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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하시는 하나님 (창 2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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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시는 하나님 (창 22:1-18)

I. 여호와 이레

창세기 22장 1절부터 18절 본문 아래 3주간동안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양식으로 살아가지 말고 씨앗으로 살아라「축복의 씨앗」, 지난 주일 구원 얻는 신앙에 목숨 걸지 말고「구원 그 이후의 신앙」으로 성큼 나아가라, 오늘은「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외에도 그 이전에「내려놓음」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고 네 자녀를 결박하라 등, 여러 편의 설교를 이 본문을 가지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본문은 제게 큰 은혜를 주었고 또 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고 다양하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신약 최대의 사건이 갈보리 언덕 십자가 사건이라고 한다면 구약 최대의 사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모리아 사건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렸다고 하면 갈보리 언덕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번제로 드려 많은 인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가장 위대한 승리를 확인했고 갈보리 언덕 위에서 예수님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어느 양계 업자가 깊은 산중에 들어갔다가 독수리 알을 얻어 왔습니다. 암탉 밑에 계란과 함께 독수리 알을 넣어두었더니 병아리가 부화될 때에 독수리도 부화가 되었습니다. 독수리 새끼가 자기가 병아리인줄 알고 똑같이 먹이를 쪼아 먹으며 따라다니더랍니다. 독수리가 엄청 커서 엄마 닭보다 훨씬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 줄을 모릅니다. 날개 하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양계 업자는 독수리를 데리고 높은 벼랑에 섰습니다. 절벽을 향하여 독수리를 집어 던졌습니다. 날개를 퍼덕퍼덕 해 보더니 날개를 쫙 펴서 하늘을 향해서 솟아오르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높은 창공으로 솟아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하늘을 날기 원하시는데 땅에만 벌벌 기어다닐 때에 우리를 높은 벼랑으로 높은 언덕으로 절벽으로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벼랑을 향하여 우리를 집어 던집니다. 죽으라고 던지는게 아닙니다. 땅위의 기는 삶을 살지 말고 저 높은 창공 믿음의 세계를 향하여 날아오르라는 것이지요.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으로
오늘 넘어지신 분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땅을 기어다니시는 분 저 푸른 믿음의 창공을 향하여 솟아오르는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로 드린 이 모리아 산 언덕에서 이 엄청난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새롭게 아브라함에게 다가옵니다.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이레" - 이 말은 원래 "하나님이 보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성경은 보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성경에서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개역개정판에서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신다.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이지요. 우리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구경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준비하시고 채워주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2장 8절에 보면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물었을 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준비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와서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 아니 모든 신앙인의 최대 최고의 신앙고백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손에 불과 칼을 들었습니다. 이삭에게 장작을 짊어지우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지금 모리아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리라 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준비한 어린양이 숲속에 있는 걸 알았단 말입니까?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한 말입니까?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바쳐야 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어찌 이 엄청난 고백이 가능했을까요? 아브라함이 어떤 선지자의 명 설교를 듣고 믿음이 생긴 것도 아닌데 어찌 이 고백, 이 신앙이 가능했을까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얼마나 엄청난 신앙이요 고백입니까?

II.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하나님은 어떻게 나의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나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준비 하실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나의 부족을 채우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했다. 그분이 주인이시다. 그분이 다스리신다. 그분은 날 사랑하신다. 여호와 이레의 고백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창세기 1장 천지창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우주만물을 만드시는데 인자한 아버지가 사랑스런 자녀를 위하여 기업을 준비하듯 자녀를 위해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계속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짓기 전에 하나님은 빛을 준비하셨습니다. 코를 짓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맑은 공기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발을 만들어 놓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땅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의 입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에 최고의 신앙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본토를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척을 떠나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새로운 가족을 준비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비의 집을 떠나라 할때에 나의 진정한 아비는 하나님 그분임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아버지가 됨을 아브라함은 알았던 것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 믿고 제일 편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삶인 줄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게 제일 평안한 삶이예요. 내가 너희에게 지시하는 그 땅으로 가라. 그곳이 어디입니까?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시는 그곳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이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쉽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 짓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게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 그 삶이 가장 쉬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평안히 살 수 있습니까? 제자들이 물었을 때에 "하나님만 붙들고 사는 것이다." 그 손으로 많은 것을 붙들고 살려고 할 때에 거기는 갈등과 번민과 고민이 있지만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힘으로 많은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우리의 초점이 흐려져서 많은 갈등과 염려와 근심이 있지만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맞추고 살아가면 네 삶이 평안해 질 것이다. 이것도 붙들고 이것도 믿어보려고 하지만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평안한 삶이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삶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장 확실히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만 믿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III.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

