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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에서 주시는 축복 (창 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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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창35:1-9
제목/벧엘에서 주시는 축복

존 뉴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앙적인 훈련을 받고 자랐지만,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시자, 당시 지중해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나이 열한 살부터 선원이 되었다.
선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신앙도 잃어버리게 되고, 거기다가 성격도 거칠어지고 삐뚤어지기 시작. 그는 자라면서 점점 더 난폭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특히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오는 노예선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배 안에서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싫어하고 멀리할수록 그는 점점 더 나쁜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러던 중 1748년 3월 1일 그는, 배 안에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자신에게 교훈해주시던 그 말씀과 기도가 생각나면서, 그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다시 신앙을 되찾고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의 정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그 후 43년간을 사역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그가 다시 주님을 만난 지 29년 되는 1779년,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오랜 세월동안 삼촌 집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많은 가족과 재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형님을 만나고 세겜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생각지 않는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딸 디나가 세겜 사람들에게 강간하여 욕되게 하였고, 그 보복으로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읍을 엄습하여 그곳 남자들을 다 칼로 죽였습니다. 한마디로 온 가족에 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한 여자가 어려움을 당하였다는 의미도 큰 충격이지만, 하나님의 선민으로써 이스라엘민족자체의 명예와 자부심에 타격을 받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지나면서 과거에 벧엘에서 체험했던 은혜와 첫 믿음, 첫 사랑을 다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세겜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고 큰 낭패를 당하였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세겜에 머물러 산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재조명해 보기를 원합니다.

1.야곱에게 벧엘은 어떤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은 오래전 장자권을 차지하기 위해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을 속였습니다. 그 일로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삼촌이 있는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 이르러 캄캄한 밤에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잘 때에 사닥다리가 하늘에서 땅으로 놓여지고 거기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본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축복의 말씀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지켜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평안하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게 된 것이죠.
그곳이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잠에서 깬 야곱은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하면서, 베개 했던 돌을 세워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곳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은 하나님을 만난 곳이었습니다.
형님의 추격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알지도 못한 곳으로 도망할 때, 그 막막하고 두려웠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축복해주신 곳이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삶에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만난 곳이 벧엘이었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도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야곱은 벧엘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알고만 있던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고 그 권능을 힘입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잠시 세겜에 거한 것은, 밧단아람에서 고향으로 오는 오랜동안의 여행 끝에 가족들과 짐승들이 피곤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에서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잠간 쉬면서 숨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편안하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그곳에서 10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땅의 풍습에 점차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고, 심각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나 믿음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야곱은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여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단을 쌓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살아가는 것이 먼저였고 당장 눈앞의 일이 급해서 자신의 이런 말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시 벧엘로 가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까?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방에 줄이 다 끊어지고 도와줄 사람이 없었을 때, 야곱을 사랑해서 홀연히 나타나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었던 그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 네가 결심했던 그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은 거의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편했고 문제가 없었습니다. 에서와의 문제도 생각보다 잘 해결되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고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헤이해 졌고 힘들고 어려웠을 때 자신과 함께 해 주시고, 자신을 돌보아 주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사랑을 망각할 때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처음으로 은혜 받았던 그 곳, 그때를 기억하라, 어렵고 힘들 때 너와 함께 해주셨던 그 은혜, 그 능력을 잊어버리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올라가라”는 말은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합니다. 물론 세겜보다 벧엘이 고지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상황에서 일어나서 올라가라는 말은, 거룩하고 성별된 신앙으로 네가 지금 처해있는 그 자리를 정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라는 것이죠.

지금의 이 상황에서 돌이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네가 지금 있는 곳 세겜은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 벧엘에 있어야지 세겜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몰론 세겜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곳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있어서 세겜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가야할 곳 벧엘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벧엘은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가장 뜨겁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곳이요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했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마음과 이 사랑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나 여러분이나 지금까지 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렵고 힘들다 해도 과거처럼 어렵지는 않습니다.
만약 교회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건축 할 때를 기억하면 힘이 날것입니다. 일제시대 때, 6.25동란 때를 기억하십시오, 그때를 기억하고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약간의 불편과 어려움은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때 성전건축을 위해 허리띠 메고 금식기도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면서 교회부흥을 위해 헌신하던 때를 기억한다면 지금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힘들고 어렵다면 과거 여러분이 처음 은혜 받을 때를 생각한다면, 처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다음 기뻐했을 때를 생각한다면 여러분을 지금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 서 있어야 하고 우리교회가 어디 있어야 할지를 안다면 우리는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회복하고 가야 할 곳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벧엘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들의 벧엘로 올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다운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껍질도 속도 아니었습니다.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세겜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 땅의 문화는 악하였고 더러웠으며 하나님과의 반대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에 오래 살다보니 생각하는 것이나 옷입는 것들이 세겜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도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디나의 일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34:2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강제로 급탈했다는 의미로 나와있습니다만, 원어에 의하면 디나의 의지도 포함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어느 정도는 디나도 좋아했다는 뜻.
처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겠지만, 자꾸 보고 사귀다 보니 디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물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는 과정에서 야곱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고 그것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애섰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동기제공도 디나에게 있었음을 볼 때 야곱의 그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방신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하나님만 바라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다는, 그런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생각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영적이고 도덕적인 정결상태를 겉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겪고서야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게 되고 삶의 방향을 되찾게 됩니다.
#3절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란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그리고 야곱은 자신의 모든 말을 통한 결단을 하고 있습니다.
#4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 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

야곱의 위대한 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삶을 돌아보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부족하고 약한 부분들을 말씀에 비추어서 다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자신의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속에 불신앙적인 요소는 없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지 못하는 행동과 삶과 우리의 신앙속에서 불신앙적인 태도는 없습니까? 상수리 나무아래 묻어야 합니다. 결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 없이는 내 삶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신앙적인 결단을 매일 매일 해야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벧엘에서 다시 단을 쌓는 야곱입니다.
#6-7절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엘벧엘’이란 말은 ‘벧엘의 하나님’ 이란 말.

야곱은 다시 벧엘에 이르러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하고 그 음성을 듣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축복과 언약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고 어디에서 축복하십니까?
바로 벧엘입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말씀에 의지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그때 역사하시고 그곳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벧엘에 있어야 합니다.
받단아람에서 돌아오매, 벧엘에 이를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벧엘에 오자 새로운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9-12절까지 보면, 이미 바꾸었던 이름을 다시 말씀하시며 신뢰와 확신을 더해주고 계시고, 후손과 재물에 관해서도 축복해주고 있습니다.
#9절 “야곱이 받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앙적으로 아니면 육체적으로 때를 따라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의지해 왔습니다.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을 때에도, 아버지를 속일 때에도, 삼촌 라반의 집에서 재산을 모을 때에도 모두 자신의 힘과 머리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세겜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때에, 하나님은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돌아온 벧엘에서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세겜입니까? 아니면 벧엘입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의 머리와 재능을 의지해 왔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해 오셨습니까? 과거에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벧엘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어디입니까?
벧엘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요 어떻게 보면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제단에 속한 모든 가족들이 벧엘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혜와 축복의 대상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영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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