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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예를 지키시는 하나님 (사 5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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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사야 55: 6절- 13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세상에서 물질이나 돈 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온 천하를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은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는 선택이기에 가장 위대한 선택입니다. 교회와 가정 그리고 혈육과 삶의 터전은 중요합니다. 건강도 소중하지만 명예 역시 소중합니다. 그래서 명예롭게 사는 것은 힘이 든 것입니다.??

어느 도둑이 물건을 훔치려고 밤중에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문 열어 놓고 사는 집은 없지 않습니까? 문을 열려고 소리를 내니까 주인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래서??‘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치니까 놀란 도둑이 도망가고 말았습니다.??도둑은 다음에 또 다시 그 집에 두 번째 훔치러 갔는데 주인이 이번에는 잠에서 깨어나 ‘강도야!’ 하고 소리를 치니까 도둑이 도망가다가 되돌아와서 ‘내가 도둑이지 왜 강도냐?’고 따지며 문 밖에서 말하고 갔답니다. 아마 도둑이 강도보다는 명예가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명예'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를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신앙인답게 살아가는 신앙 선택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되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며, 명예를 높여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람의 이름 즉, "황영복이다."라고 부르는 이름은 자신의 인격과 명예와 존재를 표현하는데 그 중에 이름은 명예를 가늠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곧 나 자신과 같이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름과 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곧 나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표요, 내 자신이 곧 그 이름에 걸 맞는 가치를 창출해 내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이름이나 타인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명예롭게 최선을 다하여 잘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을 의미하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이라는 '캐롤 위모'의 시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했노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했노라고...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힘주시기를 기도하노라고...

성공했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내가 진 빚을 다 갚을 수가 없노라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혼란스러움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구하노라고...

온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믿노라고...

삶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몫의 고통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권위가 내게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처신을 해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위해서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위해서 때로는 순교를 하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나 자신의 존재를 위해 명예롭게 일해야 하지만 죽을 때도 명예롭게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오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내일은 또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말하며,??성경말씀 전체는 약속과 성취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말씀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졌고, 예수님의 재림 외에는 성취된 말씀이기에 반드시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주로 오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이나 손해로 인해 변동하시지 않습니다. 심지어 약속하신 말씀을 지키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외아들을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지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지불하시려고 죄인만이 처형의 도구로 사용하는 십자가에 죽게 하는 한이 있어도 그 약속을 지키신 분이십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절대로 자신이 말씀하시고신 약속하신 성경말씀을 번복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따라합시다. "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말씀하시고, 일하시며, 명예를 걸고 실천하십니다." 그 약속의 말씀대로 순종하거나 실천할 때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우리를 축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명예'라고 제목을 정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명예,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으로 약속하십니다(6-7절 상).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시는데 시편 119편 142절에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고 하였고, 151절에는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진리가 되신 하나님께서 진리가 되신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구원(잠언 11:8절, 시편 22:5절, 119:17절, 요한 10:9절)과 영생(요한1서 5:13절, 요한1서 5:20절, 유다서 1:21절)과 축복(스가랴 8:13절, 로마서 15:29절)과 자유(요한복음 8:32절, 갈라디아서 5:1절, 갈라디아서 5:13절)를 주시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본문 6절 상반 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는 것은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 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찾아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6.25이후에 흩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가슴에 너무 사무쳤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이든 할머니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하여 여의도 광장에 가서 몇 날이나 밤을 새워 가며 지내는 그 모습을, 그리고 드디어 그리던 얼굴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눈물이 없이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가족을 찾는 사람도 있고, 세상 재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으며 세상의 권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어떤 것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6절 전반 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잇습니다. 세상에서 찾을 것을 다 찾고 여호와를 찾지 못하면 그 업적이나 노력이나 수고와 희생과 얻은 것과 자랑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위해 그런 것들은 영원한 위로나 행복이나 자랑할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고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 세상 것을 갖지 못했어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믿음, 하나님을 찾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로서는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이요, 영생과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다면 이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까?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언제입니까? 성경을 통해서 보나, 기독교 역사를 보나, 고통을 당할 때 또 어려움을 당할 때가 바로 여호와를 가장 많이 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많고 권세도 있고 잘 살 때는 세상에서의 아쉬움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도해 봐야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병들어 죽어 갈 때나 세상에서 실패하여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때가 곧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건강할 때는 방탕하였다가 병들어 죽어 갈 때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 사업이 번창할 때보다 망했을 때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이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이구나! 하고 기억해서 고통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은혜를 받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6절 하반 절에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고 하였습니다. "부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신약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롬 10:13). 그래서 본 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 절이 상반 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입니다(Fausset).

