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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섭리 (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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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 (출 19:1-6)

지난 금요일 아침에 저는 아프간 피랍 사태와 관련된 한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회의를 주관한 단체의 실무책임자가 ‘고 배형규 목사님의 분향소가 분당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하기에 제가 ‘그 분향소라는 말을 조문소라고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잘 아시는 대로 기독교에서는 장례에서 원칙적으로 분향을 하지 않습니다.’ 했습니다.

모두 ‘아, 그러는 것이 좋겠군요.’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이와 같이 교인들은 삼가야할 말, 쓰지 말아야할 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장례예배와 관련해서 살펴보아도 우선 ‘명복을 빈다.’는 말은 피해야합니다.
교인들이 유족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이 말을 삼가야 합니다.
빈소에 조화를 보낼 때도 꽃집에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 대신에 ‘근조’ 또는 ‘조위’ ’추도‘
’애도‘라고 써 주세요.” 이렇게 일러주어야 합니다.

명복은 ‘죽은 후에 명부에서 받는 행복’ 이라는 뜻인데 명부는 저승을 말합니다.
명복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어긋납니다.
영결예배라는 말도 피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와서 요즘은 이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영결이라는 말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헤어짐’. 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가 죽었다고 해서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팔자라는 말, 쓰지 말아야합니다.
팔자는 ‘사주팔자’의 준말인데 ‘피치 못할 타고난 운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아이쿠, 내 팔자야!’ ‘다 팔자소관이지!’ ‘팔자가 그러니까 할 수 없지!’ 이런 말 하지 마세요.
운수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합니다.
우연이라는 말도 삼가야합니다.
운명이라는 말도 피해야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우연이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인도에 의해 진행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으시지요?
하나 묻습니다. ‘하나님의 이 치밀한 계획과 인도’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힌트, 두 글자입니다.
힌트 또 하나, 오늘 주보 2면 예배순서에 정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바로 정답입니다.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인도를 우리는 섭리라고 부릅니다.
섭리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참고하기 위해 신학사전을 보았더니

섭리는 하나님께서 우주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섭리는 하나님의 뜻, 혹은 승인(承認)에 의해, 때의 흐름 속에 일어난 모든 일의 질서이다. 따라서 섭리는 세계 주재(世界主宰)로 불린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넣어져 세계 주재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섭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섭리’는 우리들이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해야 한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자, 하나 또 묻겠습니다. 성경에는 섭리라는 말이 몇 번 정도 나올까요?
그리고 어디에 나올까요?
아, 여기에 나오는 것 같다.’ 생각나는 부분이 있으면 얼른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정답, 성경에는 섭리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많이 쓰는 중요한 말인데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여럿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인데 성경에는 이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뒤에 터툴리안이라는 교부가 만들었습니다.
원죄라는 말도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원죄라는 말은 뒤에 어거스틴이 만들었습니다.
삼위일체나 원죄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성경에는 삼위일체나 원죄를 가르치는 내용은 많이 나옵니다.

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이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섭리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은 많이 있습니다.
오늘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섭리라는 말 대신에 섭리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 하나 나옵니다.
무엇일까요?

힌트,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4절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입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인도라는 말은 326번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이뤄집니다.
특히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으뜸인 사람과 관련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 바로 여러분과 저의 경우는 정말로 치밀한 섭리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잘 이해되지 않는데, 신앙적인 눈으로 깊이 잘 살피면 깨달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 배형규 목사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참하게 살해된 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배형규 목사님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나 고인을 아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착한 분이었고 남을 돕는 일에 헌신적이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학력과 대그룹의 좋은 직장을 버리고 소명의 길에 들어선 귀한 일꾼이었습니다.
어렵게 사는 지역의 주민들을 찾아가 그들을 섬겼고 섬기기에 힘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올해만 해도 방글라데시에 다녀왔고, 아프가니스탄 봉사활동을 마치고 순조롭게 귀국했으면 어제 다시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나 지금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살면 더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던 젊은 성직자가 왜 그렇게 일찍, 비참하게 죽어야 했나?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저는 그동안 보고 겪은 것을 토대로 해서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여기에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것을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성령의 역사의 중심은 예루살렘, 로마, 유럽, 미국을 거쳐 한국을 거쳐 지금 중국이 그 중심이 되어 있고 이제 이슬람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 역사의 중심이 이동할 때는 시작단계에서 반드시 희생이 따릅니다.

