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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에 붙잡히라! (행 1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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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기도하시면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함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결이기도 하고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서도 “형제들이 함께 다정하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 일입니까! 그것은 머리 위에 부어 수염으로 흘러내리되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려 아론의 예복의 깃으로 흘러내리는 향유와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헤르몬 산의 이슬이 시온 산 위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그 곳에 여호와께서 주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영원토록 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하나가 될 때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에 대해 오늘 본문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 모두는 한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테네에서 많은 토론을 벌였음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이 고린도에 온 바울은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에서 만나게 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마치 가뭄 끝의 단비처럼 새 힘을 얻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굴라와 바울은 생업이 서로 같으므로, 바울은 그들 집에 묵으면서 함께 천막을 만들면서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용기백배하여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벌이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을 설득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고린도로 와서 합류하게 됨에 따라 바울은 자기의 지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예수를 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쓰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에게 대들며 욕을 해댑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바울이 기가 꺾인 것이 아닙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대들며 욕을 해대기에 더 이상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가 없어 회당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바울로 하여금 더욱 힘 있게 예수를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인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유스도의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을 쫓아냈던 회당의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안 식구가 주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고린도에 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교회를 자랑하고 목사를 자랑함으로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물론 그것도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전하기 위해 토론이나 설득을 통해 그들을 인도하고자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이 그런 우리들의 토론과 설득을 받아들여 인정한다고 해도 그 결과로 그들이 교회로 나오게 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앞서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실패를 통해서도 전도가 우리의 지식이나 말 재주를 통한 토론이나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 역시 아테네에서 그리고 다시 고린도에 와서 토론과 설득으로 사람들을 예수께서 돌아오게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실패를 하게 됨에 따라 비로소 전도란 오직 말씀에 붙잡혀서 말씀의 능력으로 말씀만 전하게 될 때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바울이 오직 말씀에 붙잡혀서 예수를 전했더니 가장 먼저 회당장과 그 가족이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겠습니까? 어찌 생각하면 믿어도 제일 나중에 믿을 것 같은 사람이 제일 먼저 믿게 되었으니 이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역시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 말씀에 붙잡힌다고 하는 것은 말씀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중보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우리가 간구하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나타나서 우리가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의 마음이 열려 예수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역사는 홀로 수고할 때도 물론 나타나지만 합심해서 기도하며 한 마음으로 증거하게 될 때 더욱 놀랍도록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한 마음으로 합심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요 말씀에 사로잡혀서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함께 예수를 전하게 될 때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70인을 내보낼 때 어떻게 보냈습니까? 둘씩 둘씩 짝을 지워서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랬을 때 그들이 돌아와 놀라운 승리의 보고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혼자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요 전도할 때도 두 세 사람이 함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전도할 때도 함께 팀을 이루어서 오직 예수를 전함으로 이 귀한 구원의 역사가 우리 주위에 널리 나타나 우리가 그토록 구원하기를 소원하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처음에는 토론과 설득을 통해서 유대인들을 돌이켜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온 이후 바울에게 좋은 중보자가 함께 하게 됨에 따라 바울이 말씀에 붙잡히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게 될 때 물론 바울에게 대들며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기가 죽은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오히려 바울은 자기 옷에서 먼지를 털며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 나는 이방인들에게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회당에서 나와 회당 바로 옆에 있는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계속 예수만을 전하게 될 때 회당장 그리스도보와 그의 온 집안 식구가 주님을 믿게 되었고 이어서 고린도에 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물론 먼저는 바울을 위한 동역자이자 중보자가 되는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와서 바울과 함께 하며 중보 기도를 통해 동역자로서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요 무엇보다도 어느 날 밤, 환상 중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조용히 있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 백성이 이 도시에 많다. 그러므로 아무도 너를 공격하거나 해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왜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로 너를 공격하거나 해치지 못하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씀을 전하다 욕을 먹기도 하고 위협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에서도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우리들이 약해서 때로는 염려가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한 바울의 권면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바울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이사야서 43장 1절로 2절에서 “이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곱 백성아,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너희를 만들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 이름을 불렀으니 너희는 내 것이다. 너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 너희가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희를 덮치지 못할 것이며, 불 사이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않을 것이고, 불꽃이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렁이 같은 우리로 하여금 산들을 쳐서 부서뜨리는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막상 전도하려고 해도 말도 잘 못할 뿐 아니라 전혀 무엇을 전해야 할지 그들 앞에만 가면 깜깜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사야 50장 4절은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칠 능력을 주셨다.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말을 내게 일러 주셨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시고, 학생처럼 배우게 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게 되면 모든 능력이 그 말씀으로부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줄줄 나오게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의 사람, 말씀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혹은 말합니다. “나는 교회와 집밖에 모르다보니 누구에게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 드나드는 마트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주위에 사는 옆집 사람들, 마을 사람들 아파트 사람들 그리고 직장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실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먹고 둘러보면 얼마든지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누구는 말합니다. 발안에는 천주교 세력이 강해서 교회가 성장하기 어렵다고요.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천주교인이 많다는 말은 바꿔서 말하면 우리가 구원할 대상이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됩니다. 보십시오. 고린도의 회당장이 예수를 믿게 되니 그 가족이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고린도에 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서 벗어날 자가 없음을 먼저 기억하시고 담대하게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말씀을 전하면 됩니다.
고린도는 어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백성이 이 도시에 많다.”

마찬가지로 화성 시에도 그리고 발안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왜 우리가 주일 예배 때마다 발안을 위한 중보기도문을 함께 고백하며 기도합니까? 그만큼 발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먼저 기도케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는 발안의 대표적인 교회들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왠지 아십니까? 그만큼 악한 마귀가 다급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먼저 대표적인 교회들을 흔들어 놓음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실망하고 이러니 무슨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하고 포기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간악한 술책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뜨겁게 기도하며 오직 말씀에 붙잡혀 기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사단이 무너질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그 대장 랍사게가 하나님을 조롱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 즉 시체뿐이었지 않습니까? 그래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할 때 그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헤립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하나님의 역사가 이 화성 시에 그리고 발안에도 나타난 줄로 믿으십시오. 우리는 단지 이 믿음을 가지고 합심해서 기도하면 됩니다. 이 믿음으로 말씀에 붙잡혀서 담대하게 나가 외치면 됩니다. 그러면 고린도의 회당장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도시가 말씀 앞에 거꾸러지듯이 이 화성시도 발안도 그렇게 거꾸러지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이길 힘이 어디로부터 옵니까?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며칠 전부터 여러분들에게 매일 한 구절씩 하나님의 말씀이 배달되고 있습니다. 날마다 그 말씀에 붙잡혀 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붙잡혀서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이 발안을 화성시를 변화시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가 하나가 되어 말씀에 붙잡혀 예수가 그리스도라 증거하기를 계속할 때 고린도가 이 말씀 앞에 무너졌습니다. 그래 바울과 그 일행은 일 년 육 개월 동안을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우리가 말씀에 붙잡혀 살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또 말씀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가르쳐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역갱신학교에 나가서 배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일에는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다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함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붙잡혀서 살아가며 날마다 이기고 또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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