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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 : 화평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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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 화평(갈라디아서 5:22~23) 

  아름다운 열매 맺는 성도를 위한 기획시리즈 그 세번째 시간 "화평의 열매"를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화평을 주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의 임재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네 그리스도인을 위한 성령의 열매 그 세번째는 "화평"의 열매인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 화평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사합시다. 샬롬, 화평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당신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보프(Leonardo Boff)라는 학자는 Jesus Christ Liberator (Orbis Book, 1978)  즉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책에서 "3,400년간의 기록된 인류의 역사 중에 3,166년간은 전쟁을 하였고, 나머지 234년은 전쟁을 준비하는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역사는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수행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화평을 꿈꾸지만 결코 화평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인간의 욕구와 인간의 마음에 돋아난 쓴뿌리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분쟁과 싸움이 그치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국회나 국회의원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무엇이 생각나는가? 하고 물으면 열명 중 아홉 사람은 "언제나 싸움하는 모습"이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당파싸움으로 날 샌 줄 모르다가 나라까지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고질병이며 잘못된 전통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또하나 생각하면 늘 싸움하는 곳으로 인식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아실련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도 많이 싸워서 선교사들이 본국에 돌아가 선교보고를 하는데 "한국교회 잘 싸워요. 싸우면 '예수'하고 '그리스도'하고 싸워요." 하더랍니다. 교단이 싸웠다하면 '예수'하고 '그리스도'하고 갈라졌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와 대한기독교 장로회, 대한예수교 성결교회와 대한기독교 성결교회...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었다면 이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교호모습속에서 길들여지고 자라왔다면 그 구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모든 한국 사람들 마음밭에 뿌려진 화평치 못한 교회의 모습을 빨리 지워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화평한 곳으로 그리고 화평을 위하여 일하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죤 번연의 아픈 고백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죤 번연은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혈과 육이 아니요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마귀 사단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도 화평한 가정이 좋은 가정이요, 부부도 화평한 부부가 좋은 부부인 것처럼, 교회도 화평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화평을 위하여 일하는 성도가 좋은 성도인 것입니다. 불화하는데 이용되거나 사용되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화평 그게 벌개 아니야, 화평보다는 권리가 더 중요해, 할 말은 해야지, 이제 집사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었으니 너희들 목소리를 좀 내야되지 않겠니? 사단은 이처럼 교묘하게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는데 앞장서도록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트러불 메이커를 길러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역사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분쟁케 하는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사단의 아들들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언행심사이든지 먼저 화평을 위한 것인가를 살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우리에게 있느나 그것을 덕을 위해서 할 수 있어야 절제와 조율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사람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여러분! 복이 있어야 복을 더하는 것입니다. 화평이 화평을 더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은혜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되는 집은 더 잘 되고 교회도 잘 되는 교회는 더 잘 되는 것입니다. 물이 물을 부르고 불이 불을 부르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이 민족 가운데서 희망이 있는 교회로 백성들 가운데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그런 교회가 되러면 교회 이미지 메이킹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새롭게 교회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하면 떠오른 영상이 "오손도손 예수 생명으로 한 가족이 되어 화평을 누리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평화여야 하며, 화목과 화평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평화의 십자가를 걸어놓고 그것을 누리고 가르치는 곳이면서도 교회 안에 싸움이 많았다는 것은 참으로 거짓십자가 거짓신앙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성도의 기질은 화평이어야 합니다. 성도의 성품은 화평을 좋아하는 성품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군가 시간의 손해를 보고, 물질의 손해를 보고, 자존심의 손해를 보아야만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은혜로운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따질 것 다 따지고 주장할 것 다 주장하면 은혜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맙니다. 교회 안에서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르칠지언정 누군가를 가르쳐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배우기도 바쁩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가장 기분 나쁜 환자들은 많이 병든 환자가 아니라 의사를 가르치려는 환자들이라고 합니다. 병들어가지고 와서는 의사가 진료하고 치료하는 일에 약은 사사건건 간섭하고 아는채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환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가 그리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 화평의 열매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교회의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화평한 교회 모습입니다. 교회가 질적인 변화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화평한 교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워해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화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좋은 일꾼은 독립된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연합을 즐거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독립적 기질을 가지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가장 교회를 망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연합, 공동체, 가족, 한 몸을 위해서 존재하는 성도가 가장 아름다운 기질을 가지고 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화평"이란 말은 에이레네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 88번 정도 나옵니다. 이 말은 구약 "샬롬"을 번역한 말인데 신구약을 합하면 이 평화란 말이 400번 이상 등장합니다. 본문에서 - "화평케 하는 자"란 말은 「에이레노 포이오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평화를 만드는 자 즉 영어에 Peace Maker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평화를 동경하는 사람, 평화를 즐기는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자, 평화예찬론자 정도의 소극적인 뜻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평화를 조장하는 사람, 화해를 창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알라스카 에스키모인들은 "평화"란 "원수를 친구로 삼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쟁이 있는 곳에서 마냥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혼자서 도를 닦고 평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분쟁의 자리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분쟁의 자리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어떤 분쟁의 자리에도 그 분만 들어가면 화평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조용하던 자리에 그 사람만 들어가면 꼭 분쟁이 일어나는 사람으로 작용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혹시 분쟁이 가속화될 여지가 있으면 그 원인이 자신이 될 것 같으면 조용히 빠져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신본주의, 신정주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품성'을 닮은 열매, 성령의 임재와 능력 안에서 살 때"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화평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 속에서 이러한 열매를 찾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신앙을 인본주의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의가 드러나고 자기 자아가 중심이 되고 내 기분, 내 감정이 중시 될 때 분쟁의 파고가 높아져가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은 내 중심대로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이 내 뜻대로 내 중심대로 돌아가는 것은 기껏해야 어느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모든 날들은 화내고 못마땅하고 분쟁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살면 언제나 분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위스으 한 노인이 여든 살 생애를 세부적으로 나눠 투자한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데 21일년, 밥먹는데 6년, 공상하는데 5년, 담배 피우는데 1년, 세수하는데 228일, 아들과 노는 데 26일, 넥타이 매는데 18일,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5년이었습니다. 행복했던 시간은 46시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면 이럴 수 밖에 없습니다. 기껏해야 일평생동안 46시간의 행복과 46시간의 평화라고 한다면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신본주의, 신정주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놓여 있을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될 때 46시간이 아니라 일평생을 행복한 자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이 땅의 모든 평화의 기초입니다. 이 세상이 평화를 잃어버린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분리, 하나님과 단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세상이 분쟁의 파도로 넘실거릴 때에도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넘실거리는 분쟁의 파도를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반드시 하나님과 화목해지도록 도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 그것이 구원이요 영생이요,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책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고후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하셨습니다.

  화목케 하는데 전문가, 화목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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