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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룻 2: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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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룻기 2:14-23)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어머니를 봉양하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추수하는 밭으로 나가 이삭을 줍기로 하였습니다.  추수하는 밭에 떨어진 이삭은 나그네와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따라 농부들은 밭의 모든 곡식을 다 베지 않고 한 모퉁이를 남겨두었으며, 땅에 떨어진 이삭을 말끔히 걷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어 가난한 자들이 가져가도록 함으로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들과 나누며 살았습니다. 

이 은혜의 법이 실천되고 있는 보아스의 밭으로 우연히 들어가 열심히 이삭을 줍던 룻은 그 밭의 주인 보아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불러 자기 밭에서 마음껏 이삭을 줍도록 허락하였으며,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추수가 끝날 때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신변까지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자기 일군들이 마시는 물을 마시게 하는 등 이삭을 주우러 온 나그네 이상의 대우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추수하는 밭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보아스를 만난 룻은 그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나오미의 며느리 이방여인 룻의 아름다운 행실을 칭찬하며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너에게 풍성한 상이 있기를 바란다는 축복을 하였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친절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이며 몰락한 가문의 과부 시어머니의 과부 며느리인 자신을 향해 베푸는 보아스의 넘치는 배려에 감격한 룻은 그를 통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였고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룻을 향한 보아스의 특별한 관심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었을 때에 보아스는 룻에게 이리 와서 내 떡을 함께 나누자고 청하였습니다.  어쩌면 점심거리를 준비해 오지 못했을 룻은 주인의 상으로 청함을 받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주인의 일군들과 함께 앉은 룻은 주인이 주는 떡을 받아 초에 찍어 먹는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보아스는 룻에게 볶은 곡식을 먹으라고 주었는데 배불리 먹고도 남는 넉넉한 양이었습니다. 

풍성한 점심식사를 마친 룻이 일어나 또 이삭을 주우러 나갈 때에 보아스가 자기 사환들에게 룻이 이삭을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그를 위해 곡식 단에서 한 줌씩 일부러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도록 하고 그것을 줍는 룻을 꾸짖지 말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만하면 룻을 향한 보아스의 배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선을 넘어선 특별한 관심이었습니다.  우연히 밭에서 만난 이방여인 룻에게 점점 더해가는 보아스의 배려는 누가 보아도 단순한 동정이나 은혜 베풂을 넘어선 행동이었습니다.

누군가 오늘 나에게 선한 마음을 나누어 주어 이삭을 줍게 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던 룻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 기대에 차고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룻이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밭에서 주운 곡식을 떨었더니 그 양이 자그마치 한 에바쯤 되었습니다.  한 에바는 열 오멜에 해당되는 양인데, 한 오멜은 한 사람의 하루 양식이 된다고 보면 좋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광야를 여행할 때 아침마다 하늘에서 이상한 것이 내려 그것을 먹고 지냈습니다.  백성들은 아침마다 문 밖에 나가 땅 위에 내려있는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을 거두어다가 그것을 굽거나 삶아서 먹었습니다.  희고 맛이 꿀 섞은 과자 같은 희한한 음식을 맛본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주신 이 하늘의 양식을 만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명을 따라 매일 아침 한 사람당 한 오멜씩 거두어 하루의 식량으로 삼았던 적이 있습니다(출 16장).  룻이 그날 하루 거둔 곡식은 열 오멜, 즉 열흘 분 이상의 식량이었습니다.  오늘날 계산으로 하면 한 오멜이 약 2.4리터가 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이삭을 주어 어머니와 함께 5일 이상을 먹을 수 있는 양식을 마련했으니 대단한 수입이었습니다. 

오늘 룻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저는 룻기가 보여주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라고 보았습니다.  룻기에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 땅에서 실패를 맛보고 다시 빈 손으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온 한 여인 나오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잘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나오미에게서 보여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자세였습니다.  나는 전능자의 손에 고난을 당하였고 처음 나갈 때는 풍족하였는데 지금은 빈 손이 되어 돌아왔다고 하였던 나오미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고백하였던 나오미입니다.  그러나 그 징벌과 텅 빔과 고난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던 나오미는 자신을 징벌하셨던 그 전능자가 그 손으로 나를 싸매시고 치유하실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오미의 신앙입니다. 

훌륭한 믿음, 좋은 믿음은 기도하면 어려운 일이 척척 풀려 기적 같은 일을 수시로 체험하고 만사가 잘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기도하였더니 사업에 성공하였고 내가 부르짖었더니 막힌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이 되었다는 성공의 간증을 하는 사람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믿음은 성공과 번영이 연이어 계속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 찬양하는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삶이 이런 성공과 승리의 간증들로만 가득하다면 눈에 보이는 그런 성공의 결과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기적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는가 의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나의 실패와 버림받음과 빼앗김과 상실 당함의 순간에도 잠잠히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향해 엎드려 기다리는 사람에게서 순전한 믿음이 보여집니다.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실패와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어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 또한 좋은 믿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오미의 믿음은 일이 잘 풀리고 성공해서 그 결과를 통해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쓰디 쓴 실패를 통한 믿음이었습니다. 

