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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리마대 부자 요셉 (마 27: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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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치기 전에 먼저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그동안 실패와 좌절로 형편없이 구겨졌다고 해서 여러분의 가치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구겨졌다고 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찢어졌다고 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모양과 상관없이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병들었다고 해서 여러분의 가치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이미 십자가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입니다. 여러분은 보배로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의 가치를 여러분의 실력으로 평가할지 모릅니다. 재산의 유무로 평가할지도 모릅니다. 재능과 기술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정말로 존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여러분은 더 이상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외모 속에 감춰진 그들의 영혼의 가치를 따라 그들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평가하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치가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오릅니다. 마치 주식과 같습니다. 인물, 나이, 직업, 경제, 지식, 지역, 사상, 인격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습니다. 위험하고 힘든 세상입니다. 유지하기도 어렵고 상승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리마대 부자 요셉은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성공적인 사람입니다. 건강한 평신도 지도자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시대에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믿음을 지키며 결정적인 순간에 ‘한 몫’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능력의 사람입니다

  본문 57절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아리마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대개 ‘리다’(Lydda)나 ‘라마다임’(Ramathaim)으로 간추합니다. 한편 마가(막15:43)와 누가(눅23:50-51)는 요셉을 산헤드린 공의회의 요직을 맡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가는 그가 ‘의로운 사람’으로서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마태는 ‘부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살면서 예루살렘 근처에 자기 무덤이 있었다는 것은 요셉은 재물이 넉넉했음이 분명합니다. 비록 요셉이 사회적 신분 때문에 은밀하게 예수를 좇았다고는 하나 그가 예수의 가르침에 깊은 감화를 받고 예수를 따른 것은 분명합니다. 전적으로 예수를 따른 12제자는 아니었으나 자기 삶과 생업에 충실하면서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는 성실하면서도 자신의 업무에 탁월한 능력과 실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관원과 의로움과 부자의 삶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의 사람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약점 때문에 더 잘된 사람이 많습니다. 관현악단의 세계적인 명지휘자였단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심한 근시였습니다. 원래 첼로 연주자였던 그는 모든 악보를 완전히 암기한 후 연주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페라 <아이다(Aida)> 연주회 직전에 그가 속해 있던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아이다 곡을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토스카니니뿐이어서 하는 수 없이 그가 임시 지휘자로 단상에 서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하게 된 계기입니다. 당시 19세였던 토스카니니는 그 사건을 계기로 지휘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푸르트뱅글러와 함께 20세기 지휘사에 가장 큰 두 거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근시라는 자신의 약점을 축복의 기회로 바꾼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그는 첼로 연주자로서 관현악단의 단원이 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악보만 암기하면 자신의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적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토스카니니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어 주신 은혜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변명이나 한탄으로 일관한다면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리마대 요셉처럼 관원과 부자와 의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꿈과 비전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분야에서 능력있고 실력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심으로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용기의 사람입니다

  본문 58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두려움의 그림자를 담대히 떨쳐버리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 예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요셉은 산헤드린의 일원으로서 율법 준수에 철저했을 것입니다. 유월절 명절에 즈음하여 시체와의 접촉을 멀리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부정보다 예수의 장사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진정 신앙의 바른 도리에 입각한 성도는 다른 어느 것보다 예수 사랑에 큰 비중을 둡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요셉은 ‘당돌히’(용감하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했다고 하였습니다(막15:43). 실로 요셉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치명적 손실이 가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 결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참신앙의 용기를 보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장담하던 제자들도 도망간 상황인데 요셉이 나타나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시체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평소에는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소리치던 제자들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행동으로 말하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무엇도 아깝지 않고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사랑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때 진정한 용기가 샘처럼 솟아오르게 됩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Smith Wigglesworth)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사람을 40여명이나 일으켰습니다. 위글스워스가 영국 국교회에 소속한 어느 목사님 집에 머물면서 경험한 간증을 이야기한 내용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 간증 속에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순종하는 믿음이 어떻게 기적을 창조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위글스워스와 목사님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계속하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목사님은 두 인조 다리를 차고 다녔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대화는 그 목사님께 없는 두 다리로 옮겨졌습니다. 그 당시 인조 다리는 요즘처럼 세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글스워스는 대화 중에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일 아침에 구두 가게에 가셔서 새 구두 한 켤레를 맞춰 신으십시오.”

