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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국가와 나 (롬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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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자가 늘 가져야 할 영역 2가지 - 텍스트, 콘텍스트

1) 텍스트- 성경본문에 대한 관심. 성경은 계시의 근원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담고 있다. 설교자는 이 성경을 떠나서 말할 수 없다.

2) 콘텍스트- 상황에 대한 관심. 청중에 대한 관심.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삶과 상황, 그들이 만난 문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설교는 이 두 가지를 다 품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설교가 유창하고, 재미있고, 신나도 텍스트(성경)을 떠나면 안 된다. 어떤 설교학자가 한국교회의 설교를 비평하면서 한국교회는 이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성경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비록 성경을 말하더라도 잠깐 하나의 규범으로서 인용하는 정도이고, 그 말씀에 대한 의미와 해석과 적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하나는 콘텍스트의 문제이다. 아무리 성경에 대해서 잘 연구하더라도 그 성경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청중들의 삶에서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이 청중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늘 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 어떤 문제에 직면해서 고민하고 있는지, 그들은 신앙의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그들이 지금 가장 갈급하게 구하게 있는 것은 무엇인지 늘 살펴야 한다. 이런 청중들에 대한 이해 없이 설교하면 설교는 다만 하나의 학설에 지나지 않으며,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설교의 균형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장 좋은 설교는 균형을 가진 설교이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조화, 성경과 청중의 조화, 신앙의 개인적인 부분과 공동체적인 부분의 조화, 개인의 영성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의 문제의 균형 등등... 왜냐하면 우리가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아주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의 설교 역시 하나의 관점에서 치우쳤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소홀히 하고 있는, 가장 무관심한 영역에 속하는 국가의 문제를 설교하기로 했다. 제가 오늘 국가에 대한 설교를 하는 것은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우리가 국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들에게 국가는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무시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2. 여러분은 국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국가의 통치자들과 정치인들에 대해서 칭찬을 자주 하는가 욕만 하는가? 너무 뻔한 것을 물어보는가? 우리가 지금 이 나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죽일 놈이라고 비판하더라도, 지금 이 나라꼴이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현실과 상황을 초래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국가가 무엇이고, 그 국가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취하라고 말씀하는지 성경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 국가의 기원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국가의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성경은 모든 권위의 문제를 하나님께로 귀속시킨다. 부모의 권위, 스승의 권위, 영적 지도자의 권위, 국가권력의 권위까지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나온 것이 이런 권세들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국가의 권세는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국가권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국가의 권세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비정상적이고 불신앙적인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국가 권력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비그리스도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국가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들이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국가의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인식을 하는 일이다. 국가의 통치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이든,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타종교인이든 상관없이 국가의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을 꼭 기독교인으로 뽑아야 한다고 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는 것이고, 또 그 사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러므로 국가의 권세에 대해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권세에 대한 거스름이라고 말씀한다.

2) 국가의 기능과 역할

  (3-4절)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것은 권선징악이다. 국가는 선은 권장하고, 악은 징벌하는 일을 한다. 국가는 선을 포상하고, 악을 처벌하고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위정자(통치자)는 선한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이면서 동시에 처벌을 위한 진노의 에이전트(대리자)이다. 신학자 크랜필드가 말한 것처럼 “국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현현(나타남)이다.”

  앞에서도 국가의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국가의 기반이 하나님의 도덕질서인 ‘선악’에 세워져 있음을 다시 증명해준다. 

  그러나 만약 국가가 하나님이 주신 권선징악의 권세를 오용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덕적으로 왜곡된 상황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할까? 국가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을 명령하거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금지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국가가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면 그 때도 복종해야 할까? 물론 그 때는 국가가 하나님이 주신 권선징악과 같은 기능 수행을 중지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저항할 수 있고, 또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이상적인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정부가 권선징악의 규범들을 지키는 것을 전제하고 불복을 금지한 것이다. 국가가 하나님이 주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조차도 무조건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선징악의 기능을 잘 수행해 갈 때는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부분이 약하다. 국가나 대통령, 통지권력에 대해서 오직 인간적으로만 생각한다. 이 나라의 역사나 대통령을 우리 인간들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 안에, 그 내면에, 그 배후에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라들을 다스리는 주권자라는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다. 다만 국가의 문제는 국가의 문제요, 대통령의 문제는 대통령의 문제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국가나 정부, 대통령과 통치자, 위정자들에 대한 생각이 너무 인위적이고, 인간적이다. 개나 소나 다 국가에 대해서 비판한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조차 익명성을 이용해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막말을 한다. 누가 자살했다는 기사 뒤에 댓글을 열어보면 “이 모든 것이 다 무현 놈 때문이다.” 이런 막무가내 비판과 욕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제발 너무 가볍게 판단하거나 말하지 말라. 그 국가의 권세에 대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사도 바울은 국가에 대해서 복종할 것을 말하면서 그 복종에 대한 방법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납세요, 둘째는 두려움과 존경이다.

  바울이 여기에서 세금이라는 주제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위정자들의 직분에서 도출된다. 그들이 선한 위정자가 되어서 평화를 보호하고, 안전을 유지하며, 악인들의 악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일들을 잘 하기 위해서 충분한 재정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세금은 양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우리는 납세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무로 지정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도 잘해야 한다. 청년들이여! 군대 안 가려고 돈쓰거나 그런 거 하지 마라. 내가 군대 가는 것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하는 국가의 본래의 기능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신자들은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고, 통치자들과 위정자들에 대해서 두려움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말한다. “지네들이 두려움과 존경하는 마음을 들도록 하는 모습이 있어야 우리가 존경하든 두려워하든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성경에는 여기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것은 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것과 상관없이 그들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아닐까? 그들을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칼(공권력)(4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신자는 이런 강제적인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닌 양심으로(5절) 국가에 대해서 두려움과 존경을 가지라고 한다.

  우리는 국가와 통치자에 대해서 얼마나 두려움과 존경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런 마음이 없이 성경이 하나님의 사역자(4절)라고 말하는 국가나 대통령이나 국가의 공무원들을 우리가 마구 폄하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3. 내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쓰러져간 많은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이 나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과 나라에 대한 사랑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라 걱정을 하며, 9시 뉴스 앞에서 나라와 통치자들을 비판하고 욕하는 우리들은 정말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그 사람들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신앙이란, 그리고 신앙교육이란 항상 프락시스(실천)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실천되지 않는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고,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입술의 고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윤리적 지식이나 도덕적 판단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도덕과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구체적인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라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쓰러져 간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늘 우리를 깨우치고 부끄럽게 한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입이 아니라, 말이 아니라, 인터넷에 그럴듯한 댓글 몇 개 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진정한 나라 사랑은 때로는 나의 몸을 주고, 나의 목숨을 주는 것이다.

저는 남산에 운동을 갈 때 마다 안중근 의사가 썼다는 그 글귀를 늘 본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바로 이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이 가졌던 마음이다. 내 앞에 아무리 큰 이익이 있어도 그것이 바른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던 사람,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았을 때는 나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그 사랑은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몸을 주는 사랑이었고, 목숨을 주는 사랑이었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나라의 정책에 관심이 많고 할 말도 많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몸으로 하는 것이요, 행동으로 하는 것이요, 실천으로 하는 것이다.
6월이 가기 전에 이 나라와 겨레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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