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맥추감사절] 믿음의 나무, 감사의 열매 (골 3:15-17)

  • 잡초 잡초
  • 479
  • 0

첨부 1


믿음의 나무, 감사의 열매
골로새서 3장 15-17절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다음 주일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맥추 감사 주일은 의미를 잘 알고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맥추 감사절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맥추 감사절은 믿음의 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맥추 감사절을 주신 것은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음이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 사랑이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믿어진다면 삶 전체가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아직 하나님을 진짜 믿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두려움과 염려가 없어집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고 마음에 놀라운 평안이 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
예수님을 영접하면 근심도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믿음이 놀라운 것은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도 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으로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경우는 아직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제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음을 1984년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을 때 알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장애인이 될 위기 앞에서 얼마나 두려워하고 낙심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하나님은 아버님 만큼도 실제적인 의지하는 대상이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날 제 다리룰 고치신 것이 아니라 제 믿음을 고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두려움도 염려도 없이 평안해질까?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다는 아니라도 상당히 많은 이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말은 구원에 대하여 더 이상 두렵지도 염려도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나는 분명히 구원받았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것을 나는 믿기 때문에 나는 죄사함을 받았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간다.’ 이것이 분명히 믿어지는 분은 지금 믿음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해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염려하지도 않고 있지 않아요? 믿음은 두려움을 다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으니 믿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으니 믿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분들은 지금 믿음으로 평강을 누리고 있는 증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강은 구원의 확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1편 1-3절 말씀에 우리가 복되게 사는 길이 나와 있습니다.
(시편 1편 1-3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그러나 이 말씀을 안다고 누구나 복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평강의 믿음이 없으면 못합니다.

여러분, 정말 세상을 살아보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나는 손해를 보아도, 따돌림을 당해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 것이다.’ 용기가 없으면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받는 길을 보여주셨는데도 복받는 길을 알지 못하는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 모든 사람들이 다 안된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그 용기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해 주시리라” 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 전혀 두려움도 염려도 없는 사람만이 복된 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러나 두려움도 염려도 없는 평강이 대단해 보이지만, 아직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진정한 믿음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15절 후반절을 보면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평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감사가 진짜 믿음입니다. 내가 감사하게 될 때 정말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하나의 "덕목"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는 감사는 남보다 무엇을 많이 가졌다거나 원하는 것을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약속하신 말씀대로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오는 감사입니다.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납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지만 말씀으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간구하는 믿음도 평강을 누리는 믿음도 아니고 마음에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믿음으로 바뀌어집니다.

  어느 목사님이 중3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겨울 방학 수련회 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17살의 어린 자신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그 피로 자기 죄를 사하셨다는 복음을 들은 그 날 밤새 울었다고, 자신의 생애에 가장 많이 울었던 밤이었으며,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겠다고 헌신하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학생이 밤새 울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기 생애 전체를 바칠 결단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 날 말씀으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감사는 복음을 정확히 깨닫고, 성령님을 체험함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 여사는 3중고 장애자였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역경을 다 극복하였습니다. 대학에도 들어가 당당히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8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한 신문 기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 속에서 일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그 때 헬렌 켈러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임종 때, 남긴 말은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였습니다. 이 고백에서 우리는 헬렌켈러 여사의 믿음이 참 믿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믿음입니다.

