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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오병이어 감사의 기적 (막 6: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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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과 생업위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사건은 신약성경의 4복음서중에서 유일하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모두 기록된  사건입니다. 왜 이 사건이 4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었을까?  그만큼 복음서 기자 당시에 중요한 사건이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과 함께 빈들 벳세다 광야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 모두가 배가 고픈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은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의 필요를 아셧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빈들에 모인 이들에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남은 음식이 12광주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는 한 아이가 혼자 먹기 위해 싸가지고 온 도시락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찐빵5개 정도와 작은 물고기 2마리정도입니다. 이 음식은 당시 유대갈리리 사람들 중에 가난한 서민들이 먹는 음식입니다. 보리떡은 거칠고 값싼 떡이었습니다. 물고기는 갈리리 호수에서 잡은 일반적인 작은 고기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이 주님의 손에 들려졌고 우리 주님은 이 음식을 축사하셨습니다.

여기 축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축복과 감사가 담긴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식사전에 하나님께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드려지는 기도문이 이렇습니다. “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세상의 왕이시고 땅의 소산물을 생산케하셔서 지금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 복을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을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오병이어를 나누어주었을때에 놀라운 감사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장정이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을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할 만한 기적입니까? 만약에 오늘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우리의 상황을 돌아봅시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마치 빈들에 서있는 것같을 수 있습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내가 서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손에 있는 것은 지극히 작은 보리떡5개와 물고기2마리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나혼자의 한끼 식사도 안되는 양의 소유입니다. 빈들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일까요?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요즘 특히 물질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요즘 자영업을 하는 많은 분들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
단지 물질의 문제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의 문제, 내일에 대한 불안과 장래의 삶에 대한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삶을 마치 빈들에 서있는 것처럼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감사를 점점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 주님께서는 빈들에서 오병이어를 통하여 기적을 이루십니다. 주님이 기적의 주인공이십니다. 기적의 근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로서는 엄두도 낼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행하실때에 인간적인 요인들이 있습니다. 기적을 발생하게 하는 상황적인 요인들이 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행하시지만 사람을 통해서 행하십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를 감사의 기적을 이루시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맥추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삶의 감사의 기적을 얻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1. 우리의 책임을 느끼게 하십니다.

36-37절
주님은 대책없이 모여든 무리를 향하여 제자들에게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여기 이 무리의 숫자가 적어도 1만5천명정도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 무리들이 식사시간이 되었을때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제자들이 “무리를 보내어 두로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하소서”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각자가 해결하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7절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합니다. 한데나리온이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삭입니다. 그러면 5만원으로 계산하여도 최소 천만원이상의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우리들은 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저 사람들의 배고픔의 문제는 저들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 나의 책임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길때 누구의 책임으로 돌립니까?
보통 나라의 문제는 정부 지도자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가정의 경우는 부모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교회의 경우는 교회 목사님 장로님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물론 그렇게 지도자들의 책임일수 있습니다. 환경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주님은 빈들에서 많은 무리들의 배고픔의 문제를 바라보실때에 ‘나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는 책임을 지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빈들같은 상황에서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서 ‘나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필요합니다. 물질의 빈들,관계의 빈들,삶의 빈들에서 먼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탓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이 상황에서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우리 각자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가정에서 책임지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직장에서 책임지는 직장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책임지는 사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문제가 생기고 힘든 곳에 내가 먼저 책임지려고 할때 감사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을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누구를 탓하고 하면 그곳에서는 싸움만 일어나게 됩니다. 한번 우리가 다함께 고백하여 보겠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은 책임지는 삶을 사셨습니다.
빈들에 모인 그들이 배가 고프고 밥을 먹어야 하는 문제를 책임있게 받아들이셨습니다. 다.
그것은 먼저 마음으로부터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빈들에서 굶주린 군중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셨나요?오늘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에 대한 영어성경은 “compassion"입니다.
이 단어는 “함께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즉 공감하다의 의미입니다. 빈들에 있는 다수의 가난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그 고통을 느끼시면서 그냥 느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의 마음을 갖고 책임지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그 고통을 느끼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주님은 동일한 책임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돈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돈이 없고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고 새소망을 갖은 주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향하여 더 어려운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주어야 하고 그들을 섬겨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감사가 있게 될줄 믿습니다.