첫째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한다면 둘째 여호와 이레의 신앙은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나무를 벌려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한 손에 불을 들고 칼을 높이 치켜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0-13)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니 이삭을 대신한 어린양이 수풀에 걸려서 매에~ 매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14절) 여기서 구속의 신앙, 대속의 교리, 제사 신학이 탄생되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대체될 수 있다.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숫양이 대신 번제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죽어 껍질이 벗겨지고 옷이 만들어 졌습니다. 아브라함과 하와가 용서받았습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했을 때에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워 우리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 그 분을 죽이시고 우리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제물은 대체될 수 있다.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에 당신이 죽어야 하는 그 자리에 우리가 죽어야 하는 그 자리에 우리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신 것이지요.

지금부터 140여년전 미국 흑인 노예 해방전쟁 -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브라함 링컨이 전쟁이 끝난지 5일만에 총에 맞아 죽습니다. 그의 유해가 백악관 앞을 지날 때 수십만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그 행렬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한 흑인 어린아들을 번쩍들어 올리며 "아들아, 똑똑히 보아라. 저분이 우리 때문에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았다. 저분이 죽어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어린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분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분이 상처를 입으므로 우리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유를 얻었습니다.
그가 거절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납되어졌습니다.
그가 저주 덩어리가 되심으로 우리가 복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장 위대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의 이름 앞에 귀신들은 두려워 떨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의 문을 닫혀지고 하늘 문이 열립니다. 수많은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 그가 죽으심으로 내가 살고 네가 살고 우리가 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참된 주인은 예수 그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영원한 양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오늘 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그분 앞에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 고백을 해 보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 당신만이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IV. 여호와의 산(교회)에서 준비되리라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디서?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14절) 모리아 산을 여호와의 산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복이 어디서 온다고요?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 모리아 산 언덕이 나중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는 자리가 되는 곳입니다. 이 모리아 산 언덕이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골고다 언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비한 역사의 교훈입니까? 이곳 성전이 여호와의 산입니다. 이 교회가 모리아 산입니다. 골고다 언덕입니다. 여기가 여호와의 산입니다.

오늘 주일 아침 지구상 20억 인구가 주님 전에 달려나와 예배하고 있습니다. 왜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사라처럼 집안에서 두려워 떨며 불안 근심 염려에 떨며 집안에만 있지 마십시오. 종들처럼 산 아래만 머물고 있지 마십시오.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지 마십시오. 이삭처럼 어깨에 장작 짊어지고 이곳에 오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일마다 달려나오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려 주실 것입니다. 손에 성령의 불을 들고 말씀의 칼을 들고 이곳에 달려나옵시오. 주께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이곳에 와서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너를 심히 번성하게 할 것이다. 하늘의 뭇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너를 번성케 할 것이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17절) 네 씨가, 신앙 공동체가 언젠가 대적의 문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모리아 산 언덕에 17절 말씀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16장 16절 - 18절로 이어집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구약의 "대적의 문을 차지할 것이다" 신약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예수님의 여행에 마지막 여행이 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번에 내가 예루살렘에 내려가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후 예수님께서 발길을 돌려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북쪽 나라를 향하여 발길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17장에 가서 보면 변화산으로 알려진 헤르몬 산에 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결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위대한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헤르몬 산은 우리나라의 어떤 산 보다도 높은 사시사철 눈이 쌓여져 있는 만년설이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그곳에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하는 전원의 도시 목가적인 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신도시였습니다. 도시를 만들어 놓고 그 도시 이름을 가이사랴 빌립보라 불렀던 것이지요.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의 이름입니다. 빌립보는 그 마을을 다스리고 있는 분봉왕의 이름입니다.

