식으로 청혼을 하러옵니다.

그때 자식들은 할례를 받아야 같이 살 수 있고 청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안에 따라 그곳 사람들은 할례를 받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아 3일째 되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어 하몰과 세겜을 비롯 그 지역 사람들을 칩니다. 그들의 재산, 양과 소와 나귀를 빼앗고 자녀들과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약탈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속이 다 후련하시지요? 그런데요.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신앙적인 태도입니까? 우리야 후련하다 치더라도 그렇게 한 것이 그들이 한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들이 분명 욕정에 이끌리어 디나를 범했다면 지금 이렇게 행하는 것은 분노라는 감정에 이끌린 것은 아닙니까? 내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한 것은 분명 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처사가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행해놓고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짜 신앙은요, 믿음은요, 정말 하기 힘들 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기 힘들고,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버거울 때, 감정의 충동으로 인해서 막 괴로울 때 하나님 부여잡고 일어나는 자가 진짜 신앙인이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누구나 하는 방법으로 아무런 고민과 기도와 신앙적인 결단 없이 사는 것을 생명력이 있는 신앙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분노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생각하고 삶의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지혜와 믿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분노의 종노릇 하지 마십시오. 결국 그 분노의 열매를 맺습니다.

창세기 49:5~7에 야곱이 자기 자녀들에게 축복하면서 디나 사건 때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해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낯을 들 수 없게 했던 시므온과 레위에게 저주한 내용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현대 번역이 잘 이해될 것 같아서 말씀 드려 보면, "너희 두 형제 시므온과 레위야, 칼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구나. 분명히 말한다만 이 아비는 너희가 꿍꿍이속으로 짜내는 모의에는 가담하지 않으리라. 너희 모임에 간섭하지 않으리라. 화난다고 사람을 쳐죽이다니, 눈 깜짝 하지도 않고 장난삼아 남의 재산인 소도 마구 해치우는 녀석들. 하는 짓 그 횡포가 너무도 잔인하구나. 저주를 받으리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흩어지게 하리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흩어 놓으리라."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발산시키는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여동생 때문에 참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저질러진 일인데, 그런 행동의 결과가 결국 부정적인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분합니까? 그런데요,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지만, 그 연약함으로 인한 품성과 행동과 태도가 그의 삶과 믿음의 현장을 주장하기를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범죄하기 쉽고, 허물 많다 하여도 결국 주님은 ‘그래 너희들이 그렇지 그래 알았다’고, 하시지 않고, 대신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요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었다고 변명이 전부여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시험과 연단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 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분노가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절제하고 인내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노 때문에 죄를 지으면 안됩니다.


2. 분노로 거짓이라는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까?

야곱은 속이는 자입니다. 어찌보면 야곱의 인생은 이 속이고, 거짓된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축복된 인생,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의 사람인 이스라엘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의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야곱은 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정말로 많은 수고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아들들이 이 아버지가 뼈저리게 느끼고 이겨냈던 그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들은 지금 복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할례를 받으라고 제안하고, 그 제안을 통해 그토록 아버지가 버리고자 했던 부족한 인생을 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가슴에 아픔이요,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분명 세겜은 이제라도 뉘우치고 디나를 아내로 맞겠다고 지금 나아오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의 진심을 지금 믿는다는 사람들이 속이고, 어기고, 거짓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합당한 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분한 마음이 있어도 거짓말해서는 안됩니다.


3. 갚으시는 이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거짓말로 할례를 받게 하고 3일째 되는 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부지중에 성에 들어가서 모든 남자를 죽이고 양과 소와 나귀를 빼앗고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디나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세겜이 자기 동생에게 한 것보다 백배나 더 아프게 해 주었습니다. 복수한 어느 편으로든지 덕이 없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복수는 복수를 낳게 됩니다.

성경에는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분노가 절제가 잘 안되더라도 원수를 자기가 갚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12:19절에서 "친히 원수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히브리서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시편 23:5.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시고" 끝으로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행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49:6.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창세기 49:7. "저주를 받을 것이요"
시편 37:8.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잠언 14: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잠언 29:22. "노하는 자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마태복음 5:22. "심판을 받게 되고"
갈라디아서 5:20~2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야고보서 1:20.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사람이 분노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분노가 거짓을 낳게 하든지 복수하게 한다든지 하나님께 저주받게 한다면 백해무익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분을 내어도 죄는 짓지 말고 오래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빨리 처리하는 지혜와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분이 생기기까지는 그 분노 속에서도 하나님의 바라심이 있을 터이니 하나님의 뜻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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