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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향목 같은 의인 (시 9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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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같은 의인

(시92:12-15)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14)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15)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1. 백향목 같이 발육하는 의인들이 되시어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백향목(柏香木)은 레바논 산맥 해발 2000m의 눈 덮인 산에서 자라는 침엽수입니다. 그 높이가 40m 둘레가 10m 까지 자라나 나무의 자태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가히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입니다. 나무의 수명 또한 2, 3천년씩이나 될 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 짙은 향기를 내뿜어 해충이 전혀 가까이 하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백향목의 아랍어 어원이 “튼튼하게 뿌리는 뻗는 강인한 수목”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내구력이 아주 뛰어나고 마디가 없이 곧게, 그리고 높이 크게 자라기 때문에 고대 세계에서는 성전 건축(왕상 5,6장)과 선박제조, 악기 제작 등에 아주 귀중한 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실로 당대 세계 최고 품질의 목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는 말씀으로 축복하십니다. 시편104:16을 보겠습니다.
(시104:16)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가리켜 “여호와의 나무” 곧 “레바논 백향목이로다.”고 했습니다. 이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雨澤, 비의 혜택)에 흡족할 때 “레바논 백향목”이 그 가치를 발하는 것입니다. ‘우택’은 모든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때를 따라 내려주시는 이른 비, 늦은 비로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부어주시는 생수같은 성령을 뜻합니다.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의 단비가 충만한 ‘우택’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가 “레바논 백향목 같이 발육하는 의인, 성도들”이 되시어 하나님 앞에 가장 귀중하게 쓰임받는 축복과 영광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 “백향목 같이 발육하는 의인”으로 쓰임 받는 축복과 영광을 위해 백향목이 지닌 몇가지 특성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첫째로, 백향목은 내구성이 강하고 아주 단단하며 곧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살을 에는 삭풍이 부는 혹독한 겨울,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추운 겨울에도 그 푸르름과 자태를 조금도 흩트리지 않고 성장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향목이 모진 바람과 폭풍을 견디며 자랄 수 있는 것은 그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추운 겨울 같은 고난이나 역경, 그리고 환난이나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변치 않는 믿음으로 성장을 계속할 때 “백향목 같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백향목이 솔로몬 당시 성전 건축이나 선박 제조에 사용된 것은 그 나무의 내구성 때문입니다. 쉽게 휘어지거나, 부러지거나, 썩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모두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살기 힘들다고 해서, 뜻하지 않은 역경을 만났다 해서, 그리고 세상 유혹과 시험에 빠져서 믿음이 왜곡되거나 부러져 부패해진다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귀중하게 쓰임 받는 “백향목 같은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아예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거나,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거나,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처럼 하나님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財利)의 유혹에 하나님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면”(마1319-22) “백향목 같은 의인”으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잠언 24:16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린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욥과 같이 주어진 삶에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환난과 재난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믿음과 말씀에 그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려 마침내 정금 같은 의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곧고 강하며 단단한 백향목이어야 성전의 기둥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어떠한 역경이나 시련이 임한다 해도 그것들을 오히려 자신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여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교회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말 때문에 기분 나쁘고 마음이 상했다 해서, 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소흘히 하거나 교회를 등진다면 “백향목 같은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소중한 직분을 맡으신 성도 여러분,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도리어 믿음이 더욱 튼튼해지고 견고해져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계3:8,12)으로, “백향목 들보”(아1:17)로 쓰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2) 백향목의 두 번째 특성은 발육할 때만이 아니라 목재로 쓰임 받는 내내 아주 강하고 짙은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벌레가 가까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벌레들이 침투하지 못할 정도로 나무질이 단단하기도 하지만 강하게 내뿜는 향기 때문입니다. 백향목으로 집을 짓게 되면 그 집에 향기가 가득하게 됩니다. 아가서 4:11을 보면, 예수 믿는 성도를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르면서 이렇게 신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의복의 향기”는 생활의 향기를 의미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그 언어와 생활에서 향기가 나야 합니다. 그래야 레바논의 향기, 백향목의 향기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불렀습니다.

(고후2:15-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마땅히 레바논의 향기, 백향목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백향목의 향기는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생명의 냄새, 생명의 향기”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문둥병 환자나 그 환자가 살던 집을 정결케 하는 의식에 반드시 사용되었던 나무가 백향목이었습니다.(레 14:49,51-52)

