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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축제] 기쁜 잔치 (에 8: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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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설교는 평소보다 좀 짧습니다. 봉헌특송이 둘 있습니다.
또 쉽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일에도 설명을 붙였습니다.
2부 예배에 주로 오시겠지만 이 자리에도 오늘 초청을 받아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119 새생명 큰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잔치는 우리교회 창립 46주년을 기뻐하는 생일잔치이기도 합니다.
잔치라고 하면 먹고 마시는 것이 다인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잔치에는 먹고 마시는 것과 함께 좋은 분위기, 즐거운 이야기, 아름다운 교제, 이렇게 종합적인 즐거움이 있어야합니다.
오늘 잔치는 종합적인 즐거움이 넘치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먹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떡도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잔치의 종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지금 말씀드린 종합적인 즐거움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삼위영가로 부른 13장은 원래의 제목이 ‘기쁨의 찬송’입니다.
찬송가 13장을 열어서 13이라는 숫자 밑을 보세요.
영어로 ‘Hymn to Joy'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찬송은 베토벤이 작곡한 ’환희의 송가‘라는 합창곡에 찬송가 가사를 붙인 것입니다.
3절을 보세요. 중간에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의 삶은 기쁨이 바다처럼 넘치는 생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새터민들을 위한 예배를 드립니다.
새터민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대성공사라는 정부기관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원이라는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옵니다.
대성공사 안에 이들을 위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이름이 평화교회입니다.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합니다.

그 분들, 남한에 와서 낯선 환경에 얼마나 긴장되겠습니까?
또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교회에 와서 만이라도 그 긴장을 풀고 웃고 불안 대신에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맛있는 것도 많이 마련해 갑니다.
예배 시간이 잔치의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 힘씁니다.

오늘 본문도 잔치이야기입니다.
이 잔치는 지금으로부터 2,480여 년 전 페르시아라는 나라, 지금 이란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벌인 잔치입니다.
그 때 페르시아는 세계를 다스리는 대제국이었습니다.
에스더서 1장 1절을 보면 그 때 페르시아 왕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구스는 지금의 에티오피아입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까지 다스린 것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지방은 백이십칠 지방이나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이전에는 바벨론이 세계를 다스렸는데 유다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었습니다.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무찌르고 ‘유다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해서 많은 유다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이 벌인 잔치입니다.
이 유다인들이 벌인 잔치와 교회의 잔치는 공통된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이 되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와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공통된 점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는, 아주 기쁜 잔치라는 점입니다.
잔치자리는 기쁜 자리입니다.
잔칫집에서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미움을 받습니다.

여러분, 여기는 잔치자리입니다. 얼굴을 펴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얼굴을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늘 잔치’인데 오늘은 특별히 ‘큰 잔치’입니다.
크게 기쁜 얼굴을 하시기 바랍니다.

유다인들이 벌인 이 잔치는 잔치 가운데서도 기쁜 잔치였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을 미워하던 하만이라는 고관이 있었습니다.
하만이 유다인들을 몰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왕에게 모함을 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날을 정해 유다인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에 3:13b)라는 조서가 전국에 전달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왕후가 유다 출신 에스더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이 에스더의 결사적인 노력으로 유다인들은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의 친척으로 에스더를 키운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르드개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유다인들을 해치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라’는 조서가 전국에 전달되었습니다.
유다인을 몰살시키려던 하만은 나무에 달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 잔치는 그것을 기뻐하는 잔치였습니다.
민족이 몰살당할 뻔 했다가 살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갚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성경 본문을 다시 보세요. 기쁘다, 즐겁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15절을 보세요.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절을 보세요.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절을 보세요.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그런데 여러분, 아셔야합니다.
교회의 잔치는 이 유다인들의 잔치 이상으로 기쁜 잔치, 즐거운 잔치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만의 음모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우리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영원한 사망입니다.
이 사실을 좀 더 자세하게 말씀 드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로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8:24)
라고 비통하게 탄식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험생이나 학부형들,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는 것, 중요합니다.
건강, 중요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좋은 것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안락한 노후, 건강, 다 허사가 됩니다.

교회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입니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사람은 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하나님 사이가 죄로 막히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얼른 심혈관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제거해 주는 병원입니다.
영원한 사망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주는 곳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잔치, 얼마나 기쁜 잔치이겠습니까?
여러분, 마음껏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에스더서는 잔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에스더서 1장을 보면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베푼 잔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방관, 신하, 장수, 각 지방의 귀족들을 모아 백팔십 일 동안 잔치를 했습니다.
그 잔치가 끝난 다음에는 백성들을 위해 칠 일 동안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잔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만국기를 내걸고 차일을 쳤는데 아닥사스다 왕의 잔치는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금 잔으로 마시게 했다고 했습니다(에 1:6-7).

어주(御酒), 왕이 내리는 술이 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잔치는 그 잔치만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기뻐하는 큰 기쁨이 넘치는 잔치였습니다.

세상의 잔치들 가운데는 교회의 잔치 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기뻐하는 잔치입니다.
세상의 잔치들 보다 기쁨이 더 크고 넘칩니다.
여러분, 교회의 이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마음껏, 크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수고와 희생이 있어서 이 기쁜 잔치가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이 기쁜 잔치는 저절로 마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비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쁜 잔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을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누군가 ‘임금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만의 음모 때문입니다. 임금님, 그 명령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임금님께 아뢰어야 하는데 임금님 앞에 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법에는 임금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이 있는 안뜰에 들어가면 누구를 막론하고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왕이 손에 들고 있는 금 규를 내밀면 살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동족을 살리기 위해서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으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나갑니다.

