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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어떤 곳인가? (2) : 보석으로 만들어진 집 (출 2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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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즐겨 듣는 꿈과 사랑의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라는 노래입니다.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살았던 꿈을 꾸었어요. 가신들과 시종들을 내 곁에 두었고 그 대리석 궁내에 모인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내가 그들의 희망이요 자부심이었던 꿈을 꾸었어요. 나는 고상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물을 가졌던 꿈을요. 그러나 나의 꿈속에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그대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지요. 내 꿈속에서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그대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지요.”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But I also dreamt, which pleased me most, which charmed me most, That you loved me still the Same”

저는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각양 각색의 보석으로 꾸며진 하늘 궁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각양 각색의 보석으로 꾸며진 하늘 궁전의 모습을 꿈으로 환상으로 보면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21:2,10,18-21)

사도 요한은 조만간 이렇게 휘황찬란한 보석들로 꾸며진 하늘 궁전에 있게 될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 중에서 그를 가장 기쁘게 하고 그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 사도 요한은 천국에 대한 환상적인 꿈을 꾸다가 그리고 “와서 생수를 마시라”는 성령과 신부의 사랑의 음성을 듣다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오늘 아침 제가 왜 꿈과 사랑의 노래에 대해서 그리고 사도 요한의 꿈과 환상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합니까?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그 모습은 각양 각색이지만, 모두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의 모형이고 천국의 그림자란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교회가 비록 천막 집으로 보이고 비록 초가집으로 보이고 비록 콘세트 집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신령한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은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에 이미 보석 집들이란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에 이미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들입니다. 교회의 귀중성을 아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를 자기 집보다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네 가지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니다.

출25:21에 보면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고 했는데 여기 증거판은 십계명의 돌판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막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석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마른 뼈가 가득한 해골 골짜기의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때 마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 군대 곧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일으켜 교회를 만든 중요한 에너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3천 여명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가 찔림을 받아 쪼개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결국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살아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으면 위로가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고 노래가 생깁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119:50).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시119:77).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시119:54).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우리 인생길을 비추는 등과 빛이 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입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생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생명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위로가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즐거움과 기쁨과 노래가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인생길을 비추어주는 등과 빛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입니다.

둘째, 교회는 예수님의 피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니다.

출25:17에 보면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라”고 했는데 여기 속죄소는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양의 피를 뿌려서 제사 드리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이 속죄소는 예수님께서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달려 속죄의 피를 뿌리며 제사 드리게 될 것을 가리켰습니다. 성막의 중심에는 어린양의 피 뿌림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피가 있습니다. 히9:11,12은 예수님께서 성소에 들어가서 짐승의 피 대신 자기의 피를 뿌려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1-14). 교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예수님의 피라는 보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흐르고 또 흘러서 이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행20:28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말했습니다.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하셨느니라”(행20:28). 교회는 하나님의 피 또는 예수님의 피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입니다.

예수님의 피에는 두 가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는 사죄의 능력이 있고 사탄 마귀의 세력을 깨트려 부수는 사탄 파괴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들어오면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지고 사탄 마귀의 세력을 깨트려 부수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주님의 피가 있는 교회에 나아와서 무릎을 꿇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선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눅7:48). 계12:11에 보면 옛 뱀 곧 사탄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서 땅으로 내려왔는데 예수님의 피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로써 그 놈들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12:9,11). 교회는 예수님의 피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입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피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고 사탄 마귀의 세력을 깨트려 부수는 능력이 있는 예수님의 피가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입니다.

셋째, 교회는 성령님의 생기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니다.

출25:18에 보면 “금으로 그룹 둘을 만들라”고 했는데 여기 그룹은 천사들을 가리켰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을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그룹들은 오순절날 성령께서 바람과 같이 교회에 오셔서 생기를 불어넣으실 것을 가리켰다고 생각합니다. 성막의 중심에는 천사들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중심에는 성령의 임재와 생기가 있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중요한 재료는 성령의 생기라는 보석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마른 뼈가 가득한 해골 골짜기의 장면이 나오는데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생기를 향하여 대언했을 때 했을 때 생기가 마른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서 큰 군대 곧 교회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으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9,10). 죽은 사람들을 일으켜 교회를 만든 중요한 에너지는 성령의 생기라는 보석이었습니다. 성령의 생기에 대해서 대언할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장은 이 세상에 제일 처음으로 생긴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강림과 임재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성령이 교회에 바람같이 임재했을 때 거기 모였던 사람들에게 생기가 돌았습니다. 교제가 살아났고 기도가 살아났고 찬양이 살아났고 사랑과 봉사가 살아났고 전도가 살아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깨어졌던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기도가 터져 나왔고 찬양이 터져 나왔고 이웃을 향한 사랑과 봉사와 전도의 손길이 펴졌습니다.

