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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작하시면 성취하시는 여호와 (수 2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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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렘33:2절 [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 고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면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말씀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가 끝나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생활 규범으로서
    먼저 20장에서 도피성 제도를 정하시고
        21장에서는 레위 지파에게
        48성읍을 기업으로 나눠주신데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나안 땅 분배의 역사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오늘은 가나안 정복과 기업의 분배의 결론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 친밀하게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가나안 땅의 기업 분배는 레위 지파에게 성읍을 나눠줌으로 끝이 납니다.
본래 레위 지파는 차지할 기업이 없는 지파였습니다.
수18:7절에 [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
그런데 어떻게 기업을 얻게 됩니까?

1. 레위 지파는 기업을 어떻게 얻게 됩니까?(1-3절)

레위 지파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 나아와
    이스라엘 지파 족장들이 보는 앞에서 요구를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바 대로
  우리가 거할 성읍과 가축 먹일 목초지를 레위 지파 기업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세로 명하사 란 말씀은 민35:2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가 얻은 기업 중에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그들이 거할 성읍을 줘서 
레위인들이 거하도록 하고, 그 성읍 사면의 들을 주어서
그들의 가축이 거할 곳이 되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 레위 지파에게 돌아올 기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파가 얻은 기업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나눠주라는 말씀입니다.
레위 지파는 이 말씀을 근거로 자기들의 몫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기업 중에서
    48성읍을 레위 지파에게 나누어 줍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는 회당이 있습니다.
회당은 이스라엘 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유대인 가정이 10가정만 있으면 회당부터 세웁니다.
그리고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을 가르치며 자녀들을 교육시킵니다.
그런데 회당에는 반드시 회당을 지키는 랍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랍비는 레위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생업에도 종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활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로 생활하였습니다.
신12:18에 “너는 삼가서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구약의 제사장과 신약교회에 목사와 동등하게 볼 수 없습니다만
그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담임 목회자들은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또한 담임목사는 이중직도 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회만 전념하고 또 그 생활비는 교회에서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항간에는 목사의 호화 내지 사치생활이 메스컴에 나옵니다만
그러나 아직 한국교회 목회자의 90%는 최저 생활비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레위 지파의 기업 분배의 정신은
    레위 지파로 성역에 전념하라는 데 있습니다.
도시 중형교회 이상의 담임목사의 생활은 보장이 됩니다만
아직도 부목사님, 전도사님의 생활은 최저생활입니다.
성도들이 잘 돌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스라엘의 기업 분배의 마무리로써
    레위 지파가 얻은 성읍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2. 레위 지파가 얻은 성읍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입니까?(8-42절)

레위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세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레위는 둘째 시므온과 가장 친하면서도 대조되는 형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릴 적에 어떻게 자랐는지 모르겠지만
  자식이 많은 집에 보면 꼭 바로 위나 아래가 제일 만만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같은 어머니에게서 났고,
    그래서인지 둘의 생각이나 하는 행동이 비슷했습니다.
자기들의 여동생 디나가 세겜 땅 추장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시므온과 레위는 함께 복수극을 꾸밉니다.
결국 둘은 세겜 성 전체를 죽음으로 모는 대학살을 저지르게 되고
그로 인해 창49:6에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는
저주의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레위는 분명히 저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저주를 받았던 시므온의 자손들은
신33: 모세의 축복에서는 빠져 있고
수19:9절에 보면 겨우 유다 지파에 기업 중에 겨우 분깃을 얻지만
        한 곳에 얻은 것이 아니라 흩어져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레위의 자손들도 똑같은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성경을 통해 레위의 후손들을 살펴보면
      예언의 일부분 -흩어져 사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신33:8절 이하 모세의 축복에 보면
      분명히 레위 지파에게 내려진 저주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레위 지파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출32:25절 이하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자기들의 신이라 하며 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였고, 자기 백성이지만 그들을 칼로 죽입니다.
그때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자기 동족을 죽이는 일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분노를 푸셨던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수족처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려진 예언을 오히려 좋은 쪽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창49:7절에는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이 말씀이 시므온 지파에게는 기업을 빼앗기고
      결국 그 자손들이 점점 더 약해지는 것으로 성취되었지만,
레위 지파에게는 나뉘고 흩어지는 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전체에 오히려 축복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똑같이 저주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미래는 완전히 바뀌어 진 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똑같은 상황이고 똑같은 처지인데
    어떤 이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더 좋은 환경에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결국 초라한 인생의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이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는 행동들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일 때 믿음의 편에 서는 자들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그렇게 크지 않아도 하나님을 위해 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크게 생각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좇았을 때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한 레위 지파는
출33:29절에
[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
그래서 레위 지파는 이때부터 성막 일을 하게 됩니다.