  위글스워스는 신유 사역을 할 때에 때론 이렇게 갑작스럽게 말을 꺼내고는 했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그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은 모든 대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의 종이 하라는 대로 하여라.”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위글스워스는 나의 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명칭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이 목사님은 그날 밤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시내로 갔습니다. 그리고 신발 가게에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주인이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가게 문을 열자마자 목사님은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가게 직원이 다가와서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구두 한 켤레만 주시겠습니까?”
  “예, 그러죠. 치수는 몇이시죠? 색깔은 어떤 것으로 할까요?”
  이 물음에 목사님은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가게 주인이 그의 발을 내려다보더니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 상태에선 저희도 어떻게 도와 드릴 수가 없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됐어요. 내가 여기 온 것은 새 구두 한 켤레를 사러 온 거니까. 치수는 팔이고요. 색깔은 검정색으로 주세요.”

  직원은 목사님이 요청대로 구두를 가지러 갔습니다. 몇 분 뒤에 직원과 함께 돌아온 주인은 목사님이 요구한 구두를 건네주었습니다. 구두를 받아든 목사님은 오른쪽 인조 발끝을 구두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조 발과 다리가 갑자기 진짜 사람의 발과 다리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똑같은 현상이 다른 쪽 다리에도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 가게를 걸어서 나갔습니다. 새 구두뿐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새 두 다리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위글스워스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미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종종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부러진 뼈를 고치시는 것이나 없는 다리를 만드시는 것이나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큰 용기가 생깁니다. 두려워 맙시다. 요셉처럼 용기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고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배려의 사람입니다

  본문 59-61절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예수의 시체를 옮기는 일, 씻는 일, 몰약을 섞는 일 등 장례에 필요한 절차를 정성껏 감당하였습니다. 특별히 묘지가 없었던 예수를 위해 ‘자기 새 무덤’을 드렸습니다. ‘새’ 무덤이란 아직 죽음의 영향력이 그 공간을 침범치 못한 곳으로 영원히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몸을 가지신 예수의 시체를 안치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아 처형된 사람을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연속성을 대표하는 무덤에 장례하는 것은 유대법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더욱이 산헤드린의 결정에 의해 사형을 받은 시체를 산헤드린 공회원이 자기 무덤에 장사지냈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같이 주께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실 바로 그때 그곳에 주님 곁에 있을 수 있는 신앙인이 참 신앙인입니다. 주님의 필요를 못 본체 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아직도 신앙인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울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차원을 넘어서 나의 것을 주님의 것으로 드리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버리고 주님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상복씨가 쓴 「배려」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회가 존재하는 것은 경쟁만이 아닌 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조직과 발전하는 기업은 ‘배려를 위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과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오로지 남과의 경쟁에만 매달리는 사람이나 조직이나 단체는 결국 고립되고 망하게 됩니다. 배려가 없이는 경쟁력도 무너져 버립니다. 성도와 교회도 남을 배려할 때 성장하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배려는 무엇을 노리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큰 댓가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배려의 다섯 가지 실천 포인트가 있습니다.
  ①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② 배려는 받기 전에 먼저 주는 것입니다.
  ③ 배려는 날마다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④ 배려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입니다.
  ⑤ 배려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무덤을 주님을 위해 드릴 줄 아는 섬김과 헌신이 있었던 요셉을 보시면서 주님이 얼마나 고맙고 기뻐하셨겠습니까? 배려는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은사이고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배려’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남은 생애 남과 주님을 위해 ‘배려’하는 삶을 실천할 때 놀라운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 능력과 용기와 배려의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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