지금 캄보디아에 성령의 역사가 힘차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곳에 창립 46주년 기념교회를 세웠습니다.
꼭 10년 전에 프놈펜 공항에 착륙하려던 프로펠러 여객기가 활주로를 벗어난 곳에 추락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때 선교사 두 분이 희생당했습니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활발하게 선교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질 때 토마스 목사님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제너럴셔먼호라는 미국 상선을 타고 들어 왔는데 이 배의 선원들이 몹시 거친 행동을 했습니다.
선원들은 대부분 동남아 사람들이었습니다.
평양주민들과 이 배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평양주민들이 화공을 했습니다.
작은 쪽배들에 화약과 인화물질을 가득 실어 상류에서 흘러내려가게 해서 제너럴셔먼호와 충돌해서 불이 붙게 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은 한문 성경을 여러 권 가지고 뛰어 내려 그 성경을 사람들에게 던져주다가 참수를 당했습니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1866년 9월 4일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선교사들이 공식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은 자기의 목을 베는 군졸에게도 성경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토마스 목사님이 던져준 성경을 받은 군인의 조카가 뒤에 예수를 믿고 조사, 지금의 전도사가 되어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영태(李榮泰)입니다.
토마스 목사님이 순교당하는 광경을 보고 그가 뿌린 성경 세 권을 받았던 소년이 뒤에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어 평양복음화의 기초 역할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최치량(崔致良)입니다.

뒤에 도마스목사순교기념사업회가 조직되어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이 기념사업회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토마스 목사님의 무덤 부근, 조왕리라는 곳에 도마스기념예배당을 지은 것입니다.
이 교회는 토마스의 영문 첫 글자 T자를 따서 T자 모양으로 지었습니다.
얼마 뒤 일본사람들의 통치가 점점 가혹해질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의 적인 영국 사람을 기념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교회 이름을 조왕리교회로 바꿨습니다.

지금 도마스기념예배당이 있던 자리에 평양과학기술대학이 건립되고 있습니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의 근본적인 목표는 북한선교입니다.

저는 배형규 목사님의 죽음과 토마스 목사님의 순교 사이에는 일치되는 점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아프간 피랍 사건과 관련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지금 이 급한 형편에, 더구나 그들이 아프간에 간 것은 선교가 아니고 봉사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 때에 그런 이야기, 더구나 추상적인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핀잔을 맞았습니다.

여러분도 저에게 그런 핀잔을 주시겠습니까?
그것도 맞는 이야기이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족통일연구원 원장을 지낸 허문영 박사라는 분이 대단히 흥분한 얼굴로 ‘유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배형규 목사님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충격을 주어 새롭게 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더군요.
맞는 이야기입니다.

고인의 고귀한 생애, 그리고 유족들의 태도가 하고 있는 일은 지금 교회와 사회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이미 ‘내가 죽으면 내 시신은 연구용으로 사용해 주세요.’ 시신기증서약을 하고 필요한 절차를 마쳤습니다.
샘물교회에 박상은 장로님이라는 내과의사가 있습니다.
이 분이 몇 해 전에 안양병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병원 이름을 바꿨는데 기독교 냄새를 풍기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샘’이라는 말이 적합하다고 여겨져서 샘의료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은 몇 해 전에 우리교회 남선교회대회에 와서 말씀을 전한 일이 있습니다.
배형규 목사님은 이 박상은 장로님을 통해서 시신기증 절차를 마쳤는데 그 시신은 서울의대 해부학교실에 기증될 것이라고 합니다.

배형규 목사님의 사모님도 몇 해 전에 이름을 감추고 백혈병 환자를 위해 골수를 기증했다고 합니다.
모두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들입니다.

원래는 어제 시신이 한국에 도착될 예정이어서 분당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빈소를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족들이 뜻을 바꿨다고 합니다.

피랍자들과 함께 돌아오고 싶어 했던 배 목사님의 뜻을 기려 피랍자 모두가 석방돼 비행기에 탄 후, 마지막에 배 목사의 시신을 탑승시켜 운구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어디 갈 때 인솔자는 제일 앞서 가고 돌아올 때는 제일 뒤에 있어야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장례를 치루고 슬픔을 잊고 싶을 것이 유족들의 마음일 텐데 참 감동적인 결정을 했습니다.
혹시 누가 옆에서 그렇게 조언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귀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 사모님이 딸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데 ‘아버지는 생일날 가장 큰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 고 했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심금도 울렸습니다.
큰 전도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형규 목사님의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배형규 목사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은 이슬람권에 복음이 전해지독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30년 전쯤에 중국 교회의 문이 다시 열릴 때부터 일선에서 그 일을 지켜보고 접촉했던 저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확실하게 드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나에게 일어나는 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으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이 섭리가 있습니다.
이 민족은 그것을 이뤄드리고 있습니까?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섭리를 이루어드리고 있는 교회입니까?

역사도 하나님의 섭리대로 진행되고 이루어집니다.
역사를 연구할 때는 사관(史觀)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관은 ‘어떤 눈으로 역사를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셨던 이기백(李基百) 교수님은 신민족주의 사관을 가지고 우리나라 역사 연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셨습니다.

사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식민사관, 민족사관, 교회의 역사를 연구할 때는 선교사관, 민족교회사관, 민중교회사관, 실증주의사관, 토박이사관, 여러 사관이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은 섭리사관(攝理史觀)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간다는 사관입니다.

