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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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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행위를 가지라 / 본문 : 계 2:1-7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그 일곱 교회는 각기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일보」에 지금 ‘사도 바울 발자취를 따라 소아시아 7개 교회를 가다’ 라는 기사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들이 일곱 교회의 특징들을 한 마디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첫 사랑을 잃은 교회,
서머나교회는 궁핍하지만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
버가모교회는 사탄 시험에서도 교훈을 지킨 교회,
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
사데교회는 살아있으나 죽은 교회,
빌라델비아교회는 박해에도 주를 배반하지 않은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유했으나 영적으로 가난한 교회, 이렇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라는 성서주석가가 있습니다.
이 분의 책들이 한국어로도 많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 분이 오래 전에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Letters to the Seven Churches)」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서는 일곱 교회의 특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
서머나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버가모교회는 칭찬과 책망 받는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내부로부터 위협 받는 교회,
사데 교회는 살아있다 하나 죽은 교회,
빌라델비아교회는 큰 믿음을 지킨 교회,
라오디게아교회는 선한 것이 없는 교회.

둘이 일곱 교회의 성격을 대개 비슷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점을 둘 다 공통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2007년 하반기의 첫 날, 그리고 첫 주일, 성찬예식을 행한 주일, 주님께서 에베소교회에 보내신 편지를 본문으로 하여 말씀을 전하면서 ‘성도 여러분, 처음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강하게, 간절하게 외칩니다.

여러분,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집사, 권사, 장로, 직분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교사, 찬양대원, 속장, 지역장, 선교회 지회장, 각 부서의 임원, 직무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믿었을 때의 감격, 주를 처음 만난 날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성전에서 첫 예배를 드릴 때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올해 1월 1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때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애써 전도하던 사람이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그런 감격을 맛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혹시 중병을 체험한 분들, 병원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처음 일어나 걷던 때의 감격,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설 때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처음 감격을 회복하고 2007년의 새로운 반을 새롭게 출발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처음 사랑,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라는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아데미라는 여신은 다이아나라고도 하는데 다산의 신이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규모가 컸습니다.
에베소의 많은 주민들이 아데미 신상모형을 만들어 팔아서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 내용은 사도행전 19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아데미 신전에서는 부적도 많이 팔았다고 합니다.
아데미 신전은 에베소의 종교적인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를 비롯하여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번에 캄보디아에 우리교회가 열두 번째로 세운 벙뜨로교회 헌당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현지에 다녀왔습니다.
김경일 선교사님으로부터 캄보디아의 선교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불교국가입니다.
절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절 안에 학교가 있습니다. 절 안에 고아원이 있고, 양로원이 있습니다.
출생에서 사망까지 모든 생활이 절을 거쳐야 합니다.
절들이 우리나라처럼 산속이나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절을 떠나서는 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캄보디아에서는 복음이 대단히 힘 있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에베소의 주민들도 아데미 신전을 떠나서는 살기 어려웠습니다.
에베소 주민들은 모두 ‘우리는 아데미 신전의 신전지기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행 19:35).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그런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박해를 받으면서도, 왕따를 당하면서도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교역자와 장로들 간의 교제가 특히 아름다웠던 교회였습니다.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팔던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우리가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파는 덕택에 풍족하게 사는데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하니 우리가 하는 일이 천해지고 아데이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천하가 위하는 위험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더 이상 머물기 어려워서 에베소를 떠납니다.
밀레도라는 곳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17절 이하에 그 내용이 있는데 신약성서에서 가장 비장하고 또 감동적인 장면이고 내용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밝힙니다.
결박, 환난, 나가서는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신학생들이나 교역자들, 특히 선교사들이 좋아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인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는 말씀도 이 때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잘 보살필 것을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그 설교가 끝난 다음에 바울과 에베소교회 장로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36절에서 38절까지를 직접 읽어드립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떠난 다음에도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이 처음 사랑, 주님을 향한 사랑, 자기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15절에서 16절까지에서 주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주님은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5b)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가서”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는데 칭찬하러 오시면 그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입니다.
기다려지는 일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런 마음으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30b), ‘마라나타!’ 했습니다. 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꾸짖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촛대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다른 곳에 옮기기 위해서 오신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두려운 일입니다.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성경에는 촛대를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3절, 포도원의 농부들이 열매를 바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준 포도원이라는 촛대를 빼앗아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28절, 주님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 하나님께서 는 그에게 주신 한 달란트라는 촛대를 빼앗아 열 달란트 받은 종, 일을 많이 하는 종에게 옮기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가만히 돌아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와 저에게 주신 촛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촛대를 빼앗아 옮기실 것입니다.

