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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찾아야 할 기쁨의 근원 (빌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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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할 기쁨의 근원(빌 1:1-1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독교를 가리켜 '희락의 종교, 기쁨의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기쁨의 소식인 까닭에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구원과, 죄 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고, 천국의 소망이 있고, 그래서 그 마음속에 늘 기쁨이 충만하게 넘쳐나게 되기 때문에 성도들의 사는 삶은 항상 기쁘기 마련입니다.

옛날 '임금님이 사는 성에는 항상 깃발이 꽂혀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성안에 임금님이 계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자기 안에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계시다는 표시로 기쁨의 깃발이 항상 펄럭여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면서 기쁨이 없다고 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제 월드컵 축구팀이 네덜란드와 친선 축구경기를 했는데 2:0으로 지니까 '우리 집사람이 힘이 빠진다.'고 말했는데 저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건국 이래 전 국민이 한 마음으로 기뻐했던 때가 바로 '4강신화'를 이룬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대~한 민국"을 외치면 모두가 '짝짝짝 짝짝!'이라면 밤잠을 설레었고, 거리 운동의 아름다운 세계사적인 좋은 선례를 남겼던 대회이었습니다. 참으로 모든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기뻐했던 이런 대회들은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기뻐하라.'는 말을 놀랍게도 약 20번 이상이나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기쁨의 편지를 좋은 환경에서가 아니라 캄캄한 옥중에 혼자 갇혀 고통을 당하면서 오히려 자유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가리켜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보여 주는 편지'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일시적인 외부의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서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의 기쁨이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데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여행자가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순경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경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경에게 "왜 가까운 교회도 있는데,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라고 말해 주었답니다. 이 말은 '우리 신앙인들의 얼굴 표정이 기쁨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재미교포들이 하는 말은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겉으로는 물질적인 풍요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잘사는 것 같지만 고국을 떠나서 이방 나라에서 살고 있는 자기들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고 물어 보면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의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 나오는 '기쁨의 근원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오늘 신앙인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빌립보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는 말씀은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한 이 말씀을 가지고 기쁨의 근원은 어디에서 구하며, 찾고 누릴 수 있겠습니까? '기쁨의 출처, 기쁨이 생기는 근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도 기뻐한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쁨을 쾌락에서 찾고 있습니다. 쾌락은 일시적인 기쁨은 줄지 모르지만 더 큰 고통과 문제를 가져옵니다. 술로 쾌락을 누려보세요. 마약으로 쾌락을 누려보세요. 술집 여자들과 쾌락을 누려보세요. 그 말로가 어떻게 될까요? 우선 몸이 망가지고 인격이 추락하며 재산도 다 날아가고 가정이 깨어집니다. 참으로 그 결과는 비참해집니다. 그래서 잘못된 쾌락 추구는 사탕을 발라놓은 독약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기쁨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분명히 깨닫고 주안에서 가쁨과 소망을 찾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요. 죄로 망할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어 믿음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십자가의 보혈로 공로로 주안에서 거듭난 새로워진 피조물이요, 전적인 은총으로 법적으로는 의의 종이라는 관계성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라는 말은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힌 복음의 사역자요. 구속의 보혈로 값주고 산 주님의 선택받은 일꾼이요. 오직 삶의 목적이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사람이요. 살아도 주님의 것이요, 죽어도 주님의 것이므로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그래서 나는 전적으로 주님께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은 어두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유스러운 빌립보 교인들에게 '여러분에게 기쁨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기뻐하는 것 같이 기뻐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은혜와 평강과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권하며, 그들에게 '참된 기쁨을 가지라.'고 권하며 자신에 주님 때문에 넘치는 주안에서의 기쁨을 나누어 주는 바울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환난과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구속받은 은총에 대한 큰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속해 있고, 선한 목자되신??