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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넘치는 예물 (출 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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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그것을 은혜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영적인 무지를 조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Egypt 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서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자유를 얻어 모세의 인도로 조국 가나안을 향하여 부푼 꿈을 가슴에 안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Egypt을 출발한지 며칠 되지 않아 홍해의 시험을 당했다. 홍해를 건너자마자, 또 마라의 쓴 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gypt에서 가져온 양식이 모두 바닥나서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여행길에 지치고 피곤해진 틈을 이용하여 Amalekites 군대가 침략해 와 뜻하지 않게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들은 이런 우여곡절(迂餘曲折)과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출애굽 한지 약 3개월 후에 Sinai 반도에 도착하였고, 하나님은 모세를 Sinai 산으로 부르셔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며, 구체적인 설계도면을 주셨다.

하루하루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는데 이런 와중에 성막까지 지어야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Sinai 광야에서 해야 될 첫 번째 과제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이 설계에 따라, 성막을 짓는 일이었다.

모세는 성막공사의 기술자로 Bez-a-leel과  A-ho-li-ab을 불러 세우고, 그 밖의 모든 지혜로운 자들과 자원하는 자들을 불러 이 성막건축의 대역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막공사에는 엄청난 재료와 금액이 소요되었다. 출38:21-31에는 성막공사에 소요된 모든 비용이 기록되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성막건축의 총 건축비는 금이 29달란트 730세겔(약 1200kg), 은이 100달란트 1775세겔(약 3420kg), 놋이 70달란트 2400 세겔(약 2407kg)이었다.

이제 막 출Egypt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들이 농사를 지었는가? 직장에 다녔는가? 모아둔 재물이 있겠는가?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공사에 필요한 재료와 비용을 가져오도록 널리 알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듣고, 성막건축에 필요한 예물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본문 3절을 보면 특히 주목해야 할 말씀이 세 가지가 있다.
①아침마다
“아침마다” 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바치는 일에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드리고 싶어서 견디지 못했고, 더 못 드려서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드렸다. 드리는 일에 선한 경쟁심을 가졌다.

②자원하는 예물
“자원하여” 는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알아서, 라는 뜻이다.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바쳤다. 모세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니요, 의무감에 의해 마지못하여 바친 것도 아니다. 각기 자신의 처지대로 최선을 다해, 자원하여 바쳤다.

자원해서 하면, 즐거움으로 하게 된다.

자원하는 이 마음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신다. 무엇이나 억지로 하면 복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던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능히 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 하면 아무리 쉬운 일이라고 해도 힘이 들고, 지겨워서 하지 못하게 된다.

창29:20에 의하면 야곱은 자기가 좋아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7년의 세월을 라반에게 종처럼 봉사했다. 그러나 그는 그 7년을 수일(數日)같이 여겼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다보니, 힘들거나 지루함을 몰랐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러해야 할 것이다.

③연하여 가져오는 고로.
.“연하여” 라는 말은 계속해서,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라는 뜻이다.
그들은 아낌없이 예물을 바쳤다.

이제는 너무 많이 가져와서 문제가 되었다. 일하던 사람들이 모세에게 와서 말했다.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오기 때문에 성막공사에 쓰고도 남겠으니 백성들에게 명하여 이제는 그만 가져오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실 이것은 즐거운 비명이었다. 모세는 이 말을 듣고 백성들에게 “이제부터서는 그만 가져오라” 고 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가져오지 않았다. 그들이 이미 바친 것만으로도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을까?

이스라엘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룩하고 일정한 장소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이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이었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이었다.

성막을 짓는 일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아낌없이 바쳐 성막을 지었다.

그들이 바친 금이나 은, 놋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요긴하게 쓸 물건들이었다. 넉넉해서 남아돌아서 바치는 것은 귀한 것일 수 없다. 가난한 가운데, 어려운 가운데서 아낌없이 바치는 것이 귀한 것이다.

막11:에 있는 말씀대로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니 어린 나귀새*끼를 기쁨으로 주님께 내어 드린 주인과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 건축을 위해 바친 것들은 그들이 출Egypt 할 때 하나님이  훗날 성막건축을 하게 하시려고, Egypt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다.(출12:35-3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님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물질이나, 재능, 지혜,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대상29:11에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에 대한 감사 때문이었다.

Egypt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 기갈에 처한 그들을 위해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 기근에 처한 그들을 위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배불리 먹여주신 하나님, Amalekits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이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니, 그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낌없이 다 바쳤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축복은 구원의 복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최고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우리에게 있어서 심각한 것은 신앙의 불황이요, 감사의 불황이다.
사람은 생각대로 된다. 생각은 사람을 그대로 만든다. 모든 일을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매사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매사가 감사로 귀결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 유형을 보게 된다. 

①일몰과 같은 신앙.
저무는 태양이다.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이나, 원망만 하는 사람의 신앙은 일몰과 같은 신앙이다.

②일출과 같은 신앙.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신앙의 삶이다.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은 일출과 같은 신앙이다.

번영과 풍요의 씨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심은 것이 있어야 거둘 것이 있는 것이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받기만 하고, 바칠 줄을 모른다면, 배은망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껏 살아왔고, 우리의 미래 역시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다.

미래에 주실 하나님의 상급을 믿음과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기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그런 다음 하나님께로부터 임할 위대한 축복을 기대하라.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도 거기에서 감사를 제거한다면,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
종은 칠 때 종이고, 장작은 타오를 때 불인 것처럼, 믿음은 감사할 때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은 감사와 비례하는 것이다. 감사는 믿음의 시작이요, 결론이다.


현대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감사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감사에 눈을 떠야 한다.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감사가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감사 없는 메마른 인생의 삶에서 이제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란다.
그저 한 순간 감사하고 마는 인생이 아니라, 평생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감사는 깨닫는 자의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감사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야 한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감사하면 맥박이 고르게 되고,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력을 증진시켜,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산다고 한다.

행복은 내게 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결론)

생각(Think)이라는 말과, 감사(Thank)라는 말은 비슷한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하루를 살기에도 벅찬 광야생활이었지만, 성막을 짓는 일에 필요한 그 엄청난 재료들을 감사함으로 아낌없이 바쳐, 쓰고도 남을 만큼 드렸던 것처럼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이런 넉넉한 감사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적당히, 사랑의 흉내만 내신 것 아니다. 독생자까지 주시고, 그 독생자는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셨다면, 그 사랑은 최선을 다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도 형식적으로 적당히 감사의 흉내만 내는 맥추감사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최선을 다한 감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 감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감사할 일을 더욱 많게 하여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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