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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벧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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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베드로전서4:7-10)

  조신형, 박현찬씨가 쓴 「경청」이라는 글의 한 장면입니다.
  그 밤에 이토벤은 자신이 청력을 잃어가는 것이 종양 때문이며 몇 달 후에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노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노인은 물끄러미 이토벤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온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봄이 영원하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 인생의 봄도 한철이야. 여름도 그렇고, 인생의 겨울이 온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나.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게나. 저기 오래된 겨울나무를 보게나. 수백 년 살아온 겨울나무의 위용을 보라고. 푸른 잎은 모두 떨어져 없지만 뿌리와 가지만으로도 얼마나 늠름한가 말일세. 그루터기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한가 말이야.”

  이토벤은 나무의 거대한 뿌리를 보았습니다. 푸르고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강인하게 버티고 있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지나간 영광의 시절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울 때가 있지. 그러나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말게. 뒤에 남은 그루터기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위안과 힘을 찾을 수 있다네.”

  노인의 낮은 목소리가 이토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사실은 나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무가 말해주는 마음의 길을 알게 되었지. 그 이후로는 이렇게 홀로 있어도 외롭지도 않고 죽음이 두렵지도 않게 되었다네. 그것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솜털같이 가볍고 부드러워져.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벼워진다고. 그러면 무엇을 잃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모든 인간에게는 마지막 순간이 있지만 그것이 영원한 마지막은 아닙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까왔으니‘의 헬라어 ’엥기켄‘은 대단히 임박한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베드로는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낙심치 말고 소망을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어렵고 급할 때에 낙심과 포기가 아니라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부터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도하라

  본문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다’의 헬라어 ‘소프로네사테’는 올바른 마음과 침착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근신하여’는 환경에 따라 요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조심성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무절제한 생활을 버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졸며 깊이 잤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깨우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할 시간에 잠만 잤던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흩어져 박해 박고 있는 성도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찰스 스탠리 목사는 「기도 응답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 저는 기도를 시작하기만 하면 잠에 빠져 들곤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잠을 적게 자고 공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기도만 하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1년을 씨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문제의 원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은 제가 기도하는 것보다 설교하거나 공부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저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잠’이라는 교묘한 공격 수단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라는 영적 전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기도만큼 위협적인 것은 없습니다. 진정한 영적 전투는 우리가 무릎을 꿇을 때 시작된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는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사탄은 필사적으로 우리의 기도 생활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가장 크게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도 무릎을 꿇을 때이며, 우리가 가장 선한 결과를 얻을 때도 역시 무릎을 꿇을 때입니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영적으로 극히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무엇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걷고 있습니다. 어디서 얼음이 깨지고 폭발물이 터지고 인질극이 벌어질지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해야 할 시간에 잠을 잤을 때 예수님은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였으며 말고를 향하여 칼을 휘두르는 혈기와 만용을 부렸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할 시간에 기도하지 않으면 추하고 부끄러운 꼴을 당하게 됩니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이 여름에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사탄이 두려워 떠는 기도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사랑하라

  본문 8절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무엇보다도’는 어떠한 일보다 사랑을 먼저 할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열심으로’의 헬라어 ‘에크테네’는 ‘힘껏 노력하는, 전심전력하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사랑은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가지고 행동을 수반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습니다. 즉 피차간에 있는 허물을 덮어 주고 서로를 세워주고자 하는 사랑은 죄를 가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무조건적으로 용서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부모님이 덮지 않았다면 모든 자녀는 죄로 인해 다 죽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큰 사랑으로 우리 모두가 살았고 사람이 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덮지 않으셨다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죄인이며 죄 가운데서 죽고 멸망당하였을 것입니다. 사탄의 종노릇을 하다가 영원한 지옥에 가서 눈물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못한 사랑이 아니라 ‘열심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존 고든이 쓴 「에너지 버스」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비싼 향수를 뿌린다고 해서 사랑의 자석이 될 순 없어요. 술잔을 부딪치며 허물없는 척 떠든다 해도 사랑의 자석이 될 수 없죠. 당신의 직원들과 고객, 회사, 가족을 사랑해야만 사랑의 자석이 될 수 있어요. 때로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까지도 끌어안아야 하고요. 당신의 팀원들이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건 바로 ‘사랑’이에요. 그리고 팀원들끼리도 마찬가지죠. 이해관계나 조직구조에 따른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소통할 때 그 팀이 발휘하는 시너지는 엄청나답니다.”

