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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의 공동체 (엡 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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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공동체
엡5:19-20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흙을 가져다 붓고 자신이 좋아하는 온갖 아름다운 씨앗들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정원에는 그가 좋아하는 꽃들만이 아니라 수 많은 민들레가 피어났습니다. 민들레는 아무리 뽑아도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또 피어났습니다. 민들레를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는 결국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노란 민들레는 다시 또다시 피어났습니다. 마침내 그는 "정원 가꾸기 협회"에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정원에서 민들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민들레를 제거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은 이미 모두 시도해 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이 글은 시인 류시화의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이란 글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오늘의 문제와 어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견고하게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문제 많은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문제와 어려운 상황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나아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 중에 “흐르는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의 아름다운 소리는 곳곳에 박혀 물의 흐름을 방해하던 돌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경과 고난이라는 돌이 없다면 아름다운 감사의 찬양과 기쁨도 없습니다. 문제를 오히려 사랑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화니 제인 크로스비라는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어려서 다른 사람의 실수로 맹인이 됐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행운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내가 장님이어서 좋은 것은 천국에서 제일 먼저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일평생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고 많은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446장이 그녀가 남긴 찬송입니다.

찬양을 부르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이 기쁠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슬픔 중에도 역경과 고난이 닥쳐왔을 때에라도 할 수 있는 찬양이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면 우리의 영이 새로워집니다.
찬양은 모든 세상의 추한 것들로 가득한 우리 영혼과 마음을 평안으로 인도해 줍니다.
찬양을 부르면 한없는 위로와 평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찬양하는 곳에 성령의 거룩한 임재하심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40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주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이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좇기는 신세가 되었고 죽음의 위기 앞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다윗은 새 노래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주셨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릴 찬송은 새 노래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노래들이 있습니다. 트롯트, 발라드, 째즈, 힙팝, 여러 종류의 노래들이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그 노래를 즐기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불러야 할 노래는 새 노래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올릴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세상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새 노래, 하나님께 올릴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세상의 노래들은 나의 기쁨, 나의 슬픔과 애환을 담아 노래하는 것이지만 성도들이 부를 새 노래는 하나님께 올릴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슬픔 중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성도들의 새 노래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성도들이 부를 노래입니다
은혜가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성도들이 부르는 새 노래입니다.

‘새 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의 뇌세포는 대체로 일천억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아직도 무한한 비밀로 적어도 우리 몸의 세포는 일조개 정도로,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뇌세포는, 너무 정확해서 보는 대로, 말하는 대로, 듣는 대로 다 입력된답니다.
그러니까 뇌세포 어딘가에 입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력에 따라 삶을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윤심덕은 ‘사(死)의 찬미’ 즉 죽음의 찬미를 부르다가 극작가 김우진과 동반자살을 합니다.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다가 자기도 스물 아홉살에 낙엽 따라 가버렸습니다. 김정호는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부르다가 서른 세 살에 자기도 가 버렸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를 뒤에서 따라가 보니 차가 들썩들썩하는 것입니다. 보기에도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운전하시는 기사분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앉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좁은 통로에 나와서 흔들어 댑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혹시 ... 여기에도 ..  그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올릴 찬양의 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영이 살고 육의 삶도 축복받는 것입니다.

작년 청소년 단기 선교 때 태국에서 캄보디아 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학생들이 찬양을 부르면서 너무 즐겁고 은혜가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새 노래를 부르며 춤출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33: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시편30:4절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시편 119:164절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축복받은 성도는 모두 찬양하며 사는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15:1-2절에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일생을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찬양하는 다윗이 왕이 되니 나라가 평화로워 졌습니다. 나라가 번영하고 발전했습니다. 온 나라에 번영과 축복이 온 것은 영적인 찬양을 부르면서 영적인 회복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찬양대원만 288명을 다윗이 임명해서 찬양을 부르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아침 저녁 번제를 드릴 때도 찬양대원이 서서 찬양하면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다윗 시대에 수많은 악기가 개발 됩니다. 십현금, 삼현금, 큰소리 나는 제금, 높은 소리나는, 퉁소와 현악과 비파와 수금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이런 수많은 악기들이 다윗 시대 때에 개발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온 세계에 최고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악기로 발전해 내려옵니다.