통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집니다.
지난 주간에 통일에 대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 통일원 장관을 지낸 이종석 박사의 강연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분의 성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강연은 퍽 설득력 있게 하더군요.
그 분은 앞으로 20년 이내에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형편이 나아지거나 또는 형편이 나아지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의해서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통일에 대한 견해가 얼마나 우수한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통일 문제에 대해 의외성, 초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요셉과 욥입니다.
요셉, 형들에게 죽을 뻔 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노예로 팔렸습니다.
여주인이 그를 유혹할 때 신앙양심에 따라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장한 일이지요.
그 결과는 감옥생활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아마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이런 원망을 수없이 했을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 도대체 계시기나 하는 것입니까?’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흉년 문제를 해결할 때 형들이 식량을 구하러 옵니다.
그 때,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우리 동족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를 이리로 인도하셨구나! 그런 일들을 겪게 해서 이 자리에 오르게 하셨구나!’

창세기 45장 4절에서 8절까지, 좀 깁니다만 요셉이 하나님의이 섭리를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아, 나를 애굽의 총리대신 시키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셨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요셉은 출세주의자, 세속적인 사람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성경에 오르지 않거나 그렇게 길게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라는 자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여러분,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욥도 고난을 당할 때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몰라서 많이 부르짖었습니다.
욥기는 마흔두 장으로 되어 있는데 3장에서 37장까지 서른다섯 장이 그 부르짖음입니다.
사람들의 가슴을 찌르는 아주 처절한 부르짖음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지난 월요일(23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세례를 받고 나서 기자들에게 ‘욥기를 안 읽었다면 나는 세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욥은 나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아, 하나님께 대해 귀를 듣는 신앙에서 눈으로 보는 신앙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그런 고통을 겪게 하셨구나!’

여러분, 어떤 일을 겪을 때, 특히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그 결과는 복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대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원칙 위에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채찍을 들어도 그것은 사랑의 채찍입니다.
하나님은 크게 사랑하는 분일수록 큰 고통을 겪게 하시고 그 큰 고통을 통해서 큰 섭리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계획을 세우셨을 때 그것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고 백 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지 확인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받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숫양을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심’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창 22:14).
라틴어 성경이 이 말을 '데우스 프로비데트(Deus Providet)'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에서 섭리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프로비덴시아(Providentia)’가 나왔습니다.
섭리를 영어로 ‘Provid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의 뿌리는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겪고 계십니까?
그 일이 고통스럽습니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는 아브라함과 같이 괴로운 걸음을 걷고 계십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위해 해결책을 준비하고 계시고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3절 뒷부분, “내가 어떻게 독수리의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준비, 하나님의 인도는 독수리 날개입니다.

돇리는 높이 떠서 멀리 봅니다.
독수리는 낮게 떠다니는 조그만 새들의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기류를 잘 이용합니다.
독수리는 피곤을 모릅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가만히 있어도 멈 거리를 갈 수 있는 것은 기류의 흐름을 잘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거기 비하면 우리는 땅에 기는 개미와 같습니다.
때때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세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독수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저것과 같다.’ 하면서 독수리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연작(燕雀)이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리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작은 제비와 참새를 말합니다.
대붕은 상상의 새입니다. 하루에 9만 리를 난다고 하는 큰 새입니다.
우리는 연작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대붕보다 더 위대한 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 위해 힘쓰세요.
‘하나님. 가르쳐 주세요.’ 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이 “독수리의 날개로 너희를 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라는 말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했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온갖 박해를 다 받다가 1878년 만에 다시 나라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든지 유대인이 있다고 하면 비행기를 보냈습니다.
예멘이란 곳에 유대인들이 수천 명 있었습니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당시에 이주한 유대인들이라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문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의지해서 언제인가는 하나님이 그들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자기들을 고향 팔레스타인 땅으로 인도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수송기를 보냈을 때 비행기를 처음 본 그들은 정말 하나님이 독수리를 보내주셨다고 감격해서 울고 웃고 야단이었다고 합니다.
믿고, 소망 가운데 기다리면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나는 너희를 택한 백성으로 삼아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면 이런 복을 받는다는 표본으로 삼겠다.’ 하는 섭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그 섭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범죄를 했습니다.
그 결과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합니다.
팔자, 운명. 그리고 이슬람에서 많이 쓰는 ‘인슈 알라’ ‘알라의 뜻대로!’ 이런 말들에는 체념이 들어있고 맹목적인 순종이 있는데 섭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내 온 몸을 던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확대재생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홍해도 가르시고 요단강도 가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여호수아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야했습니다.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른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작정하신 일이었습니다.
그 섭리에 순종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었고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묵묵히 그 길을 걸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독일어 배울 때 격언 모음에 ‘죽다’라는 단어와 ‘이루다’라는 단어로 연결된 문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어로는 다 잊어버렸습니다.
해석을 보니까 ‘죽은 것이 되어라’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한 해석이 아닌 것 같아서 선생님께 여쭤 보았더니 ‘죽어서 이뤄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배형규 목사님의 경우와 같이 죽어서라도 이뤄드려야 합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섭리가 있어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나?’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크면 기대도 크게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요즘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면 여러분, 복을 받습니다.
본문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 말을 오늘 설교의 관점에 맞추어 달리 표현하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니’ 이렇게 됩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이 말을 오늘 설교의 관점에 맞추어 달리 표현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힘쓰면’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우리를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겠다고 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놀라운 복을 빠짐없이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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