성령의 바람과 생기가 임했을 때 스데반 집사의 입에서는 믿음의 선조들의 위대한 역사를 증거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증거하는 영감의 설교가 터져 나왔고 돌에 맞아서 죽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천국의 영광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위대한 간증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령은 신자들의 몸과 영혼과 세포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는 생기의 역할을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성령의 은혜를 간절하고 겸손하게 사모하면 누구나 생기로 채워지는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 안에는 성령의 생기가 넘칩니다. 교회는 성령의 생기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 집입니다.

넷째, 교회는 성도들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져 가는 보석 집니다.

교회는 말씀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인 성도들이 모여서 만들어져 가는 보석 집입니다. 제가 ‘만들어져 가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세상에 있는 교회는 완성품이 아니고 지어져 가는 미완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엡2:22에서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의 부분부분들로 지어져 가고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가리켜 보석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부르시고 ‘의인’이라고도 부르시고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라고도 부르시고 ‘쁄라’와 헵시바’ 라고도 부르시고 ‘나의 사랑’ ‘나의 기쁨’이라고도 부르셨습니다. 결국 교회는 성도들이라고 불리는 보배롭고 존귀한 보석들로 만들어져 가는 보석 집니다. 눅18:13에 보면 세리 한 사람이 성전에 들어와서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세리를 보고 '의인'이라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성도들을 가리켜 보석처럼 존귀한 존재들로 보시면서 분에 넘치는 아름다운 사랑의 명칭들을 다 사용하셨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가2:13,14).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가4:12).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사43:1,4).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62:4).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심벼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사바냐3:17).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를 가리켜 존귀한 자라고 불렀고 자기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시16:3).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자기의 기쁨과 면류관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서라”(빌4:1).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20).

교회는 성도들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져 가는 보석 집니다. 교회 안에는 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금은 보석과 화려한 옷으로 장식한 부자들이 많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믿음이 보석처럼 빛나고 사랑이 보석처럼 빛나고 봉사가 보석처럼 빛나고 온유와 겸손의 인격이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베다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스데반과 빌립과 바나바와 도르가와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 오네시보로는 모두 보석처럼 빛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와 성령님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면서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석처럼 빛나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라는 보석들로 만들어져 가는 보석 집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예수님의 피가 있는 성령님의 생기가 있고 땅에 존재하는 가장 존귀한 성도들이 있는 보석 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이 세상의 어느 집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시간과 물질은 물론 생명까지도 기쁨으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기 전에 비판적인 말씀을 한 마디 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모두 보석 집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인간화할 수도 있고 기업화할 수도 있고 정치화할 수도 있고 자본주의화할 수도 있습니다. 어제 그제 이틀 동한 손봉호 박사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손봉호 박사는 오늘의 많은 대형교회들이 자본주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배와 교육과 목회와 행정과 조직에 전문인들을 많이 고용한다고 했습니다. 찬양 프로그램 율동 프로그램 교육 프로그램 상담 프로그램 목회 프로그램 등에 사례를 많이 주고 전문인들을 많이 고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몰려오고 헌금을 더 많이 하고 그러면 대형 마트처럼 크게 부흥 발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교회 자본주의' 현상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도 이 지적에 공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인간의 멋진 말들이 지배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 대신 정치 경제 유행 지식의 힘이 지배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생기 대신 인간의 감정적 흥분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석처럼 순수한 성도들 대신 세상의 관점에서 보석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세에는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많이 상실하게 된다고 주님께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야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7-19).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건물이 화려하고 숫자가 많은 교회가 반드시 교회다운 교회는 아닙니다. 오늘 아침 필리핀에서 아이타 원주민 사역을 하고 있는 양남일 선교사의 사모가 방명록에 글을 올렸는데 너무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또 뵙고 싶은 목사님께. 목사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양남일 선교사 아내 배난영 사모예요. 여기 앙겔레스 선교사님들 사이엔 목사님을 모두 할아버지 목사님이라 부른 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들려주신 신앙의 선배들의 귀한 간증과 말씀들이 은혜로 가슴에 새겨져 있어요. 저는 육체적으로 참 힘들고 어려운 ‘아이타’ 선교를 한지 만5년 6개월이 되었는데 언제나 내 가슴에 처음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제 자신과 힘든 싸움을 할 때가 많이 있어요. 처음 저들을 바라보며 흘렸던 눈물들.... 오지에 교회를 세우고 우물을 파면서 주님이 주셨던 감격과 은혜의 시간들... 참으로 많은 오해와 갈등을 받으며 죽으면 죽으리라 여기며 산지를 쫓아 다녔던 일들… 지금 그 시간들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께 무척 감사드리고, 또 위로를 받곤 해요. 하지만, 제가 섬기는 ‘아이타’ 영혼들이 동물원의 원숭이 취급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오늘도 선교의 열정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죠.

