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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육함으로 부흥하는 교회 (딤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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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함으로 부흥하는 교회 (딤후 3:16)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메스컴에 방영된 실화라고 합니다. 프랑스 한 도시의 채프라는 시의원이 겉으로는 시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자신에게 막대한 이익이 돌아오는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지역 주민에게는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재개발지약 주님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사나운 경비견을 키우고 총도 가지고 테러에 대비해 수류탄도 가지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어느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재개발을 반대하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당신 같은 사람이야 말로 철거의대상이다” 고 모욕적인 말을 하자 화가나서 겁을 주려고 수류탄 안전 핀을 뽑고 던졌습니다. 그런데 잘 훈련된 경비견이 수류탄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잽싸게 물고 쏜살같이 주인에게로 가져왔습니다. 깜짝 졸라 뒷걸음쳐 도망을 가 보았지만 수류탄이 터지고 잘 훈련된 개와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이 경비견은 평소에 주인이 던진 물건을 물고 오도록 잘 훈련 되어 있어서 주인이 던진 수류탄을 물고 와서 주인의 칭찬을 받고자 하다가 같이 죽고 말았습니다. 교육의 양면을 생각하게 합니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고 하기도 합니다.(사상가 '루소) 인간 교육을 위한 여러 길에 좋은 책이나 육체적 고행, 선배, 스승 등과 함께 극기와 수양을 더하면 인간성이 향상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나 결코 온전케 될 수는 없습니다. 온전케 되는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한 교육만이 참된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성장시키는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신학자 '에밀 브룬너)  세상에서 시행되는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 내지는 피상적인 교육에 불과하지만 성경을 통한 교육은 인간의 영성을 개발, 증진시켜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것같이(창 2:7) 성경의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이기에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교육('파이데이아)은 '모든 삶 가운데 어린아이를 올바로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1907년 처럼 다시 부흥 하기를 원하며 교육함으로 부흥하는 달입니다.

교훈입니다.

교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딤전 5:17).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합니다.

지난 수련회 때 특강을 하신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여성도가 원불교 골수 집안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살면서 딸 아이가 5살이 되어 유치원을 보낼 나이가 되자 일반 유치원이 아닌 한국의 선교원을 보내려고 찾아 보았으나 가까운 곳에 없어 거리가 좀 떨어졌지만 아이를 선교원에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선교원에 다니든 어느 날 식사 시간에 밥을 먹으려고 아이의 아버지가 수저를 들자 아이가 아버지의 수저를 잡고 아빠 하나님께 식사 기도드리고 식사해요 내가 기도할께요 합니다.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렇게 하라고 아버지가 허락을 하자 아이가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지옥 가게 되었으니 구원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합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의 기도에 그만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는 익산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서 지금 우리 집안에 큰일이 생겼으니 빨리 미국으로 들어오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큰일이 났다고 하니 아버지의 부모님들은 영문도 모르고 미국으로 들어가 아들로부터 전후 사정을 듣게 됩니다. 우리 집안은 원불교를 믿었는데 선교원에 다니는 딸 아이가 식사 시간에 기도 하자고하여 너무 귀여워서 하라고 했더니 아빠 예수 믿지 아니함으로 지옥 가게 되었으니 구원 받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 하여 감동 받고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고 있으니 부모님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갑시다 하고 말씀드렸드니 부모님들도 손주도 아들도 며느리도 예수 믿는 다는데 우리도 같이 맏어야 겠다 하시며 함께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선교원에 나가 가르침을 받은 5살 난 아이가 선교원에서 배운데로 집에 돌아와 식사 기도를 하며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 일을 통하여 집안 전체에 구원의 역사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의 힘 특히 신앙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 예입니다.
         
  책망입니다.

