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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깊은 곳 (창 12:1-4, 고전 1:18-25,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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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십니다. 축복의 내용은 고향을 떠나라 친척을 떠나라 아비 집을 떠나라. 떠나라는 게 어떻게 축복일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75년을 하란 땅에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떠나야 합니다.

사람은 다 한곳에 머물러 살지를 못하고 떠나면서 삽니다. 떠나라는 게 왜 축복입니까? 오늘 구약의 말씀은 단 하나입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이 자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은 끝이다. 홀로 삶을 끝내고 이제는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게 자손을 줄 테니 자손과 함께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해라.

우리가 말하는 역사는 저 혼자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역사란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한테 조상들이 있고 후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 스스로 주관이 강하다고 해서 과거에 조상이 없는 사람이 없을 거고 앞으로 있을 후손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저는 과거에 있던 역사와 앞으로 이루어질 역사의 한 중간 토막에서 저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그 많은 자손을 향하여 제가 책임 있게 살고 싶습니다. 이 고백은 저 개인의 고백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고백을 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떠나라.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내가 지정한 곳으로 떠나라. 내가 지정한 고향이 따로 있다. 내가 만든 친척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내가 지정한 내가 계획한 무수한 민족들이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 떠나라.

다른 말로 말하면 아브라함 너를 떠나서 내가 준비한 것, 아브라함 네가 만든 뿌리로 향해 떠나라.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준 역사고 우리 각자에게 준 역사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나를 합니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수많은 후손들이 조상 아브람을 복의 근원이라고 삼도록 하겠다. 그러니 가라. 아브람이 떠나는 것은 위대한 비전을 보고 믿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을 신앙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저희들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멀리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하늘이 왜 푸릅니까? 물었더니 하늘은 높으니까 푸르지요. 바다는 왜 푸릅니까? 깊으니까 푸르지요. 지평선은 왜 푸릅니까? 넓으니까 푸르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얕은 물가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깊은 바다 속을 그리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내일의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결단 하고 내 앞에 열린 수많이 넓고 높고 깊은 미래를 향해서 저는 의심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홀로 살수 없으니 우리와 함께 살고 싶으면 떠나십시오.

떠날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네가 복의 근원이라는 믿음 하나를 갖고 떠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들 살아가면서 살아갈 인생의 날수는 저희들이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살아가는 저 인생의 삶의 넓이와 깊이는 저희들이 결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 비가 옵니다.

기상 날씨를 저희들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의 날씨는 제가 결단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제 얼굴 모습은 제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물론 요즘 성형 수술이 있어서 맘대로 꾸미기는 합니다만 제 모습은 아니지요. 그러나 제 얼굴 표정은 제가 결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겉에 보이는 날씨로만 살지 않고 제 삶의 깊이와 넓이를 주변 자연의 날씨로만 살지 않고 제 가슴속의 날씨로 살고 제 겉의 표정으로만 살지 않고 제 표정 속에 담긴 삶의 철학으로, 삶의 깊이로 살아갑니다. 그 표정 속에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넓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계절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데로 깊었으면 좋겠다. 가장 깊은 곳에 인생의 그물을 던지면 그 깊은 곳에서는 수많은 삶의 열매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겐 멀리가라. 모르지만 멀리 가라.

그래서 수많은 자손과 민족이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아브라함은 멀리 가게 했지만 제자들보고는 깊이 가라 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고 있었는데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했더니 가서 던졌더니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엄청난 고기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복되고 생산력이 있고 아름답게 살고 싶으면 깊은 곳에 던져라. 너무 우리는 얄팍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질 수 있습니까? 깊은 곳에 던지면 깊은 곳에 복의 근원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 곳에 계셔서 수많은 고기를 잡게 하겠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깊은 곳에 그물 던지면 고기를 많이 잡듯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서 이제는 고기만 잡을게 아니라 사람도 잡아라. 모든 사람은 가장 깊은 곳에 신앙의 뿌리를 두게 하고 그리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오늘 이렇게 말씀 주셨습니다. 깊은 곳, 넓은 곳, 그곳은 어디 입니까?

오늘 답변은 고린도전서가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깊은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가장 깊은 곳은 사람의 생명이 끝나는 곳이 가장 깊은 곳입니다.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는 곳, 너무 깊어서 어떻게 헤어날 수 없는 곳, 그것이 죽음이라 이름 하는 곳이 가장 깊은 곳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말씀이 예수가 죽은 곳이 가장 깊은 곳이다.

십자가가 가장 깊은 곳이다. 그곳에 그물을 던져라. 그러면 사람이 산단다. 죽음에서 어떻게 삽니까?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그게 아니고 하나 더 나갑니다. 죽음이 가장 깊은 곳이고 그곳에 그물을 던지면 수많은 고기를 낚는다.

가장 깊은 곳은 죽음이라는 끝나는 곳이지만 동시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아브라함이 생각지 못한 곳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곳.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 믿고 의지했더니 나한테 확신이 있는 그곳. 그곳은 다시 삶이 시작되는데 그 삶은 내가 상상하지 못한 위대한, 경험하지 못한 깊은 삶이 새로 생겨나는 곳. 아까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 나라고 하는 나 홀로를 떠나라. 그래서 함께 구원받는 우리의 사회로 가라. 십자가에 죽을 때 나라를 이름 하는 죄인은 죽어라. 그리고 구원이라고 하는 부활을 통해서 받는 구원의 공동체 우리가 받은 공동체에 같이 속해라. 가장 깊은 곳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가면 죽음이 있답니다. 그리고 죄 된 내가 죽으면 용서받은 우리들이 다시 태어나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십자가가 좋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두렵지만 받겠습니다. 그곳에서 내가 죽으면 부활된 우리들이 다시 공동체를 만들어서 살아간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십자가의 진실이 그냥 죽고 말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겁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신앙의 신비를 믿는 사람에게는 가장 깊은 십자가가 나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살리는 능력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부활의 떡을 드십시오.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죽음 속에 이루어진 부활의 피를 마시십시오. 그래서 만찬은 만찬이지만 성만찬이라고 이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만찬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미리 약속을 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우리 주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임을 받겠습니다. 나를 죽게 하소서. 나를 다시 살려 주소서. 그래서 우리가 그 약속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받고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이 둘은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만찬을 받으신 분들 세례 받는 분이 참여하시고 또 세례 받는 분은 성만찬을 받고 그래서 우리는 약속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 죽음이 있는 곳. 가장 깊은 곳은 생명이 움터 납니다.

여러분에게 십자가의 축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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