그 전에 한 일이 있습니다.
밤낮 삼 일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동족들에게 부탁해서 그들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때 에스더가 한 말이 유명합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했습니다.
동족을 위해서 일하다가 죽게 되면 기꺼운 마음으로 죽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오늘 이 119 새생명 큰 잔치를 위해서 지난 몇 주일 동안 전 교인이 릴레이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에스더는 그렇게 기도한 다음에 왕 앞으로 나갔습니다.
왕이 금 규를 내밀지 않으면 에스더는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007 위기일발’보다 더 한 ‘에스더 위기일발’입니다.
성경을 보면 왕이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금 규를 그에게 내밀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이 부분을 볼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사흘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면 얼굴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리해질대로 파리해졌을 것입니다.

제가 요즘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식사의 양을 줄이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저를 보고 ‘얼굴이 안되셨네요. 어디 아프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식사의 양을 줄여도 그런 소리를 듣는데 사흘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니 그 얼굴이 어떻게 되었을 것입니까?
그런데 그 얼굴이 어떻게 사랑스럽게 느껴졌을까요?
하나님이 그 마음을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의 얼굴에 보이지 않는 안경을 씌어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그 다음에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알렸습니다.
왕은 대단히 노해서 하만을 사형에 처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 기쁜 잔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일, 기쁜 일, 큰 일 뒤에는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수고와 희생이 반드시 있습니다.
자녀의 성공 뒤에는 부모의 수고와 희생이 있습니다.
운동선수의 성공 뒤에는 코치, 감독 등 좋은 지도자의 수고가 있습니다.

여러분, 나를 위한 보이지 않는 수고의 손길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이 아름다운 잔치가 마련되기 위해서도 많은 분들의 수고와 기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실 텐데 그 때 반드시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부터 나와서 준비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교회의 이 잔치는, 우리가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바뀐 것을 감사하면서 갖는 이 잔치는 예수님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부릅니다.

서울 마포에 있는 난지도가 지금은 아주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만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곳은 서울시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었습니다.
난지도에서 날아오는 파리들 때문에 마포 성산동, 망원동, 이런 곳들은 집값이 오르지를 않았습니다.
난지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쓰레기 더미를 뒤져 팔 수 있는 것들을 모아 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난지도를 인생의 종착역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난지도에 교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난지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 교회의 목회자들을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한 부류는 난지도에 살면서 목회활동을 하는 분들입니다.
한 부류는 바깥에 살면서 필요할 때만 난지도에 들어오는 분들이었습니다.
난지도 주민들은 악취가 나는 난지도에서 자기들과 같이 살면서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님들을 참다운 목회자로 여겼습니다.

하늘나라에 비하면 이 세상은 난지도보다도 더 한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하는데 예수님이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했는데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즐거운 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그 희생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값진 희생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기쁜 잔치를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잔치를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공통점이 되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그렇게 기쁘게 잔치하는 것을 보면서 본토 백성들이, 페르시아 사람들이 유다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유다인이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때 호적제도가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관청에 가서 ‘내 국적을 유다로 바꿔주십시오.’ 했는지, 아니면 유다인 남성을 신랑으로 맞거나 유다인 여성을 신부를 맞아들였는지, 유다인의 옷을 입고 유다인의 풍습을 지켰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성경은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페르시아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주류민족인 페르시아 사람들이 소수민족인 유다인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정복민이 어떻게 피정복민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혹시 ‘유다인들을 해치는 사람들은 모두 죽여라’ 하는 명령이 내리니까 살기 위해서 ‘나는 유다인입니다.’ 이렇게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살기 위해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어야합니다.

여하튼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오늘 교회의 이 잔치를 통해서 이런 놀라운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에서 2,400여 년 전 유다인들의 잔치와 오늘 교회의 잔치는 기쁜 잔치라는 점과 수고와 희생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점이 공통 된다고 했는데 세 번째 점,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공통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구경하러 오셨던 분들이 구경꾼에서, 손님에서 이 교회의 주인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실제로 그런 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 시몬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시몬은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예루살렘에 왔다가 누가 십자가 사형을 당한다니까 구경을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주 쓰러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구경하러 나왔다가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힘이 들었지만 예수님을 도운 사람으로 그 이름이 잘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잘 믿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는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구레네 시몬인 것이 거의 분명합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입니다. “니게르”는 검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예수님의 장엄한 최후를 가까이에서 목격했기 때문에 이렇게 변화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위대하게 느껴지고 더 믿고 싶어지는 분입니다.
오늘 여기에 손님으로 오신 분들 가운데도 예수를 믿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분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찬송가 314장을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 3절 가사를 다시 봅니다.

천국종을 치고 잔치 베푸네 돌아온 자 참여하도다
오늘 귀한 영혼 거듭 났으니 기쁜 소식 전파하여라
영광 영광 주께 돌리세 하늘 비파소리 들리네
파도소리 같은 찬양소리를 천지진동하게 부르세

이 자리는 천국잔치입니다,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마음껏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귀한 영혼이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어서 우리가 이 기쁜 잔치를 하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마음껏 즐기고 귀한 영혼이 거듭나는 일이 많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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