'하나님을 부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해 본다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여호와여,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가까이 계실 때가 언제입니까?

시편 50:15절에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하였스ㅜㅂ니다. 마가복음에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갈릴리 저편으로 건너가라.'고 하신 말씀대로 갈릴리 바라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자기네끼리 노를 저어 갔습니다. 얼마쯤 갔을 때 바람이 거슬러 불어 풍랑을 일으켰는데, 성경은 기록하기를 '노를 젓기가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배가 전복될 위기,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여 고생을 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었는데 제자들을 지나가려는 것같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받아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살아갈 때나 가정생활이나 믿음 생활할 때 정말 괴로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마치 지나가려는 것같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지나가려는 것입니까? '불러 주기를 바라고, 붙잡아 주기를 바라고 하시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괴롭다고 생각될 때, 예수를 믿기가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때, 인생살이가 괴롭다고 느낄 때에 다 아시고 가까이 와 계시는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며 축복의 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7절 상반 절에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은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데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악인과 불의한 자가 된 이유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인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난다고 말하지 않고 떠났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예수님을 떠날 때에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지 않고도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곧잘 나오면서 하나님은 벌써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없이 계획하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무엇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하며,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버리라."고 할 때의 길이란, 항상 방법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악인은 그 방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그 생각, 즉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악인은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불의한 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 된 자를 가리킵니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과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다가 보면 지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 성공을 하겠는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공의 길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악한 방법이나 불의한 사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고방식 등을 다 정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떠나는 것은 교회로 나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 때 성공과 승리가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나를 찾으라."고 말씀하시고 "나를 부르라."고 말씀하시며, "내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 후반 절에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요한3서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고 하셨으니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든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약속을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7중~9절)

진리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고 실천하여 행하는 자에게 7절 중반 절에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고 약속합니다.

출애굽기 33:1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긍휼히 여긴다"하는 말은 우리 말 그대로 "불쌍히 여긴다." 혹은 "동정한다." 는 뜻이지만, 히브리 사람들이 쓰는 긍휼은 "나아감"이란 말로, 성경에서는 자비라는 말로 여러 번 번역되어 있으며 긍휼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자비라는 말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부드럽게 대하여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한 곳에 부자 영감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영감님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반면 아우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아들이 꼼꼼히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유산을 받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실 유산을 미리 달라고 졸라서, 드디어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게 되니 얼마나 자유스로운지, 창기들과 함께 먹으며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돈이 많이 있으니까 친구들도 많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한 밑천 잡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성공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유도 만끽하였지만, 이 자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방종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교회를 떠난 후, 성공한 다음에 다시 교회에 와서 믿음 생활을 잘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당분간 한 밑천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며 그 뒤에 오는 실패의 아픔은 갑절이나 더합니다.

돈도 다 떨어졌으며 친구도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게다가 흉년이 들었습니다. 돼지를 키우는 집에 취직을 했지만 월급은 고사하고 음식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돼지와 함께 자며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떠나 사는 사람의 말로입니다. 이럴 때,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으로 어떻게 아버지께 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거지로 있거나 도둑질이나 자살을 할 수도 있습니다.

눅 15장에 거지가 된 아들은 죽을 생각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죽을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니까 아버지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긍휼과 자비입니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42:12절에 "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 앞에 돌아올 때 긍휼과 자비로 대해 주시며, 또한 다른 관계도 긍휼을 얻게 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본문 7절 하 반절에는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널리 용서하신다."는 말은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신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속죄관은 반드시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다 용서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만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3절, 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면 너는 용서하라." 하루에 7번이나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7번을 찾아옵니다. 속상해서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회개하거든 다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상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실수도 다 용서해 주십니다. 아무리 오래전에 지은 죄라도 잊어버리십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까. 과거의 실수에 절대 좌절 마시고 새 힘을 얻으시며 동시에 과거의 성공이나 충성에 절대 자만하지 마십시오.