텅 빔과 징벌의 아픔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나오미의 믿음은 그의 며느리 룻에게서 다시 한 번 발전되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룻기에 그려진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습니까?  먼저 룻의 믿음을 봅니다.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입니다 하고 고백했던 룻의 신앙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나는 실패와 고난 속에서 발견한 신앙입니다. 

룻 역시 나오미처럼 원치 않는 슬픔과 원인 모를 고난 속에서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을 했었을 것입니다.  이방 여인 룻은 결혼한 시댁의 식구들을 통해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되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더 풍성하고 성공적으로 인도하셔야 하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얼마 못 가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는 사건을 경험하였습니다.  왜 이런 시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가 많은 생각과 혼란 속에 수 많은 질문을 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삶의 질이 전보다 풍성해지고 평안함을 누릴 줄 알았는데 교회에 나가면서 가정에 변고가 생기고 사업에 손실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고민을 하고 의혹을 가지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과연 이것이 내가 잘 선택한 길인가?  룻이라고 이런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면서 고백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이런 어려움과 실패 속에서도 모든 질문과 의혹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기대하며 의뢰하는 자세가 룻의 믿음입니다.

룻은 나오미가 ‘네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할 때 동서 오르바처럼 못이기는 척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젊어서 남편을 사별하고 자식도 없는 상황에서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나는 오르바를 비난할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모압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믿음은 행위가 따를 때 그 빛을 드러냅니다. 

이미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의탁한 룻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들어가 그들과의 삶에서 하나님을 더 잘 경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실천 단계는 시어머니에 대한 섬김이었습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이런 행동은 룻기 전체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신앙인의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은 고부간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주어지는 책임의 한계를 초월한 자비를 실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시행되는 베들레헴 추수밭으로 나가 누군가로부터 은혜 얻기를 기대했던 룻은 그 믿음의 열매로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의 친절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있음을 체험한 룻은 이미 자신이 시어머니 룻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시행하고 있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를 갈망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으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는 행동,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밭으로 나가는 행동 이것이 룻의 믿음이었습니다. 

룻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믿음을 봅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에 찾아온 이방여인 룻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로 온 것과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좋은 소문을 듣고 있던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그늘 아래 보호 받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칭찬과 축복은 입에 발린 말로만 그치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룻의 보호자와 상급이 되어 룻에게 최상의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보아스는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율법을 따라 룻을 자기 밭에 이삭 주우러 온 나그네 대우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밭에 이삭 주우러 온 사람에게 이삭을 주우라고 허락하는 것으로 그의 의무는 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율법의 의무와 책임 한계를 넘어 차고 넘치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자기의 식탁에 초대하고 먹고도 남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그의 베풂과 이삭을 마음껏 줍도록 곡식 단에서 일부러 한 줌씩 뽑아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체험한 신앙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신앙고백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아스를 통해 룻과 나오미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은혜의 통로가 된 보아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체험한 사람들이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산 믿음의 모본입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넘치는 사랑을 나누는 은혜의 통로였고, 보아스는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나누는 통로였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  법적인 책임의 한계를 넘어선 자발적인 섬김과 베풂은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을 통해 삶에서 구체적으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이웃들을 항해 후덕한 마음을 나누는 성도들을 통해 지금도 우리 공동체 속에 실천이 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이름이 난 어떤 기독 실업인의 기업이 겪는 노사간 갈등의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부실 기업을 인수하고 정리하면서 그 기업에서 종사하던 직원들 중에 비정규직 사원들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 해고하는 과정에서 해고 위기에 처한 근로자들이 회사와 영업장을 점거하고 단체 시위를 벌이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 기업의 대표는 교계에서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성실한 기독 실업인입니다.  저는 그 기업의 속 사정을 잘 알지 못하기에 지금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만 오늘 룻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차고 넘치는 은혜, 자비와 인애가 그들 속에 실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이 일을 처리할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근로자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급한 사정을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헤아리는 여유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업에서 실천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바람이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 감각이 없는 감상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법적인 의무와 책임을 넘어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삶에서 실천함으로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후한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 그들이 겪는  노사문제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룻기를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사사 시대의 정황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배신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호소와 회복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긍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한 없는 은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룻기의 이야기는 이런 사회 배경 속에 살고 있는 한 가정을 예로 들어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백성을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모자람이 없이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마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자식과 같은 우리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를 받으러 들어온 이방인 같은 우리를 영접하시고 후하게 베푸시는 은혜의 주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요?  보아스를 통해 주시는 주의 은혜를 거저 주시는 은혜인 줄로 알고 겸손과 감사로 엎드리는 룻의 모습에서 주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의 자세를 봅니다.  먼저 체험한 주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며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통로가 되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고 있는 룻과 보아스로의 삶을 통해 우리 믿음의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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