책망(엘레그몬)은 '유죄 판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Lenski) 잘못된 교리나 행동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단자들의 거짓을 밝혀내는 것을 말합니다.
(딛 2: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할 때 책망하시고 징계하사 열심을 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토마스 에디슨은 평생 모은 재산인 뉴져지주 웨스트오렌지에 있던 공장과 연구시설 (당시 평가 2백만불)이 다 불탔습니다. 24세의 아들 찰스군이 불탄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67세의 아버지 에디슨 곁에 와서 위로의 말을 하자 에디슨은 부인까지 불러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존 건물과 묵은 시설이 아까와 뜯어 고치지 못하는 나의 작은 마음을 책망하시려고 새 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위대한 그의 정신은 첫 번째의 패배를 내일의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히 12:5-13)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범죄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어 그의 범죄를 책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다윗 왕은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참회하는 다윗에게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게 행동했던 다윗에게 자신의 대언자인 나단을 보내셨습니다. 다윗 앞에 선 나단은 한 비유를 들려주어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나단이 다윗 왕 앞에서 전한 이야기는, 많은 양과 소를 가진 부자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가난한 이웃의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양을 빼았았다는 비유였습니다. 나단은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의 은밀한 죄를 드러내 주었습니다. 나단의 비유, 즉 가난한 집의 새기 암양을 빼앗아 간 불의한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며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한 마리 양을 빼앗은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 4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는 추상같은 목소리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단이 담대하게 다윗 왕을 책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살인과 간음을 범하였기 때문에 다윗의 집에서 칼이 영영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단으로부터 하나님의 추상과 같은 책망과 징계를 들은 다윗은 그 즉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회개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회개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엄청난 죄악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다윗을 사랑하시어서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그를 죽음에서 건지셨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바르게 함 입니다

바르게 함(에파노르도신)은 '추를 바로 세우다'를 말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진리와 사랑으로 바로잡고 그들이 그 길로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시사한다(단 12:3;요 21:15-17).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낙심하여 갈릴리로 돌아간 베드로를 찾으시고 바르게 가르치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요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미국의 어느 유능한 교회 목사는 젊은지라 공명심에 사로잡혀서 정계에 나갔습니다.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어서 야심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본심은 그렇지 않았지만 점점 신앙심이 박약해 졌습니다. 교회는 멀어졌습니다. 많은 친구들의 강력한 권면과 편지와 설교 모두 다 냉정하게 뿌리쳤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 사회적 명성이 높아지고, 출세를 좀 하고, 세속적 성공에만 관심이 치우쳐졌습니다. 거의 불신자가 다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국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3살 난 꼬마 딸이 아빠 방에 들어오더니  아빠! 나, 글 읽을 줄 안다고 말 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응 정말! 어디 한번 읽어봐. 꼬마 딸은 조그만 성경책을 펼치더니만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꼬마 딸이 그 성구를 읽고 자랑스러운 듯이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양볼로 흘러내렸습니다. 꼬마 딸은 아빠 눈에 왜 눈물이 흐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아버지는 조용히 그 방에서 나와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을 통해 찔리운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오, 주님이시여 저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통곡하면서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그는 잃어버렸던 신앙을 되찾고 위대한 신앙생활에로 새 출발을 했다고 합니다.

  의입니다

의(디카이오쉬네) 는 법률적인 용어로 '엄격한 정의'를 말합니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미국에 어떤 큰 기독 회사가 있었습니다. 교파와 관계없는 개인회사였지만 기독교 일을 하기 위하여 조직된 기독교잡지 출판사였습니다. 잡지가 얼마나 좋았는지, 또 이사들이 얼마나 훌륭한 신자들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다른 사업도 해야한다고 주장해서 이사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사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기가 성령님의 지도를 받은 것이라고 고집했습니다. 이사들이 책임질 수 없다고 사표를 내자 다른 사람들을 이사로 임명하고 일을 계속한 결과 마침내 파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기독교계가 쇼크를 받았습니다. 파산할 때 자기의 개인 재산이 얼마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회사가 파산하기 전이나 별다름 없이 좋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파산했더라면 모든 사람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좋게 생각해 줄 수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희생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한 번도 솔직하게 말한적이 없어서 온 교계가 냄새가 남고 하나님의 유익은 커녕 자기 개인의 유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을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생기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찾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각 사람을 각기  자기 양심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 찬송가를 잘 부른다, 기도를 잘 한다한다면 더욱 하나님 앞에 의로워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1513-1572)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참된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행을 저질렀다고 설교했습니다. 이것이 알려져 그는 왕 앞에 끌려갔습니다. 왕은 대로하여 '당장 그 설교를 취소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존 낙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고, 입이 말했으며, 손이 정의를 썼습니다. 만일 이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피로써 그것을 증거하겠습니다.'

프랑스 시인 빅토르 위고는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만들었다면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은 원래 해적의 나라요, 도적들이 들끓는 야만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신사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나 죠지 뮬러도 죄악의 밑바닥을 걷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받아들인 후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아는 사람들로서 마땅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는 것을 우리 마음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자주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먼저 우리 자신을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완성시켜 주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 가르침을 실천하게 교육시키기에 유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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