라는 독일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삼형제가 전부 목사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친위대의 장교였습니다.
많은 유고 게릴라들을 죽이고, 또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때 재판을 받고 8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때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후에도 평생 속죄하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에게 “너희들은 성직자가 되라”고 당부를 해서
삼형제가 목사님이 되고
<마틴 하이드> 목사님은 베를린에서 귀한 목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 조상의 씻을 수 없는 죄로 인해 저주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레위 지파는 오히려 항상 하나님 편에 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걸을 때도 항상 법궤를 지고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현재입니다. 과거에 비록 잘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오늘의 회개를 받아주실 마음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본문에 레위 지파가 성읍을 요구했을 때 레위의 아들들이 셋입니다.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인데 그들의 자손대로 나누고
    고핫의 자손 중에 아론이 속해 있습니다. 아론은 제사장 가문입니다.
그래서 합쳐 넷으로 열 두 지파를 나눠
    세 지파씩 레위 지파에게 성읍을 나눠 준 것입니다.
  10절에 아론의 자손이 첫째로 제비 뽑혀 먼저 나눠 주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신다는 예언은 이루어졌지만
    이것은 분명히 저주의 성격이 아닙니다.

민3:12절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한다고 하셨는데
            레위 자손은 하나님을 위해서 바쳐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성막을 관리하는 일,
하나님의 법궤를 운반하는 일 등 성직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기업을 전국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을까요?


3. 레위 지파에게 준 기업은 전국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참조-민35:1-8절)
레위 지파에게 맡기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막 봉사지마는
두 번째는 열두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성읍에서 흩어져서 살아가며
    거룩한 삶을 사는 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레위인은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세상 가운데 살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벧전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유명한 조각가이며,
        영감 있는 많은 작품을 남기었습니다.
그의 스승은 <베르톨드>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 때, 그의 재능을 알아본 <베르톨드>는
  그를 데리고 두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처음 간 곳은 술집이었습니다. 술집 앞에는 여인의 조각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기술로 아름답게 만들어졌지만,
    그 조각상은 사람들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죄의 도구였습니다.
그 다음에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그 앞에도 여인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그 조각상은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우아하고 경건한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베르톨드>는 <미켈란젤로>에게 말하였습니다.
`기술을 연마하고 노력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의 재능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는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느냐?`
진지하게 묻는 스승 앞에서 미켈란젤로는,
`저는 이 모든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헌신해야 할 성도들
    역시 레위인과 동일한 직임을 맡고 있는
    `여호와를 기업으로 삼은 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레위 인들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기업 분배에서 
        레위인들에게 아무런 기업도 주지 말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기업을 가질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자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레위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으며
    일평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하는 풀타임 사역자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자신의 전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헌신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물론 이 말이 성도들이 구약시대 레위인들처럼
  교회 봉사이외의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최우선 사명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어야 함을 기억하고
    자신의 생업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며
          하나님 이외의 기업을 가질수 없다는 것은
곧 그들이 자신의 생계를 포함하여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자는 가장 큰 특권을 받은 자요
      가장 무거운 의무를 진 자인 것입니다
그 의무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된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 거룩한 생활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보여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레위인의 의무인 것입니다.

실내를 밝히기 위해서는 전구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열두 지파 중에 레위 지파 한 지파만 제대로 살면
    나머지 열두 지파가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온 천지가 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이 세상이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군데군데 제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씩만 박혀 있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열두 지파 중에 한 지파일 것 같으면
    12명 가운데 1명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교세를 25%로 봅니다만
      10%만 제대로 살면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이렇게 문제가 많아요?
제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 비율이 안 된다는 얘기 아닙니까?
나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믿는 내일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봐서요.
레위는 본래 호전성 기질을 가졌습니다.
만약 레위에게 다시 칼을 들려주었다면,
    그 열심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손에서 칼을 빼앗고,
성전의 도구들과 제사장의 직분과 율법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레위는 각 지파의 성읍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가나안 땅의 기업의 분배가 다 마쳐졌습니다.