(레14:49) 그는 그 집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취하고...
문둥병은 영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둥병자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격리 수용됩니다. 이는 그들의 삶에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운명에 처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볼 때 모두 문둥병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살지 않습니다. 자신이 영적 문둥병자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젊다는 이유로, 배운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아 앞길이 탄탄대로 같다는 이유로, 아직도 건강하다는 이유로, 쌓아올린 명예와 끌어올린 권력이 여전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와 내 가정이 바르게 살고 있고 만족할 정도로 행복하다는 이유 등으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도, 그 누구라도 피할 수없는 것이 죽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라도 영적 문둥병자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지 못하면 그 누구라도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깨끗함을 받지 못하면 “사망의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문둥병자나 그가 살던 집을 정결케 하기 위해 백향목이 사용된 이유는 백향목이 ‘생명의 능력, 영생’을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혹한의 겨울 바람과 눈보라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생명력, 수령이 2,3천년이나 되는 생명력과 죽어서도 결코 썩거나 부패되지 아니하는 그 생명력과 영생하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백향목이 지닌 특성, 영원히 지속되는 향기와 생명력 때문에 문둥병자와 그 집을 정결케 하는 의식에 반드시 백향목을 사용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향기가 없으면 백향목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아닙니다. 향기가 나지 아니하면 벌레가 모여듭니다. 해충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다시 말해 더러운 마귀가 달라붙게 됩니다. 사망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날마다 죄를 깨끗케 하는 회개하는 생활로 <생명의 냄새>, 향기나는 백향목으로 사는 의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인이 쫓겨나 사는 곳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세상의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곳”이 되었습니다.(창3:18) 때문에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다보면 가시에 찔리고 엉겅퀴에 넘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살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는 가시밭 같은 세상에서일지라도, 그리고 그 가시에 찔려도 더욱 향기를 널리 널리 발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가서 2:2에서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된 성도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백합화는 그 자체로 향기가 아주 좋지만 가시나무에 찔려 그 꽃잎이 찢겨질 때 더욱 그 향기가 바람에 실려 널리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한규 목사님의 글입니다. <한 독일 목사님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뒤뜰에 라일락이 핀 집을 세로 얻어 이사했습니다. 이사 다음날, 뒤뜰에 나가보니 옆집 사람이 쓰레기를 갔다 놨습니다. 실수로 그랬는줄 알고 치워줬는데 다음날도 그랬고, 그 다음날도 또 그랬습니다. 그때 목사님 아내가 아들에게 지혜롭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일 아침 뒤뜰에 또 쓰레기가 있으면 그 위에 예쁜 라일락 한 송이를 얹어놓아라.” 아들이 어머니 말씀대로 이웃이 매일 쓰레기를 갖다 놓을 때마다 그 위에 라일락꽃을 얹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부터 쓰레기는 슬며시 사라졌습니다. 행복은 절망의 쓰레기 위에 라일락꽃을 놓고 고통의 가시밭에서 백합화 향내를 낼 때 주어집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은 어떤 삶일까요? 쓰레기 위에 한 송이 꽃을 올려놓는 것처럼 ‘고통의 가시밭에서 백합화 향내를 내는 삶’도 아름답습니다. 한 시인이 들려주는 우화입니다. 한 나그네가 진한 향기를 내는 진흙을 얻고 진흙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진주가 아니오.” 나그네가 또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진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향도 아니오.”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줌의 흙일뿐이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은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아서 그렇소.” 가장 아름다운 삶은 ‘가시밭의 백합화’의 삶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가시밭 세상에서도 백합화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시는 무익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성인(聖人)들에게도 가시가 있었고, 오히려 그 가시가 성인을 만들었습니다. 가시가 불행이 아니라 가시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불행입니다. 가시에 찔리면 고통스럽지만 그럴수록 사랑의 성숙도는 높아집니다. 동풍이 불면 서쪽 가시에 찔리고, 서풍이 불면 동쪽 가시에 찔리는 것이 삶이지만 사랑만 있으면 가시에 찔릴수록 삶에서 더 향내가 나게 됩니다. 인생의 가시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치료약을 내 영혼에 흘러들어오게 하는 짧은 주사바늘입니다.>

복음성가 <가시밭에 백합화>을 다같이 한번 불러 봅시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볼 때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사람의 가시에 찔려도, 물질의 가시에 찔려서도, 고난과 역경의 가시에 찔려도 오히려 욥처럼 “(욥1:21-22)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는” 신앙생활, 환난당하는 남편 욥을 향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며 저주와 독설을 퍼붓는 아내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며 그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는” 신앙생활이 백향목의 향기를 발하는 의인인 것입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된 축복의 말씀을 믿고 바울처럼 차가운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백향목의 향기같은 의인인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왕의 명령을 어기면 사자굴 속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다니엘의 믿음이 백향목의 향기같은 것입니다.(단6:10) 바벨론의 포로생활 중 우상숭배를 거절하므로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지는 운명에 처해진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의 간곡한 설득도 거절하고 “(단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들이 바로 백향목의 향기인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향기를 발하는 <백향목 같은 의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죽어서도 그 향기를 잃지 아니하는 <백향목 같은 의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백향목이 지닌 좋은 점들이 자신에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자 미상의 시(詩) 하나를 소개합니다. “백향목 같은 사람”이라는 시입니다.

주여, 나를 도우사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백향목 처럼 크고강하게 하여 주소서.다른 나무들이 모두 옷을 벗을 때백향목은 더 푸르며,더 싱싱하고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고,얼음이 얼어도더욱 더 아름다운 백향목 처럼모든 시험과 고난 중에 꿋꿋하게 최선을 다해서당신을 의지하게 하소서비록 다른 사람들이 실패할지라도주님 나를 지키시어백향목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이같은 <백향목 같은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되는 길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궁정”에 심겨져야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백향목 같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궁정에 심겨져야 한다.”는 말씀은 교회에 삶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교회가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거목(巨木)으로 자랐다 해도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라면 결국 고목(古木)으로 사라질 뿐입니다. 썩지 않고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백향목의 영광과 축복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생활의 중심이 되고,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 말씀이 모든 생활에 중심이 되어질 때, “늙어도 결실한다.”는 말씀처럼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 가운데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어질 때 백향목처럼 곧고 강하며 높고 단단하게 자라는 축복, 어떠한 환경에서도, 죽어서도 향기를 발하는 <백향목 같은 의인>의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그 집안이 점점 강성해지는 영광과 축복을 받게 된 이유는 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시편 27:4을 보겠습니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은 오직 한 가지만을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곧 평생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고백한 노래입니다. “(시128:5-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고, 교회 밖에는 복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계속해서 “(시129: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 교회에 심겨진 <백향목 같은 의인>들이 되시어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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