예수님께서 영원토록 동일하게 내 길을 인도하신다는 확실한 믿음 위에 서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처지와 형편의 모든 것을 다 아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신뢰함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합력하여 결국 더 좋은 결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는 것을 믿을 때에 주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딴 근심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라는 복음 성가가 있듯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자녀가 되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고 주님께서 선한 목자로 나를 세상 끝 날까지 인도해 주시며, 나를 섭리하신다는 신앙의 관계를 분명히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회사인 '코닥(KODAK)사'의 사장은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 놓고도 마침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의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이며 시인인 '니체(Friedrick Willhelm Nietzsche)'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정신병자가 되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장 지성인인 것 같았지만 믿음과 기쁨의 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에, 비록 몸은 매를 맞아 고통이 심했지만 그들이 구원받은 감격이 가득해서 기쁨이 넘치고,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받은 것마저도 너무나 감사해서 솟아나오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감옥 안에 죄수들이 그 기쁨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로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로 간수장과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서도 항상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4절에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주안에서 기뻐해야 할 이유를 깨닫고 기뻐하면 고통을 이기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혼자서는 이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감당할 깊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며, 주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쁨의 뿌리를 가졌던 바울의 신앙 고백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라는 복음성가 가사처럼 우리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먼저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왜 걱정하십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하는 기쁨의 뿌리를 가졌던 까닭에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를 즐겁게 하고 명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소유한 기쁨보다 주님 때문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토레이 목사님은 '일 년 365일을 세속적으로 사는 것보다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많은 기쁨을 준다.'고 고백하면서, 그는 평생 살아온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참된 행복이란 눈에 보이는 재물도, 명예도 아닙니다. 주안에서 살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찾아 나오는 기쁨의 뿌리를 찾은 사람은 환경의 여하를 막론하고 참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4 절에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의 형제들과의 교제(交際, association)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3~4절과 6~8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 첫머리의 이 말씀은 시간과 거리에 관계없이 '믿음의 형제들이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기뻐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과거 올림픽선수촌 기독교관에 왔던 중국 선수들은 한문으로 된 성경을 가져갔고, 또 소련 선수들은 러시아어 성경을 가져왔습니다. 헝가리의 어느 팀 코치는 이번 기회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들은 만남의 집에서 크리스천 봉사자들이 선수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깊은 차원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념의 벽을 넘어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 참 기쁨의 나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2장 17~18 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권합니다.??'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믿음의 형제들이 친 형제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너희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심장으로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이 바로 우리 교회 성도들의 신앙 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모 신학대학 구약학 교수였던 '김정준 박사'는 젊은 시절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산 요양소 침대에 누워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그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는 섬광과 같이 번득 그의 영혼을 깨우는 "죽을 때 죽더라도 오늘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말기 환자들의 병동을 찾아가 그곳 감당 간호사에게 방 청소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간부터 환자들이 버린 휴지를 치워주고 침구를 정리해주며 그들을 돌보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병세는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요양소를 나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고 신학대학 교수가 되어 능력이 있는 헌신의 삶,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여행하다가 한 자매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자매는 '너무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자살하고 싶은데 어쩌면 좋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이에 테레사 수녀는 "자살하기 전에 내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십시오. 내가 일하고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한 달만 나를 도와 일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에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드리지요."라고 하였답니다.