가나안 땅의 분배가 마쳐질 때 여호수아가 가장 강조한 신앙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4. 가나안 땅의 기업 분배가 마쳐질 때
        여호수아가 가장 강조한 신앙적 교훈이 무엇입니까?(43-45절)
43-45절까지 보면 그 말씀의 첫머리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라는 말을 써 놓았습니다.
43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이루셨다는 것을,
44절은 여호와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그 대적들과 싸우시고 안식을 주셨다는 것을,
45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을 남김없이 이루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짧은 세절에, 기나긴 세월을 통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록함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그 오랜 기간 내내 혹독한 전투가 있었지만,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얻었고,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적들은 이제 반기를 들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 중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큰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이 세상사는 결코 우연히 저절로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오늘도 이 세상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손길에 붙잡힘을 당하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인생은 가장 복되고 행복한 존재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대하26장에는 유다의 10대 왕, 웃시야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보기 드물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지도력도 있어서 온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웃시야의 이러한 형통함의 배경에는
      하나님을 구하며 살도록 가르쳐준 `스가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하26:5절에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며 사는 삶에는 형통함이 있지만
  그러나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 삶은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웃시야 왕은 나라와 왕권이 강성해지면서 교만하여 져서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하려다가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여 죽는 날까지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별궁에서 쓸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겸손히 엎드릴 줄 아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학평론가이시며 서울대학 교수를 지내신 박동규 장로님이
  이런 간증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
어릴 때 고향의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나를 꼭 옆자리에 이불을 펴고 눕게 하셨다.
겨울이면 장작불을 펴서 방을 데우던 때라서
  새벽이면 온돌이 식어 으스스해지기 마련이었는데,
이때쯤이면 할머니는 추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교회에 가셨습니다.
밤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언제나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할머니에게
왜 새벽이면 교회에 가고 밤이면 꼭 기도를 하고 주무시는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아침에는 오늘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게 위해 교회에 나가고,
밤에 기도를 드리는 것은 오늘 하루도 지켜 주심을 감사드리기 위해서`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하루가
    온전히 하나님의 품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하루는
하나님의 은총이 베푸는 향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도 그 향기를 느끼며 산다” 고 합니다.
매일 같이 진행되는 평범한 일상들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다면
        그는 분명 비범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타계한 일본의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13년간의 투병생활에
      `임마누엘 아멘`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는 불교에서와 같은 염불은 없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기독교에 염불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비슷한말은 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를 뜻합니다.
그리고 `아멘`이라는 것은 `참으로` `진실로`라고 동의하는 말로서,
    이것은 세계 공통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아멘`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실로 그렇습니다. 라는 뜻이 됩니다.
나는 오랜 요양생활 가운데 문득 쓸쓸해지면,
  곧잘 이 `임마누엘 아멘`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전능하신 주님께서 내 곁에 계셔서
      온전히 지켜주시는 줄 알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짧은 기도를 드리면 가령 누가 오해하여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아주신 다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작고 짧은 기도에 의해서도
    격려되고, 위로 받으며, 힘을 얻도록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이 삶의 향기가 되어
매일의 삶 속에서 평안과 형통함의 축복이 넘치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가나안 땅의 기업의 분배를 통해서 볼 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 가나안 땅의 기업 분배를 통해서 볼 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45절)
45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이
        선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오랜 세월을 문제덩어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전쟁에 이기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여호수아가 오합지졸과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고
    절망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는 믿었습니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모든 일은 선하며,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선한 일을 이루실 것이다` 아멘.
사도 바울도 롬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일을 계획하시고,
    그 역사를 선하게 진행하시고 선하게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빌1:6절에
[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보이는
범람한 요단강, 금성철벽 여리고성, 철병거를 가진 헤브론 산지
    그리고 가나안 땅에 사는 무장한 일곱 부족들은
    절망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요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면 반드시 성취하시는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들은 가나안 정복의 맨 앞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일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희망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삶에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의 시나리오를 갖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일과
  그 땅을 차지하고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은
몇 백 년 전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주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을 때,
과연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그 약속은 물거품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약속들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고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이라는 강제성을 띤 규범일 수도 있고,
    양심의 판단에 호소하는 윤리나 전통적 규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약속이란 말입니다.
이 약속이 잘 지켜지는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약속을 믿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불신의 세상, 그러나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보증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본래 이름은 약속,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서 주신 약속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일방적으로 약속하고 보증해 주신 것입니다.
붉은 인주로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보증으로 인 치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한 가지도 변함없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
      그 약속의 말씀을 남김없이 다 이루는 생애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레위 지파 기업의 분배를 통해 기업분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본래 저주를 받은 지파였지만
        믿음의 행동을 통해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논 지파입니다.
그리고 기업 분배의 마무리를 통해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면 성취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손길에 붙들려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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