  당신이 그들을 승진을 위한 도구, 보너스를 타기 위한 도구로만 여긴다면,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 태도를 보일 거예요. 반대로 팀원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핀다면, 그들 역시 당신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아줄 겁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놀라운 실적을 내고…. 당신이 가르쳐준 만큼 당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거고요. 이건 세일즈에서도 통용되는 원리에요. 최고의 세일즈맨들은 사랑의 자석입니다. 고객들은 세일즈맨이 자신을 새로운 자동차나 보트 따위로 보고 있을 때 그것을 금방 알아차리지요. 대신 자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고객은 절대 그 세일즈맨을 떠나지 않아요. 상대방의 진심어린 마음을 느끼면 고객들은 더 많은 일을 맡기고 자기가 발 벗고 나서서 다른 고객까지 소개시켜 주려고 할 거예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요. 당신이 사랑을 많이 주면 줄수록, 당신에게 더 많은 사랑이 돌아옵니다. 당신의 사랑을 느끼기만 한다면, 팀원들 역시 당신의 버스가 어디로 향하든 내리지 않고 남아 있으려 할 거예요. 요컨대, 열정은 당신의 버스에 올라타고 싶게 만드는 힘이지만, 그 버스에 끝까지 남아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랍니다. 잊지 마세요. 사랑에는 시간이 걸려요. 사랑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지극한 관심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사랑은 마치 화초처럼 끊임없이 돌보고 가꿔줘야 하지요.

  우리는 미움과 싸움의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 미움과 싸움의 버스에서 내려 사랑의 버스에 다 올라탑시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열심히 사랑하는 사랑의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봉사하라

  본문 9-10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나그네를 대접하는 조건으로 ‘원망 없이’ 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당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힘에 겨울 수도 있었으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불평하는 것은 합당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의 행위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난과 핍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쫓겨 다니면서 전도생활을 하는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로서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서로 비교되거나 자기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를 세우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청지기 ‘엘리에셀’처럼 주인에게 죽도록 봉사해야 합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감정이 들어가면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없습니다. ‘청지기’는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하인’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청지기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고 관리하는 자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과 덕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 되고 아픔과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수도원이 성황하던 시절 안토니오라는 한 수도사가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수도를 하다가 이쯤 하면 되었다는 자신감을 안고 수도원을 나왔습니다. 그때 마침 수도원 문가에서 구두 수선공이 신발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신발을 고쳐 달라고 맡기고 잠깐 기다리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식구가 몇인가요?”
  “아이들 여덟에 아내와 저, 이렇게 열 식구입니다.”
  “아니,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요? 그 많은 식구를 부양하려면 신발만 고쳐서 버는 돈으로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구두 수선공은 아무 대답 없이 머리도 들지 않고 신발만 꼼꼼하게 기우다가 잠시 후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다만 주님의 종들이 오랫동안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신발을 수선해 드릴 뿐입니다. 제 가족의 삶이야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그 수도사는 자기가 아직 수련이 한참 덜 되었음을 깨닫고 다시 수도원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구두 수선공이야말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봉사는 ‘블루 오션’입니다. 경쟁이 없는 푸른 바다입니다. 봉사해야 할 곳이 많고 아직도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섬기고 봉사할 때 은혜와 복을 받게 됩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그리고 오벧에돔처럼 묵묵히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후손에게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말세지말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서두르지 맙시다. 차분히 기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하나님의 선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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