조그마한 신도시를 만들어 놓고 로마 황제이름과 분봉왕의 이름을 붙였다면 거기에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의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거대한 신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길은 로마로, 로마가 세계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황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메시야요 구세주라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닉하게도 그 도시 한 복판을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걷고 있습니다. 진짜 메시야가 그 마을을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습니다. 메시야라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분이 제자들과 함께 그 마을을 지날 때에 그들이 얼마나 초라한 행색 초라한 몰골을 하고 지나갔을까요? 샌들을 끌고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신전을 지키는 문지기만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일행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제자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을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울먹이며 대답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그 누구도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메시야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만이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기뻐서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올 때에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신비한 비밀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교회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몸입니다. 이 교회가 얼마나 존귀한 공동체입니까?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 지구 도처에 교회를 세워서 대적의 문을 막을 것이고 지옥의 문을 막을 것이고 하늘문을 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세계도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드러내는 수많은 민족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정치가가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장군이 되면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인데 그렇다면 기독교 정당을 세워서 정치를 한번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다 그것이 얼마나 허왕되고 잘못된 것인가 깨닫고 목사가 되기로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되면 난 어떤 목사가 될 것인가? 후진을 가르치는 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열심히 신학을 공부하다가 예수님의 가슴속에 있는 한 교회를 보았습니다. 교회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의 신비, 교회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전을 가슴속에 품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속에 있던 그 교회를 내 가슴에 품고 주님이 피흘려 이 교회를 세우셨듯이 나도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목적과 비전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는 내 인생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는 우리가 생명 걸고 지켜야 될 목적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하여, 내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고 신앙이 존재하고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언제든지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교회는 목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선교단체들이 있지만 이 선교단체가 100년 200년동안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교단체는 없습니다. 연약한 교회를 일으켜 세워주고 교회에 영성을 공급해 주고 나면 선교단체는 막을 내리고 문을 닫습니다. 교회는 못나 보입니다. 오늘 이 여론에서 내일은 저 방송에서,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깨지는 연약한 공동체인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지난 2000년동안 도도하게 복음전도의, 능력의 은혜의 물결은 이 교회를 통하여 역사 중심을 간파하고 흘러 왔습니다. 교회를 높이는 자를 주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존귀히 여기는 자를 주님께서 존귀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V.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 신비

아브라함 - 여호와 이레의 신앙고백을 한 다음 하나님이 확인해 주시는 복이 있었습니다.

18절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이미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복덩어리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한다"

지난 주간에 대전에 있는 한밭 제일교회라는 곳에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이영환 목사님이신데 저보다 연세가 조금 높으신 목사님이십니다. 참으로 큰 마음을 가진, 큰 비전과 꿈을 가진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의 가슴속에 기인의 성품을 본 것이지요. 그분은 청년시절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큰 목사가 아니더랍니다. 유창한 설교가도 아니고 큰 믿음을 가진 사람도 아니도 큰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큰 인물이 될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0여명 모이는 교회를 꿈꾸며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창세기 12장 3절을 읽어 내려가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내가 아브라함에게 위치에 있다. 나를 아브라함의 위치에 갖다 놓고 나를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해 줄 거야. 나를 저주하면 하나님이 너 저주한다. 이렇게 적용하는데 이분은 나는 아브라함은 아니다. 나는 목사세계의 아브라함은 아니다. 나는 믿음의 세계에 아브라함은 아니다.

나는 어떻게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내 주변에 하나님이 보내 주신 아브라함이 있을 거야. 한국교회 안에 아브라함이 있을 거야. 나는 그들을 축복할 거야. 아브라함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만나고 그분이 영향받았던 사람들을 아브라함으로 선정해 놓고 축복하기시작했습니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큰 꿈, 큰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큰 목회하는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큰 능력 가진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크게 재능있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2년 10년 20년 지속적으로 자기가 발견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웁게도 축복했던 그 사람들의 믿음이 자기 믿음이 되더랍니다. 그분들의 비전이 자신의 비전이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분의 능력이 그분들의 성품이 그분들의 마음이 자신의 비전이 되고 자신의 마음이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얼마나 마음이 커졌는지, 얼마나 성품이 커졌는지, 큰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물론 예배당도 큽니다. 땅도 넓습니다. 교인들도 많습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저는 그분에게서 기인의 기질을 본 적입니다. 큰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7-8명의 아브라함을 발견하고 매일같이 몇 시간동안 그 아브라함을 발견하고 축복하는데 그 가운데 류영모가 들어 있더라구요. 꿈대로 되는 교회를 읽자마자 이분은 한국교회의 아브라함이다. 축복하기 시작했대요. 그분은 아브라함이라고 고백하고 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큰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있는 것을 저는 보게 된 것이지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영접하는 자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을 약속하시면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에게 이 복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인하여 주시면서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1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신구약 성경에 최대의 신원보장이 여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걸고 약속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복, 준비해 놓은 모든 복을 아브라함에게 줄 것이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만든 창조주이십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는데 최고 최대의 복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독생자를 주었는데 무엇을 아끼겠느냐? 내 독생자가 아깝지 않았는데 무엇이 아깝겠느냐? 독생자를 네게 내 주었는데 각양 좋은 은사를 내가 왜 아끼겠느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 앞에 붙들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신부된 교회의 영광을 보십시오. 이 교회가 아브라함입니다. 교회를 축복하는 자는 교회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선지자를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브라함의 복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과 함께 이 모리아 산을 내려가시기를 바랍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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