그 자매는 테레사 수녀의 말대로 캘커타 슬럼가에 가서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섬기며 그들을 위해 몸 바쳐 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도 삶에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돕고 섬기는 가운데 기쁨의 환희가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자매는 평생 그곳에서 테레사 수녀를 도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협력하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을 얻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 27~28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빌립보서 1:5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여자 분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남을 의심하며 살아왔답니다. 이렇게 남을 불신하게 된 것은 9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세 딸을 키우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처준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이었답니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자기 앞에서는 아주 좋은 말은 다 하면서 뒤에서는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하여 사람을 속였습니다. 이런 위선자들 때문에 그 여인은 '절대로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고 어느 누구 하나 의지하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늘 허전했습니다.

이렇게 텅 빈 마음으로 홀로 지내던 어느 날 친구가 '전도 집회에 나와 보라.'고 모교회로 초청했습니다. '내가 거기 간다고 마음이 달라지겠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마음이 끌렸답니다. 친구와 함께 참석한 첫날 뿐 아니라 그 다음날도 혼자서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삼일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저 슬픔과 회개와 어떤 다짐들이 복합되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답니다.

목사님께서 기러기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해주실 때 큰 감동이 왔습니다. 기러기들은 V자 대형으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데, 맨 선두에 선 대장 기러기가 일행이 뒤쳐지지 않도록 소리를 지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인도한다며, '하나님이 바로 우리 인생의 대장 기러기가 되신다.'고 말씀하신 설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도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니, 힘겨운 자신의 삶이 서러워서 울었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요 내 남편이 되신다.'니 감격해서 울었으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어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돌아온 자신의 처지가 면목이 없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왜 그렇게도 마음이 홀가분한지 그 자리에서 등록하고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과 성도님의 따뜻한 배려와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해주시는 사랑에 행복했습니다. 지금껏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었기에 왜 이제서 나왔는지 후회가 되었답니다. 자신을 돌봐주시는 사람들의 격려와 사랑으로 그분의 얼굴은 날마다 달라졌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이용하고 괴롭히는 사람들만 만났으나 이제는 가는 곳마다 예수님께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어렵고 힘든 인생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만 의지하며 주님을 저의 남편으로 모시고 살기 원합니다. 이 힘든 인생의 끝이 안보여도 더 바닥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그곳이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운 크리스천이 되기를 기도하며, 예수님 때문에 살맛나는 세상이 된 것을 알려주고 즐거움을 찾고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시는 주님이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랍니다." 라고 간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이런 간증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빌레몬서를 읽어보면 ‘빌레몬으로 인해서 단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많은 기쁨과 위로(Much joy and comfort)"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람을 생각해도 원망스럽고, 저 사람을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 것은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처럼 이 사람을 생각해도 기쁘고, 저 사람을 생각해도 감사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이 간증한 여인이나 오네시모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십시다.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로 기도하십시다. 아울러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나의 '오네시모'가 있습니까?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가 나에게 무엇을 했든지 간에, 용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바울처럼 칭찬하고 또 빌레몬처럼 칭찬 받는 가운데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늘 아름답게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2: 2~4절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폴 토니어'라는 의사가 말하기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질병에 걸린다. 내 믿음의 형제가 참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때에 나는 치유를 받는다. 크리스천이란 말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빌레몬서 1:6절에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믿음의 형제들에게 가장 귀한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며, 참된 교제를 통해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풍성한 열매(果實, fruit)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9~11절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이 "의의 열매"라는 말씀은 9절에 있는 '사랑의 열매, 지혜와 지식의 열매, 총명의 열매'와 10절의 '선한열매와 모든 진실한 열매', 그리고 11절의 '의로운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지는 것 때문에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믿음의 씨앗을 뿌린 대로 그 열매를 거두는 생활'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에 주인이 일할 일꾼들을 불러 일하게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씩을 주자 먼저 온 일꾼들이 주인을 원망했는데 그 교훈의 요점은 부름을 받은 종은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즉,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열매를 맺어 기쁨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조금도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기쁨의 열매들이 많이 있는 것을 인하여 얼마나 기뻐해 보았습니까?

가을이 되면 누렇게 익은 곡식단을 거두는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농부들은 그 결실 때문에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대관령을 넘어오다 보니까 늦감자를 거두는데, 거기엔 꽃도, 잎도 다 지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호미를 가지고 밭고랑을 파기 시작하니까 그 속에서 굵직굵직한 감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자루 사온 적이 있습니다만 이와 같이 농사를 지었으면 그 수고의 열매를 맺어야 되듯이 성도도 갈라디어서 5장 22~23절에 기록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고 한 성령의 아홈가지 열매를 맺어야 진짜 신앙인의 삶이요 기쁨이 넘칩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열매들을 캐낼 것이 있습니까?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성령의 아홈가지 열매 외에도 믿음의 씨앗을 뿌린 대로 사랑의 열매, 지혜와 지식의 열매, 의의 열매, 선한 열매, 헌신하고 충성한 열매, 기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서 계속 거두어들이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는 성도들의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7~18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물질과 건강과 재능과 은사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거나 드리는 것은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24절에도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으며, 빌립보서 2:17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한 그 수고와 헌신의 씨를 뿌리는 신앙을 본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나누어 주고자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것도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했던 축복으로 채워주셔서 바로 우리 가정에 주렁주렁 열매 맺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고와 헌신과 봉사와 충성을 하는 심는 신앙이니 되시고, 동시에 우리 자녀들에게도 믿음의 헌신과 사랑의 수고하는 삶을 살도록 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교육하고 지도하고 양육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녀들이 더욱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을 받고, 지식과 지혜의 열매가 맺히고 의의 열매가 맺히도록 신앙지도를 잘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세상의 것 때문에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믿음의 씨앗을 뿌린 대로 풍요한 창조의 과실을 맺게 하심을 믿고 심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그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하고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 자체를 기뻐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주님께서 그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게 이 됨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는데 즉, 바울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믿음의 제물과 봉사를 믿음의 형제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뻐한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17절에도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이미 뿌린 믿음의 헌신과 사랑의 수고와 봉사와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예물들이 반드시 씨앗대로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됨을 확신함으로 인해 항상 심은 것을 거두는 축복을 기대하며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안에서 기쁨을 찾고, 성도와의 교제로 기쁨을 찾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받을 상급을 바라보면서 기쁨이 가득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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