우리교회, 하나님께서 주신 촛대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는 일곱 금 촛대가 나오는데 우리교회는 그 이상의 많은 금 촛대가 있습니다.
10년 전 이 무렵, 교회가 와해된다, 공중분해 된다, 끝난다, 아니 이미 끝났다, 이런 무성한 소문들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안정을 찾고, 기적적으로 성전을 건축한 교회라는 아름다운 소문, 하나님이 주신 금 촛대입니다.

좋은 성전, 하나님이 주신 금 촛대입니다.
성도들 간의 화목, 하나님이 주신 금 촛대입니다.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여러 활동들, 하나님이 주신 금 촛대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금 촛대들을 옮기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몇 달 동안 119 새생명 큰 잔치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하고 준비했습니다.
특별새벽기도회, 종일 릴레이 기도, 릴레이 금식, 저녁 특별기도회,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교역자들에게 ‘이번 일은 전 교인의 기도와 열심이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19 새생명 큰 잔치를 하기 전날에는 ‘하나님, 큰 잔치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그동안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잔치도 성공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119 새생명 큰 잔치를 위한 기도와 열심은 처음 사랑 회복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지난 주일 감사헌금 봉투의 감사내용 가운데는 좋은 날씨 주신 것을 감사한다고 적은 봉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날씨, 기적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기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크게 축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119 새생명 큰 잔치를 준비하면서 뒤에서는 요람 발간과 캄보디아 벙뜨로교회 헌당예배를 조용하게 준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둘도 크게 도와주셨습니다.
119 새생명 큰 잔치의 날씨부터 도와주신 하나님은 캄보디아 벙뜨로교회의 헌당예배도 역시 날씨부터 도와주셨습니다.

캄보디아는 지금이 우기입니다. 비가 자주 내립니다.
캄보디아 항공기 사고도 비가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으로 보도 되고 있습니다.
시엠립에서 교회당을 신축한 벙뜨로까지 120km인데 몰랐더니 대부분 비포장도로입니다.
헌당예배 드리기 전 날 그곳으로 가는데 그 날 비가 왔으면 아마 가지 못했을 겁니다.
가더라도 시간이 여러 배 걸리고 어려움이 컸을 것입니다.
헌당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에서 수백 명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큰 잔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돼지를 잡겠다고 하더니 소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갓 잡은 쇠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 제목이 “기쁜 잔치”였는데 정말 기쁜 잔치였습니다.
교회는 기쁨을 주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잘 보여준 잔치였습니다.
그 날 비가 왔더라면 그렇게 큰 잔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옥의 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랄 데 없이 좋은 바탕에 아깝게도 한 가지 흠이 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나무랄 데 없이 좋은 바탕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깊은 뜻이 있는 말들입니다.

“행위,” 행위는 삶의 모든 모습을 말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안다’ 하는 것은 ‘너의 모든 행동이 흠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칭찬입니다.
“수고,” 단순한 노력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노력을 동반한 최선의 삶을 말합니다.
“인내.” 소극적으로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도 개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확고부동한 자세를 말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이런 것을 모두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 영적인 순수성이 대단히 뛰어난 교회였습니다.
부지런한 교회였습니다.
이단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신종이단들이 새로운 양상으로 침투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옥의 티처럼 된 교회였습니다.
옥에 티가 있으면 그 옥은 어떻게 됩니까?
사가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억지로 팔려면 헐값에 팔아넘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옥과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티와 같은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풀면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인데 좋고 아름다운 것 위에 더 좋고 아름다운 일이 더하여 짐을 일컫는 말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아까 말씀드린 좋은 것들 위에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었으면 금상첨화의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금상첨화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예식을 계기로 성도 여러분의 믿음도 좋은 바탕 위에 좋은 것이 더해지는 금상첨화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희년을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희년에 대해 별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푸른 풀밭 맑은 시내」에 희년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 것이 준비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이제 희년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희년이 무엇입니까?
희년은 무슨 일을 시작하고 50년이 되는 해, 복된 해, 자유의 해, 가족에게 돌아가는 해, 대 안식년,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모아서 희년은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에 맞춰서 말을 바꾸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해’ 이렇게 됩니다.

설교 처음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특징을 소개해 드렸는데 그 가운데는 꾸지람은 전혀 듣지 않고 칭찬만 들은 교회가 둘 있습니다.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첫 사랑을 회복하고 새롭게 출발하면 우리교회도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처럼 될 것을 믿습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을 오늘 본문은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가지라”는 말은 헬라어로 포이에손(καί ποίηςον)인데 ‘행하라’는 뜻입니다.
「새번역성경」은 “처음 행위를 가지라”를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라고 번역했습니다.
행하는데 즉각 행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해의 반을 새롭게 출발하는 날, 또 한 해의 반을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찬예식으로 출발하면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가, 살피시기 바랍니다.
만일 버렸다고 여겨지면, 또는 식었다고 여겨지면 회복하고 지금 즉시 회복하기에 힘쓰며 새롭게 출발하시기를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사람을 복주시며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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