  그녀가 한 번은 "내가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보고, 저녁에는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헬렌켈러의 소원은 우리들이 늘 겪는 일들입니다. 헬렌켈러가 3일 동안만 눈을 뜨게 해 준다면 보고 싶다는 그 세 가지 소원이 우리에게는 날마다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감사하지 못합니까? 믿음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사람은 아직은 분명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 때 수도원에서 제자 양육시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차이를 아십니까? 아마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감옥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실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수도원이나 감옥이나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수도원이나 감옥이나 비슷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납니다. 수도원은 하나님 말씀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으므로 천국이요, 감옥은 원망과 탄식과 후회와 불평과 불만이 있으므로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지만 감사가 없다면 감옥이 될 것이며, 감옥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함이 있다면 천국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고, 원망하면 그곳이 지옥이요, 감사와 찬송과 하나님 말씀이 풍성하면 천국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것은 내가 이제는 감사하는 사람이 됐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편 50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번에 일본 방문 중에 일본 교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일본에는 ‘오사카 사람들은 먹다 죽고 교토 사람들은 입다 죽는다.’ 는 속담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더니 우리 교회 장로님 중 한 분이 우리 교인들은 헌금하다 죽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본 교인들이 “역시 대단하군요!” 하면서 놀랐습니다. 그 때 제 마음이 쿵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애처로운 말이었습니다. 너무나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 말이 제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그 말을 생각하는데, 우리 교인들 신앙생활을 그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회를 세워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 들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옵소서. 복을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가 한 말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Thank you!' 를 가장 많이 말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No!' 라고 말할 때도 ‘Thank’ 를 사용하여 'No thanks' 라고 말한다."

  어느 목사님이 처음 미국에 갔을 받은 강한 인상이 하루 종일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감사합니다.(Thank you!)” 라는 말이더랍니다. 그런데 미국도 변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미국도 젊은 사람들은 "감사합니다.(Thank you!)” 라는 말을 잘 못한답니다. 시내 좁은 길에서 길을 비켜줘도, 엘리베이터에서 상대방에게 먼저 내리도록 배려를 해주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감사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말세가 되면 벌어질 징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계속해서 감사절을 지켜나가게 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감사를 가장 많이 고백한 사람은 다윗과 사도 바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환난과 역경 속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후,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 왕궁으로 모셔왔습니다. 그 때 다윗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다가 하체가 드러났습니다. 그 장면을 본 왕비 미갈은 다윗을 비난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 상황이 누구나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기쁜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다윗만 그런 것입니다. 솔직히 미친 짓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 점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에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 때문에 감사하여 춤을 출 수 있습니까? 

사무엘하 6장 21-22절을 보면 그 때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찌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왕도 아무 것이 아님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체면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체면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것을 비난했던 미갈은 평생 자식 없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생애를 보면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일생을 나그네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로 보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에게 편안히 쉴만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통스런 여행을 다녔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내가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는 감사는 커녕,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살았습니다.
오늘 이 편지를 기록한 곳도 별장 침대나 안락한 저택이 아닙니다. 로마의 감옥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17절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가 감옥에 있든지 고생스러운 길에 있든지 언제나 함께 계신 예수님을 분명히 알았던 바울은 감사를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고 싶으신 것입니다.

  혹시 믿음이 좋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까? 믿음 좋은 배우자나 믿음 좋은 며느리, 사위, 믿음 좋은 직원이나 믿음이 좋은 동역자를 찾으십니까? 그러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불평과 원망과 화가 많다면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배우자로서는 문제가 많습니다. 직원으로 써도 골치 아픕니다.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험담만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빨리 접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맥추 감사절은 믿음의 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첫 열매를 추수하고 드리는 감사절입니다. 모든 추수를 다 한 후에 드리는 감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광야 생활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면서 매일 만나를 먹고 살다가 농사하여 첫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열매를 거둠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첫 열매를 바치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못하는 것입니다. 첫 것을 드리라는 것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사는 지를 보시겠다는 말입니다.

내가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추수 감사절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첫 열매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내게 모든 것을 베푸실 줄로 믿고 하나님께 하나님 것을 드립니다 하고 드리는 것은 믿음입니다. 맥추 감사절이 있어야 추수 감사절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절 중에 더 귀하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맥추 감사절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잠언서 3장 9절- 10절에서 말하기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중요한 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2007년이 반이 지났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첫 열매를 다 거두셨을 것입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셨습니까? 첫 열매는 하나님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아십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맥추 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올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까? 맥추 감사절을 믿음으로 잘 지켜 여러분의 믿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놀라운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