찬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기적을 보고 미리암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하심의 소식을 듣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 불렀습니다.
태의 문을 열어주신 은총을 입고 한나가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을 했습니다. 축복받은 성도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가끔 저는 밤에 운동을 하기 위해 부송 공원을 갑니다. 하루는 공원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 한 집에서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찬양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제가 한 동안 서서 찬양을 들었습니다. 어느 집에선가 가정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그 이상의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 집이 부자냐 가난하냐,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찬양이 있는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산에 새 소리가 없으면 산은 죽은 산이듯이 우리 가정도 아무리 아름답고 울창하게 꾸며도 찬송이 없다면 그 집은 죽은 집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정, 영적으로 살아있는 가정입니다. 믿음의 가정이며 축복받은 가정인줄 믿습니다.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입니다. 교회는 찬양을 부르러 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찬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을 하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찬양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며 중심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은 찬양하는 교회에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찬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찬양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 올릴 새노래를 부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풍성한 교회 찬양의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가장 감동하는 순간은 예배 중에 모든 성도가 힘껏 부르는 찬양의 소리를 들을 때라고 합니다. 제가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채플에서 예배를 드리면 감동을 한 것도 찬양 시간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이 부르는 힘찬 찬양에서 저의 마음은 고동치듯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학교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사랑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배하며 찬양 가운데 감동과 은혜를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의 감동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져서 교우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가 은혜가 풍성합니다. 그런데 특히 은혜가 되는 예배가 있습니다. 금요찬양기도회입니다. 금요일 밤10시부터 시작되는 찬양 기도회에서는 힘찬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의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시간입니다. 한번 와보십시오. 참여하여 함께 찬양의 깊은 감동과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오늘 읽은 말씀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있는 찬양의 공동체라는 말씀입니다. 

시98편에서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구속해주신 이 엄청난 은혜에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찬양의 공동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교회에는 찬양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찬양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니 치유와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니 묶인 자가 풀려 자유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찬양할 때 모든 질병이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자가 찬양할 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낙심한 자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찬양의 능력입니다.

다윗이 수금과 비파를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울 왕에게 있던 악한 영이 떠나가고 그를 괴롭히던 아픔이 사라져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찬양을 부르면 마귀가 불러가고 귀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더니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찬양을 부르면 앞길의 장애가 사라지고 닫혔던 문이 열려지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암몬과 모압이 쳐들어 왔을 때 온 백성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세요. 주의 종들을 믿으세요. 그리고 여호와께 감사하세요. 그의 자비하심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면서 찬양대를 전쟁터로 군대 앞에 보냈습니다. 앞에 가면서 찬양대들이 찬양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족속을 다 물리쳐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견고한 여리고성도 나팔 불고 제사장들이 앞에 가면서 찬양 할 때 한 순간에 다 무너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찬양의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찬양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부를 새 노래는 하나님님께 올릴 찬양입니다. 찬양하십시오.
찬양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올릴 새 노래를 부르십시오. 그리하여 찬양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묶고 있던 모든 결박이 풀려지고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새 노래로 찬양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낙심하고 계십니까?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시게 될 것입니다.
병들어 고통 받는 성도들이 계십니까? 찬양하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을 노래하십시오.
치유해주시고 회복케 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찬양 가운데 여러분께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승리가 필요하십니까? 찬양을 앞세우십시오. 그리하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편이 되어 승리토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답답하십니까? 찬송을 불러보십시오. 가정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화목을 이루는 축복의 가정들이 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의 삶에 필요하십니까?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하심의 섭리를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 능력 있는 교회,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찬양하는 교회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힘찬 찬송을 부르세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 노래로 찬양합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처럼 오늘도 생명과 호흡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생명주신 하나님께 찬양합시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속하시고 부르짖는 자에게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주리라 약속하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께 찬양합시다. 
슬픔과 위기와 절망으로 가득 차 힘겨워할 때에라도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실 하나님을 찬양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찬양하라 내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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