음성에 가면 꽃동네라고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가 생기게 된 배경이 이렇습니다. 걸인 한 사람이 신부님의 숙소에 찾아왔습니다. 신부님은 그에게 한끼분량의 돈을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는 다시 찾아왔고 계속 찾아왔습니다. 한번은 궁금하여 신부님이 그의 행적을 미행하였습니다. 걸인은 계속 구걸하여 아홉사람의 식사비 정도를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숙소로 향하였는데 형편없는 그곳에는 아홉사람이 누워있었습니다.
그가 다시와서 신부님에게 구걸했을때에 신부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도 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9명의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 사람은 아주 충격적인 대답을 하였습니다. ”신부님 저는 걸어다닐 수 있거든요, 절어다닐 수 있는 제가 누워있는 저 사람들을 책임지지 못하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한마디가 신부님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는 얼마나 이웃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가?“

어떤 분들은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단한가지 그리스도예수 때문입니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동정하는 삶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여러분 대부분 감사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받으려고할 때 감사도 사라집니다. 먼저 주려고 할때 감사도 생깁니다. 감사하면서 나의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는 삶이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2. 주님께 작은 것이라도 드려지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 주님의 제자들은 떡5개와 물고기2마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주님의 손에 드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 전부 드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작은 헌신이 주님께 드려진 상황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사서 보라”고 하십니다. 알아보았더니 ‘떡5개와 물고기 2마리’였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가 먹기 위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객관적으로 빈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적은 양의 음식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손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물론 주님은 이것 없이도 기적을 행할 수 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작은 정성일지라도 작은 헌신일지라도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 작은 것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이것이 주님의 손에 들려지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무엇이 너희에게 있는지 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너희에게 있는지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합니까? ”주님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하십니다.
구약에 우리 주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로 삼겠다고 했을때 모세는 ‘나는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네 손에 갖은 것이 무엇이야“라고 하십니다. 그때 모세에게는 마른 지팡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셨습니다.모세가 들고 있었을때에는 그 지팡이는 단순히 지팡이로서 양을 지키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릴때에 그 지팡이를 통해 기적과 이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릴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우리에게 무언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빈들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찾아낸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보리떡 5개와 물고기2마리의 도시락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주님께 가지고 오라고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빈들에서 감사의 사건은 한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전혀 볼일없는 것같은 한 아이의 희생과 헌신이 감사의 기적을 일으킨 통로가 되었습니다.

빈들에서의 감사의 기적은 한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이 도구가 된 것입니다.
큰 희생이 아니라 작은 희생이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그런데 그것을 자기가 먹지 않고 예수님에게 바쳤습니다.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작은 희생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7년동안 교회 속에서 함께 주님의 일하시는 감사의 사건들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공동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작은 희생이 있을때 교회가 감사의 증거 감사의 기적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 안산에 동산교회를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유수한 교회와 미국의 유명한 교회를 여러차레 탐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간에 방문한 안산동산교회모습을 보면서 참 귀한 은혜와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별히 그 교회는 안산에 동산고등학교라는 명문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교회입니다.

작년에 입당한 안산동산교회를 가보면서 내적으로는 교육,상담,훈련,예배,선교,구제등 어느 것하나 소홀함이 없는 건강한 사역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간 그날도 다양한 평신도 사역자들이 교회에 나와서 무보수로 안내,청소,식당,상담,의료와 같은 분야에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안산의 명물이 안산동산교회이고 안산의 자랑이 안산동산고등학교입니다. 특히 안산고등학교는 전국 상위5위권의 명문고등학교입니다. 그 학교가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왕따가 없다. 술먹고 담배피우는 학생이 없다. 교내에서 아무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체벌하는 교사가 없다. 촌지가 없다. 학생도 교사도 절대로 부정행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 학교의 진학률을 보니까 우리가 인정하는 소위 명문대진학율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기적같은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고 이루었는가? 한 사람의 희생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별볼일없는 역기능가정에서 자란 한 사람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 바로 김인중 목사님이라는 한분의 희생에서부터 그 감사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나한사람이 작은 밀알로 썩을때 그 가정 속에 감사의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먼저 나 한사람이 한알의 밀알처럼 썩어 희생하는 곳에 감사의 기적이 있는 교회가 세워지게 될줄 믿습니다.