작년 연말 사역지 마을에 사는 생후 11개월 된 언청이 아이를(호흡기 곤란으로 생명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 저희 목사님께서 사방팔방으로 노력하여 한국 열린 의사회의 도움을 얻어 제가 애기와 엄마랑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다일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하고 돌아오게 되어 너무나 기뻤어요. 그럴 때는 정말 선교사가 되어 주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답니다. 목사님! 우리 파스터 중에 ‘롤단’ 이라는 ‘아이타’ 목회자가 있어요. 자기네들이 살고 있던 마을이 어느 날 한국 사람이 골프장을 만든다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를 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주를 하는 과정에 필리핀 사람들이 자기들을 ‘보보(바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롤단 파스터는 보상을 받지 않아도 괜찮으니 필리핀 사람들이 자기 ‘아이타’들을 ‘바보’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마음이 상해 ‘아이타’ 를 대표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여요.

‘아이타’들은 필리핀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고 거저 괄호 밖의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죠. 이런 저들의 삶을 바라볼 때 무척 마음이 아프고 무엇인가 뚜렷이 도와 줄 수 없는 것이 무척 미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냥 뒤편에서 잠잠히 기도하며 지켜 볼 뿐이죠. 처음에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아이타(필리핀) 선교에 보내주셨는 줄 생각 했어요.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님을 느끼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아이타’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저희 부부를 그저 하나님의 도구로 쓰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고 또 그 도구로 부족함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허락 하시는 시간까지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국인 아낙네 사역자로 열심히 정성껏 사역하고 싶어요. 비록 말이 잘 통하지 않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눈 빛과 눈 빛으로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목사님! 사랑해요. 그리고 사모님도 너무 사랑해요. 비록 짧은 몇 일 이였지만 많은 부분을 느끼며 더 잘 섬기지 못한 마음이 못내 아쉽습니다. 제 생애 불신 가정에서 태어나 멋모르고 목회자의 아내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지만 믿음의 귀한 스승을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주심을 너무나 고맙고 감사드려요. 늘 잊지 않고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 기도할께요. 부족하지만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필리핀 오지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살아가는 ‘아이타’ 영혼을 섬기는 배난영 선교사 드립니다.” 저는 이 글을 눈물로 읽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홍양순 사모가 방명록에 솔직하고 예쁜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도 아름다운신 목사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목사님 필리핀에서 마지막 날 칼국수 먹을 때 꼭 기억해 주세요 라고 말한 홍양순 사모입니다. 가신 후 일주일은 목사님 모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설교도 설교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목사님의 주름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람으로 비춰줘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세배 돈을 주듯 우리에게 돈을 주셨을 때 꼭 세벳 돈 받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이곳 필리핀에서 저는 목사님의 팬이 되었네요. 사모님도 연세에 비해서 너무 예쁘게 나이드셨구요. 나도 저렇게 곱게 나이 먹어 가야지 했습니다. 목사님 주님안에서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 이 땅에서 목사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주세요. 그리고 스티커 어디든 가지고 다니시면서 붙여 주세요. 목사님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 거든요. 목사님 파이팅. 그리고 필리핀 이뻐해 주세요. 저는 세레요한 처럼 살지 못하고 예수님처럼 살지 못해서 늘 주님께 미안해요 하며 사는 사모입니다. 필리핀은 밴질이만 있는 곳은 아니랍니다 순결하게 살려고 하는 선교사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세요. 그러나 난 지금도 목사님 솔직함이 너무 맘에 들어요.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은 목사님 순수함과 솔직함이 아닐까요.”

앙겔레스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들이 아이타 족들에게 지어준 15개의 교회는 대문도 없고 창문도 없습니다. 분반 공부할 방들도 없습니다. 피아노도 올간도 없습니다. 교육 전도사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눈물과 사랑이 있고 주님을 향한 아직은 어색하지만 사랑과 고마움이 있습니다.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한 벌거벗은 아이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 보잘 것 없는 아이타 산족 교회들을 보석 집으로 보실 것입니다. 바로 어제 광야교회와 홈리스 복지 센터의 준공과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손봉호 박사가 축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한국에 오신다면 부담 없이 쉽게 들어오실 수 있는 교회가 바로 광야 교회와 같은 교회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크고 으리으리한 교회는 멸시와 싫어 버림을 받으신 주님께서 들어가시기가 부담이 되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가 신자 되도록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며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만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며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만을 굳게 붙잡고 따르며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을 모두 귀중히 여기고 기뻐하며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송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379).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182).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만 충만하게 합소서"(177).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525).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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