본문 8~9절에 보면 보장의 약속을 해 주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는데 한마디로 하나님은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 됩니다

시 103:11절에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 57:10절은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고 하였고,

시 89:2절에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고 한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하늘과 땅의 높음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우리가 땅이라면 하나님은 하늘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인간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의 긍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약속한 것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부도 수표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말로 해도 부도 수표가 나고 진짜 어음을 끊어 주었다가도 부도 수표가 나고,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됩니까? 사람은 무능해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백퍼센트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전혀 다르십니다. 신실하시고 변함이나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르시거나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꼭 지키실 능력과 권세와 신실성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믿는 대로 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순종하고 실천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응답과 은총과 하나님의 간섭을 통해 나타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시다는 것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본질로 말씀하시며 보장해 주는 약속을 하시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약속을 여러분의 축복이요. 영광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3. 약속을 보장하실 뿐만 아니라 실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 - 13절).

진리가 되신 하나님, 변함이 없는 하나님, 명예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하시거나 약속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보장해 주신 약속대로 실천하시기 위해 책임지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명예를 지키십니까?

1)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10절)라고 한 말씀은 해석과 같습니다.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 각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다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하늘에서 비나 눈이 온 다음에 그것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없습니다. 땅을 적셔 들어가면 뿌려진 씨가 움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종자가 되며 양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그의 뜻을 이루고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형통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가 명하여 보낸 일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그 말씀을 따라 충성해야 합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을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받을 일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따라합시다. "축복엔 공짜가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여 보내신 일, 나에게 주셔서 하라고 하신 일에 순종하고 헌신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축복의 단비가 되어서 내가 하는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형통하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성공이 보장됩니다. 할렐루야!

2) 인도해 주십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12절).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을 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 지도자 되시는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합니다.

미 2:12,13절에 "야곱아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러 나갈 때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12절 하)."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하려는 사람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비유를 하시는데 산천초목을 통해 알려줍니다.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12절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하려고 나아가는 사람을 인도하여 주는 장면을 보고 산들과 작은 산들이 노래를 발하고 그 산에 있는 숲들이 손바닥으로 박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인도함을 받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인생의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서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의논을 하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해보지"합니다. 또 다른 분에게 가서 의논을 하게 되면 거의 같은 말을 합니다. 절대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보자고 같이 동참하여 주기를 바라지만 절대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습니다.

정말 내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생각하며 인도하여 줄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석가모니가 인도하는 불교인들을 보십시오. 공자가 인도하는 유교인들을 보십시오. 그런 보장이나 약속이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미 만세 전에 아시고 택하시어 때가 되매 불러 주셔서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에(시 98:8;롬 8:19-22). '천상세계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마저 기뻐하며 환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르고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도해 주심의 약속을 믿고 선한 결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3) 대신하게 하는 기적을 주십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3절).

사 60:13절을 보면 '잣나무는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 23:6;미 7:4절을 읽어보면 '가시나무는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느 8:15절을 읽어보면 "화석류"는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습니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5:6절을 보면 "질려"는 '황량한 비경 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자 여기서 잣나무와 가시나무가 비교됩니까? 그런데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난다.'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화석류와 질려, 즉 찔레나무와 비교가 됩니까? '찔레나무를 뽑아 버리고 화석류가 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부 좋은 것으로 심어 주고 가꾸어 주겠다.'고 분명히 약속을 실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형통하는, 그리고 좋은 것만 주셨습니다.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 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곳이었지만 복 받게 되었고 롯은 기름진 땅에 살다가 불로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야곱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월을 지내 놓고 보니까 험악한 세월, 고난이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고난이 없었으면 믿음과 인생이 바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간의 외삼촌 집에서의 라반을 만서서 고난을 통해 자신의 간교함과 속이는 잘못이 바로 잡아 진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왕 앞에서의 고난에 대한 고백 후에 애굽의 총리대신 부친의 예우를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위장병이 얼마나 심했던지 물만 마시고 살았습니다. 건강할 때에 기도를 안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중병을 앓다 보니까 기도를 많이 하고 은혜를 많이 받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초대교회의 훌륭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이나 시련이 찾아온다고 혹은 내 계획이나 내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나쁜 것이 대신하는 역사로 가장 유익하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가 되도록 좋은 것으로 바꾸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바꾸어 주시는 은총, 대신하는 역사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즉 '나를 찾으라.', '나를 부르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약속하시고, 보장을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면 그 약속을 철저하게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는 분이시며, 자신의 명예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명예로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을 받고 살아가기 위해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형통케 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대신하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어 자신의 명예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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