3. 우리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감사의 기적사건 배후에는 주님의 제자들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한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를 제자들이 가지고 왔다고 그러는데 요한복음 6장 8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가져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안드레는 그 어린아이가 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에게 갖다드렸습니다.
만약에 제자들의 입장에서 “이렇게 작은 음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자기 생각으로 불순종하엿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우리의 삶에 감사의 기적을 가져오는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기적을 만드십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곳에 감사의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도 순종하여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끝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39절-4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무리들을 잘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제자들은 오십명 혹 백명씩 무리를 지어 앉혔습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그때 제자들은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많은 무리들을 정리하면서 주님께서 무엇인가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믿었을 것입니다. 비록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분명히 무언가 큰 일을 행하실 것을 믿었기에 제자들은 주님이 하라는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 누가 순종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주님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으로 바라는대로 순종할대 믿음의 증거를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감사의 증거들이 나타나게 될줄 믿습니다.

먼저 순종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보면 남편에게 신뢰가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지도자에게 신뢰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사는 삶 가정 교회 직장 모든 곳에서 우리가 감사의 기적과 증거를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먼저 순종하여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자기 논리 자기 생각을 갖고 대항하지말고 오직 믿음으로순종하면 감사의 증거가 일어납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주님에게 자기의 논리와 생각으로 따지고 들고 대항하여 보십시오.결국 불평 불만만 쌓일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감사의 증거를 보시기를 원한다면 주님을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믿음대로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순종할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들을 보면 작은 재료 하나를 갖고도 맛있고 훌륭한 요리를 해낼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재료들이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면 쓰레기가 되겠지만 능력있는 자의 손안에 들어가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하여 주님의 손에 맡겨지게 됩니다.
주님의 손에 맡겨질때 그곳에 감사의 기적들이 일어나게 될줄 믿습니다. 나의 물질도 주님께 순종할 때 감사의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나의 지식도 순종할 때 감사의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나의 은사도 순종할 때 감사의 기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순종을 통하여 나의 작은 정성,작은 헌신이 주의 위대한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 런던에는 영국 성공회에 속해있는 성 바울 대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습니다. 1600년 후반에 런던에서 대화재가 일어나 런던 시내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런던 시민들은 물론이고 영국 국민 전체가 침체되어 절망과 낙심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자  영국 여왕은 국민을 위하여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멋진 예배당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여왕의 이런 마음을 알게된 영국의 한 유명한 건축가는 자신의 평생 사역으로 그 일을 자원했습니다. 그 건축가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랜(Christopher Wren)입니다. 이런 뜻깊은 의미의 성당이 건축된다는 소문이 영국 전역에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당의 일꾼이 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 성당은 무려 35년간에 걸쳐서 세워져 드디어 1710년에 성 바울 대성당을 헌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여왕이 그 성당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했습니다. 특히 이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던 크리스토퍼 랜은 여왕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여왕은 그 완성된 성당을 보자마자 입에서 “정말 놀랍군요”라는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크리스토퍼 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35년간의 모든 수고가 가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성당은 나의 설계와 감독 때문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열망을 가지고 35년간 그대로 따라준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 한사람의 순종이 있는 곳에 감사는 만들어져가는 것입니다. 나 한사람의 순종이 있는 곳에 감사의 기적이 만들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작은 것은 취하셔서 많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내게 있는 것이 비록 보리떡 5개와 물고기2마리같이 심히 미약하고 작은 것일수 잇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잡힐 때 놀라운 능력이 되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기업이 감사의 증거가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먼저 주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여러분 교회가 감사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소원하십니가? 먼저 주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순종을 통해서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할줄로 믿습니다. 빈들에서 믿음으로 순종하시면서 감사의 기적을 만들어가시는 모두의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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